| 비정규직 노동자 또하나의 자살 | ||||||||
| 언제까지 죽음의 행렬이 이어져야 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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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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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영광, 비정규직에겐 죽음 한진중공업 마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계약연장 거부에 자살 명예퇴직에 이어 촉탁계약 1년만에 재계약 거부 (출처:참세상미디어) 2004년의 말미, 성탄절의 축복을 축하하는 연휴를 보낸 월요일 새벽 또다시 비정규직노동자가 고용불안의 위협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7일 새벽 6시 50분께 마산시 봉암동 한진중공업 마산공장 내 도장공장 2층 계단에서 이 회사 노동자 김춘봉(49·마산시 봉암동)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청소 옥모(65·여)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억울하다. 평생을 바쳐 회사를 위해 일했는데 나이가 많다고 나가라고 하는가. 죽어서라도 비정규직 근무조건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지 5장으로 된 유서를 남겼다. 명예퇴직 다음달 바로 촉탁 재입사, 다시 용역직원 전환 요구 김씨는 80년 9월 8일 코리아타코마에 입사해 근무하던 중 코리아 타코마가 한진중공업에 인수되면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로 재직하게 되었다. 김씨는 2003년 마산공장이 부산공장으로 이전됨에 따라 4월 7일 명예퇴직하고, 바로 다음달인 5월 1일 촉탁 사원으로 재입사해 아직 공장이전이 다 이루어지지 못한 마산 공장에서 가스창고관리 업무를 해왔다. 2002년 부터 2003년까지 한진중공업 마산 공장에서 대거진행된 구조조정 당시 산업재해 요양자들이 주요 명예퇴직 권고 대상이 되었다. 김씨 역시 지난 2000년 작업 중 다리를 다쳐 산재 9급 판정을 받고 10개월간 요양을 하고 있었다. 김씨의 유서에 따르면 당시 회사에서는 “마산공장 운영이 끝날 때까지 촉탁직 고용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회사측은 올 해 말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회사측은 또한 김씨가 담당하던 업무를 회사 내 용역 업체로 이전할 것을 통보하였고, 김씨 역시 당해 용역 업체에 용역 직원으로 입사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김씨는 수차 촉탁 계약 당시의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구두합의 당시의 관리자들이 회사를 퇴직한 상황이어서 김씨의 요구가 묵살되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한진중공업지회에 호소도 하였고, 노조에서 보름 전에 회사측을 만나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했으나, 회사측의 입장에 변화가 없어 김씨가 자살에 이른 것이다. 현재 김씨의 시신은 마산 삼성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있다. 마산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영안실을 지키고 있으며, 별다른 마찰의 조짐은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슬하에 1남(26세) 1녀(23세)를 두고 있으며, 부산 한진중공업지회는 김씨의 아들에게 이 사건 관련 일체에 대한 위임장을 받았다. 부산 한진중공업지회는 금속노조 부산지부, 금속노조 경남지주, 민주노총 경남도본부와 함께 대책마련에 돌입한 상태다.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 고 김춘봉씨 유서 전문 24년간 이 회사를 위하여 몸과 청춘을 받쳤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렇게 밖으로 쫒게나게 되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할수도 없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정말로 죽이고 싶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해도 좋다 말인가. 그 당시 마산 및 부산, 울산 공장에서는 많은 동료들이 명퇴를 하였다. 타의든 자의든 생활권이 멀리 떨어져 불안한 마음으로 명퇴를 하고 또 나이가 많다고 명퇴시키고, 근무지가 편안하다고 명퇴를 시켰다. 나 역시 그 중 한사람이다. 2002년과 2003년 두 차례 시달리며 명퇴권고를 받았다. 그 당시 관리부장 김OO, 노무차장 이OO 두사람이 나에게 수없이 권고하였다. 또한 그 당시 산재환자도 보상을 해주면서 일괄 정리하고 하였다. 나는 이곳 현장에서 작업 중 다리를 다쳐 병원생활을 10개월 하였다. 그 후 노동부로부터 9급이라는 산재등급을 받았다. 회사 노무팀에서 나에게 이러한 제안이 들어왔다. 산재보상보다는 명퇴를 하고 돈이 좀 작더라도 마산공장 운영할 때까지 촉탁근무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권하였다. 나 역시 많은 생각끝에 촉탁근무로 하기로 하고 명퇴를 하였다. 그 후 2003년 5월 1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마산공장 운영시까지 촉탁을 연장시켜준다는 문구가 없어서 아니된다고 하니 관리부장, 노무차장이 회사 규정상 그러한 문구를 삽입할 수 없으니 이해하여 달라면서 저희 두사람이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서명을 권하기에 믿고 도장을 찍었다. 그 후 두사람은 회사공금을 착복하여 회사에서 해고당하였다. 그런데 지금와서 나가자니 하니 정말로 미치겠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관리자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올 6월부터 공장장 이OO, 시설차장 이OO, 관리 김OO 과장 등 관리팀에서는 외주(OO기업)를 주기로 구두계약을 하며 OO에서 고압가스 교육을 가도록 하였다.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11월 23일 면담을 해보니 모두가 끝난 상태였다. 회사는 자기 편한데로 또한 자기들하고 친하다고 이렇게 할 수 있냐. 한사람 가정이 파탄하는 줄 모르고.... 그 후 공장장, 이OO, 김OO 등 많은 면담을 해 보았지만 안되었다. 절대 못나간다.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고 수차 이야기를 하여도 도와주지도 보지도 않았다. 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되어도 되는지 정말 회사는 너무하다. 현재 마산에서는 촉탁근무자가 나 외에 6명이 더 있다. 이들 역시 나처럼 나가라고 하겠지.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명퇴 촉탁을 하였다. 부탁도 하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다. 계약 만료일만 되면은 쫒아내겠지. 다시는 이러한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나 한사람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잘 되면....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 벌써 혼자서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생활한지도 21일째다. 아무도 신경을 써 주지 않는구나. 나도 지쳐간다. 저번에 다친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꼭 이렇게 하여야만 회사는 정신을 차리는지.... 지금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꼭 그 사항이 이루어지길 간곡히 원하고 싶다. 그렇게 하여야만 나 같은 사람도 인간 대접 받을 수 있지... 한진 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해주겠지. 차 지회장님, 그리고 권OO, 김OO, 이OO. 나의 이러한 고충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으며 꼭 이 문제를 풀어주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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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12월27일 22:50: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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