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덕표 농민까지 사망!! | ||||||||
| 살인 폭력정권 노무현정권 심판! | ||||||||
|
||||||||
사회진보연대 |
||||||||
|
||||||||
![]() "얼마나 맞아야 이렇게 죽는다요?" "아버님이 '누가 때린지 기억하고 있다'면서 '일어나면 꼭 찾아낼 것이다'고 말씀하셨는데…."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농민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목뼈와 척수(신경)을 다쳐 사지가 마비되고 폐렴까지 곁쳐 결국 18일 새벽 사망한 고 홍덕표(68)씨의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용서할 수 없다" 홍씨의 누나 은정(72)씨와 은임(75)씨는 원광대병원 장례예식장 홍씨의 빈소에 들어서면서부터 오열하기 시작했다. 은정씨는 빈소에 들어서면서 "아이고… 아이고… 짠한거"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얼마나 맞아야 이렇게 죽는다요, 말 좀 해보시요"라며 동생을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특히 그는 "덕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죽어야 하느냐"며 "누가 때렸소, 가르쳐주시요"라며 기자들의 무릎을 치기도 했다. 두 고모가 오열하자 그동안 눈물을 간신히 참고 있던 홍덕씨의 딸 영옥(42)씨 등 자녀들도 흐느꼈다. 영옥씨는 따로 마련된 유가족 간이방에서 "치료를 받으시면서 아버님이 '딸이 다리를 주물러줘서 오래 살 것 같다'고 말씀 하셨느데…"라며 "이렇게 가시면 어떻게 해요"라고 되물었다. 이어 "아버님이 '나는 집회할 때 뒤에서만 있었는데… 나를 때린 경찰 얼굴을 안다, 일어나면 그 사람을 잡을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곧 일어날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영옥씨는 "어떻게 노인네를 그렇게 마구잡이로 잔인하게 때릴 수가 있느냐, 어떻게 경찰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사람을 짓밟을 수 있느냐"며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나 하는 짓"이라고 울부짖었다. 이어 "아버지를 이렇게 보낸 경찰 책임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반드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 성귀(39)씨도 "폭력경찰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농민회와 협의해서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범대위 "노 대통령 사죄하라"... 후폭풍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살해규탄 범국민대책위(범대위)'와 범대위 전북 대책위는 원광대병원 장례예식장에서 이날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홍덕표씨 사망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의 사죄 등을 요구했다.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지난 11월 15일 경찰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진압이 아니라 작전을 펼쳐서 농민의 씨를 말려버리려 했던 것"이라며 "분통이 터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사죄해야 한다,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유족과 합의해서 장례일정을 미루고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대위는 "백주대낮에 국민을 때려서 죽게 만든 살인정권과 공권력의 천인공노할 범죄는 명명백백한 것"이라며 "허준영 경찰청장은 경찰폭력과 농민 사망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즉각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범대위는 "전용철 농민의 사망 이후 경찰은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며 축소하기에 급급했고 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일개 기동단장의 직위해제로 어물쩡 넘어가려 하고 있다"며 "국민을 때려죽인 이 폭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고책임자인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죄와 파면을 단행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군사독재 시절에도 볼 수 없었던 이 살인폭거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언제까지 침묵으로 일관할 것이냐"며 "노 대통령은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즉시 모든 진상을 규명하는 동시에 그 책임자를 처벌하고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대위는 ▲농민 살해한 책임을 지고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 사죄 ▲허준영 경찰청장 파면 ▲현장지취 책임자와 가해자 색출, 형사처벌 ▲부상자 전원에 대한 치료와 배상 실시 ▲쌀협상 비준안을 무효화 등을 거듭 요구했다.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농민 살해규탄 투쟁 지침 범대위홈페이지바로가기 1. 투쟁지침(사이버 투쟁포함) 1) 고 전용철 농민을 추모하는 마음을 모아 각 사무실에 분향소를 설치한다. 2) 쌀 개방 국회비준 무효, 고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을 내용으로 하는 현수막을 최대한 많이 게시한다. - 각 단체 사무실 앞, 주요 거점 및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 도로 3) 서울 광화문을 비롯하여 전국 100개 시군구에서 매일 저녁 6시 촛불집회투쟁을 전개한다. - 시군구별로 진행하되, 실정에 따라 광역 등으로 집중할 수 있다. 4) 거리선전전과 서명운동을 대대적으로 대중적으로 전개한다(모금함 운영). - 서명용지는 전국민중연대 전농 등 홈페이지에 있음. - 홍보물은 자체제작하거나 중앙에 ** 촛불집회와 서명운동 진행상황과 결과는 매일 추모 홈페이지, 전농 홈페이지 등 주요 사이트에 반드시 게재한다. 5) 12월 1일 전국농민대회, 12월 4일 민중대회에 총력 집중한다. - 12월 1일 농민대회는 오후2시 서울집중(오후 6시 광화문 촛불집회 포함), 민주노총 투쟁은 광역지역별로 전개됨. (지역 실정에 따라 진행.) - 12월 4일 민중대회는 지역, 부문 오후2시 서울 총력 집중. (※ 현재 서울에서는 매일 저녁6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또는 수도권)에 계신 동지들께서는 특히, 12월 1일 투쟁 이후 촛불집회 / 12월 2일 촛불집회 수도권 집중 / 12월 4일 투쟁 이후 촛불집회에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6) 사이버 실천을 적극적으로 조직한다. - 사이버분향 함께 하기 - 개인미디어( 네이버의 블로그, 다음넷의 플레닛, 사이월드의 미니홈피 등)에 추모 그림달기, 검정리본과 메세지 올리기 (예 ->▶◀ 고 전용철농민]추모) - 포탈사이트의 대중 공간 진출하기(네이버의 붐, 다음넷의 아고라 같은, 대중들이 모여 주요 관심사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공간에 이슈나 그림 등을 올려 공론화의 장을 형성해감) - 모든 단체 사이트 및 인터넷기관지에 추모배너 달기. ** 쌀개방무효투쟁 카페에 가입하세요 http://cafe.naver.com/uriga 7) 범대위 참가하고 있는 전국민중연대 단체들은 빠른 시일 내에 분담금을 납부합시다. - 쌀 비대위 200만원, 민주노총/민주노동당 50만원 + @ / 각 참가단체 20만원 또는 10만원 ** 분담금 납부계좌 : 조흥은행(오봉석) 367-06-240194 2. 