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사실 그냥 번호만 나눈 사이고 가끔 만나면 인사만 하는 그런..
저 그냥 그런 사람인데 ..
그 번호 받은 날에.. 언니한테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요

아직 날씨가 추울 때였고 어떤 술자리인지는 모르겠는데
서대문구에 육교 아래에 있는 막걸리집이었어요.
저는 그러지 않아도 사람들을 잘 모르거나 너무 오랜만에 본 사람들이라서 좀 어색했는데
늦기까지 해버려서 들어가면서부터 왠지 민망했어요. 사람들은 이미 약간씩 취한 상태였고
저는 저녁도 못먹고 배고파서 부침개랑 막걸리랑 막 먹고 있었구요;;

소개를 하는데 그 때 사실 제가 회사에서 명함을 받은지 얼마 안되었어요
저는 진짜 회사가 엄청 싫었어요, 제가 거기 다니게 된 것도 싫고
다니고 있는 나도 싫고, 왜냐면 노조가 없으니까..
나는 다른 데는 몰라도 적어도 노조가 있지 않은 회사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했는데, 늘 다짐했는데
이미 나는 열심히 성실히 잘, 회사에서든 주변 사람들이든 어디에서든
날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나는 그냥 그럭저럭 다니고 있으니까
그게 정말로 힘든 거에요,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노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진짜.. 내가 여기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냥 주변 상황도 생각도 뭣도 깊게 생각하는 것도 없이
"노조 없는 회사에 다니는 쪽팔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근데 진짜 쓰고보니 엄청 단순하다...ㅋㅋ 아니 근데 저는 그 때 그게 정말로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노조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날 그래서 저는 제 명함을 인사를 나누는 사람마다 다 주었어요, 나 여기 다니고 있다고
왜냐면 노조를 만들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날 분명 도와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알아요, 다 나를 좀 이상하게 생각한 거..ㅋㅋ
해고고 뭐고 딱히 다른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닌데..;;ㅋㅋ
그치만 그 회사에 대해서 아는 것들을 얘기해준 사람도 있었고
노조에 대한 얘기를 해준 사람도 있었고 저는 그냥 그게 다 고마웠어요

그런데 언니가 내 앞 자리에 와서 앉았어요, 그리고 누구냐고 하면서
소개해달라고 막 얘기를 시작했는데
분명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익숙한데 이렇게 서로 소개하고 이름 알려주는 건 처음이니까
둘 다 비슷한 느낌이라고 그런 얘기를 했어요. ㅋㅋ
음 그러고나선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언니가 나한테 내 번호를 물어봤어요. 나는 내 번호를 알려주었는데
언니가 "나는 송민영^^" 하고 바로 문자를 보냈어요. 그 때 볼 때 언니는 좀 취한 거 같긴 했는데
그래도 나는 그게 정말로 좋았고 고맙고 그랬어요.
왜냐면 그 날 그 술자리에서 내 번호를 직접 물어본 건 언니밖에 없었거든요.
그게 정말로..
정말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언니는 모를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써요.
다음 날 아침에 어제 잘 들어갔냐고 조만간 또 보자고 보낸 문자도 너무 기뻤어요
왜냐면 그 술자리 끝나고 나서 그런 안부 문자 보내준 것도 언니밖에 없었으니까.
이 자리가 끝나면 나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암튼 그렇게 큰 기억은 아니고 진짜 사소한 건데;;;
그리고 언니랑은 그 후에 거의 볼 수도 없고 나도 막 연락을 하는 사람도 아니니까
갑자기 연락하기도 부끄럽고 그래서.. 그 문자 이후로는 따로 연락한 것도 없는데;;
그래도 간간히 집회나 지나가다 언니보면 그리고 인사하면
안녕~하고 활짝 웃어주는 언니가 되게 반가웠고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는 원래도 사람 많이 좋아하고
또 그렇게 스스럼없이 조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게 언니 일이라는 거 알았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에요. 그 날 언니의 다정함이 다른 사람들한테도 제가 좀 더 마음을 열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엊그제 언니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문자 말이 그대로 잘 안 와닿아서.. 어떻게 하지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다음에 온 문자에 너무 벙쪄서 정말 아무 것도 못했어요
그냥.. 언니랑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언니는 힘든 길을 만들어 가면서 살았던 정말 멋진 사람인데..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싶어서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 얘기하는 거 보면 볼수록 언니가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거
이렇게 가기에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는 것,
이 모든 게 모두에게 믿기지 않을 만큼 말도 못할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언니는 그런 걸 전혀 원하지 않았을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되었어요.

사실은 '그래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는 노래에 맞춰서 춤추는 언니를 보니까
언니는 황무지 같은 길바닥조차도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너무 예쁘고 멋있어서
언니가 웃는 모습은 울다가도 웃게 될 만큼 정말 밝고 환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어떻게 이런 사람이 먼저 갔을 수가 있지 싶어서
좀 더 속상해져서 울긴 했는데요..

그래도 나보다 더 슬플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저는 이제는 좀 참아볼래요, 그리고 하루종일 언니 기억하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언니 페이스북에서 손을 떼지도 못하고 그 모든 기억을 찾아도
도저히.. 풀리지 않을 정도로 슬플 분들한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싶어요.
저는 사실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몰라서 걱정되기는 하는데요, 언니가 도와줄거라고 믿어요, 그렇죠?

조금 있다가 언니 보러 금방 갈게요, 잘 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