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가 민주노총을 자중지란으로 내몰았다. 이제 청와대가 아니라 조합원을 믿고 전진할 때다!
- 대의원대회 결과에 부쳐
 
어제 열린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결국 파행으로 끝났다. 김명환 위원장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에 관한 집행부 제출안을 찬반 투표하려는 와중에 폐회를 선언했고, 새로운 투쟁계획으로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집행부가 제출한 안을 집행부가 표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 셈이다.
 
대의원대회의 의견 분포를 보면, 경사노위 참가 반대가 50% 이상, 찬성이 40% 정도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원칙적 참가 반대 수정안(수정1안), 정부정책 폐기를 조건으로 참가하는 수정안(수정2안), 참가 후 조건부 탈퇴 수정안(수정3안) 각각의 찬성률과 두 수정안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참가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정파의 대의원 분포를 감안하면 대략 이 정도 의견분포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참가 반대 입장이 과반이었는데도 수정안1, 2번이 모두 부결된 것은 참가 반대 입장들이 다양하다보니 두 수정안으로 대의원 표가 집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위원장은 원안을 포기하고, 수정3안(참가 후 조건부 탈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참가 반대 입장 일부를 수정3안으로 포섭해 참가 찬성을 가결시키려 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집행부는 대의원대회 이전에 경사노위 참여반대 입장을 제출한 정파조직과 간담회를 진행해 의견 조율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의원대회 결과를 보면 집행부의 이런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혼란만 자초한 꼴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위원장은 원안 부결을 막기 위해 원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지 않고 대의원대회를 폐회시켜 버렸다. 집행부가 자신의 안에 대한 표결 자체를 막은 것은 스스로 원안이 부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대의원대회가 이렇게 중단됨에 따라 안의 해석에 대해서도 앞으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집행부가 대의원대회 결과를 '원안 심의 중단'이라고 해석하고,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 안을 다시 처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결'이라면 일사부재의 관행에 따라 경사노위 참여안은 임시대의원대회에도 제출되기 어렵다. 김명환 위원장은 민주노총 내부를 다시 극단적 혼란으로 내몰더라도 경사노위 참여 여지만은 남겨두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대의원대회가 이렇게 파행으로 끝나게 된 이유는 집행부가 민주노총의 계획이 아니라 청와대의 일정에 따라 경사노위 참여를 논의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집행부는 산하단체보다 청와대와 교류하며 경사노위 참여를 밀어붙였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도 이런 사업방식에 대해 수차례 문제제기가 있었다. 집행부는 민주노총의 단결이 아니라 청와대와 협력에 초점을 두고 경사노위 참여를 추진해왔고, 그 결과가 이번 대의원대회 파행으로 나타난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올해 사업계획을 재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 같은 태도라면, 또 다시 꼼수로 경사노위 참여를 재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는 민주노총을 또 다시 자중지란의 혼란으로 내몰 것이다.
 
민주노총이 사회 변화의 주체로 나선다는 것이 청와대와 협력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민주노총은 계급적 관점에서 한국 사회 변화의 방향을 수립하고, 2천만 노동자를 설득하며 투쟁해야 한다. 청와대와 민주노총의 기브앤테이크(주고받기) 식 논의는 오히려 노동자 대중에게 조직노동자의 배타적 이익만 추구하는 지대추구적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현재 경사노위 프레임에서는 노동유연화와 민주노총 합법화를 교환하려 했던 1996년의 과오가 반복될 우려가 크다. 그 과오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가득 찬 한국의 노동시장을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연대임금-연대고용을 실현할 방향을 모색하며 조합원을 믿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민주노총의 사회 변화는 민주노총의 방식으로 개척한다. 민주노총이 세상을 바꿀만한 실력이 될 때 경사노위도 의미가 있다. 그 반대는 아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문재인의 태도가 아니라 10시간이 넘는 대의원대회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900여 대의원의 결의를 믿어야 한다. 당당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사회 변혁의 길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