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무기력을 딛고 2013년 이후 질서재편을 준비하자! 2007-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있는 가운데, 세계경제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회복이 지지부진하면서 3차 양적완화 정책이 단행되었다. 또한 유럽위기가 지속, 확대됨에 따라 세계경제가 다시 한 번 심각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또한 연초 정부의 3.7% 전망치가 지속적으로 하향 조정(10월 한국은행 2.4%로 하향조정)되었으며, 추가적인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위기는 국가별, 지역별 불균등한 양상으로 시차를 두면서 진행되겠지만, 지금의 위기가 장기간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가 대단히 높은 한국이 세계적 경제위기의 직접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세계적인 장기불황과 경제위기의 심화는 그리스 등 유럽의 상황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긴축과 구조조정, 임금삭감, 사회복지의 축소를 강요하며 노동자 민중들의 권리를 축소하고 삶의 조건을 대폭 후퇴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엄혹한 정세 속에서 2012년 대선을 앞둔 한국사회의 현실은 너무도 암울하다. 연일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유력한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는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고 대중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각종 공약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명박-노무현-김대중 정부의 뒤를 이어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와 FTA 전략, 노동유연화의 지속적 법제화,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와 같은 핵심적인 신자유주의 전략을 여전히 주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내세우는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는 집권 이후 경제위기의 심화와 함께 현실론이라는 이름으로 대폭 후퇴할 것이 명확하다. 하지만 이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옹호하고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야할 민중운동은 주류 세력의 급속한 우경화 흐름 속에서 고립 분산적 활동을 넘어서고 있지 못하다. 민주노총은 정당과 후보에 대한 방침조차 결정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다. 이러한 운동진영의 혼란과 무기력을 틈타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의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대선캠프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체성 해체와 대선대응의 각개 약진 2011년 12월 통합진보당의 출범은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의 역사에서 커다란 변환점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노동자 민중운동은 구체적인 운동전략과 정당운동 노선 등에 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노동대중(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이 스스로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여 사회적 정당성과 영향력을 획득하고, 이러한 대중운동과 민중연대 투쟁전선의 힘을 바탕으로 기존의 지배질서를 변혁하여 생산의 주인,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공유해왔다. 따라서 지배세력(자유주의, 보수주의)과 달리 정치적, 조직적으로 자주성, 독자성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민주노조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의 주류 세력들이 사회구조의 변혁을 포기하고 ‘집권’을 전략적 목표로 사고하면서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가 그들의 핵심적인 노선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자유주의 세력과의 조직적 통합까지 나아가면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기본적 정체성이 해체되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라는 대단히 이질적이고 때로 모순적인 이념과 역사를 갖는 정치세력들이 통합한 정파연합당이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모토로 창당한 민주노동당과 ‘노무현의 삶과 참여정부 계승’을 목표로 창당한 국민참여당, ‘비국민참여당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다 끝내 진보신당을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가 이념과 역사의 차이를 무시하고 불과 수개월 만에 합당한 것은 진보정치-노동자정치의 진전이 아니라 역행임이 분명하다. 통진당 사태 이후 노동자 민중운동은 지배세력과 보수언론의 조롱거리로 전락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급속히 상실했다. 통진당 사태는 전체 운동진영의 패배주의와 분열을 확대하고, 대선에서의 각개약진과 무기력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대선방침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지도력 붕괴 통진당 사태 이후 진보정당의 분화, 분열 속에서 영향력 있는 대선대응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세력은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은 4.11 총선에서 ‘1선거구 1후보 출마(진보진영 후보단일화), 반MB 반FTA 1:1구도 형성(무원칙한 야권연대)’ 방침과 함께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사회당을 진보정당으로 승인했다. 많은 내부적 반발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역투표에서 진보신당 1곳(거제)을 제외하면 사실상 민주통합당과 통진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를 관철하고, 비례대표 선거와 세액공제 관련하여 진보신당과 사회당에 대해 부문적으로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총선 이후 통진당의 부정·부실 선거논란 과정에서도 내부의 강력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통진당에 대한 지지철회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5월 통진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이후 통진당의 쇄신을 전제로 한 조건부 지지철회를 결정했다. 7월 통진당에서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 건이 부결되고 사실상 분당 사태에 이르러서야 통진당에 대한 지지철회를 공식 결정했다. 민주노총의 통진당에 대한 지지 철회 이후 통진당 지지세력, 통진당 탈당파 지지세력, 진보신당 지지세력, 사회주의정당 건설세력, 노동 중심의 새로운 진보정당·변혁정당 건설 세력 등 내부적 이견으로 정당과 후보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기 어려운 세력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집행부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통진당 지지 세력들을 상대화하고 김영훈 위원장과 산별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노동자정치세력화를위한민주노총특별위원회’(이하 새정치특위)를 구성하여 2012년 대선에서 노동자 민중 독자후보 방침을 추진했다. 하지만 새정치특위의 ‘진보적 정권교체’를 중심과제로 하는 독자후보안은 통진당이나 통진당 탈당파의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 입장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새정치 특위의 독자후보안은 이정희 대선후보 출마를 방침으로 확정한 통진당 세력과 그 비판 세력 양자의 입장을 절충하다가 결국 양자 모두에게 동의 받지 못하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폐기되었다. 민주노총은 공언했던 8월 정치총파업이 무기력하게 마무리되면서 노조법 재개정 등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를 중심으로 한 대선시기 대중투쟁의 계획도, 대선후보 방침도 결정하지 못했다. 