고 전용철 농민 살해 사건 상황(추가) 1) 고인의 약력과 그의 삶 <약력> - 1962년 충남 보령군 출생 - 1975년 관창초등학교 졸업 - 1978년 대천중학교 졸업 - 1979년 인천 직업훈련원 수료 - 1979년 철도청 입사 - 1983년 ~ 89년 직장생활 - 1989년 귀농(버섯농업에 종사) - 2002년 보령농민회 활동시작 - 2004년 2월24일 보령농민회 주교면 지회장 “내가 좀 알지. 소같은 사람이여. 욕도 못하고... ‘야! 이놈아’가 제일 큰 욕이여. 술 좋아하고... 순박한 농민 그 자체여. 동네에서도, 농민회 활동에서도 면지회장이면 목에 힘도 주고 그럴만도 한데.. 궂은일은 다해.” “용철이는 욕심이 없고, 자기 잇속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었어. 마을 청년회에서도 봉사부장만 몇 년째 하고 있어. 봉사부장은 동네에서 喪이 나면 뒤치다꺼리 하는... 귀찮아서 안할려고 하거든. 용철이가 자청했어. 항상 어려운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여.” “양송이 버섯을 재배했어. 정책적으로 권유한 거여서 정부말만 믿고 투자도 많이 했지. 그런데, 가격이 폭락해서 빚을 많이 졌어. 그래서, 올해는 농사도 중단했지. 이 놈의 농사가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늘어가잖어.” 2)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한 11월 15일 당일 행적과 사망경위 - 오후 2시 집회를 마치고 농민들은 오후 3시 40분경 국회로 행진 시작 - 오후 4시 경찰과 대치 - 오후 4시 20분경 경찰의 1차 진압 : 무대차량 넘어 공원쪽으로 농민들 몰림 => 고 전용철 농민이 경찰의 진압 이후 뒤로 밀려나 전경들에게 쌀 개방의 문제에 대해 항의하는 모습 목격(지하보도 중간 부분) - 오후 4시 40분경 경찰의 2차 진압 : 경찰이 하나은행, 지하보도를 넘어 공원쪽으로 진압 => 오후 4시 40분경 산업은행 조형물 앞, 임나영 학생과 만나서 "방패에 맞았는데 괜찮다"는 이야기를 함 - 오후 5시 20분경 경찰 3차 진압으로 공원 내로 들어옴 => 오후 5시경 여의도 공원 내 매점 부근에서 목격. - 오후 5시 40분경 경찰의 4차 진압 - 오후 5시 40분경 주최 측은 다시 국회로 행진하기로 결정함 - 오후 6시 10-20분경 경찰의 5차 진압 => 진압과정에서 고 전용철농민이 방패에 찍히고 쓰러진 상황에서 경찰들이 밟고 지나감. - 오후 6시 20분경 경찰의 6차 침탈 : 국기봉 쪽에 이어 본무대쪽으로 침탈 => 경찰이 국기봉 쪽 진압 이후 전용철 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농민들이 목격하고, 이송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듬, 이후 네 명의 농민이 고 전용철씨를 들고 무대쪽으로 이동(이 때 시각 : 오후 6:27) - 오후 7시 30분경 금감원 맞은 편 도로변 난간을 붙잡고 있는 전용철씨를 발견. 내려가는 도중 들린 휴게소 화장실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함. - 16일, 보령농민회 이병훈 사무장이 찾아가 밥을 함께 먹었으나 구토함. - 17일, 보령농민회 이병훈 사무장이 다시 찾아가보니 침을 흘리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곧바로 보령병원 응급실로 이동. - 뇌출혈이 심각함을 확인하고 바로 충남대병원으로 옮겨 중환자실에 입원. - 두 차례에 걸쳐 뇌수술을 받았지만 11월24일 새벽 6시30분경 운명. 3) 사건경과에 따른 목격자 증언과 자료 증언1) 고 전용철 동지, 공권력에 의한 집단구타 이후 최초목격자의 증언문(호서대학 4학년 임나영) 지난 2005년 11월 15일 ‘전국농민대회’ 현장에서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진압 속에 고 전용철 동지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에 슬픔을 표합니다. 동지의 죽음이 명백한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는 것을 증언할 수 있는 최초 목격자로써 언론과 정부 당국의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작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각오로 본 글을 작성합니다. (1) 작성자 : 임나영(83년생, 23세) : 02년도 호서대학교 입학 호서대[호서문화]교지편집위원회 활동 중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호서대 학생당원 (2) 고인과의 친분 배경 2004년 8월 초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학생위원회의 지역(충남) 연대활동인 ‘희망’ 활동(지역 사업장이나 농민회 등을 순회하는 형식)에 학생당원으로써 결합하여 활동하였다. 당시 한 활동으로 보령 농민회의 ‘쌀 수입개방 저지, 이경해 열사 정신계승 9. 10 농민대회’준비를 돕고, 고인의 댁에서 하루 밤을 묶으며 고인과 알게 되었다. 이후 지역(충남) 및 전국 투쟁 시에는 항상 고인을 찾아뵈오며 친분을 다져왔었다. (3) 지난 11월 15일 전국농민대회 당시 고인을 뵙게 된 정황 본 대회를 무사히 치루고 ‘상여 국회 진출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있었으며 이에 본 대오는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약 4시~4시30분경으로 추정) 민주노동당 충남도당의 학생당원이니만큼 그 깃발아래 찾아 섰을 때 몇몇의 충남도당 당원이 모여 경과를 살피고 있었고, 이쯤(산업은행, 조형물 근처)에서 고 전용철 동지를 뵙게 되었다. 고인이 먼저 나를 알아보셨으며, 당시 대화를 정확히 기록 하면 다음과 같다. 고인; (나를 알아보시고 툭 건드리며) 야! 나; 엇! 안녕하세요? 고인; (약간 끄덕이며)어... 나; (당시 상활을 생각하며) 괜찮으세요?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고인; 어... 여기저기 맞았는데 다른 곳은 괜찮아, 근데 (손으로 머리 뒷부분을 만지며) 여기가 좀 아프다. 나; (걱정스런 마음에) 어떻게 해요... 고인; (아무렇지 않다는 듯) 괜찮아...! 나; 그런데 대오와 떨어지셨나봐요. 왜 혼자 계세요? 고인; 모르겠다. 정신이 없다. ... 생략 ... 당시 고인을 뵈었을 때 외관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출혈 등의 모습은 미쳐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폭력 진압 사실도 있고, 고인의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과 머리카락이나 옷매무새 등이 흐트러져 있었던 모습을 보아서도 전경에 의한 집단구타를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과정에서 안부를 묻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인의 괜찮다는 말씀에 무심코 넘겼다. 그 이후 고인은 사람들을 찾겠다며 나섰다가 돌아오셔서 함께 계셨다가, 어느 순간에 함께 있지 않음을 확인 하는 등 당일 약 3~4차례 뵈었었다. 