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29호 | 201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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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운동’하는 노조로서의 자랑찬 역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서울시 지원금 수령에 반대하며

정책위원회

민주노총서울본부(이하 서울본부)가 서울시로부터 지원금 십수억 원을 수령하여 비정규센터 사업(이하 서울비정규센터)을 수행하려고 한다. 이는 민주노조 운동의 자주성, 재정자립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더구나 서울비정규센터 사업의 면면을 보면, 서울본부가 국가의 노동력관리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어서 문제는 더더욱 심각하다. 민주노총은 23일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에서 서울본부가 서울시로부터 지원금을 수령하는 것에 관한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중집은 서울본부의 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자주적인 대중조직으로서, ‘운동’하는 노동조합으로서,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강화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서울시 지원금 수령, 노동시장 관리 정책의 하위파트너를 자임하는 것

서울본부는 ‘서울본부가 주도하는 사업이고, 이런 기회를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를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지원받을 예산 규모는 서울시 지원금 15억 원에, 구청의 추가 지원금을 합쳐 약 20억 원에 육박한다. 이는 서울본부 연간 예산 약 6억 원의 3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 예산으로 운영될 서울비정규센터는 상근자 규모에서나 사업 규모에서나 기존 서울본부를 압도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보다 서울비정규센터의 사업이 서울지역 노동운동을 좌지우지할 상황이 오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더구나 서울본부에 대한 서울시 당국의 지원은 ‘노사민정협의회 참여에 따른 예산 지원’ 여부만 제외하면, 한국노총 서울본부에 대한 지원 내역과 상당부분 유사하다(아래 <표> 참고). 향후 노정관계에서 민주노총이 한국노총과 같은 방식으로 포섭될 우려마저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2013년 노동단체 지원 사업 추진 방향을 보면 이것은 단순히 기우가 아니다. 서울시는 ‘①취약근로자 지원 사업 확대를 통한 노동복지 증진 ②합리적인 노동조합 활동 지원을 통한 근로조건 개선 ③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노동단체를 지원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표>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한국노총 서울본부에 대한 서울시 노동단체지원금 예산 내역
이 표는 서울시의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대한 2013 예산승인내역과, 한국노총 서울본부에 대한 소요예산내역을 재구성한 것이다.


서울시의 지원금은 노동력을 관리하고 노동자운동을 길들이기 위한 도구

경제위기 속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취약계층’,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고용불안이 점차 심화되는 상황에서 노동력에 대한 ‘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서는 체제의 안정적 유지가 곤란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국가고용전략’, ‘비정규직 종합대책’, ‘고용률 70% 로드맵’으로 이어지는 정부의 일련의 정책에서 취약계층 지원 및 관리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때 한국노총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노총도 노동시장 관리의 파트너로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과 일정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취약계층 관리가 훨씬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국가행정기구를 동원하는 것에 비하면 인건비로나 사업비로나 비용도 훨씬 적게 들면서,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골치 아픈 노동조합 ‘운동’ 자체를 순치시킬 수도 있다. 오늘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협치(governance)라는 이름으로 각종 비정구기구(NGO)나 노동조합을 노동시장 관리의 하위 파트너로 고려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서울본부 입장에서 20억 원은 막대한 액수지만, 서울시 입장에서 양 노총에 지급하는 40억 원은 미미한 액수다. 이 돈으로 수명의 관리자를 ‘간접 고용’해서 취약계층 보호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양 노총과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 잘 만 되면 서울시정 운영 안정에 기할 수 있다. 일거양득인 것이다. 국가와 자본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투쟁해왔던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서울시의 노동력 관리 정책에 일조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경제위기로 인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당연한 과제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가 응당 수행해야 할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을 대행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조는 자신의 운동성을 근본적으로 부정당하고 말 것이다. 민주노조가 ‘운동’하는 조직으로서 생명력을 잃는다면, 노동자에게 그것은, 생존권과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무기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말이다.

노동조합이 ‘운동’하는 조직으로서 자신의 지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서울본부가 서울시 지원금을 수령한다는 계획이 민주노총 중집에서 승인되면, 그동안 민주노총을 지탱해왔던 소중한 원칙들이 하나둘씩 허물어질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추진되어 온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말 것이다. 민주노총이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게 되면 조합원들로 하여금 왜 조직화 사업에 기금을 내야 하는지,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사업에 연대의 의지를 모아야 하는지 의문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울시의 노동단체 지원이 ‘합리적인 노동조합 활동 지원’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라는 목표 하에 추진되는 재정지원 사업임을 감안하면, 서울시는 각종 회계감사로 서울비정규센터 사업은 감시할 것이고, 서울비정규센터 사업은 노사분규를 해소하고 노사갈등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집행하는 방향으로 유도될 것이다. 이럴 경우 서울비정규센터 사업은 국가의 ‘취약계층 근로자 복지업무’를 대행하는 기구로서 고착화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구제로 그치는 단순 상담 사업들이, 집단적 단결을 통한 권리쟁취로서 노조결성이라는 방향을 제치고, 비정규직 관련 사업의 중심으로 대체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진다면, 이런 활동에 익숙한 활동가들은 미조직 비정규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지원금 예산을 지키거나 지원금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으로 활동의 무게중심을 이동하게 될 것이다.
설령 서울시 지원금을 통해 조합원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이들이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민주성․투쟁성․연대성․변혁지향성을 체득할 수 있겠는가.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할 수 있는 주체로 나설 수 있겠는가. 상황이 이런데 서울시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노동복지 사업을 대행하는 것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은 전략조직화 사업을 위해 (비록 목표액에는 미달했지만) 22억 원을 모았다. 그 뿐만 아니라 투쟁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해, 해고자의 신분보장을 위해 틈틈이,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모아 연대하고 지원했다. 한국노총이 계급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수십억 원의 기금을 별도로 모았다는 소리를 우리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런 노력을 하려 했다는 시도가 있었기나 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노력들을 일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조리 기각시킬 것인가.

방향을 선회하자! ‘운동’하는 노조로서 민주노총의 성격을 강화하자

서울본부의 지원금 수령 문제는 단순히 서울본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은 부지불식간에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지원을 용인해왔던 민주노조 운동의 관행, 그리고 야권연대를 활용해서 노조운동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했던 노동자운동의 실용주의가 낳은 비극적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왜 비정규직 사업을 하는지, 우리가 왜 미조직 사업을 하는지, 우리가 왜 노동조합 ‘운동’을 하려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말이다. 지금이라도 ‘운동’하는 노조로서 민주노총의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 모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8월 23일 민주노총 중집은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안건을 심의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노총이 어마어마한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원칙을 지켜왔음을 잘 알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롭게 집행부를 구성한 민주노총이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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