또한 국회 청문회를 계기로 쟁점화된 쌍용자동차 회계조작과 부당한 정리해고, 유성·KEC·SJM 등 주요 금속 사업장에 대한 자본의 노조파괴 시나리오 문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문제 등 현안 투쟁을 대선시기 정치 쟁점화시키는 투쟁계획도 제출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 참정권운동 등 대선시기 캠페인 수준의 계획만을 제출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의 안철수, 문재인 캠프행이 줄은 잇는 현상에서 알 수 있듯, 민주노총의 대선방침 부재 속에 일부 산별노조/연맹에서는 산별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골적인 야권후보 지지흐름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자 민중 독자후보 추대운동의 각개 약진 9월 5일 민주노총 새정치특위의 노동자 민중 독자후보 추대 흐름과 발 맞춰 교수 3단체(전국교수노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중심으로 제 진보민중진영에 노동자민중후보추대를위한사회단체·인사연석회의(이하 독자후보연석회의)가 제안되었다. 초기 독자후보연석회의 제안서에서 담고 있는 ‘분열된 진보진영의 통합과 야권승리’라는 기조에 대해서 민주노총 새정치특위의 독자후보 입장과 마찬가지로 야권연대와 후보사퇴로 귀결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대다수 좌파단위는 참가를 유보하거나 불참하게 된다. 이후 독자후보 연석회의는 내부적 논의를 거쳐 “연립정부와 야권연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후보는 완주를 원칙으로 하되 노동자 민중의 관점에서 주객관적 조건을 고려하여 최종 방침은 추후에 결정한다”는 것으로 입장을 좌선회하고 진보신당을 포함한 좌파단위들과 대선 공동대응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노동전선,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 좌파노동자회, 노동자혁명정당건설추진모임(이하 노혁추) 등 좌파단위들은 독자 완주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독자후보 연석회의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독자후보연석회의는 민주노총의 노동자 민중 독자후보안의 폐기와 좌파단위의 불참 속에서 독자후보 운동의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유명무실화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신당이 제안(민중 선거인단 경선을 통한 사회연대 대선후보 선출)한 대선공동대응을 위한 좌파단체 실무협의회가 9월 6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진보신당, 노동전선, 좌파노동자회, 제안자모임, 전태일노동대학, 사노위, 사회진보연대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사노위는 9월 8일 총회를 통해 ‘투쟁하는 노동자·민중후보’를 무소속 후보로 내세우고 후보 사퇴 없이 완주한다는 18대 대선 방침을 만장일치로 결의했고, 변혁적현장실천·변혁적노동자계급정당건설을위한전국활동가모임(이하 변혁모임)을 통해 대선 독자후보 전술을 현실화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전선은 사노위와 유사한 입장으로, 특정 정치세력의 후보를 다른 단위가 수용하기 어려우므로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인사들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 후보를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더불어 정당 건설 문제는 대선 대응과 분리해야 함을 강조했다. 좌파노동자회는 사퇴하지 않는 노동자민중 독자 후보 전술에 동의하고, 대선투쟁이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계기(진보좌파정당 건설)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진보신당은 9월 8일 전국위원회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독자후보에 동의하고, 신자유주의 연립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노동자민중의 사회연대후보를 출마시키고, 완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를 위해 사회연대후보 1,000인 제안자를 모집해 사회연대후보 운동을 제안, 이후 5만 선거인단을 모집해 경선을 통해 사회연대후보를 선출한다”는 대선방침을 확정했다. 진보신당의 경우 독자후보연석회의의 노동자 민중 독자후보 방안이 진보신당 전국위 결정사항과 상당히 유사해 참여하지 않을 이유는 없으나, 우선 협의 대상인 좌파단위가 독자후보연석회의 참여 반대 의견이 강하기 때문에 9월 20일 대표단회의를 포함해 수차례 독자후보연석회의 참여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정하지 못했다. 전태일노동대학은 대선 논의와 새로운 정당 건설 논의가 연계되어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대선과 후보 전술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을 개진했다. 후보 전술을 먼저 논의하기보다는 이번 대선에서 제기되어야 할 핵심적인 요구가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 하에 후보 전술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후보 출마를 결정한다면 반대하지는 않으며 독자 완주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제안자모임은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대선대응의 필요성에 공감하나 현재 운동진영(특히 좌파 진영)이 후보 전술을 진행할 만큼의 역량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독자후보 연석회의와 좌파단체 실무협의회가 함께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회진보연대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대선대응에 공감하지만, 현 시기 제기되어야 할 핵심 요구와 운동전략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고, 만약 독자 대응을 한다고 하더라도 좌파운동의 역량을 고려할 때 민주노총을 포괄할 수 있는 계획(민주노총의 대선방침 변경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독자후보 연석회의에 좌파단체 실무협의회의 참여와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기했다. 이후 9월 20일 <야권연대 반대, 완주하는 노동자 민중 독자후보 가능성과 현실성에 대하여-2012년 대통령 선거 공동대응 제안 토론회>와 한 차례의 좌파단체 대표자회의를 거쳐 진보신당, 노동전선, 사노위, 노혁추, 좌파노동자회가 참여하는 ‘대선투쟁 공동기구 구성을 위한 기획단’(이하 좌파대선기획단)을 구성하게 된다. 사회진보연대, 제안자모임, 전태일노동대학은 강조점의 차이가 있으나,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대한 개입 없이 민주노총 외부에서 독자후보 운동을 벌일 경우 현장 노동자의 참여와 지원을 얻기 어렵고, 독자후보 운동의 결과가 너무 미약할 경우 민중운동의 패배주의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통진당의 이정희 후보, 심상정-노회찬-유시민의 새진보정당 추진위원회 후보 출마가 예상되는 가운데, 노동자 민중후보 추대와 독자 완주가 의미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세력결집이 필요하므로 독자후보 연석회의와 함께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출했으나 다른 단위와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좌파 대선 기획단에 불참하게 된다. 9월 27일 진보신당은 좌파대선기획단에 독자후보연석회의와 함께 제3지대에서 노동자민중의 독자후보경선조직위원회구성을위한원탁회의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지만 좌파대선기획단에 참가하는 다른 좌파단체들이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후 진보신당은 독자후보연석회의와의 공조를 사실상 포기하고 좌파대선기획단을 중심으로 대선대응을 논의하게 된다. 좌파 대선 기획단 내부에서 △적합한 후보(노동자민중진영을 상징할 수 있고 정책을 제대로 논쟁할 수 있는 후보 vs 투쟁하는 노동자 후보), △후보 선출 방식(대중적 선출 절차 vs 합의 추대), △후보 등록형식(정당 후보 vs 무소속 후보) 등 진보신당과 다른 참가단위 간에 상당한 이견이 존재했다. 하지만 10월 12일 좌파대선기획단은 △반자본주의·반신자유주의, 야권연대 반대, 완주하는 노동자민중 독자후보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대선투쟁과 대선 이후 당 건설 문제는 분리 △10월 13일 열리는 변혁모임 전국활동가대회에서 대선방침이 결정되면, 그 결정을 최대한 존중 △(최대쟁점으로 부상했던) 임시(가설)정당을 통한 후보 등록방법과 후보선출 기구 구성을 통한 선출방법은 새롭게 구성되는 ‘대선공동기구’에서 논의하고 합의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합의문을 도출했다. 최대 쟁점사항에 대해 합의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대선공동기구 구성에 합의하고 최대한 논의키로 결정한 것이다. 한편 10월 13일 변혁모임 전국활동가대회에는 4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노동자 대통령 후보 출마를 통한 대선투쟁을 결정하고, 김정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김소연 기륭전자분회 전 분회장, 이호동 전 발전노조위원장을 최종 후보군으로 제안했다. 