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언니는 내가 대학 시절 동경했던 행진의 '멋있는 언니들' 중 하나였다는 얘기부터 하고 싶다. 그 언니들은 그 시절 나의 등불이었다. 그때 언니들이 만들었던 토론의 분위기와 했던 말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들을 가슴 깊이 사랑하고 신뢰했기 때문에 나는 다만 그 뒤를 따라 걸었고 그래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민영언니는 2008년에 행진의 여성주체였고 2009년엔 조직국장이었다. 그게 어떤 종류의 역할인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으니, 어떤 단체를 이끌어가는데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하지만 티는 잘 안 나는 역할이라고만 해 두자. 언니는 여기저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위로하고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런 진심어린 만남을 바탕으로 우리가 부딪힌 공동의 문제를 정리해내는 데에 탁월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가 아니었음에도 언니의 그런 면들은 언니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운 좋게도 내가 사회진보연대 사무처 활동을 시작하던 2013년에 민영언니도 사무처에 들어와 같은 공간에서 2년 반 남짓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언니를 겪으며 실망은 커녕 감탄하는 일들 뿐이었다. 요 며칠 여러 사람들이 반복해서 얘기했듯이 언니는 항상 남들보다 많은 일을 마다 않고 맡았고,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며 살았다. 선후배동기 할 것 없이 모두가 언니 앞에서는 부끄러웠으며 알게 모르게 언니에게 의지하며 지냈다.

그리고 언니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언니는 내 시덥잖은 농담에도 왁자하게 웃어주고, 대책 없는 아이디어에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내가 이래서 김윰 사랑함" 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이모티콘을 날려줬다. 우리 서로 이렇게 좋아하는데 심지어 같은 사무실에 있는데도 따로 술마실 기회는 적다고 아쉬워하다가 올해 초에는 둘이 약속을 했었다. 2015년에는 5명 이하의 소규모 술자리를 만들어 5번 이상 만난다. 일명 '5.5.5 정책'! 그 덕분에 언니랑 단둘이 기억을 잃을 때까지 술 퍼마시고, 언니 자취방에 널부러져 잠들고, 다음날 얼굴 마주보고 "우리 어제 왜 그랬지" 하면서 키득거릴 수 있었다. 그래서 2015년은 나에게 행복했다.

언니가,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고, '낮은 자존감' 때문에 우울해하곤 했단 사실이 두고두고 속상하다. 그건 우리 세대 활동가들, 혹은 여성 활동가들의 고질병 같은 거였다. 잘난 사람들이 자꾸 떠나간다고, 나는 선배들에 비해 멍청하다고, 우리가 부딪힌 어려움들을 해결할 능력이 내겐 없다고... 가장 젊고 가장 빛나는 시간을 그런 우울감 속에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건 너무나 뼈아픈, 우리의 큰 손실이다.

술먹다 언니가 자존감 얘기 할때면 나는 "언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요. 언니 없음 우리 망한다구요." 정도의 말 밖엔 하지 못했다. 민망하단 이유로 상대방 앞에서 칭찬을 잘 못하는 게 나의 나쁜 점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 아프게 돌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 언니는 나한테 그렇게 많은 칭찬을 해줬는데. 나도 언니가 얼마나 멋있는지,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현명한지, 끝도 없이 얘기해줄 수 있는데.... 그런데 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사실 나는 아직 5.5.5 공약을 이행하지 못했다. 언니가 출국하기 전날인 지난주 목요일의 자리가 네 번째 만남이었다. 갔다와서 12월 중에 꼭 보자고, 공약불이행은 절대 안 된다고 그랬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나. 어떻게...

그래도 그날 무리해서라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가 그렇게 먹고 싶다던 무뼈닭발에 소주잔 기울인 밤을 보내고서 언니와 헤어질 수 있어 다행이다. 그쵸 언니?

아니다. 헤어지는데 다행이 어딨나. 다행은 무슨 얼어죽을. 언니 없음 우리 망한다고, 나 그 말 언니한테 진짜 여러 번 했는데. 이게 뭐야. 이제 우리 망했네?ㅋㅋㅋㅋㅋ 어디 나 없이 한 번 살아봐라! 하고 가는 거예요? 곳곳에 스며있던 언니 손길이 사라지면 우리 많이 방황하고 많이 흔들릴 거 같아요. 언니만큼 잘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우리가 그 역할 나눠서 해볼게요.

언니... 언니....
언니가 사라져서 출근길마다 눈물이 쏟아져요.
넘칠만큼 많은 사랑을 나와 우리들에게 주어 고마워요.
민영언니 사랑해요.
편히 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