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과의 개인 텔을 돌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텔을 주고 받은 사람이 민영이다. 이렇게 말하니 뭔가 둘이 굉장히 특별한 사이 같지만. 그건 내 쪽의 사정일 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텔을 주고 받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렇다.
온통 업무 이야기다. “선배 (우리가 하기로 했던) 이거 했어요?”, “선배 이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민영이 묻는다. “응… 아직 ㅜㅜ”,”에고 힘드네 노력해 볼께.”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민영과 나의 관계는. 내 코가 석자라는 생각에 내 앞에 일에만 몰두해 있는 나보다 더 멀리 더 넓게 보고 숙제를 잔뜩 내주던.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일을 미루는 이 게으른 선배를, 짜증 한 마디 없이 이끌어 주던. 성실함과 포용력,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재주로 마음을 다독이고, 모으고, 앞장서서 달려가며 손짓하고, 옆에 앉아 술잔을 기울여 주던 이. 우리 송민영.
아마 많이 힘들었을테다. 이 모래알 같은 공공운수노조 활동가들의 마음을 모으고 엮어 공동의 운동을 만들려 했던 민영이가, 나의 무심함에, 소심함에, 게으름에 얼마나 답답했을꼬. 난 민영에게 조금이나마 의지가 되는 선배였는가? 아니 힘이 되는 동지였는가? 자신이 없다. 내가 더 잘 했으면, 내가 민영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었으면,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휴가를 갔다면… 그렇게 잠기지 않았을까? 생각이 마구 내달린다.
하지만, 아마 내가 좀 더 내 삶에 충실했으면 민영의 삶이 조금은 더 의미있고 조금은 더 재미있고 조금은 더 행복했을 것은 분명하다. 뒤늦게 민영의 삶에 대한 내 책임이 무겁게 다가온다.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책임. 미처 다하지 못한 책임, 그래서 영영 못한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할 책임.
민영이 없는 세상을 민영이 없이 살아가고 바꾸고 싶어 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 전 술자리에서 “우리 모두 민영이가 되자”는 오래된 구호를 떠올렸으나, 난 내가 민영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난 아무리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탁월한 조직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민영이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또다른 수많은 ‘‘민영이들”, 다름 아닌 내 옆의 동지들의 삶에 대한 책임, 내 몫을 다하는 것이 때 늦은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리라 믿는다. 관심을, 애정을, 소통을, 연대를, 술자리를, 밥자리를, 솔직한 고백을, 후련한 속 이야기를… 민영과 하고 싶었지만 미처 못한 이 모든 것들을.
민영아, 송민영 동지, 고맙습니다. 못다 한 내 몫을 남아서 할게요. 그대는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