그중 마지막으로 뵙게 된 것은 공권력이 국회의사당과 여의도공원 사이의 도로에까지 폭력과 함께 달려든 후, 그리고 본 대회가 열렸던 무대에까지 치고 넘어가기 전, 국기봉 쪽 잔디밭에 도망쳐 있을 때였다. 그곳에서도 잠시 함께 계셨다가 국기봉 쪽으로 가시는 것을 뵌 것이 마지막이다. - 끝 - 증언2) 11월15일 농민대회에서 전용철 동지 목격 상황(민주노동당 보령지구당위원회 사무국장 김경구) 서울에 같은 버스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여의도 집회 장소에 함께 있었습니다. 집회가 마무리 된 후 행진을 하고 국민은행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후 갑자기 물대포를 쏘고 전경(의경)들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1차적으로 대오가 후퇴를 하고 하나은행(?) 까지 밀려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같이 나왔다가 공원뒷부분(국회쪽) 구멍가게 근처에 있다가 다시 하나은행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갔을 때 본 사람이 배종수 보령시 농민회 부회장님(한 노인분이 전경들 뒤쪽에 있다고 모시고 와야한다고 하셨음)과 김석진 농민회 회원(당원)과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는 국회를 바라보고 오른쪽 인도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왼쪽 부분을 봤을 때 (전 도로에서 중간 좌측 부분) 전용철 주교면지회회장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가서 괜찮은가 하고 물어봤고 걱정하지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몸 조심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고 다시 돌아오면서 봤을 때 전용철 면지회 회장님은 전경(의경)들에게 쌀수입개방 관련에 대해서 훈계하시며 너희들이 이러면 되겠냐며 말씀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 전경(의경)들이 쳐들어왔고 그 때 다시 여의도 공원 뒷부분까지 밀려났습니다. 그 이후 다시 집회장소로 또 밀려났고 이병훈 주교면 총무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더 대오가 흩어지거나 만나면 공원안에 태극기가 걸려있는 곳으로 모이라고 하셨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병훈 총무님이 전용철 회장님을 봤는지 물어봤고 제가 본 위치를 가르쳐 드렸습니다. 이병훈 총무님은 사람들을 챙기며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다시 이병훈 총무님을 만났습니다. 전용철 회장님이 안보인다며 말씀을 하셨고 너는 태극기 있는 곳에서 사람들을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시 대오가 집회장소로 밀고 들어왔고 그 이후부터 저는 대오를 찾으며 혼자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돌아다니던 중 천안에서 올라온 여성동지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동지들에게 전용철 회장님을 찾아야 한다며 다시 헤어졌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이병훈 총무님과 연락을 취해서 만났고 몇몇 사람들을 더 만나서 버스가 있는 곳(공원과 금감원 그리고 한화증권(?)의 삼거리 지하철 역방향 금감원 근처 주차)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버스안에는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고 전용철 회장님만 안계셨습니다. 그래서 몇 사람이 찾으러 나섰습니다. 저는 한화증권(?) 쪽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건너갔을 때 전경(의경)들이 어떤 사람을 체포해서 끌고 갔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너무하다며 웅성웅성 하고 있었습니다. 좀 더 갔을 때 전용철 회장님이 도로변 난간(사람들 넘어가지 말라고 박아놓은 파이프)이던지 아니면 나무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손을 짚고 몸을 기대고 있었습니다. 저는 형님 괜찮으신가고 물어봤고 다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 때 형님은 저를 보자마자 이제 집에 가고 싶다. 나 이제 집에 가고 싶다. 힘들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축을 해드렸을 때 팔은 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터벅터벅 저를 뒤따라서 걸어오셨습니다. 걸어가면서 이병훈 총무님께 용철형님 찾았으니 돌아오라고 전화하였습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조수석 방향 앞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몸을 옆으로 뉘우시고 주무셨습니다. 내려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렸을 때 화장실을 가셨습니다. 당시 저는 버스에 앉아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전용철 회장님이 안나오셔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고 한참후에 나왔을 때 조금 걷다가 바로 주저앉으셨습니다. 제가 나가서 버스 타자고 말씀을 드렸고 부축을 해드리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중간에 대천을 거진 와서 밥을 먹었을 때 전용철 회장님은 버스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보령 주교에 도착을 해서 전용철 회장님을 모시고 마을 청년회관으로 부측을 해서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형님을 본 것은 영정사진의 얼굴이었습니다. 증언3) 故 전용철동지 사건현장 증언(김장택 전농 제주도연맹 조천읍농민회장/ 전농 제주도연맹 북제주군농민회장) 본인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조천읍지회 회장 겸 북제주군 농민회 회장으로서 2005년 11월 15일 서울집회에 참석하였다. 해질 무렵(18:00에서 19:00 사이로 추정)쯤에 국기게양대(광장동쪽) 주변에서 10여명의 동료들과 같이 미처 합류하지 못한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가 국기게양대 북쪽(국회 쪽)에서 경찰들이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채 광장 쪽으로 몰려왔다. 본인은 동료들과 함께 뒤로 피했다. 경찰들이 무대 쪽에 대열해 있자 국기 게양대 쪽으로 갔다. 게양대 부근에 경찰이 지나갔던 그 자리에 농민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몇 명의 농민들이 주변으로 모여 들었고, 본인도 그 쪽으로 갔다. 쓰러진 농민은 움직임이 전혀 없었고, 누군가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고 외쳤다. 무대 쪽으로 옮기면 구급차가 곧 도착할 거라고 누가 말했다. 옮기자고 했더니, 혹 척추손상이나 머리에 부상이라도 있으면 더욱 악화될 수 있을 거라고 하며 구급차를 기다리기로 하자고 했다. 어느 분이 이 차가운 곳에 두면 더욱 위험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옮기자고 했다. 