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에 입사하여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첫 업무를 시작했던 한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사한지 9개월 만에,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지 6개월 만에 벌어진 비극이다. CJ E&M은 고인이 실종된 상황에서 고인의 행방을 찾기는커녕 회사 소유의 법인카드 회수에 관심을 쏟았고, 유가족을 만나 고인의 근무태만을 한 시간에 걸쳐 강변했다. 비슷한 일을 한두 번 겪는 것이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책임회피를 시도한 것이다. 유가족이 진상규명과 공식적인 사과, 그리고 재발방치대책을 요구하자 CJ E&M은 과도한 노동시간·노동강도, 괴롭힘 등 일체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며, 모든 문제는 이한빛 PD의 ‘근태불량’에 있다고 주장했다. 합동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진실을 규명하자는 유가족의 제안은 거부하고 자체 조사만을 고집했으며, 노동강도 및 출퇴근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유가족이 파악한 정보를 모두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결국 유가족 및 가족대책팀은 사측과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4월 18일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입장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6개월간 유가족과 가족대책팀이 조사한 ‘사망사건 조사보고서’가 공개되었고, 유가족 및 관련자의 증언이 이어졌다. 6개월을 버틴 것이 신기해보일 만큼 고인이 극도로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여있었음이 밝혀졌다. ‘혼술남녀’는 전체 분량의 절반이 사전제작으로 기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방송 일정에 맞춰 제작하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촬영·조명·장비팀이 대거 교체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일정이 조정되지도 추가 인력이 투입되지도 않았으며, 모든 부담은 기존 인력이 감당해야 했다. 신입직원이었던 이한빛 PD는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면서 극도의 장시간노동을 해야만 했다. 계약직이었던 외주업체 직원들이 해고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며, PD의 업무가 아닌 계약금 환수까지 담당하면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이한빛 PD는 집단적인 모욕과 괴롭힘까지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 기자회견이 있은 후 CJ E&M은 공식 입장을 통해 “이한빛님에 대해 큰 슬픔을 표하며, 유가족의 아픔에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바로 뒤이어 “유가족과 원인 규명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 협의를 해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라면서 유가족과 대책위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상 절차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짓과 책임회피로 일관한 뒤 곧바로 이어진 “유가족분들께 애도를 표하며, CJ E&M과 tvN에 관심을 주시는 모든 분들게 송구한 말씀을 전한다”는 인면수심의 가식으로 입장서는 마무리된다. 무엇보다 사건이 발생한지 6개월 동안 일언반구 입장도 내놓지 않고 가족의 요구도 무시하다 대책위 기자회견이 있은 후 몇 시간 만에 입장을 발표하는 것부터가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명백하게도, 가장 큰 악은 시청률과 수익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면서 직원들을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으로 내몰았고, 그 결과 소중한 목숨을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사건 발생 후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CJ E&M이다. CJ E&M은 책임을 인정하고 유가족 및 시청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대책은 당연하게도, 상식적인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인력을 확보하고, 프로그램 제작 환경을 개선하며, 조직 내부 문화를 혁신하는 종합적인 것이어야 한다. 대책을 이야기하기가 민망하게도, CJ E&M은 현재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얼마 전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넷마블 노동자의 연이은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흥행 여부에 따라 높은 수익 혹은 높은 리스크를 얻게 되는 분야라는 공통점에다, 거대 자본이 리스크는 외부화하고 수익은 내부화하는 방식으로 업계의 노동자들을 초과 착취함으로써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점 또한 동일하다. 거대 자본의 횡포에 노동시장은 왜곡되어 단기계약, 외주하청이 판치고 노동자들은 극도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만 한다. 넷마블 노동자들의 사망은 정확히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으며, 이한빛 PD의 사망 역시 이러한 구조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고인은 CJ E&M의 최말단에 위치한 정규직 신입사원으로서 한편으로는 노동을 착취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주업체 직원들을 닦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갈등하고 고통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동착취, 비정규직·외주하청 문제, 거대자본의 횡포를 드러내고 개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하며,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통해서 다시는 비극적인 사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간접적인 살인을 저지른 당사자인 CJ E&M이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CJ E&M은 故이한빛PD의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
CJ E&M은 故이한빛PD의 사망사건의 책임자를 징계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
 
 
2017년 4월 19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