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이주노동자, 난민 등 귀화를 더 어렵게 하는 국적법 개악 중단하라

 

정부가 일반귀화 요건을 강화하는 국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번 안은 이주노동자와 난민 등의 국적 신청을 어렵게 하고,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귀화를 통제하겠다고 하는 명백한 개악안이다. 입법예고 기간에 이주운동단체들이 개악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음에도 정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짧은 답변만 보내고 밀어붙이고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일반귀화 요건에 영주자격 전치주의를 도입하려 한다. 정부는 이미 2012년에도 영주자격 전치주의를 도입하려 했지만 큰 반발에 부딪혀 좌절된 바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결혼이주민이나 국가 유공자 등이 신청하는 간이귀화와 특별귀화를 제외하고 일반 외국인들이 신청하는 일반귀화에 영주자격 전치주의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외국인들은 매우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를 거쳐야 한국에 귀화할 수 있다. 한국에 거주한지 5년이 지나야 하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거나 4백50시간에 이르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해 귀화 신청을 하고 나서도 통상 1년 반 ~ 2년이 지나야 국적을 얻을 수 있다. 올해 3월부터는 재산 기준도 두 배로 높아져서 귀화하려면 자산이 6천만 원 이상이거나, 소득이 1인당 국민총소득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영주권 전치주의가 시행되면 우선 영주권부터 얻어야 귀화를 신청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귀화 심사를 이중으로 하는 셈으로, 국적 취득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한국에 체류한 지 5년이 지나야 영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지는데, 영주권을 얻는데도 1~2년이 걸리고 그 이후 또다시 국적 취득 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개악은 이주노동자들의 귀화 신청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목적이 크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비전문취업(E-9) 비자 소지 이주노동자는 체류 기간에 상관없이 영주(F-5) 체류자격을 취득할 수 없다. 따라서 영주권 전치주의가 도입되면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E-9비자 이주노동자는 일반귀화 신청 자격에서 배제된다.

 

반면, 5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거나 5명 이상을 고용한 경우 체류 기간과 상관없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학 교수나 연구원, 소득이 높은 사람들의 귀화 요건도 완화해 왔다. 돈이 있거나 소위 고급기술을 가진 외국인에게는 특혜를 베풀면서, 가장 열악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한국 경제에 기여해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정주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난민들의 귀화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현행 국적법 상으로는 난민신청자가 발급받는 G-1비자로도 국내주소로 5년 이상 기간이 지나면 일반귀화를 신청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난민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5년이라는 긴 기간과 재산 요건 등을 충족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난민신청자가 개정안에 따라 일반귀화 신청을 하려면 우선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영주 체류자격 신청이 가능한 비자가 제한돼 있는 현행 법률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약 3.8퍼센트에 불과한 한국 정부의 극도로 낮은 난민인정률을 감안하면, 영주자격 전치주의 도입은 난민을 귀화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한국 정부가 비준한 난민협약상 난민의 귀화 및 동화를 장려해야 한다는 체약국의 의무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또 이번 개악안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저해하지 아니한다고 법무부 장관이 인정할 것”을 귀화 요건으로 추가하겠다고 한다. 법무부 장관의 재량에 의해 매우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처분이 가능한 조항이다. 그리고 “국민선서”를 해야만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신설됐다.

 

그 동안 정부는 무고한 이주민들을 희생양 삼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거나, 자의적으로 입국을 통제해왔다. 올해 초에도 박근혜 정부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고 무슬림 이주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하며 여론몰이를 했다. 2010년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무려 5천여 명을 ‘테러 혐의 외국인’으로 입국 금지시켰는데, 그 중엔 해외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있었다. 이주노조의 역대 간부들도 입국 금지 대상이다.

 

이런 전력을 봤을 때, ‘국가 안보’ 운운하는 조항이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외국인들을 자의적으로 귀화 대상에서 배제하는 데 이용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무슬림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번 개악안에는 현재 귀화 요건인 “품행단정” 항목을 구체화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항목은 그 동안 그 의미가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불명확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2014년에는 한국에 17년이나 거주했고, 세 아이를 둔 티베트계 이주민 민수 씨가 이 조항 때문에 귀화가 불허된 바 있다. 가족의 생계가 걸린 가게를 지키기 위해 재개발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던 것이 ‘품행 미단정’이라는 이유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하위 법령에 위임할 수 있게 한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품행단정” 항목은 구체화가 아니라 삭제돼야 한다.

 

요컨대 이번 국적법 개악은 이주민 차별을 강화하며, 이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와 난민 등의 국적 취득을 더 어렵게 한다. 또한 국가 안보를 빌미로 이주민들을 더욱 희생양 삼고, ‘국민 선서’를 강요하는 등 이주민들에게 보수적 국가주의를 주입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는 이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권리를 제약하려는 맥락에 놓여있다. 정부는 최근 영주자격을 10년마다 갱신하도록 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악안도 입법예고한 상태다. 2012년도에 추진하다 좌절된 내용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안정적인 체류가 보장되지 않으면 이주민들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문제제기 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적법 개악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2016년 12월 28일

이주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