네 명에서 앞 뒤로 들고 이동했다. 경찰들은 무대 쪽에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사람이 죽어간다고 외쳤다. 이 놈들아 사람이 죽었단 말야 하면서 경찰들의 대열을 헤치고 무대 쪽으로 갔다. 경찰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무대 뒤편에 거적을 깔고 쓰러진 농민을 눕히고 본인은 게양대 쪽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행방을 걱정됐기 때문에 쓰러진 농민을 뒤로한 채 게양대 쪽으로 돌아온 것이 이 사건에서 본인이 목격하고 행동한 내용의 전부다. 한 점 보태거나, 빼거나 한 점이 없다는 것을 양심을 걸고 맹세하며 진술에 임한다. 증언4) 故 전용철동지 사건현장 증언(정태문 전농 제주도연맹 성산읍농민회장/전농 제주도연맹 정치위원장) 청보리사랑의 노래가 끝나고 대회가 마무리 될 때였으니까 추정하건데 6시쯤 됐던 것 같다. 청보리사랑은 노래는 부르지 않았지만 무대 위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밖에서는 이미 싸우고 있었고 안에서는 불 쬐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역 버스를 타러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거의 정리되는 분위기였던 거 같다. (대회때도 몇번 침탈당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침탈당하고 대오는 거의 빠진 상황이었는데 도여농과 우리 회원들 대부분은 국기게양대쪽에 있었다. 의경들이 지나간 후 보니깐 한사람이 가만 누워있었고, 죽은거 같아 맥을 짚어보니 맥은 뛰었었다. 강순희 도여농 사무처장한테 구급차를 부르라고 해서 구급차를 불렀으나 구급차는 오지 않았다. 아마 막혀서 못 들어왔던 것 같다. 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같이 네명이 무대 뒤쪽으로 들어 이동을 시켰다. 무대뒤쪽에 환자들을 치료하던 상황이라 그쪽으로 이동했다. 무대 뒤쪽으로 가니 아시바들이 쌓여있었고 그 위에 깔개(카페트같은거)가 있어서 그냥 아스팔트는 너무 차가울 것 같아 그것을 펴서 그 위에 환자를 눕혔다. 이동 후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가슴 등을 눌러봤다. 잠시 후 깨어났는데 맞았냐고 질문을 해도 바로 전 상황에 대해 전혀 기억을 못했다. 술은 거의 아니면 전혀 마시지 않은 것 같았다. 냄새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참고로 정태문회장은 술을 마시지 않음) 괜찮냐는 질문을 재차 하니 일어나서 걸어서 이동했다. 가는 것을 보고 국기게양대쪽으로 다시 이동했다. 증언5) 집회에 함께 참석한 보령농민회가 말하는 사건 경위 지난 15일 여의도 농민대회 중 4시 30분경 1001 전경(의경)들이 대오에 폭력적으로 방패 및 곤봉을 휘두르며 밀고 들어왔고, 당시에 윤철중 성주면지회회장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서로 다치지 말자며 약속을 하고 침탈로 인해 뒤로 밀려나는 중 다리가 불편한 성주면지회회장님은 몰매를 당하고 머리 및 눈에 타박을 입고 몸에 방패가 찍혔습니다. 그 와중에 전용철 지회장님께서 같이 폭행을 당하다가 대오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보령에서 함께 올라간 대오가 계속해서 전용철 지회장님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전 대오가 다시 집회 장소로 집결하여 각 시군별로 대오를 정리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무렵 저녁에 전경(의경)들이 집회장소를 침탈하였고 농민대오가 경찰들에게 밀려 광장에서 거리로 나오면서 대오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녁이라 어두워서 모두가 대오를 찾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후 서로 연락이 취해져 보령농민들의 대오가 다시 모여 귀가버스 차량에 승차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용철 지회장님은 그 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귀가버스 탑승후 30분 이상 보령농민들이 전용철 면지회회장을 찾았고, 발견당시 도로변 난간을 붙들고 계시는 전용철 지회장님을 발견을 하였습니다. 발견당시 옷이 찢어져 있었고 눈 부위에 타박상을 입었으며 후두부에 또한 빨갛게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몹시 피곤한 상황에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며 말씀을 하셨고 말을 횡설수설 하셨습니다. 그리고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맨 앞 의자에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고 계셨습니다. 중간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들렸는데 화장실에서 나오시지 못하고 계속 앉아만 계셨습니다. 그리고 차량까지 이동 중에도 한 차례 주저앉았습니다. 귀가 후 16일 주교면 청년회관에서 농민회원이 밥을 시켜주었고, 조금 먹다가 구토하였습니다. 그 후 본인이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17일 오후 5시경 전용철 면지회장은 잘 앉지도 못하였고, 몸이 자꾸 좌측으로 기울고, 누운채로 소변을 보았습니다. 이 것을 발견한 농민회 회원들이 평소의 전용철 회장의 모습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급히 보령병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동 후 주치의에게 15일 집회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였고, CT결과 뇌출혈 판명 긴급히 보령병원에서 119로 충남대 병원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충남대 병원에서 확인한 부상부위는 왼팔 상박부에 큰 타박상을 입었고 오른쪽 눈 부위에 심한 멍이 있었으며 오른쪽 가슴부위에 동그란 멍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뇌출혈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긴급 뇌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20일 보령 농민회 회원들이 면회를 갔습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 있어서 전부 면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며 지켜보자고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23일 자정 무렵 갑자기 동공이 풀리는 등 상태가 악화되어(주치의 상황설명) 재수술 필요성을 느껴 전용철지회장님의 동생 전용범에게 유선으로 알려와 수술동의를 하였고 다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주치의로부터 수술도중 생존가능성이 희박하다하여 호흡기를 장착하고 보령으로 이송중 운명하셨습니다. 