또한 이후 공동선거투쟁본부가 구성되면 후보선출(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중적 추천 방식으로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변혁모임은 10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야권연대가 아닌 독자적인 노동자대통령 후보를 내자며, 진보신당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노동자대통령 대선공동대응 회의를 제안했다. 진보신당은 10월 22일 대표단 회의를 통해 변혁모임이 제안한 대선공동대응기구 관련 마지막 협상 시한을 23일까지로 정하고, 후보 선출방식은 경선을 포함한 대중적 선출 방식으로, 후보 등록방식은 대선공동대응정당(임시정당)으로 하는 기본 방향으로 변혁 모임을 최대한 설득한다는 입장을 확정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진보신당과 변혁모임 간 핵심쟁점인 대중적 선출방식과 임시정당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10월 27일 진보신당 전국위원회에서 대선 독자후보 대응이 부결됨으로써 진보신당은 자신의 후보 출마를 통한 대선대응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변혁모임은 진보신당과의 공동 대선대응이 불가능해졌지만, 김소연 기륭전자분회 전 분회장, 이호동 전 발전노조위원장 중 대선후보를 확정하여 대선투쟁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자 민중운동의 뚜렷한 노선분화 이로써 현재 출마를 확정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을 포함해 출마 예정인 변혁모임의 후보 등 전통적인 노동자 민중운동진영 출신의 후보가 여럿 대선에 출마한다. 1987년 NL 세력을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 다수파의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PD 세력을 중심으로 한 백기완 민중후보 출마 및 중도 사퇴, 1992년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백기완 민중후보 출마와 완주, 1997년 국민승리 21 권영길 후보 출마와 완주(김대중 당선을 위한 비판적 지지흐름이 국민승리 21 내외부에 존재), 2002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출마와 완주(노무현 당선을 위한 비판적 지지 흐름이 민주노동당 내외부에 존재) 및 사회당 김영규 후보 출마 완주, 2007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출마와 완주 및 사회당 금민 후보 출마 완주 등 이전 시기와 비교해보면,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 노선적 분화도 뚜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수 후보의 출마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 내부, 좁게 보아도 자민통진영 혹은 좌파진영 내부의 이념적·정책적 합의와 동의지반 속에서 출마하는 후보는 없다. 경기동부를 핵심으로 하는 통진당 세력은 현재 노동자 민중운동의 갈등과 무기력을 초래한 데에 핵심적인 책임이 있는 세력이며, 통진당 사태를 겪으면서 노동자 민중운동 전체에게 정치적,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진보정의당은 진보신당 출신의 심상정 후보가 대선후보로 출마하긴 했으나, 당내 주요 기반은 국참당 세력으로 자신의 계급적 기반이 부재하여 ‘국민정치를 표방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로 급격히 경도되고 있다. 통진당, 진정당 양자 공히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 참여해 정권교체와 연립정부 수립(권력에의 지분참여)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일각으로 볼 수 없다는 비판적인 입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변혁모임의 대선 독자후보 운동 또한 좌파운동 내부의 이념적, 정책적 합의와 동의지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진보정당 운동의 급속한 우경화와 분열, 민주노조 운동의 무원칙한 야권연대를 둘러싼 갈등과 무기력으로 노동자 민중운동의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있는 현재 상황은 그 간 노동자 민중운동이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맞서 제대로 된 현실인식과 이념적 지향, 운동 전략과 실천기획을 갖추지 못했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치 불신의 심화, 정당정치의 중도지향성 강화, 진보정당의 선거-의회주의 진보정당운동의 선거주의-의회주의화, 조급한 집권전략에 기반한 우경화 경향을 강화해온 역사적 과정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국사회의 변화, 이 속에서 발생한 정당정치의 위기와 정치 불신의 심화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정치위기라는 정세가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의 이념과 운동 전략을 집어삼키고 있다. 한국사회는 1997년과 2007년 두 번의 경제위기라는 충격과 장기불황을 경험하는 가운데 누가 대통령인지, 누가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는지와 무관하게,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관철되어왔다. 금융시장 개방과 이에 동반하는 국내 제도 규제완화, 수출재벌 중심의 FTA 추진, 노동유연화, 한미동맹의 현대화 등 사실상의 보수-자유주의 간에 정책이 수렴되는 상황에서 국회는 거수기화 되지만 오히려 정당 간, 정치인 간 이전투구는 더욱 극심해졌다. 그 결과 국회는 민생문제에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곳으로 상징되고, 정당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냉소가 더욱 심화되었다. 지배계급들은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지속하면서도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부작용, 대중들의 불만을 완화하는 것이 공동의 과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의 ‘좌클릭’으로 표현되듯 각 정당 복지정책도 일정하게 수렴하고 있다. 여전히 각 정당의 지역적 지지기반은 중요하지만, 점차 중도지향성을 내세운 포괄적 호소가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가 되었다. 또한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적인 전략으로 부상함에 따라 각 정당은 정당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냉소를 불식시키기 위해 선거전문가를 영입하고, 새로운 선거기법을 도입하며, 정치권 바깥으로부터의 참신한 인물을 후보로 영입하려는 경향을 강화해왔다. 최근 안철수 현상은 이러한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을 매개로, 여론조사기관과 언론매체의 의도된 여론화 기획 속에서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에서 대중들이 찾아낸 화해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서민의 친구이면서도 노무현과 달리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은 인물로 보인다. 또 그는 반칙 없이 성공한 경제인으로, 특권층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며 공정성을 잃어버린 이명박과도 대비된다. 즉,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유능한 노무현이자 착한 이명박이다. 안철수 지지층의 상당수는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더 지지하는 중도보수층으로 분류되는데, 안철수 후보가 과거 노무현, 이명박에 투표했던 유동적 중도층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득표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당의 중도지향성 강화는 여전히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없고 이념적, 계급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휘발성 높은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아주 잠시 동안 묶어두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결국 대중의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여러 선거기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당의 이념적 지향성과 당원의 요구보다는 당 바깥의 여론조사 결과가 가지는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당 바깥의 인물 영입이 당의 생존에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됨에 따라 정당의 존립기반 자체도 매우 취약해진다. 