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민영 씨를 잘 알지 못한다. 그는 내가 학교를 떠난 직후인 03년에 입학했고, 그 뒤로도 같은 공간에서 활동할 기회는 없었다. 술자리도 딱 한 번 가져봤나 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얘기를 길게 나누진 못했다.
그렇지만 출신 학교 출신 단대 후배 중에 거의 유일하게 운동을 계속한 친구였고, 그 친구를 알게 된 게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있을 즈음이어서, 그는 나에게 죄책감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일으키는 존재였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 활동가로서의 품성도 뛰어나고, 또 모두가 알듯 능력도 출중했기에, 그와 결부된 감정은 더 강해졌다. 그래, 나는 지금 이 모양으로 살지만, 그리고 내가 직접적으로 기여한 건 거의 없지만, 아무튼 저렇게 훌륭한 친구를 운동에 끌어들이는 데 내가 한 역할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므로, 내 지난 인생도 완전히 헛된 건 아니었어 라고 나는 생각했다. 2011년 연말에 <알튀세르 효과>가 나와 포스팅을 올렸을 때,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댓글을 단 그 친구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속표지에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께'라는 문구를 적어보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살기를 원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저버린 그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당시 그 이름에 값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속 후배'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갑작스레 닥친 이 무의미한 불행 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거의 없는 내가 이렇게까지 무너져내리는 것은, 이것이 그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그의 주위 사람, 그리고 운동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 서럽게 우는 것은, 부모의 죽음이 슬퍼서일 뿐만 아니라, 부모 없이 살아가야 하는 자기 자신이 막막하고 불쌍해서라고 했던가.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은 그런 이기심의 발로라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민영 씨 같은 동료 없이 앞으로 나는 이 잔인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 그 전에, 민영 씨 같은 후배가 사라졌으니,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삶이 어떤 공적인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한 시대를 잃었다. 그저 30년을 보낸다고 그런 존재가 다시 도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대와 타고난 질료의 마주침으로만 빚어질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성품과 재능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성품과 재능이 더해져야만 열릴 수 있는 미래 하나를 잃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은 오늘 어떤 미래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겠지만.
하지만 어차피 모든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라면, 더욱이 미인은 박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외투로 옷을 여며야 하는 추운 겨울에, 이국의 따뜻한 바다에서 가장 빛나는 나이에 가장 친한 친구와 휴식을 취하다 맞이한 그의 죽음 자체는, 그가 쌓은 덕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가 우리와 함께 더 많은 일을 해 줬으면 하는 것은 어쩌면 남아 있는 우리의 욕심일 것이다. 그의 나이는 젊었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일을 했고, 충분히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바다의 따뜻함과 평안함 속에서 영면하기를. 민영 씨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푹 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