4)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발표내용 전용철씨 넘어져 후두부 충격 사망", "외부 가격 흔적은 없어" - 국과수 발표(종합) (대전=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농민집회에 참가한후 9일만에 뇌출혈로 숨진 전용철(44)씨의 사망원인이 `후두부 충격'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5일 오후 8시께 대전시 유성구 화암동 중부분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4일 시신을 부검한 결과, 전씨가 넘어져 머리 뒤쪽에 손상을 입고 뇌출혈,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이상용 국과수 중부분소 법의학 과장은 "전씨의 눈 부위에서 발견된 멍은 전씨가 넘어지면서 생긴 외력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머리 앞부분에 직접 충격이 가해졌다는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의학적으로 머리 손상은 크게 머리의 움직임이 없이 외부충격이 가해질 때 생기는 동측충격손상과 전도(넘어지는 것)하면서 생기는 대측충격손상으로 나뉘는데 전씨의 시신은 전형적인 대측충격손상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국과수에 따르면 뇌는 관성의 법칙때문에 정지하려는 속성이 있어 전도상황에서는 대측충격손상이 형성되는데 전씨의 시신은 뇌의 후두엽에는 손상이 없고 오히려 앞쪽에 강한 힘이 전달돼 출혈과 골절 등 손상이 심했다는 것이다. 서중석 국과수 중부분소 소장은 "시신의 목, 팔, 가슴, 허벅지 등에서 멍이 다수 발견됐지만 대부분 전씨를 심폐소생술 등 치료과정에서 발생한 의인성 상처였고 가격에 의한 상처는 찾을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정강이 아래 부분의 까지고 멍든 상처의 원인은 밝혀내기 어려웠다"면서 "고인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말기 간경화를 앓고 있었고 간이 망가지면 혈액의 응고작업이 떨어져 수술로 소생시키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전씨가 넘어졌을 가능성에 대해 "사람을 넘어뜨리기위한 강한 외력이 전면에 가해져야 하는데 농민들이 주장하는 강한 타격을 받고 이 분이 전도됐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서 소장은 "부검을 하면서 유족측 부검의에게 이같은 소견을 충분히 전달했고 유족측도 이에 동의했었다"며 "농민단체가 부검결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요청하면 흔쾌히 응할 것이고 전씨가 넘어진 경위 등 나머지 조사는 수사기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오늘 오후 5시께 감정을 종료하고 부검을 의뢰한 충남 보령경찰서에 이같은 결과를 통보했다"면서 "앞으로 혈액형, 유전자 검사 등 추가 검사를 몇가지해야 하지만 대세를 다시 판가름할만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국과수측은 전씨의 사인을 놓고 의문이 증폭되고 인터넷 등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떠돌자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부검사진 4-5장을 공개하며 설명했고 30분 가량진행된 기자회견에는 국과수 관계자, 경찰, 취재진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5)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부검 및 진료기록 검토에 의한 국과수의 부검결과 반박 - 고 전용철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론은 의학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농민 집회에 참여했던 한 농민이 9일 후에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농민들은 망자의 사망 원인이 경찰 폭력에 의한 것일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에 경찰은 망자의 사망 원인을 밝히고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하였다. 국과수는 전용철씨 사망일인 지난 24일 부검을 실시하였는데 이 부검 과정에 우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도 참관한 바 있다. 국과수는 지난 25일 부검 결과를 발표하였다. 결론은 “망인이 넘어지면서 머리 뒤쪽에 손상을 입고 뇌출혈,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국과수의 이러한 결론은 여러 가지 정황과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너무나 단정적으로 내려진 것이다. 이번 부검을 통해 국과수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망인의 사망 원인이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이라는 것뿐이다. 국과수는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이 발생하게 된 선행 요인을 망인의 넘어짐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타당한 의학적 과학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올바른 의학적 판단으로 볼 수 없다. 국과수는 ‘넘어져서 사망했다는’ 판단의 근거로 망인의 손상 형태가 ‘대측충격손상’에 의한 것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여러 문헌들과 전문가들에 의하면 뇌의 대측충격손상은 외부 가격에 의해 생길 수도 있다. 뇌의 대측충격손상은 정지된 물체에 부딪치는 것에 의해서도 가능하지만 가격에 의한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또한 국과수는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강한 외력이 전면에 가해져야 하는데, 농민들이 주장하는 강한 타격을 받고 이분이 전도됐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넘어져 사망했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며 설령 넘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전면에 가해지는 강한 외력”이 없었다는 증거 또한 없다. 그외에도 국과수는 다른 상처는 모두 심폐소생술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나 망인의 어깨부위와 둔부의 피멍, 표피박탈 등은 심폐소생술로 인한 상처로 설명되기는 곤란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부검을 통해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은 오직 망인의 죽음이 ‘외상에 의한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로 인한 것이라는 것뿐이다. 부검 결과는 망인의 죽음에 경찰 폭력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변하기 위한 증거로 사용될 만한 그 어떤 추가적인 정보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의학은 모든 과학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한계를 벗어나는 판단은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정치적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과정으로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밝혀내는 것은 부검의와 의학적 판단의 몫이 아니라 조사기구의 몫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성급한 결론은 의학적 과학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 우리는 정부가 국과수의 부검 결과를 핑계로, 보다 정밀한 조사 없이 이 사건에 경찰 폭력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판단한다. 