최근 통진당 사태로 드러난 진보정당운동의 붕괴 또한 정당정치의 중도지향성 강화와 밀접히 관련된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을 상징했던 2004년 총선 사례는 진보정당이 직면한 잠재적 갈등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당시 민주노동당을 선택한 (비례)정당투표자들의 특성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이 얻은 10석은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당원이나 적극적 지지자들의 표에 의해서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노조 조합원과 그 가족들의 경우 다른 집단에 비해 민주노동당 지지 비율이 높게 나타났지만, 전체 득표에서 조합원과 그 가족의 표가 차지한 비중은 매우 낮았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계층적으로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이었고, 이념적으로도 열린우리당 지지층과 구분되지 않는 유동적 중도층이었다. 이들은 탄핵정국 전후로 정당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이었고, 그 실망감을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당투표로 반사적으로 표현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당원 및 적극적 지지자와 유동적 중도층의 이원적 지지구조에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의회주의, 선거주의를 점차 강화하게 된 것은, 결국 유동적 중도층을 중심으로 당의 노선과 운영이 변모해갔다는 점을 의미한다. 의회주의와 집권전략을 노선으로 채택한 민주노동당 내 주류 세력이 이 변모를 주도해나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류 세력의 우경화한 집권전략과 좌파세력의 무능, 고립주의 오늘날 노동자 민중운동의 이념, 정체성의 해체와 분화, 민주노조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이 동시적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위기와 정치위기라는 객관적 상황에 대한 분석과 동시에 운동위기에 대한 분석, 다시말해 운동주체들의 노선과 실천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진보정당의 수권정당·통치정당화와 자민통 그룹 다수파의 ‘우경화된 집권전략’ 세계 경제위기와 정치위기 정세 하에서 정당의 중도화 경향이 강화되고, 민주노조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의 침체를 배경으로 진보정당의 의회주의, 선거주의 경향이 심화되면서 수권정당·통치정당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수권정당·통치정당화’란 진보정당/노동자정당이 체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변혁적 운동전략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당면 집권을 핵심 목표로 제도적 틀 안에서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진보정당의 수권정당·통치정당화가 강화되는 이유는 주체적인 측면에서 첫째, 진보정당의 지지기반이 되는 대중운동의 침체와 무기력이다. 쉽게 말해 이미 무기력해진 민주노총, 전농 등 대중조직에만 의지해서는 표가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명박 정권의 집권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사회제도적 타협노선을 견지하고 각종 정부기구에 참여했거나 정부지원을 받았던 주류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일부 세력 입장에서는 자기 생존을 위한 정권교체에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 셋째, 정치계급의 독자화 경향이다. 정치계급의 독자화는 정당 활동을 하는 정치인 및 활동가들이 당직과 공직을 매개로 개별적인 이해관계를 형성하면서 조직의 운동노선이나 대중운동의 전략적 이해보다도 정당 내부에서의 권력, 지분 보전 혹은 의회 진출을 위한 자신의 이해를 우선하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10석 당선 이후 이러한 경향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꾸준히 강화되어왔다. 정치계급의 독자화는 선거주의, 의회주의 경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선거주의, 의회주의가 강화되면 정당의 운동적 활동은 감소하고 제도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당 활동가들의 운동도 선거홍보와 의정활동 지원을 중심으로 축소된다. 정당이 선거에 관해 부르주아와 똑같은 기법을 사용하고(스타 정치인에 의존하거나 심지어 이들에 대한 개인숭배를 자극), 당의 재정과 활동이 정부기구, 의회, 지방정부, 선거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간부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화되는 것이다.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흐름을 포함하여 이념·노선 없이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노동운동 출신의 명망가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넷째, 진보정당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의 다수파인 자민통 그룹 다수파의 ‘우경화된 집권전략’이 수권정당·통치정당화의 직접적인 추동력이 되었다. 민주노조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 양자가 급속한 우경화와 분열, 무기력에 처한 데에는 양자 모두에서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자민통 그룹 다수파의 노선전환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진보연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전국연합은 2001년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9월 테제)을 통해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를 맞이하여 광범위한 민족민주정당, 민족민주전선을 통해 10년 후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완성하기 위한 비상한 태세를 갖추자”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전농 등 진보정당과 주요 대중조직의 지도부를 장악한 자민통 그룹은 이러한 정치적 구상을 구체화 해왔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을 광범위한 민족민주정당으로 전환하여 자주적 민주정부의 초석을 다진다는 계획을 중심으로 2007년 노동자 민중운동 좌우세력이 함께 참여하고 있던 상설연대투쟁체인 전국민중연대를 해산(참가단체의 반발로 공식회의기구에서 해산 결정도 하지 못했다)하고 자민통 그룹 중심으로 한국진보연대를 출범시켜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정파적 이해로 재편했다. 또한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합원의 정치적 주체화와 투쟁력 강화는 상대화하고 노조의 양적 조직화와 안정적 관리를 통한 민주노동당 당원 확대에 활동의 방점을 찍었다. 자민통 그룹 다수파의 경우 노동운동 내부에서 노동자들의 실리적, 경제적 이해만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합의주의, 코포러티즘적 경향을 형성해왔다. 최근에는 정당에서의 ‘우경화된 집권전략’에 발맞춰 ‘집권시대 노동운동 노선’(전국회의)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집권전략 노선의 진보정당 운동에 노조를 동원하는 노선이다.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을 운동주체로 세우기보다는 실리적 이해에 기반을 둔 노조의 양적 조직화와 조직관리, 그리고 당원 가입에 치중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서도 종파적 활동으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자민통 다수파 그룹은 2007년 대선을 전후로 민주노동당 당권을 독점하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2008년 분당사태를 초래했다. 이후 이들은 ‘자주적 민주정부론’과 ‘진보·개혁 세력 대표주자 교체론’을 한 단계 발전시켜 집권으로 상징되는 주류화 전략을 전면화하였다. 그 결과 2010년부터 반MB 선거연합, 야권과의 연립정부 수립 전술을 공론화하고, 2011년에는 민주노동당 강령을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했다. 2012년 진보적 정권교체와 연립정부 수립이라는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운동진영 내부의 많은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을 밀어붙였다. 이들은 4.11 총선에서 통진당 내 정파 간 무리한 국회의원 의석 경쟁으로 인해 부실·부정선거와 중앙위 폭력사태까지 유발하면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노동자 민중운동의 분열과 무기력화를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좌파세력의 무능과 고립주의 현재 노동자 민중운동의 급속한 우경화와 무기력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이 운동 다수파의 잘못된 노선에 기인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류적 흐름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좌파세력 또한 자신의 활동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주류 세력의 잘못된 노선이 운동을 주도하는 것을 견제하지 못하고, 좌파 스스로 다수파로서 대안적 운동을 형성하지도 못했던 한계와 무능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다면, 좌파세력은 앞으로도 운동을 주도하지 못한 채 소수 비판세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운동세력은 특정한 이념과 강령, 정치적 입장뿐만 아니라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운동전략, 대중운동노선, 투쟁기획 능력과 실천기풍 등 다양한 요소의 결합을 통해 현실운동을 전개한다. 