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5 겨울. 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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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내가 붙잡았던 친구들

김태호 | 회원,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정책국장

어쩌다 보니 생긴 취미

 

한때 일출, 일몰 사진에 빠져서 호남권역의 일출, 일몰 포토존을 찾으러 다닌 적이 있다. 그러다가 은하수 사진을 담고 싶어서 남부권역의 유명한 장소에 갔던 적이 있다.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영광 백수해안도로, 합천 황매산 등등. 그러다가 옷과 신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거주지 인근에서 달릴만한 길, 공간을 찾고 뛰곤 했었다. 그렇다. 나에게는 사진과 러닝이라는 취미가 있다.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시간을 보낼 때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사진과 러닝이 취미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긴 취미예요?”라고. 사실 이 질문은 나에게는 곤란한 질문이긴 하다. 특별한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동생이 산 디지털카메라를 보고 나도 한 번 해볼까 싶어서 해본 것이다. 러닝은? 서두에도 썼지만, 부담 없이 운동 좀 해볼까 싶어서 해본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사진과 러닝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풍경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일출/일몰시각 기준 최소 30분 전에는 도착해서 멋진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기다림을. 그리고 가끔은 기대했던 순간을 만나지 못한다면 포기할지, 이 순간이라도 담고 내려갈지 선택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러닝은 어떤가? 러닝을 하다 보면 이제는 이전보다 조금씩 더 길게 뛸 수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아직 대회를 많이 나가진 않았지만, 10km의 경우 이전보다는 확실히 빨라진 기록과 동일 페이스에 낮아진 심박수를 보면 뿌듯하고 성취감도 느낀다. 얼마만큼 하느냐에 따라 결과를 보여주는 솔직한 운동이다. 최근에는 하프(21km) 대회에 나가서 목표였던 2시간보다 일찍 들어왔다. 추석 연휴 기간을 활용하여 15km 정도 뛰어보는 연습을 했던 보람이 있다.

 

취미와 달리 변수가 많은 삶

 

멋진 풍경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기다리고, 날씨를 확인하는 노력을 한다. 그리고 새벽이나 퇴근 후 5km 정도를 뛰면서 조금씩 편안함을 느낀다. 멋진 순간을 남기거나 실력을 늘리려면, 시간을 투여하고, 조금 더 노력하면 된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내가 투여한 노력과 시간에 결과는 비례한다. “땀 흘린 밭에 풍년 든다”라는 속담도 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노동조합 활동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운동 활동의 결과는 내가 투여하는 시간에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활동을 하다 보면 변수가 생기고, 이 변수들로 인해서 좌절을 겪기도 한다. 변수에 관해서는 경험상 좋은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변수는 정세의 변화, 운동 지형의 변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노조법 2·3조 개정도 하나의 변수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노조법 2·3조 개정에 뒤따르는 많은 쟁점이 있고 이로 인한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운동을 비롯해 노동운동은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더 큰 단결을 만들어 가야 한다면 그에 걸맞은 입장과 대안도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진보연대가 걸어왔던 길도 어쩌면 변수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조그마한 변수에서부터 큰 변수까지 다양하게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변수들을 아예 없앨 수 없다면 우리 앞에 놓인 변수들에 어떤 값을 설정해서 문제를 풀어내야 할지, 그것이 지금 사회운동을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적었지만, 사회운동의 변수들에 값을 설정하여 답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주는 무게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떠나기도 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는 비관적으로 되기도 한다. 나도 변수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음을 안다. 어쩌면 변수는 앞에서 적었던 것처럼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를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생산적인 행위일 수 있다. 나에게는 그게 러닝과 사진이었을 뿐이다.

 

불편하지만 공존해야 할 존재

 

모든 취미가 다 그렇겠지만 항상 좋은 순간만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러닝이 그렇다. 뛴다고 항상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고, 무리하면 찾아오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부상이다. 나도 발목 부상으로 체외충격파 치료도 받고, 발톱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 쉬어가거나 할 수 있는 다른 운동을 해주는 것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그래도 부상은 생각하기 싫다.

 

러닝에서의 부상뿐 아니라 러닝을 할 때, 사진을 찍을 때 불편한 순간들도 맞이한다. 러닝의 경우, 코스에 사람이 많거나, 바닥에 물웅덩이나 진흙이 있을 때. 또는 비가 오는 날 뛰거나 혹은 소화가 안 되어서 옆구리가 아플 때. 오르막과 내리막은 기본이다. 사진의 경우는 어떠한가. 내가 봤던 날씨예보가 틀린다든지, 생각만큼 구도가 안 나온다든지, 또는 사람이 너무 많다든지, 이러한 순간들은 일반적으로는 예측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 러닝 대회 때에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우면 불만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뛰어야 한다. 피니시라인에 들어와야 기록이 인정되니까. (물론 간혹 이상한 운영으로 말이 많은 대회들도 있다.) 사진도 그렇다. 사람들이 많다고 “저기요 저 사진 찍어야 하니까 좀 나와주세요”라고 군중에게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그럼 어떻게 담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들을 함께 담을지, 아니면 다른 스팟을 찾을지 결정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나에게 달렸다.

 

나는 사회운동 속에서 사회진보연대의 입장과 목소리가 이 불편한 존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엄혹한 정세를 살아가다가 잘 살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 또는 그 엄혹한 정세에 관한 이야기들을 본다. 아니면 사회운동에 대한 뼈아픈 평가들도 있다. 예를 들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투쟁에 대한 평가나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평가 등등. 사회운동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편한 진실들을 직시하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늘 생각해야 한다.

 

물론 불편한 목소리들이 불편하게만 남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 끄덕일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회진보연대의 심사숙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이야기들을 딛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면 어떤 활동이 필요한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담론을 나누고 확장할지에 관한 기획이 필요하다. 천동설이 지배적이던 시절, 지동설은 불편한 존재이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지동설이 옳음을 증명해 보이지 않았는가. 갈릴레이 선생님의 큰 노력이 있었다. 여러 근거를 만들고 실제로 보여주었다. 쉽게 오지는 않겠지만, 불편한 이야기들이 조금은 편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도 그만큼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글은 적었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변수, 불편함에 대해 몇 글자 적었는데, 나 또한 활동하면서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은 얼마나 잘 활동하고 있는지 돌아봤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순간이 많았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내가 마주하는 고민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우연히 내 힘듦의 정체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러닝과 사진을 만나면서 나의 활동과 비유해 보게 되었다. 이것도 우연히. 어쩌다가.

 

주목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내 자신도 실력이 있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만의 생각이려나?) 활동뿐 아니라 러닝도, 사진도 마찬가지. 그런데 내 방식대로 조금씩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러닝기록도 조금씩 단축했고, 모 사진공모전에서 장려상도 타보고. 그 사이에 변수, 불편함이 있었고, 내 방식대로 넘어보고, 인정하고, 질문해 왔다. 앞으로도 변수와 불편함을 마주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때의 나는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다.

 

더 규모가 큰 사진공모전에서 입상하는 꿈을 꾼다. 하프를 넘어 풀코스(42.195km)를 완주하는 꿈을 꾼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이 찍어봐야 하며, 최소 30km 이상은 뛰어보고 더 연습해야 함을 안다. 꽃길만이 있지는 않을 것이고 변수와 불편함이 의외로 많을지 모른다.

 

나도 사람인지라...

힘든 시간 속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맬지도 모른다.

그래도 둘을 인정하고 카메라를 들고, 러닝화끈을 묶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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