인의협은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 속에서 발생한 사망사건들이 공정한 조사과정 없이 정부에 의해 개인적인 실수로 치부되어온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생각한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사망과정에 대한 공정한 조사이지 과학적․실체적 근거가 없는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다. 부검참관소견서 참관의사 : 원진호(내과전문의) 참관일시 및 장소 : 2005. 11. 24. 오후 6시 40분-9시20분 보령아산병원 영안실 부검장 사망자 : 전용철(46세, 남자) 1. 사망경과 2005. 11. 15. : 쌀협상비준안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한 농민집회에 참석. 서울 경찰청 소속 1기동대 전경에 의해 집단 구타. 2005. 11. 16. : 상태 악화되어 혼미한 의식상태 관찰됨 (drowsy mental state) 2005. 11. 17. 보령아산병원에 내원하여 뇌 컴퓨터 단층촬영 시행. 전두부 양측 두개내출혈(intracranial hemorrhage, ICH)로 진단됨. 충남대 병원으로 전원 2005. 11. 18. 충남대 병원에서 두개골 천공수술 시행(burr hole) 2005. 11. 24. 새벽에 출혈 지속되어 두개절제술(cranioectomy) 시행. 뇌출혈로 인한 뇌부종에 의한 뇌손상으로 사망함. 2. 부검 경과 및 소견 - 보령아산병원 영안실 지하 1층 부검장에서 국과수 부검의 3사람을 비롯하여 5인에 의한 부검집도를 집도를 6시 40분에 시작함. - 유족 측으로는 유족대표로 고인의 형, 보령시 농민회장, 전농 부회장, 전농 대외협력국장, 원진호 본인(유족측 의사), 검사 측에서는 검사를 비롯한 형사 관계자들이 참석. - 먼저 외관상 나타나는 신체계측과 증후에 대한 평가를 하였는데 오른쪽 어깨 부위에 약한 충격에 의한 피멍 자국과 왼쪽 엉덩이부위의 표피 박탈(abrasion), 좌측 후두정부 부위의 표피 박탈, 양측 상안검에 피멍(ecchymosis)자국, 공막의 황달 증상 이외에는 입원과정과 수술과정에서 얻은 상처 자국으로서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할 만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 이어서 시행한 내부장기 손상에도 고인의 병력에는 없었으나 간경화와 비장 비대소견이 있었고 심장내막하 출혈이 보였으나 사인과의 직접적 증거는 없었다. - 오후 8시를 넘어 본격적인 두부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 졌다. 여기서 결정적인 소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앞서 언급하였듯이 좌측 후두정부 부위의 표피박탈(abrasion)된 두피 바로 밑으로 미세한 골절 선이 있으면서 두정부 봉합선을 따라 약간 봉합선이 벌어져 있었다. 이는 충격으로 인한 손상으로 판단되었다. 두개골을 열고 들어가 확인한 뇌실질에서는 양측 전두엽 실질내 출혈 응괴가 있었고 오른쪽 부위가 병변이 더 저명하였고 오른쪽 측두엽까지 출혈이 있었다. 두저부(skull base) 전측부(anterior fossa) 안와위판(supraorbital plate)에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선상의 골절선이 있었고 이를 통해 안와쪽으로 출혈이 있어 안검 피멍이 생긴 것으로 판단되었다.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역시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 우측 전두부에서 확인되었다. - 오후 9시 20분 부검 종료 3. 결론 사망원인 : 두부외상에 의한 뇌손상 뇌손상은 좌상(맞거나 부딪쳐 생긴 상처)에 의해 발생하였고 전두부 실질내 출혈, 골절,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등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기전으로는 왼측 후두정부가 뭔가에 세게 부딪치고, 뇌의 대측충격손상(countercoup injury)에 의해 오른쪽(왼쪽도 존재) 전정부 뇌실질에 저명하게 뇌좌상을 입히고 출혈을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 4. 기타 부검을 참관한 의사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과정, 보령아산병원 주치의 및 충남대 병원 주치의 선생님들과의 전화 통화를 종합해 볼 때 위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러한 손상을 받았는가는 부검 소견으로 이것까지 밝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여러 정황을 따져서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부검참관의 : 원진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2005. 11. 25 부검참관소견서 참관의사 : 원진호(내과전문의) 참관일시 및 장소 : 2005. 11. 24. 오후 6시 40분-9시20분 보령아산병원 영안실 부검장 사망자 : 전용철(46세, 남자) 1. 사망경과 2005. 11. 15. : 쌀협상비준안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한 농민집회에 참석. 서울 경찰청 소속 1기동대 전경에 의해 집단 구타. 2005. 11. 16. : 상태 악화되어 혼미한 의식상태 관찰됨 (drowsy mental state) 2005. 11. 17. 보령아산병원에 내원하여 뇌 컴퓨터 단층촬영 시행. 전두부 양측 두개내출혈(intracranial hemorrhage, ICH)로 진단됨. 충남대 병원으로 전원 2005. 11. 18. 충남대 병원에서 두개골 천공수술 시행(burr hole) 2005. 11. 24. 새벽에 출혈 지속되어 두개절제술(cranioectomy) 시행. 뇌출혈로 인한 뇌부종에 의한 뇌손상으로 사망함. 2. 부검 경과 및 소견 - 보령아산병원 영안실 지하 1층 부검장에서 국과수 부검의 3사람을 비롯하여 5인에 의한 부검집도를 집도를 6시 40분에 시작함. - 유족 측으로는 유족대표로 고인의 형, 보령시 농민회장, 전농 부회장, 전농 대외협력국장, 원진호 본인(유족측 의사), 검사 측에서는 검사를 비롯한 형사 관계자들이 참석. - 먼저 외관상 나타나는 신체계측과 증후에 대한 평가를 하였는데 오른쪽 어깨 부위에 약한 충격에 의한 피멍 자국과 왼쪽 엉덩이부위의 표피 박탈(abrasion), 좌측 후두정부 부위의 표피 박탈, 양측 상안검에 피멍(ecchymosis)자국, 공막의 황달 증상 이외에는 입원과정과 수술과정에서 얻은 상처 자국으로서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할 만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 이어서 시행한 내부장기 손상에도 고인의 병력에는 없었으나 간경화와 비장 비대소견이 있었고 심장내막하 출혈이 보였으나 사인과의 직접적 증거는 없었다. - 오후 8시를 넘어 본격적인 두부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 졌다. 