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히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66시간보다 347시간이 길다. OECD 회원국 중 한 해 2천 시간 넘게 일하는 나라는 한국, 멕시코, 그리스 세 나라뿐이다.
 
지난 2011년, 정부는 “2020년까지 1800시간으로 단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집계된 취업자 연간 노동시간은 2013년 2,247시간에서 2014년 2,284시간, 2015년 2,273시간으로 되레 늘었다.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자 수도 전체의 17.9퍼센트인 345만명에 달한다. 정부 대책이 어떤 실효도 없이 공염불로 끝났기 때문이다.
 
 
현재 주당 노동시간은 법정노동 40시간, 연장노동 12시간, 휴일노동 16시간을 더해 최대 68시간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노동부가 “휴일노동은 연장노동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내린 뒤로 막대한 수준의 노동시간이 합리화됐다. 이는 입법 취지와는 전혀 동떨어진 판단이다. 정부가 자본의 이해관계에 조응해 국민들을 ‘야근 지옥’으로 내몰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이를 방조하는 가운데 노동유연화를 추진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역시 두 말하면 잔소리다.
 
최근 임시국회에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소속 의원들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휴일노동 할증 임금율과 유예기간에 대한 입장차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의당(이정미)과 민주당(강병원, 한정애 등)이 즉각적인 시행을 주장한데 비해 바른정당(하태경)은 300인 이상 기업은 2년, 300인 미만 기업은 4년 간 유예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자유한국당은 특별연장노동, 휴일노동·연장노동 할증수당, 탄력적 노동시간제 등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노동개악과 조응하는 쟁점들을 제기했다. 사실상 파토 안을 낸 셈이다. 이들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와 구 새누리당의 황당한 주장

지난해 구 새누리당의 입장은 기업규모에 따라 1년씩 유예기간을 둬 4단계에 걸쳐 시행하고 특별연장노동(1주 8시간)를 4년간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현행법상 잘못된 해석을 정당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면벌 조항을 유예하자는 주장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기업 부담’을 빌미로 법에도 어긋나는 착취에 대한 처벌을 유예하자는 건 권력자들과 재벌들도 힘드니 몇 년간 뇌물을 주고받아도 처벌하지 말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중소기업 부담이 걱정된다면 지금의 잘못된 원하청 구조를 개선하는 게 맞다. 피라미드 꼭대기는 건드리지 않고 맨 아래 노동자들만 참으란 건 어떤 설득력도 가질 수 없다. ‘일주일이 7일’이며, ‘휴일노동도 연장노동’라는 너무도 당연한 해석을 미루기만 하는 정치권 행태는 ‘재벌 봐주기’에 다름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탄력적 노동시간제도 끄집어냈다. 단위기간을 2주에서 1개월,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탄력적 노동시간제(변형노동제)는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법정노동시간을 주40시간으로 단축할 때 3개월 단위로 확대됐다. 그로 인해 기업들은 평균노동시간이 주40시간만 되면 하루에 12시간 일을 해도 연장 4시간에 대해 연장노동수당을 주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는 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술 더 뜬 박근혜 정부는 탄력적 노동시간제를 3개월에서 1년 단위로 확대하겠다며 그것이 노동자에게도 이익이라고 거짓 홍보했다. 하지만 이는 고무줄 노동, 무근별한 꺾기를 낳고, 노동시간의 탄력적 통제를 합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 입장에선 고강도‧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안정적 수입을 얻기도 불가능하다. 실질임금 역시 삭감될 수밖에 없다.
 
사실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자는 건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는 일관된 기조였다. 그것의 결과가 ‘나쁜 일자리’의 무근별한 양산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가 지난달 400만명을 넘어섰다. 작년 2월(379만4000명)에 비해 6.2퍼센트나 증가한 것이다. 주당 36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0.9% 늘어난 것과 비하면 6배 이상 많은 수치다. 시간제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비정규직이고, 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직종 역시 콜센터 상담 등 서비스업이 대부분이고, 임금은 반토막이다. 결국 정부는 기업들이 보다 용이하고 유연하게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문제를 고민할 때 우리는 몇 가지 함정에 대해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첫째, 시간을 줄이는 대신 강도와 통제의 문제를 포기하라는 공격으로부터 분명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생산성을 빌미로 강도를 높인다면, 이는 노동자 권리의 축소로 귀결될 뿐이다.
 
둘째, 노동시간 단축을 ‘일자리 나누기’의 방도로 여기는 것의 위험성을 고려해야 한다. 임금과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임금‧고용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물론 임금‧고용의 개별화, 즉 집단 노동자의 해체와 노동조합의 약화로 귀결될 수 있다.
 
셋째, 임금은 노동자와 사용자간 교섭력에 의해 결정된다. 사용자는 일은 더 시키고 총액급여수준은 유지하기 위해 시간당 정액 급여를 낮춰 지불한다. 또한 근속수당이나 상여금, 고용보험에 돈이 들기 때문에 신규 고용보다는 기존에 일하는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더 선호한다. 그래야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연장노동을 택하게 해 신규고용과의 대체를 억제하는 셈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해소 위해
일터의 민주주의를!

정치권의 줄다리기만 구경하고 있을 수 없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해소해야 우리 삶에도 ‘민주주의’의 봄이 온다. 마침 촛불을 들었던 노동조합‧시민사회 단체들이 ‘최저임금 1만원’과 ‘노조 할 권리’ 등을 요구하며 전 사회적 캠페인과 투쟁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촛불이 박근혜를 몰아냈듯,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촛불을 들어야 할 때다. 그것이 일터의 민주주의고, 적폐 해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