사회주의적 이념을 주장하는 세력 내부에서도 그 이해와 운동전략이 상이할 수 있고, 훌륭한 이념을 갖고 있어도 운동전략의 부재 혹은 잘못된 운동전략으로 현실운동에서 무기력하거나 고립될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입장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대중운동노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면 대중조직의 단결과 강화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대중들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당위적 입장을 관철하려 한다면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대중조직 내부의 갈등을 확대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좌파라는 개념에 대해 각 세력이나 개인 별로 이해의 편차가 있으나, 그것은 정치적 이념이나 운동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우파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이다. 흔히 좌파라고 하면 노동자 민중운동 내부의 좌파를 일컫는다. 한국사회에서 좌파라는 명명은 노동운동의 투쟁파, 현장파와 정치이념적으로 사회주의 세력, 넓게는 사민주의 경향까지를 포괄하여 사용되고 있다. 우선 좌파세력은 폭력과 야만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모순을 변혁하겠다는 정치적 방향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체제 내적 개혁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현실의 운동에 있어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과 투쟁역량이 축소되는 상황에서도 최근 발생하고 있는 주요 노동자 투쟁들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대안적 운동의 재건을 위한 중요한 정치세력이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의 정당성과 투쟁의 헌신성이라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운동에서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보이는 것 또한 명백하다. 다수 좌파 세력들은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자신의 정치적, 조직적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현재 사노위로 대표되는 당 건설 노선은 최대강령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정파 통합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노위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사노준)과 사회주의노동자연합(노동해방연대, 사회주의정치연합, 당건투, 울산노동자신문 등이 참여)이 공동논의를 통해 건설했으나, 사노위 건설과정에서 사노준과의 이견으로 사노련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주의정치연합, 당건투만이 사노위 건설에 참여했다. 사노준 또한 사노위 건설과정에서 일부가 이탈했다. 이후 사노위 강령논쟁 과정에서 발생한 이견으로 사회주의정치연합, 당건투 일부 세력, 기존 사노준 일부 세력이 또 다시 이탈했다. 이처럼 이념과 활동기풍이 상이한 정파들의 최대강령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한 당 통합 노선은 입장의 차이에 따라 다수파에 승복하지 못하는 소수파의 이탈과 조직 갈등을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의 당 노선은 제도정치에 대한 근본적 부정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사고가 부재하고, 선거개입을 하더라도 정당 등록에 대해서도 상당수가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분당 국면이나 진보대통합 및 민주노동당과 국참당의 통합국면, 2012년 대선국면 등 진보정당의 위기와 재편 국면마다 진보정당의 의회주의, 선거주의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지만, 좌파적 정치개입이 필요한 정세에서 외부자적 비판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 한편, 1990년대 좌파운동이 전국노동단체연합이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와 같이 노조운동에 이론적, 정책적 지원을 하는 역량들을 갖추고 있었다면, 노동자의힘, 사노준, 사노위를 거치면서 이러한 역량들은 당 건설 역량으로 흡수되거나 유실되었다. 노조운동 활동가 재생산과 대중투쟁의 기획은 당의 정치방침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당이 목적의식적으로 노조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역량을 키우고 배치하지 않는다면 당은 대중운동에 프락션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이마저도 대중운동의 토대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 아닌가!) 현재 추진되고 있는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역시 현장의 취약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획이 함께 준비되지 않는다면 현장 기반 없는 고립주의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노동조합 노선과 관련해서 다수 좌파 세력들은 노조운동의 상층은 관료적이고, 평조합원은 혁명적이라는 부당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노조운동의 지도부 선출의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노조운동의 큰 방향에 전혀 개입력을 갖지 못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조의 투쟁과정에서 노조 지도부가 자신들의 입장과 다르게 움직이면 자신의 당위적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강력히 제기함으로써 조합원 간 갈등이 확대되기도 한다. 헌신적 투쟁으로 끝까지 투쟁하는 조합원을 자신의 조직원으로 조직화하지만, 노조의 단결과 조직적 토대를 유실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노선의 문제로 기인하는 측면도 있으나, 소수 세력으로서 노조운동에 대한 경험과 실력의 부재로 인한 측면도 크다.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일각의 좌파세력들은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업장에서 투쟁이 발생할 경우 노동조합의 공식체계를 상대화하고, 자신의 입장대로 투쟁을 이끌어 가는 경향이 존재한다. 정치세력이 직간접적으로 사업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겠지만, 노조의 공식체계를 무시하고 정파적인 운영을 할 경우 노조운동 내부의 갈등과 반복이 발생하고, 다른 정파 혹은 노조 상급단체의 적극적인 투쟁결합을 가로막아 해당 사업장의 투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변혁을 주장하고 조합원의 정치적 주체화를 주장하는 좌파 세력이 노조의 현장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최근 정권과 자본의 주요 금속사업장에 대한 파업유도, 직장폐쇄, 용역깡패 투입, 어용노조 설립을 통한 민주노조파괴 공세 국면에서 좌파 세력의 사업장들은 어떤 내부적 준비와 대응을 했는지 스스로에 대한 진단과 향후 계획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좌파운동은 운동기풍 상으로 소수파적인 기질이 강하다. 자신의 입장과 다르면 입장이 다른 정치세력과 공조와 협력을 형성하는데 취약하며, 입장이 일치하는 세력끼리 일을 추진하는 데 익숙하다. 이러한 기풍은 중요한 정세적 투쟁에 있어서도 운동진영 전체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데 제약조건으로 작용한다. 또한 민주노총의 각급 단위 선거에서도 정세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세력연합 혹은 헤게모니적 정치가 필요한데, 이런 측면에 대해 상당히 배타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2012년 총선, 대선을 책임지는 지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도 성폭행 사건과 비리로 얼룩져 사퇴한 전국회의 세력이 또 다시 집권하고, 현재의 통진당 사태까지 치닫게 된 데에는 좌파 세력의 세력연합에 대한 경직된 태도도 중요한 책임이 있다. 