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업계 이윤 위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안을 당장 철회하라


6월 29일, 보건복지부는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 허가를 받은 신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행위에 대해 신의료기술평가를 1년간 유예하는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 신의료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품목허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하 NECA)의 신의료기술평가,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요양급여 결정 심사를 모두 통과해야 의료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의하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고도 바로 요양급여 결정 심사 청구를 할 수 있게 되며 심평원의 결정이 내려지면 바로 환자에게 실시할 수 있게 된다. 이후 1년 간 NECA의 안전성·유효성 평가를 거치지 않은 의료기술이 환자의 몸에 시술되며, 1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설령 임상시험을 거쳤다 하더라도 식약처 품목허가는 신의료기술평가를 대체할 수 없다. 식약처와 NECA의 안전성 검토 절차는 관점과 목적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식약처에서는 의료기기의 물리화학적 특성, 전기기계적 안전, 생물학적 안전, 방사선에 관한 안전, 성능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실험실적 안전성과 성능을 주로 평가한다. 반면, NECA에서는 결과지표, 즉 시술을 받은 환자에게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났는지 합병증은 없었는지 사망 사례는 없었는지를 확인한다.
또 유효성 평가 역시 식약처에서 실시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식약처에서 평가하는 것은 임상시험 조건 하에서의 유효성이다. 반면 NECA에서는 실제 진료환경에서 얼마나 유효한지, 비슷한 기존 기술과 비교해서 얼마나 유효한지도 평가한다.
보건복지부는 식약처 임상시험 과정에서 기존에 활용되고 있는 기술과 비교한 임상문헌을 갖추도록 심사 조건을 강화해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험실적 안전성과 성능만을 주로 평가해왔던 식약처가 임상문헌 검토에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설령 인력을 보충하여 전문성을 갖춘다 하더라도 식약처 품목허가에 소요되는 기간은 약 80일 정도다. 지금까지 NECA에서 280일에 걸쳐 충분히 검토하던 것과 비교하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참고로 다른 국가의 신의료기술 평가 소요기간은 미국에서 13~15개월, 영국에서 2~3년이다.
개정안의 내용대로라면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은 의료기술이 환자의 몸에 시행되는 건 사실상 약 1년 10개월이다. 유예기간 1년이 만료되고 신의료기술평가를 시작해도 평가기간 280일 중에도 시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업체는 1년 10개월간 공짜로 임상데이터를 획득할 기회를 얻게 된다. 부작용이 생길 경우 즉시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시술 이후 부작용이 늦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뒤늦은 신의료기술평가 이후 안전성과 유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드러났을 때 이미 피해자가 된 환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심지어 이번 개정안은 다른 시행규칙과 상충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제10조 1항에 의하면 요양급여 결정 신청의 대상이 되는 신의료기술은 「의료법」 제53조에 따른 신의료기술평가 결과 안전성·유효성 등을 인정받은 것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10조 1항을 먼저 개정하거나 함께 개정하지 않으면 이번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는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제10조 1항을 수정하는 개정안은 입법예고한 적이 없다. 비교적 최근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으로는 지난 6월 10일에 입법예고된 상급병실료와 관련된 개정안(보건복지부 공고 제2015-346호)이 있고 4월 2일에 예고된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계획과 관련된 요양급여 규칙 개정안뿐이다(보건복지부 공고 제2015-187호).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 법제처 정부입법지원센터에 제출한 4월 2일자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4월 2일에 배포된 보도자료와 입법예고 자료에는 없었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제10조 1항에 추가된 조항이 존재한다.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제2조 제2항의 평가유예 신의료기술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장으로부터 해당 의료기기의 품목허가를 받은 이후 가입자등에게 최초로 실시한 날’에 심평원에 요양급여 결정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항을 입법예고도 하지 않고 시민사회의 의견도 받지 않고 법제처에 심사 의뢰를 한 것이다.
이 개정안은 6월 8일 철회되었지만, 이번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은 철회된 개정안에 근거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밀실행정과 졸속행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신의료기술평가 규칙 개정에 앞서 필요한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몰래 통과시키려고 한 것이 밀실행정이다. 그렇게 몰래 통과시키려다 철회한 개정안을 근거로 신의료기술평가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 졸속행정이다. 의료기기업계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박근혜 정부의 안전불감증, 조심성 없는 행보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를 경유하면서 기정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윤이 목적인 규제완화만 할 줄 알고 사람 목숨 귀한 줄 모르는 것이다. 작년 故 신해철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규제되지 않은 신의료기술의 위험성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안을 입법예고하며 또 다른 희생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지금 보건복지부에게 필요한 것은 무리한 규제완화가 아니라 깊은 반성과 성찰이다.
박근혜 정부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안을 당장 철회하고 입법예고도 없이 중요 법안을 법제처에 심사 의뢰한 밀실행정에 대해 즉시 사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