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이끌어 낸 19대 조기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대통령의 일상이 화제에 오르기도 하고,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 인선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약속해 일자리 공약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도 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은 신설되는 일자리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것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노정교섭을 제안하고 있다.
탄핵이라는 예외적 사태로 정권교체가 된 만큼 정부의 초기 정책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다양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사회운동의 실천과제에 대한 도출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의 의미
 
광장의 촛불은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압박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고 구속시켰다. 최순실, 김기춘 등 국정을 농단한 공범자들, 그 배후에서 한국 경제와 정치를 농락한 재벌의 상징 격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구속시켰다.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을 넘어 ‘박근혜 체제’의 해체, 즉 적폐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했다.
박근혜-이재용 게이트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정치권력과 경제구조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선출된 공직자가 위임된 권력을 사익 추구에 사용한 국정농단 사태는 책임성을 상실한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국 경제를 지배하며 부를 독식하고, 위기가 오면 그 손실을 사회에 전가해 온 재벌체제의 한계 또한 여실히 드러났다. 경제혁신 능력도 없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는 재벌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적폐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대선에서 이미 『노동자의 눈으로 본 2017대선: 민주당 문재인·국민의 당 안철수 정책 비판을 중심으로』(2017년 4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당시 공약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첫째, 구호로는 정경유착 근절만 외치고, 재벌이라는 대기업집단의 해체나 경영권 세습, 불법·편법적 부의 증식을 근본적으로 제한할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둘째, 도리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재건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핵심 주체인 노동자운동에 현실적 무기를 줄 수 있는 노동3권 보장은 외면했다. 셋째, 사드 배치야 말로 핵무기 숭배를 자극해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사실이 명백함에도 “전략적 모호성”을 주장하며 명확한 입장을 회피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이재용 부회장의 외삼촌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대미특사로 파견하고, 노조파괴 기업 갑을오토텍의 변호사인 박형철 씨를 비서관으로 임명하며 친재벌 인사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홍석현 씨는 사드에 대한 입장이 후보 때와는 다를 수 있다면서 사드 배치를 용인할 여지도 남겼다.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적폐가 무엇인지 명확히 제시하고,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대중적 역량을 집결시킬 의지와 계획이 없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정치와 경제의 총체적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이 공염불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근본적 변화의 희망을 보여준 정의당의 득표
 
사표론에도 불구하고 심상정 후보를 지지한 6.17%, 200만 표는 근본적인 사회변화에 대한 희망을 의미한다. 그것은 박근혜 정권의 친재벌 반노동 정책,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싸워온 사회운동의 성과다. 단순히 득표가 많고 적고를 따질 게 아니라, 누가 왜 지지했는지 살펴보면서 향후 사회운동의 과제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심상정 후보의 선거운동 과정은 이 땅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한 심상정 후보의 공약들은 노동조합 조직률 30% 달성을 필두로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1만원, 재벌체제 해체, 사회공공성 강화, 노조할 권리,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등 새 정부에서도 변함없는 사회운동의 과제가 될 요구들이다. 이런 노동 문제에 대해 청년·여성에서 높은 공감대를 보내준 것은 고무적이다. 이들의 자각과 열망이 노조할 권리로 이어져 주체화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또한 열정페이 무료노동, 직장 내 성차별, 세계 1위 성별임금격차 등 시급한 미조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중적 사회운동을 건설하는 계기도 되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 비판적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지지가 정의당의 이념과 역사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 평가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진보연대는 그동안 통합진보당 결성과정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분당 뒤 진보정의당 결성과정에서 자유주의적, 탈운동적 경향의 심화를 비판해왔다.
심상정 후보가 과거에 스스로 밝혔듯이, 정의당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된 노동자운동과 의식적으로 거리두기를 해왔다. 이는 대중운동의 강화 없이 상대적으로 실현가능한 요구를 제도화해서 지지를 얻는다는 개혁주의 전략에 기반에 둔 것이었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쇠퇴에 조응했고, 진보정당의 이념과 노선을 우경화했다. 새 정부와의 연정 논의가 정의당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것도 같은 문제로 볼 수 있다. 연정 참여는 그 정부의 성패에 대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민주당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한 만큼, 정의당은 노조 조직률 30% 공약을 실현할 방안을 실천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전략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조직노동자와 미조직 청년·여성 노동자를 아우르며 폭넓은 원내활동과 원외활동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의 주체적 역량을 갖추자
 
19대 촛불대선의 결과는 촛불투쟁이 만든 정세의 연장선에 있었다. 탄핵 반대 여론을 형성한 보수 콘크리트 지지층은 홍준표를 선택했고, 정권교체와 적폐청산을 원했던 대다수 주권자들은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을 지지했다. 진보정당 역대 최대였으나 아직 미약한 심상정의 득표는 사회운동의 현실을 반영한다. 촛불투쟁이 새로운 정치공동체와 사회경제구조에 대한 구체적 구상이나 이를 실현할 대안적 세력을 탄생시키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장기적 관점에서 재벌체제 해체·노조할 권리·정치개혁(개헌)·한반도 평화 등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조하고 재건할 의제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와 쟁점을 형성해 가야한다. 또한 일자리 문제에서도 개별적 처우 개선에 대한 약속 같은 정부의 일방적 시혜에 기대지 않고,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노동조합과 대화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운동의 재건과 확장을 도모해야 한다.
지난 겨울, 정치·경제 영역에서 최고의 권력자를 끌어내리고 구속시킨 촛불의 힘을 잊지 말자. 그것은 단결한 민중의 힘이었다. 새 정부에 대해 막연하게 기댈 것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를 위한 장기적 구상과 목적의식적 실천을 통해 사회운동의 주체적 역량을 갖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