오늘날 통진당 사태와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체성 해체, 민주노총의 지도력 붕괴라는 상황으로 치닫기까지 2012년 총선, 대선국면을 앞두고 좌파 세력의 정세적 개입이 필요한 몇 번의 국면이 있었으나, 각 세력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정세에 대한 유의미한 개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 번째 국면은 2011년 진보정치대통합과새로운진보정당건설을위한진보진영대표자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좌파 세력들이 진보정당 전반을 의회주의, 개량주의로 비판하며 사회주의를 강변하는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의 성격을 사회주의적 지향으로 바꾸어내기 위한 좌파 공조를 실현하여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면 진보신당 내 좌우파의 극렬한 갈등과 대립을 완화시키면서 국참당과의 통합까지 치닫는 사태를 방어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국면은 진보신당에서 연석회의 합의문이 부결되고,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국참당과의 통합을 밀어붙이는 국면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에 반발하는 조직적 흐름이 형성되었을 때, 좌파 세력 전반이 현장으로부터 이 운동을 조직했다면 국참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및 민주노동당 내부의 흐름에 힘이 실리고, 국참당 통합을 주도하던 세력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국참당과의 통합을 저지하지 못했더라도 이후 민주노총의 통진당 지지입장을 막아내는 데 새로운 지형을 형성했을 수 있다. 하지만 주요한 좌파 세력들은 국참당과의 통합에 반대하지만,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으로 성과가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 자신들의 전략인 사회주의정당 건설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전체 운동지형에 정세적 개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세 번째 국면은 통진당 출범 이후 3자통합당배타적지지반대,새로운노동자계급정치실현을위한민주노총조합원선언운동본부>(이하 선언운동본부) 활동이 이루어지던 국면이다.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및 현장활동가 1천인 선언을 필두로 조합원 선언운동까지 좌파 세력 전반이 함께 참여하여 공동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선언운동본부는 초기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에 대한 이견, 각 세력의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의 상, 즉 정당 건설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유야무야 되었다. 일정한 당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선대응까지 염두에 두면서 당 건설 논의(각 세력의 역량을 고려할 때 범좌파 차원의 통합정당 건설)와 민주노총 내부의 선거방침, 민주노총 혁신방안 논의를 일정하게 분리하고, 민주노총 내 혁신세력군의 합력을 창출했다면 통진당 사태 국면이나 대선 국면에서 다른 기획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네 번째 총선을 앞둔 국면에서 진보신당의 제안으로 열린 좌파단체 총선 공동대응 국면이다. 총선 국면에서의 공동대응 여부가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다른 좌파 세력들은 후보 출마를 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정책적 입장에 대한 공동논의와 합의를 통해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공동대응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야권연대 문제가 주요한 쟁점이 되었다. 사노위와 노동전선의 경우 진보신당 중앙당이 야권연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작 당선 가능성이 있는 거제에서 야권연대를 추진한다면 진보신당 전체가 야권연대를 추진하는 것으로 상징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신당이 거제의 당선 가능성에 목매지 않고 다른 좌파 세력의 요구를 수용해서 정치적 결단을 내렸거나, 다른 좌파 세력들이 진보신당의 특수한 당내 상황을 인정하면서 총선 공동대응 기조를 살렸더라면 이후의 대선국면에서의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다섯 번째, 대선대응 국면에서의 논의이다. 이번 대선투쟁의 목표가 통진당, 진정당의 야권단일화를 통한 연립정부와 대별되는 노동자 민중의 독자후보라면 큰 틀에서의 정치적, 정책적 기조와 함께 그에 걸맞는 세력결집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통진당 사태 이후 현장에서 정당운동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당위론만을 내세운 무기력한 선거대응은 또 다른 패배주의와 사기저하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독자후보연석회의에 좌파 세력의 집단적 개입을 통한 견인전략과 민주노총 내 반통진당 세력의 연합전선 구축과 같은 정치적인 세력연합 기획이 필요했다. 이러한 전략이 어렵다면, 최소한 대선 이후 운동재편을 염두에 둔 이념노선과 정책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대선투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변혁모임의 대선 독자후보 계획은 사실상 후보출마라는 형식을 제외하면 대선시기 투쟁계획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대선국면에서 지배세력과 한국사회의 전망을 논쟁할 이념적, 정책적 준비와 합의도 부재하고, 노동자 계급정당의 상과 활동기획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준비, 지역조직의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마치 투쟁체를 건설하는 것처럼 조급하게 대선 대응 기구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주관적 의지의 과잉이다. 진보정당 운동을 책임져 왔던 세력들이 대중운동, 사회운동의 강화 없이 선거주의, 의회주의로 경도된 자기운동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없다면 대안적 운동을 재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정당, 노동자 계급정당운동을 주장해온 좌파 세력들도 강령논쟁을 넘어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지 못한 자기 활동에 대해 진지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 동안 자신이 가져왔던 운동전략과 대중운동 노선, 실천기풍 전반에 대한 성찰 없이는 좌파 세력은 대중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고립될 것이며,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대안적 운동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점점 축소될 것이다. 2013년 이후 노동자 민중운동의 질서재편을 준비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통진당 사태 이후 진보정당의 급속한 우경화와 분열이라는 상황은 민주노조운동 내·외부 각 정파들의 정치적, 조직적 프로그램이 대부분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지 못하고 한계에 봉착한 좌파 세력들의 사회주의정당, 노동자 계급정당운동 건설 프로그램도 예외가 아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통진당의 창당은 전통적인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노선적으로 뚜렷하게 분화하는 변환점이 되었으며, 자민통 그룹을 포함하여 전통적인 정파 내부의 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후 혼란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 노동자 민중운동을 다시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진행된 민주노조 운동의 전략, 진보정당 및 노동자정당운동과 민중연대투쟁 전선운동 전반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통한 질서재편이 불가피하다. 민주노총의 재정비와 노조운동 강화를 위한 활동가질서 재구축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2010-11년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타임오프) 제도 도입과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도입 국면에서 총노동 투쟁전선을 구축하지 못함으로써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막론하고 단협해지 공세, 사측이 주도하는 직장폐쇄와 용역깡패를 동원한 복수노조 설립 및 민주노조 파괴 공작 등 정권과 자본의 가혹한 노조탄압에 각개 격파 당하는 상황으로 내몰려 왔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것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핵심 산별과 함께 노조탄압 분쇄와 노조법 재개정을 위한 대정부, 대자본 투쟁전선을 구축하기보다는 야당과 시민운동 상층에 의존하여 ‘반MB 야권연대’를 통한 제도적 환경개선에만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체성을 해체하는 통진당 창당에 대한 지원과 방조, 민주통합당의 동원부대를 자임했음에도 여권의 선거승리로 귀결된 4.11 총선, 통진당 사태로 인한 내부 갈등과 정파적 노선분화로 인한 민주노총의 정치적 무기력, 여기에 직선제 시행을 둘러싼 내부 갈등까지 겹쳐져 민주노총은 사실상 지도력이 붕괴되고 난파위기에 처해 있다. 