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을 석방하라 - 민주주의 살려내자’ 시국선언문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
정보기관은 조작과 감시를 위한 권력의 촉수가 되었고, 언론은 청와대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공권력은 권력의 사병, 국가폭력의 첨병이 되었으며, 국민의 공복이어야 할 행정부는 청와대의 수족이 되었다.
법치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사법부는 헌법을 깔고 앉아 권력의 입맛대로 판결문을 쓰고 있다. 한상균 위원장 5년 선고, 흔들거리던 민주주의 시계의 초침마저 멈춰 버렸다.
 
권리는 권력에 짓눌려 숨구멍마저 막혔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자유, 금지될 수 있는 자유로 유린되고 있다.
정권을 비판할 자유는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13만 민심의 절규는 차벽과 물 대포에 막혔다.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 단체교섭권, 파업권 노동3권은 악법의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불법을 감수해야 하는 죽은 권리가 되었다.
국민의 저항권엔 족쇄가 채워졌고, 족쇄를 끊으면 공권력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있다.
 
총칼 든 독재가 아니다.
권력의 입에서 자본의 목소리가 들리는 자본독재의 시대다.
노동자를 자본의 노예로, 99% 민중을 1%를 위한 개, 돼지로 만들겠다는 저들의 악다구니는 대대손손 자본과 권력이 주인인 세상, 현대판 신분제를 꿈꾸고 있다.
재벌자본의 탐욕을 위해 빚과 가난은 대물림 되어야 하고, 저임금과 비정규직은 의무가 되고, 청년들은 행복한 삶을 저당 잡혀야 하는 끔찍한 헬 조선이다.
 
역사는 퇴행하고, 시대는 암울하며, 국민은 절망하고 있다.
광주민중항쟁과 87년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뿌리 채 부정당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쳐 수많은 노동열사들이 목숨으로 지켜온 노동의 권리는 30년 전 무권리 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수 천년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져왔던 농업과 농민들은 고사당하고 있고,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의 진실은 그것을 기어이 은폐하겠다는 권력의 장벽 앞에 멈춰 있다.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정당 강제해산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독재를 넘어 권력의 파쇼화를 적나라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일제 침략에 면죄부를 씌워주었고, 개성공단은 폐쇄되었으며,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사드배치가 강행되고 있다. 주권이 있어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한반도는 전쟁과 대결, 신냉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민주주의를 살려내자.
무도한 독재권력의 폭주를 막고자 했던 한상균 위원장은 5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13만 민중의 성난 민심을 징역 5년으로 화답하는 정권의 계급성이 설마 하고 있던 우리의 정수리를 무섭게 내려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또 다시 정권교체만 기다릴 것인가? 아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아직도 지킬 것이 남아있는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탄압보다 무서운 좌절과 절망부터 걷어내자. 다시 민주의 행진을 시작하자.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민생이 파탄 나는 세상, 노동자가 노예가 되고, 민중이 개, 돼지 취급받는 시대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역사의 유죄다.
“박근혜 정권을 탓하지 맙시다. 연대를 게을리 하면, 민주노조의 소중함을 잊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피로 찾은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으니 어찌 탓할 수 있으리오”
한상균 위원장의 역설의 절규를 저항의 신호로 받아 안자.
 
오늘 우리는 좌절과 절망이야말로 독재권력의 자양분이었음을 고백하며 분노하고 저항하기 위해 시국회의로 모였다.
우리는 독재권력의 폭압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상균 위원장 석방과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한 범국민적 저항을 실천할 것이다.
권력은 잠시 위임받았을 뿐이다.
다시 국민이 주인임을, 민주주의의 꽃은 권력의 탄압을 자양분으로 꽃 핀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자!
한상균을 석방하라! 민주주의 살려내자! 공안탄압 중단하라! 독재정권 물러가라!
 
2016년 7월 13일
‘한상균을 석방하라 - 민주주의 살려내자’ 시국회의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