여기서 결정적인 소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앞서 언급하였듯이 좌측 후두정부 부위의 표피박탈(abrasion)된 두피 바로 밑으로 미세한 골절 선이 있으면서 두정부 봉합선을 따라 약간 봉합선이 벌어져 있었다. 이는 충격으로 인한 손상으로 판단되었다. 두개골을 열고 들어가 확인한 뇌실질에서는 양측 전두엽 실질내 출혈 응괴가 있었고 오른쪽 부위가 병변이 더 저명하였고 오른쪽 측두엽까지 출혈이 있었다. 두저부(skull base) 전측부(anterior fossa) 안와위판(supraorbital plate)에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선상의 골절선이 있었고 이를 통해 안와쪽으로 출혈이 있어 안검 피멍이 생긴 것으로 판단되었다.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역시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 우측 전두부에서 확인되었다. - 오후 9시 20분 부검 종료 3. 결론 사망원인 : 두부외상에 의한 뇌손상 뇌손상은 좌상(맞거나 부딪쳐 생긴 상처)에 의해 발생하였고 전두부 실질내 출혈, 골절,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등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기전으로는 왼측 후두정부가 뭔가에 세게 부딪치고, 뇌의 대측충격손상(countercoup injury)에 의해 오른쪽(왼쪽도 존재) 전정부 뇌실질에 저명하게 뇌좌상을 입히고 출혈을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 4. 기타 부검을 참관한 의사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과정, 보령아산병원 주치의 및 충남대 병원 주치의 선생님들과의 전화 통화를 종합해 볼 때 위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러한 손상을 받았는가는 부검 소견으로 이것까지 밝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여러 정황을 따져서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부검참관의 : 원진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2005. 11. 25 6) “국과수의 부검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 김상민” -인터넷 글- <연합뉴스의 기사를 토대로 국과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5일 오후 8시께 대전시 유성구 화암동 중부분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4일 시신을 부검한 결과, 전씨가 넘어져 머리 뒤쪽에 손상을 입고 뇌출혈,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이상용 국과수 중부분소 법의학 과장은 "전씨의 눈 부위에서 발견된 멍은 전씨가 넘어지면서 생긴 외력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머리 앞부분에 직접 충격이 가해졌다는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의학적으로 머리 손상은 크게 머리의 움직임이 없이 외부충격이 가해질때 생기는 동측충격손상과 전도(넘어지는 것)하면서 생기는 대측충격손상으로 나뉜는데 전씨의 시신은 전형적인 대측충격손상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 동측손상이 가격에 의해서만 생기고 대측손상은 전도에 의해서만 생긴다는 가정자체가 틀렸다. 충격의 강도문제인 것이다. 두개골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강도가 넘어섰을 경우 대측손상이 일어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동측손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더 옳은 가정일 것이다. 보편적으로 술 취해서 넘어졌을 경우 대측손상보다는 동측손상이 더 많이 생기게 된다.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지는 경우'가 많다면 속담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가격에 의해 생기는 대측손상도 있다. 필자는 학부시절 시위중에 전경이 최루탄 발사기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맞 맞았는데 머리 위부분이 터져 29바늘을 꿰매었다. 이것도 일종의 대측손상으로 볼 수 있다. 국과수에 따르면 뇌는 관성의 법칙 때문에 정지하려는 속성이 있어 전도상황에서는 대측충격손상이 형성되는데 전씨의 시신은 뇌의 후두엽에는 손상이 없고 오히려 앞쪽에 강한 힘이 전달돼 출혈과 골절 등 손상이 심했다는 것이다. => 부검 소견에 의하면 좌측 후두부 부위의 표피박탈이 있다고 했다. 법의학 사전에 의하면 맨 바깥층인 표피만 벗겨져 나가 진피가 노출되는 손상인 표피박탈(abradion 혹은 excoriation)은 대부분 둔기의 압박, 일회찰과 또는 반복마찰에 의하여 형성된다. 반드시 넘어져서 생기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넘어져서 그랬을 수도 있고 둔기(이를테면 방패 또는 진안봉)으로 타격당했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부의 충격'이 '전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라니.. 박종철 열사의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주장이후에 가장 우스꽝스러운 발표라고 생각된다. => 과학은 상식에서 출발한다. 외부충격은 충격체에 부딪히는 가속도와 무게에 비례한다. 정확히 계산할 수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뇌를 보호하고 있는 두개골의 강도는 우리의 생각보다 굉장히 강하다. 이러한 고강도의 두개골을 골절시키고도 모자라 전뇌부에 출혈이 생길 정도의 충격을 주려면 과연 얼마나 키가 커야 할까? 아니면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할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두개골을 골절시키고 전뇌부에 출혈을 일으키게 한 원인은 진압봉 또는 방패의 가격에 의한 뇌출혈일 가능성이 더 크다. 서중석 국과수 중부분소 소장은 "시신의 목, 팔, 가슴, 허벅지 등에서 멍이 다수 발견됐지만 대부분 전씨를 심폐소생술 등 치료과정에서 발생한 의인성 상처였고 가격에 의한 상처는 찾을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정강이 아래 부분의 까지고 멍든 상처의 원인은 밝혀내기 어려웠다"면서 => 의사도 아니고 출혈부위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당시 같이 집회에 참석했던 분들은 돌아가신 분께서 눈주위와 목부분에 타박상을 입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눈주위의 상처는 직접사인인 후두부의 상처와 연관이 없는 별개의 구타 상처일 수도 있다. 같은 패거리의 진술을 어떻게 믿냐고? 만약 이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수사에서 목격자 진술은 있으나 없으나 일 것이다. => 오히려 부검시 밝혀진 온 몸에 무수히 난 멍 또한 그 분께서 집단구타를 당하셨을 가능성이 농후함을 알려주고 있다. 심폐소생술을 위해서는 가슴에 강한 압박을 하므로 가슴에 멍이 들 수는 있다. 팔을 붙잡고 하는 '흉부압박 상지거상술'을 시행했다면 팔에 생길수도 있다. 