일각에서는 정리해고와 민주노조 파괴 등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무기력한 민주노총의 현실에 분노하며 좌파노총, 제3노총을 건설하자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분할은 그 자체로 노동자 단결의 규모를 축소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현재 시점에서는 좌파노총, 제 3노총의 실질적 동력조차 부재하다. 좌파노총과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최소한 좌파 세력이 주도하는 산별 혹은 사업장의 투쟁과 우파 세력이 주도하는 사업장의 투쟁이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나 현재와 같이 정권과 자본의 복수노조를 이용한 민주노조 탄압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분할은 현장의 민주노조의 투쟁력조차 약화시키기 때문에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동의받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총 내부에 역동적인 투쟁동력과 혁신의 조직적 기반이 충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부 규모가 큰 산별들이 투쟁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라면 공세적 조직화를 위해 민주노총의 분할을 사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는 이러한 조직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의 전면적인 혁신을 기치로 현장의 투쟁동력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민주노총을 재정비하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직선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민주노총의 차기 지도부를 제대로 세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직선제 시행을 둘러싼 논란을 지속할 경우 민주노총이 새로운 정권에 맞서는 투쟁태세조차 갖추지 못한 채 표류할 우려가 크다. 잘못된 선거방침과 통진당 출범을 지원·방조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파국으로 내몰고, 민주노총의 내부 갈등을 심화시킨 현 김영훈-전국회의 집행부에 대한 책임을 묻고, 민주노총의 혁신방안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투쟁의 원칙과 경험이 있는 통합적인 지도부를 구성해 내야 한다. 현 시점에서 각 정파 간 정당 건설에 대한 이견이 뚜렷한 상황에서 정당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원칙 있는 통합지도부를 세우지 못한다면, 현 정파 간 세력구도 하에서 어떤 지도부가 들어서더라도 공식 의결-집행체계에서 안정적인 사업집행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총이 대정권, 대자본 투쟁에서 있어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현장과 지역에서부터의 혁신 노력도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와 동시에 현장과 지역, 산별에서 투쟁전선을 구축하고,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장 활동가들의 질서를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정파별 구도를 넘어 무너진 현장을 복원하고, 민주노조 운동을 강화하는 데 동의하는 활동가들이 지역, 산업별로 새롭게 결집해야 한다. 현 정세는 정파 및 의견그룹들이 기존의 관성화된 노동조합 활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혁신하지 않고서는 노조운동의 어떠한 진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세우기 위해서도 향후 경제위기 하에서 정권과 자본의 전략을 정확히 분석하고 각 산업 및 사업장, 각 지역별 대응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최근 SJM 투쟁 승리는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2011년 지역총파업 조직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SJM 자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투쟁전략 마련, 조합원 사전 교육을 통한 조직화와 신뢰의 구축, 지부 전 조직력을 동원한 투쟁 지원 등을 통해 가능했다. SJM 투쟁을 발판으로 유성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이러한 투쟁 경험을 전국화시켜야 한다. 현 정세는 경제상황에 따른 자본의 의도를 신속하게 분석하고, 원하청 공동투쟁, 계열사 공동투쟁 등 자본의 전략을 깨기 위한 노조의 공세적 전략이 없을 경우 만도지부를 비롯한 구 한라계열사 노조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자본의 탄압에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정세이다. 그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현장기반과 투쟁력이 약화되면서 노조운동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각 정파의 역량 또한 심각하게 축소되었다. 각 정파의 역할이 벌어진 투쟁에 연대하거나 선거에 개입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일정한 정치적 입장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각 산업, 지역 차원에서 노조운동의 경험과 역량이 있는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노조운동을 혁신하고 강화하기 위한 활동가질서 재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신자유주의 정치, 사회운동의 공조질서 구축과 합의된 전국투쟁을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의 공동 모색 통진당 출범 이후 전통적인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체성이 해체되고 노선적 분할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적 지향을 가진 정치·사회운동의 공조질서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와 같이 당 건설 노선이 분화되고, 각각의 역량이 취약한 조건에서 2013년 영향력 있는 당 건설로 나아가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각 정파, 세력 별로 취약한 영향력을 보완하고 각 지역, 부분운동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향후 닥쳐올 경제위기와 새로운 정권 하에서의 운동전략에 대한 토론과 공동실천을 위해서 조직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 건설의 토대 재구축, 당 건설의 상과 건설 경로 등은 당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단위들이 공동논의를 진행하고, 그 성과를 정치·사회운동 연합이라는 공조질서 내부에서도 함께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노동자 민중운동의 상설적인 연대체인 민중의힘에 대한 판단의 문제가 존재한다. 민중의힘은 2011년 건설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연합 논쟁, 2012년 통진당 출범 이후 통진당의 민중의힘 참가 문제 등으로 크게 내부 갈등을 겪었다. 사업집행과 현안투쟁 과정에서도 자민통 그룹 중심의 사무처가 민중의힘 내부적 합의에 근거한 사업보다는 시민운동, 야당과의 상층 중심 사업계획 중심의 외부 연대체를 구성하여 민중의힘에 제안하는 방식의 사업작풍, 주요 노동 투쟁에 대한 소극적 참여 등으로 좌파 세력들의 경우 현재 민중의힘에 거의 결합하지 않는 상황이다. 향후 민주노총 집행부가 바뀌고 민중의힘을 재정비한다 하더라도 통진당이나 진정당의 가입 문제 등으로 인해 민중의힘 내부 갈등 요소가 여전히 크다. 하지만 정세적으로 중요한 대중투쟁을 엄호, 지원하기 위해서도 민중의힘과 같이 제 세력이 함께하는 단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민중의힘은 당분간 현행 특정 정파 중심의 사무처 구성을 재편하여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고, 전체 운동의 소통창구로서 민중대회와 같이 제 세력이 참가하는 전국적인 투쟁을 중심으로, 전체 운동이 합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현안들은 사안별 투쟁기구 등을 통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을 앞두고 있는 객관적 정세는 매우 엄혹하다. 한편으로는 세계 경제위기의 심화가 예고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존망의 기로에 처해 있다. 각 정치세력 내부의 진지한 자기평가와 혁신의 노력, 상호 공조를 위한 적극적인 모색이 절실한 때이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만은 안된다.’ 