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20호 | 201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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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는 사라져야 한다

자본만을 위한 보물섬,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정책위원회
지난 5월 22일부터《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취재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1차 결과를 연속으로 발표하고 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 245명 중에는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어, 정직하게 세금을 내며 살아온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정작 이런 자들을 그냥 둔 채 정부가 지하경제양성화를 추진한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상황이 분노를 더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들의 탈세를 처벌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일까? 조세피난처는 단순한 부유층의 자금은닉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자본의 논리를 강제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점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국적자본이 얻는 이득

조세피난처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소득에 대하여 과세를 하지 않거나 낮은 세율을 적용하거나, 또는 특수한 조세혜택이 부여되어 있는 지역 또는 국가를 말한다. 조세피난처의 활용은 조세조약, 이전가격 등을 이용한 다양한 조세회피를 유용하게 해주기 때문에 특히 초국적자본에게 중요한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2001년 론스타는 강남에 소재한 스타타워 빌딩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매입한 후 2004년에 싱가포르투자청에 매각해 2,800억 원의 차익을 얻었지만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미국 론스타펀드 본사가 아니라 조세피난처 벨기에에 설립한 자회사(스타홀딩스)를 통해 거래를 하면서, 거래로 인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 양국에서 이중과세하지 않는다는 한-벨기에 조세협약 규정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이중과세를 피하기 위한 명목으로 만들어진 조세협약을 악용해 사실상 이중비과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전가격을 활용한 조세회피 역시 조세피난처와 결합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초국적기업은 생산, 유통, 마케팅, 보험, 경영자문 등 여러 기능을 세계 곳곳의 자회사에 분산시킨 후 내부거래에 있어 정상가격(독립기업 간 가격)보다 높거나 낮은 가격을 적용함으로써, 높은 세율의 나라에 있는 자회사는 매우 적은 소득을 얻고, 낮은 세율의 나라에 있는 자회사는 높은 소득을 얻는 것으로 조작한다. 가령 조세피난처에 있는 금융부문 자회사는 다른 자회사에게 대출을 하고 폭리로 막대한 이자소득을 얻은 후 조세피난처에서 아주 낮은 세율로 세금을 낸다. 반면, 높은 세율의 나라에 있는 자회사는 소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낼 소득세도 거의 없다. 이런 방법을 통해 초국적기업 본사는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민중에게 비용전가

조세피난처를 매개로 각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는 해외로 유출되고 초국적기업에 집중된다. 또한 조세피난처는 각국 정부의 세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재정정책∙사회정책을 통한 경기진작 및 재분배 기능을 악화시킨다.
자본가의 조세회피는 노동자의 조세부담을 늘린다. 미국 사례를 보면, 1950년대 미국 기업들은 미국 전체 소득세의 약 5분의 2를 부담했으나 현재는 5분의 1만 부담한다. 최상위 0.1% 부자들의 유효세율(세전이익 가운데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960년대 60%에서 2007년 33%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 동안 세수 총량은 감소하지 않았다. 초국적기업과 부자들 대신 노동자들이 그 부담을 떠안아온 것이다.

금융세계화의 첨병

조세피난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낮은 세율과 약한 규제를 향한 국가 간 경쟁을 야기함으로써 전 세계에 자본의 논리가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세피난처는 대부분 금융실명법이나 부동산실명법이 없고 재판이 간편하며 회사의 설립과 해산∙청산이 간단하다. 각국 정부는 외국인투자를 활성화한다는 이유로 조세피난처에 준하는 환경, 다시 말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경쟁한다. 한국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이후 투자보장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투자자유화 협정 체결, 자본시장법 등 자산유동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 경제자유구역에서의 각종 혜택 제공 등을 지속했다.
그러나 낮은 세율과 약한 규제를 향한 국가 간 경쟁은 각국 노동자 입장에서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의미했다. 인수합병(M&A)과 재매각을 통한 차익실현을 위해 기업 가치를 올리려고 구조조정을 감행하거나, 주주들의 단기적인 이윤추구 동기에 생산이 좌우되면서 장기적인 설비투자나 고용안정은 부차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임금인상 억제, 노동유연화,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동반되었다.
조세피난처는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부도스왑(CDS) 등 파생상품 거래의 활성화에 기여했고, 2007년 미국 금융위기를 전 세계로 전염시키는 고리로 기능했다. 가령, 2007년 6월 베어스턴스가 영국령 조세도피처 케이먼제도에 설립한 2개의 헤지펀드는 서브프라임을 기초로 한 CDO에 200억 달러를 운용하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확대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이는 베어스턴스의 파산과 금융위기의 세계적 확산을 암시하는 전조였다.

조세피난처는 사라져야 한다

이처럼 조세피난처는 초국적자본과 부유층이 노동자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각국의 규제를 우회하거나 법∙제도를 개악하는 기능을 한다. 사실 조세피난처 자체가 세금이나 규제를 재앙처럼 인식하는 자본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개념이다. 그러나 초국적자본은 실제로는 오히려 초법적 존재로 군림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노동자민중에게 어떤 이득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조세피난처는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세계경제 중심부에서부터 자본의 세계적 이동성을 중단시키려는 시도에 주목해볼 수 있다. 금융거래세 도입을 주장해온 유럽 아탁은 “부유한 국가들이 스스로 역외금융센터로 기능하거나 그것을 옹호한다면, 조세천국에 지점을 운영하는 은행을 폐업시키거나 역외금융센터와의 거래에 높은 벌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은 일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외국인투자기업의 ‘먹튀’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 삼성∙현대처럼 수많은 해외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재벌이 각국에 낮은 세금과 약한 규제를 향한 경쟁, 노동자에게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하는 시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국제주의를 견지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관점과 실천은 단순히 규제가 확보된 금융체제 구상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가 확보되고 보다 민주적인 대안적 세계를 향한 근본적인 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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