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부정부패의 수렁에 빠진 박근혜 정부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다

발단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자원외교 비리 수사였지만 이제는 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관여된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나아가 정치권 전반의 부정부패 문제로 번져가고 있다. 수사 대상이었던 성완종 전 회장은 혼자 죽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한 언론사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사체에는 메모지, 소위 ‘성완종 리스트’를 남겼다.
리스트에 거명된 인사들은 하나같이 성완종 전 회장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 했던가. 며칠 사이 녹취록, 다이어리(비망록), 관계자 증언이 줄줄이 공개되자 이들은 성 전 회장과의 관계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확증은 없지만, 지목된 인사들의 강한 부정과 거짓말로 인해 심증은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굳어지고 있다.

불법 대선 정치자금 받았나

특히 리스트 중 3명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조직과 자금을 담당하고 있었던 인물들이다.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은 당무조정본부를, 홍문종 의원은 조직총괄부장을, 유정복 인천시장은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이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이 건네져 선거자금으로 활용됐다면 이는 그야말로 현 정부의 정당성과 관련된 문제다.
시민들은 진동하는 썩은 내에 코를 막고 있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완구 총리가 ‘목숨을 걸겠다’며 사태를 부인하다가 끝내 사의를 표명하자, 잊을 뻔 했던 10여 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5만 원 권이 개발되어 돈 배달하기 편해졌다는 점 말고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2003년 차떼기 사건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한 번 대선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부상하게 되었다.

불법 자금의 목적

그렇다면 돈을 건네준 목적은 무엇이었나. 성 전 회장은 해외 건설과 자원개발 사업 등을 따냈고, 늘어난 부채에도 불구하고 경남기업으로 돈을 끌어오기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 그리고 2012년에는 총선에 직접 출마해 당선된 후 금융권을 관할하는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정치권과 금융권에 압력을 행사했다. 그는 정무위원회에서 ‘건설사가 어려운데 은행이 등 돌리고 있다’며 금융위원장을 꾸짖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경남기업도 2013년 10월 3차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다. 이제 자신의 국회의원 자리를 지켜야겠다는 목적까지 추가되었다. 더 바빠졌다. 그가 남긴 다이어리에는 2013년 8월부터 지난 3월까지 약 20개월 간 국회의원 220명을 포함, 정계, 관계, 경제계, 법조계 인사들을 바쁘게 만나고 다닌 기록이 남아있다.

불황 타개책은 로비?

자금 규모도 막대했다. 당기순이익의 절반가량을 로비에 쓰는 회사가 있다면 이게 정상인가. 경남기업이 바로 그런 회사였다. 경남기업은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인 2008년에 당기순이익(129억 원)의 41.8%를 기부금으로 썼다. 이는 합법적인 기부금이다. 불법 자금을 합칠 경우 그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정도면 경남기업의 생사는 경영이 아니라 로비에 있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세 차례나 워크아웃을 받게 된 부실기업의 생존전략은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 로비였던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홍문종 의원은 성 전 회장에 대해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평소에 주장”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성 전 회장의 기질 탓만으로 볼 수는 없다. 국내 건설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건설사들은 해외 진출을 통해 생존을 도모해왔다. 그런데 해외 건설이나 자원개발은 국가 간 협의, 사업 수주, 자금조달 등 전체 과정에서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10대 건설사 바깥에 있는 중견건설사의 경우 무리를 해서라도 해외진출을 하지 않으면 활로를 찾기가 더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로비가 최우선의 경영전략이 되고 만 것이다.

남은 건 대통령 구출작전 뿐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에게 뾰족한 수가 있을까.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부실기업은 약 3,000개에 달하고 그중 금융위기 이후 큰 타격을 받은 부동산, 건설업이 약 1/3을 차지한다. 제2, 제3의 성완종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장기불황으로 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돈을 받는 정관계 인사들이 있고 이들은 각종 특혜를 제공할 수 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남은 것은 정부의 안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로서는 이번 파문이 불법 대선 정치자금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언론의 보도방향을 살펴볼 때 이미 가이드라인은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도지사로 정리되고 있는 듯하다. 둘 다 박근혜 캠프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인물인데다 홍준표 도지사는 무상급식 문제로 야권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혼탁한 정세는 대안세력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야당에 대한 협박도 계속되고 있다. 보수언론이 두 차례의 특별사면 문제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를 정조준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거들고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이례적인 사면”이었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인다. 조선일보는 성 전 회장의 불법 자금 제공내역이 담긴 장부에 야당 의원들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는 정보도 흘리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넘는다면 야당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다.
현재 검찰이든 특검이든 성완종 리스트의 전말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믿을 정치인 하나 없다'는 불신감을 키워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도를 떨어뜨리거나, 동국제강 건에서 나타나듯 기업 전반의 비자금 조성 문제를 연이어 터트려 주의를 분산시키는 등 혼탁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부패한 보수 정치를 심판할 대안적 정치세력과 민중운동의 힘을 키워나가야 할 때다.
 

2015. 4. 22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