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최고책임자에게 징역 7년형 판결이 최대인가?
기업책임자와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위해서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6일 서울지법은 1,112명의 목숨을 잃게 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1심에서 검찰 구형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판결을 내렸다.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에게 징역 7년, 존 리 전 옥시 대표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형량은 각각 징역 20년과 10년이었다.
 
신현우 전 대표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살균제 원료 물질의 안전성 검증 및 실증자료 없이 ‘아이에게도 안심’이란 거짓 문구 등 사용)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위반(제품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인체무해', '아이에게도 안심' 등 허위 광고)이 인정되었고, 이 같은 문구를 내세워 제품을 판매한 사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는 무죄로 판단되었다. 존 리 전 대표에게는 "혐의를 증명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무죄가 선고되었다.
 
또한 법원은 ‘세퓨’를 제조·판매한 오유진 전 대표에게는 징역 7년,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와 김원회 전 홈플러스 본부장에게는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했다. 옥시 연구소장을 지낸 김모씨에게는 징역 7년, 조모씨에게 징역 7년, 선임연구원 최모씨에게는 징역 5년을 각 선고했다. 옥시와 롯데, 홈플러스 기업에게는 1억5천만원의 벌금을 선고하였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흔히 ‘안방의 세월호 사건’이라고 부르듯이, 이 참사는 기업이 유해화학물질의 유독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은폐하면서 버젓이 제품을 생산・판매함으로써 수많은 시민의 생명을 희생시킨 사회적 재난이다. 재판부가 ‘유례없이 참혹한 사고’라고 언급했지만, 참사의 책임자에게 주어진 형벌은 너무나도 가볍다. 또한, 정부의 관련 부처 책임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껏 수많은 참사를 겪으면서, 사고의 책임자들과 기업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상황들에 수없이 분노해왔다. 1995년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대해 이준 회장은 징역 7년 6월의 형벌을 받는데 그쳤으며, 2003년 192명이 사망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 대해서는 대구지하철공사(법인)에게는 고작 벌금 1천만원, 사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2014년 10명이 사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건의 경우 기소된 21명 중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리조트 사업본부장이었고, 형량도 금고 1년 6월에 그쳤다.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산재사망사고에 대하여 기업의 현장소장이나 안전관리책임자 정도가 처벌되는데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6명이 사망한 대림산업의 여수 산업단지 폭발 사고의 경우 기소된 사람들 중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자는 여수공장의 공장장이었고, 징역 8월에 그쳤다. 대림산업(법인)은 벌금 3,500만원에 그쳤다. 아르곤 가스누출로 5명이 사망한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경우 기소된 사람들 중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생산본부장(부사장직급)이었고, 집행유예 3년에 그쳤다. 현대제철(법인)은 벌금 5,000만원 받은 게 전부였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은 오늘이다. 모두에게 잊혀지지 못할, 이 큰 참사에서도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받은 형벌은 고작 징역 7년이었다. 기업 ‘청해진해운’은 과실로 선박기름을 유출한 점에 대하여 해양환경관리법위반으로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은 것이 전부였다. 해양수산부의 공무원들은 정직이나 감봉 등의 처분만을 받았을 뿐이며, 한국 해운조합의 경우는 감봉이나 경고에 그쳤다. 우리의 법체계는 사고를 유발한 조직과 경영책임자에게 엄벌을 내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법제도가 물을 수 있는 책임의 한계가 이 정도인 것이다.
 
국가는 책임을 회피하고,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는 솜방망이 처벌뿐이라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나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없다. 위험에 대한 비용이 노동자·시민 모두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에서 생명과 안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 관료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고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묻는 과정이 분명해져야 위험이 전가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고를 유발한 기업과 정부에 조직적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판결은 그런 필요성을 또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뛰어 넘는 획기적인 판결이 선고될 수 있도록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
 
 
2017년 1월 9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416연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공공교통네트워크, 노동건강연대, 노동당,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녹색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반올림, 보건의료단체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회진보연대, 알권리보장을위한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천주교인권위원회, 안전사회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일과건강, 정의연대, 참여연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