급해서 올라타고 소생술을 했다고 치자(병원 생활 8년하는 동안에 단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 허벅지에 멍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극정성으로 보호해야 할 기도가 있는 목에 멍이 있다니...아예 머리를 수풀속에 집어넣고 '영구 없다~~'를 외쳐라. 또 "다만 정강이 아래 부분의 까지고 멍든 상처의 원인은 밝혀내기 어려웠다" 고 말한다. 밝혀낼 수 없습니다. 농로에서 넘어져서 까진건지 전경의 군화발에 차인건지...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후자가 더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 정말 국과수 자료에 의해서 넘어져보고 싶다. 어떻게 넘어져야 그렇게 많은 곳에 상처가 나며 죽음에 이를 수 있는지. "고인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말기 간경화를 앓고 있었고 간이 망가지면 혈액의 응고작업이 떨어져 수술로 소생시키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이런 식으로 물타기 하냐? 간경화와 외상성 뇌출혈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밝혀라. 그거 밝히면 내년도 노벨의학상 당신 것이다. 그는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전씨가 넘어졌을 가능성에 대해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한 강한 외력이 전면에 가해져야 하는데 농민들이 주장하는 강한 타격을 받고 이분이 전도됐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 왜 말이 바뀌나 대측손상이면 뒤에서 쳐야 한다. 도망가시는 분 뒤통수를 방패나 진압봉으로 찍으면 그렇게 된다. 서 소장은 "부검을 하면서 유족측 부검의에게 이같은 소견을 충분히 전달했고 유족측도 이에 동의했었다"며 "농민단체가 부검결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요청하면 흔쾌히 응할 것이고 전씨가 넘어진 경위 등 나머지 조사는 수사기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 그 분들의 의학상식이 어떤가? 그냥 의사가 그렇다면 그런줄 알것 아닌가? 자신의 형제를 난도질 하는 것을 본 충격받은 유족들에게 조용조용한 말로 의학용어 씨부려 댔겠지. 엄숙하고 애통한 체 하면서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분들 소견서에 서명했나? 내가 알고 있기로는 검시소견서 그 자리에서 서명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달이상 걸린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나중에 서명하러 따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했겠지... =>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부검조사서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말로 때우지 말고 부검조사서를 보여라. 니들 아니고서도 의사들 굉장히 많다. 그는 또 "오늘 오후 5시께 감정을 종료하고 부검을 의뢰한 충남 보령경찰서에 이같은 결과를 통보했다"면서 "앞으로 혈액형, 유전자 검사 등 추가 검사를 몇가지 해야 하지만 대세를 다시 판가름할만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 부검 소견서를 보니 내과 전문의가 팀장이 된 듯하다. 이것은 분명히 신경외과 전문의 소관이다. 그 소견서 유족 대표자 서명이 들어있나? 인의협 관계자 서명 들어있나? 서명날인이 없는 주장은 헛소리다. 국과수측은 전씨의 사인을 놓고 의문이 증폭되고 인터넷 등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떠돌자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부검사진 4-5장을 공개하며 설명했고 30분 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국과수 관계자, 경찰, 취재진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 유족 대표도 없네? 인의협 전문의도 없었고... 참석한 취재진 명단 밝혀라...조선일보, 문화일보...뭐 이정도겠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라. 압축되면 압축될 수록 폭발력은 더 크다. 참고로 나 전형적인 꼴통 노빠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니들 부검 소견서 입수되는대로 더 확실하게 까주마. 기대해도 좋다. 7) 국과수 허위감정사례 □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관련 - 유서대필사건 국과수 재감정해야 □ 국과수 김형영씨 허위감정 관련 사건 - 뇌물받고 구속돼도 버젓이 ‘법원 문서감정사’ - 허위감정 김형영씨 법원 3곳, 문서감정사로 등재 □ 김순경 사건 - “국과수 감정결과 맹신에 허점/현 상태로는 전문성·정확성 기대어려워” □ 대학생 ‘억울한 옥살이’ 논란 - 오토바이 잘못 운전해 친구 사망” 구속뒤 무죄판결/가족들 “운전자 조작 의혹” 검찰 등 상대 소송 채비오토바이 운전을 잘못해 친구를 숨지게 한 혐의로 6개월간 구속되었던 대학생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가족들이 검찰의 편파수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허위감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 국과수, 화성여대생살인 DNA증거 훼손” - 사건증거 분석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화성 연쇄살인사건' 해결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지난해 수원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용의자의 유전자 DNA샘플을 훼손 8)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농민 살해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요구사항 ① 진상규명 ② 책임자 처벌, 제 1기동대 해체 ③ 검찰청장, 행자부장관 해임 ④ 대통령 사과 < 범대위 지침 1호 > 1. 전국 곳곳에서 매일 진행되는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대중적으로 조직한다. 2.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범국민서명운동에 동참하고, 대중적으로 조직한다. 3. 각 단체 사무실에 故 전용철 열사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고인을 추모한다. 4. 각 단체 사무실 앞 또는 주요 거점에 故 전용철 열사를 추모하고, 경찰의 폭력 만행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게시한다. 5. 아직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은 단체는 시급히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를 전농 홈페이지( http://ijunnong.net ) 추모게시판과 전국민중연대 홈페이지(www.minjung.or.kr), 주요 단체 홈페이지 등에 게재한다. 더불어, 故 전용철 농민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항의하는 사이버 행동을 적극적으로 벌여낸다. |
||||||||
| 2005년10월05일 23:36:30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