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08호 | 2013.04.10

돈 못 버는 공공병원은 없어져야 마땅한가

진주의료원 폐업시도에 맞서 우리 사회의 상식을 지켜내자!

정책위원회
지난 2월 26일 경상남도의 폐업 발표로 촉발된 진주의료원 사태가 전국적 사안으로 떠올랐다. 진주의료원 노동자들과 사회단체들이 폐업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고, 서부경남권 지역거점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사태가 커지자 민주당은 보건복지위원회 김용익 의원의 단식농성 돌입과 함께 폐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방의료원 폐업에 대해 반대를 표명하면서 당 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은 4월 5일 당정협의회 이후 진주의료원 문제는 경상남도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후,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7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다음날 다시 폐업의 불가피함을 잘 설득할 것을 주문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홍준표 도지사의 말바꾸기와 쟁점 흐리기

“진주의료원은 매년 40~60억 원의 손실로 현재 3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진주의료원에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거나 아니면 3~5년 안에 모든 자본금을 잠식하고 파산으로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 폐업을 결정했다.”

2월 26일 윤한홍 경상남도 행정부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하면서 주장한 내용이다. ‘40~60억’, ‘300억’, ‘혈세 투입’, ‘파산’ 등 자극적인 수사를 동원해서 폐업이 정당함을 주장했지만, 핵심은 ‘돈 못버는 공공병원은 없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폐업 발표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상당했다. 즉각 진주의료원 노동자들이 폐업을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섰고, 폐업 결정에 대한 비판이 각계에서 이어졌다. 3~5년 안에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진주의료원 경영위기설’이 과장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또한 공공병원은 저소득층, 의료취약계층을 진료하는 과정에서 적자 운영이 불가피하며, 지역거점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 폐업은 곧 공공의료에 대한 포기와 다름없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취임 두달만에 이루어진 홍준표 도지사의 폐업 결정이 독단적이고 성급하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면서 폐업 철회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진주의료원은 강성노조의 해방구가 되었으며, 강성노조원을 배불리는 정책은 하지 않겟다. 노조를 위한 병원, 노조에 의해 움직이는 병원에는 도민 세금을 못대준다.”

진주의료원의 폐업 철회화 정상화를 위한 논의가 기대되던 시점에 홍준표 도지사는 말을 바꾸었다. 폐업의 정당성에 대해서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진주의료원의 운영 및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대신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체의 대화 및 인터뷰를 거부하는 동시에 ‘노동부 고발장 제출’, ‘도덕성 해이’, ‘감사결과 미이행’ 등 지엽적인 문제를 끌어들이면서 진주의료원 노동자들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연일 내놓았다. 홍준표 도지사의 행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고야 말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병원을 떠나지 못하는 환자들, 그들의 목숨은 얼마인가?

“저는 집도 없고 절도 없고 식구도 아무것도 없고 오고 갈 데가 없습니다. 나는 여기서 죽을 겁니다.”
“갈 데도 없는데 자꾸 나가라 하고 나는 더 있고 싶지만, 의사가 없으니까….”

아직까지 진주의료원에 남아있는 환자들의 말이다. 경상남도는 폐업을 결정하는 한편 환자들에게 병원에서 나가도록 끈질기게 유도·협박하고, 의료진에 대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의약품 공급까지 끊으면서 진료환경을 악화시키고 있지만 환자들은 진주의료원을 떠나지 못한다. 이들은 건강상태가 너무 안 좋아 이송 과정에서 사망할 수도 있는 환자들,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경우 비싼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환자들, 퇴원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경우 필요한 간병을 받을 수 없게 되는 환자들이다. 병원을 옮긴 많은 환자들 역시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경상남도 공무원의 끈질긴 전화, 의료급여 환자임을 빌미로 한 은근한 협박을 견디지 못해 병원을 떠난 것이다.
경상남도는 진주의료원 때문에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고 있으며, 진주의료원이 의료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진주의료원에 투입되는 ‘막대한 혈세’가 사실은 경상남도 예산의 0.02%에 불과한 10억원 수준임이 밝혀졌다. 홍준표 도지사와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근거는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과도하게 높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전부다.
진주의료원 폐업이 발표되고 나서 한달여 사이, 평소 사망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던 노인병동에서 입원환자 5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병동 환자들에게 폐업 결정과 퇴원 종용으로 인한 불안감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상남도는 ‘한 명의 환자라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밝히면서 뒤로는 환자들에게 퇴원을 강요하고, 휴업을 강행하고 있다.
수익성을 절대 기준으로 공공병원의 역할을 판가름하려는 논리 속에서 환자들의 목숨 역시 몇 푼의 돈으로 매겨지고 있다.

공공병원의 역할: 누군가에게는 최후의 보루인 그 곳

“환자 한 분이 의뢰서를 가지고 병원 몇 군데를 갔는데 병원 측에서는 못 받아주겠다고 이야기를 하셨답니다.”

진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이 말 한마디가 우리사회에서 공공병원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진주의료원에서 정상적으로 치료받던 환자가 왜 다른 병원으로는 갈 수 없는 것일까.
한국에서 공공병원은 전체 의료기관의 10%에 미치지 못한다.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의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고, 보건의료 정책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통제와 지원 역시 부재한 상황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은 자체적으로 생존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수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심해진다.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 돈이 되는 환자와 안 되는 환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해있고, ‘1인당 매출’을 기준으로 한 당근과 채찍이 일상화되어 있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한 과도한 노동강도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좋은 수단이지만,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핵심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진주의료원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낮은 입원수익이다. 입원수익이 낮은 이유는 장기입원하고 있는 저소득층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입원 초기에 수술 등 의료행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기입원 환자들은 병원의 수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소득층 환자들이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민간병원에 가기 힘들다. 병원 측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비싼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안 되는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그마저도 할 수 없으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앞선 인터뷰에 언급된 사례 역시 병원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은 경우다. 이것이 공공병원의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이유이며, 여태껏 의료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을 둘러싼 진실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 공공부문 민영화를 막아내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4월 18일 경남 도의회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을 위해 경상남도가 발의한 조례 개정안의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조례가 통과된다면 진주의료원 폐업을 위한 법적인 요건이 구성된다. 홍준표 도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위법적으로 휴업을 강행했고, ‘진주의료원 폐업은 불가피합니다.’, ‘진주의료원 노동조합 실상’ 등 책자까지 배포하면서 폐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홍준표 도지사는 수익성 논리로 진주의료원이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저소득층의 의료이용 기회를 차단해도 된다는 비인간적인 발상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이 현실화된다면 수익성이 낮은 다른 공공병원 역시 위기에 처할 것이며, 의료기관에 돈이 되는 환자를 진료해서 수익을 낼 것을 강요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진주의료원 폐업 여부는 공공의료시스템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싸움이다. 이것이 진주의료원 폐업을 반드시 막아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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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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