이것이 18대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시민들이 너르게 공유하는 정서일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516 쿠데타에 대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언급하고,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두 개의 판결 운운한 일은 ‘독재자의 딸 박근혜’라는 규정이 근거없는 낙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다. 이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이를 통한 야권의 승리에 대한 절박함으로 연결된다. 역사 평가가 곧 오늘에 대한 분석이고, 이는 미래의 구상에 연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 논쟁을 박근혜의 말처럼 “국민의 삶을 챙길 일도 많은데 계속 역사 논쟁을 하느냐”는 식으로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 역사 평가에서 박정희 시대의 복권이라는 의미를 부여받을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박정희와 동일시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정당한 것일까? 불과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에 대한 희구와 경제대통령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합치시키며 당선되었다. 1997년 위기 이후 장기 불황 속에서 노무현 정부 3년차인 2005년 국회운영위원회가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4.6%는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여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경제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민주화’ 담론을 ‘선진화’ 담론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의 정치적 복권은 17대 대선에서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이명박은 독재자로 비판당하고 있고 박근혜는 여론에 떠밀려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과거사를 둘러싼 역사 평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구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최근 과거사 논란을 보면 한국의 정치지형이 민주-반민주 세력 간 대립으로 회귀한 것처럼 보인다. 야권은 이러한 대립구도를 강화하여 박근혜의 낙선과 야권 승리를 민주주의의 승리인 것처럼 호도하고, 박정희 시대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야권승리에 대한 염원을 등치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반민주 대립 구도는 야권이 과거사 논란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이지 오늘날 남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우선 박정희 시대 평가를 둘러싼 학계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정치이념이자 경제정책으로서 박정희 정권의 반공·발전주의가 남한의 현대화와 동전의 양면이었음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또한 최근 진보 학계의 주류적인 논의와 거리를 두면서 과거사 공방을 통해 야권이 얻고자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분석한다. 끝으로 야권이 과거사와 같은 쟁점을 통해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반복적인 시도를 이들에게 고유한 인민주의적 행태라는 관점에서 비판하며, 독재심판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어온 후보단일화 논리를 비판한다. 경제강국을 이룬 대통령이라는 강고한 신화 박정희는 경제발전을 이룬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독재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경제발전을 이룬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2000년대 들어 대중적으로 확산된다.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요구했던 세력의 집권기에 시행되면서, 이로 인한 불만이 ‘민주화 피로증’으로, 그리고 박정희에 대한 향수로 이어졌다. 진보세력은 이에 대해 ‘그래도 민주주의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 외에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보수 학자들은 이러한 대중의 여론에 힘입어 민주화 세력에 대한 공격을 퍼부었다. 아예 박정희 정권의 반민중성을 부정하면서 1970년대의 경제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이영훈은 박정희 시대 한국 경제가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의한 희생, 농민들의 저곡가에 의한 희생,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의 희생 위에서 성장했다는 전제는 허구라고 주장한다. 실제로는 노동자가 생산에 기여한 만큼 임금이 착실히 상승했고, 농업은 공업과 달리 국제시장으로부터 보호되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 관계는 1980년대 이후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소득분배는 1997년 이전 30년간 양호했으며, 소득분배가 악화되는 것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의 일이라는 것이 그 논거다. 이러한 보수의 공격에 맞서 진보적 지식인들은 1970년대의 고도성장이 박정희의 공(功)이 아니었고, 또 그것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모델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2005년 백낙청이 박정희를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고 평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발전주의는 당시에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도입할 수는 없다는 이러한 주장은 발전주의가 봉착한 내적 모순과 한계를 역사적경제적으로 논증하지 못한다. 가령 그는 ‘우리가 애써 쟁취한 민주적 가치의 보존과 근대극복의 노력들이 슬기롭게 일치하여야 한다’며 발전주의가 군사주의 문화와 대대적인 환경파괴에 근거했기 때문에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독재시대에나 가능했던 발전주의적인 경제정책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이러한 결론의 근저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통해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되었다는 부당전제가 깔려 있다. 박정희의 발전주의는 1960년대 수입대체적 산업화에서 1970년대 수출지향적 산업화로 전화한다. 급속한 현대화, 산업화를 위해 필요한 자본이 국내에는 없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정책은 외국자본에 크게 의존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발전도상국이 취한 내자동원적-내수지향적인 산업화 유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특수한 발전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반공주의에 입각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일본의 후배지로서 남한의 경제발전을 지원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1970년대에 기존의 경공업 중심에서 재벌 중심의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전환하였는데, 1979-80년 불황은 이러한 발전주의의 내적 모순과 위기를 의미한다. 중화학공업화로 인해 고정자본은 급격히 늘어나고, 60년대 경공업처럼 즉각 수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무역수지에서 적자가 발생하였다. 이미 외채가 많았던 상황에서 무역수지 적자를 보충하기 위해 외자를 도입하면서 외채는 급증한다. 그런데 세계적인 이자율 상승으로 외채 이자 상환의 부담이 늘어나고, 오일쇼크로 인해 외채누적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윤율 역시 하락추세로 76년 36.5에서 79년 32.9로 하락한다. 발전주의의 유지로 경제를 감당할 수 없음이 드러나자 박정희는 경제정책 개혁을 시도하는데, 이것이 1979년 4월 실시된 경제안정화종합시책이다. 이는 한국에 신자유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처럼 박정희의 발전주의는 이미 1979년에 그 한계에 봉착했고,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되고 있었다. 다만, 전두환 정부 초기 시도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대마불사의 신화와 1986-88년의 ‘3저 호황’, 그리고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재벌 중심의 고도성장으로 다소간 유예, 지체되었던 것이다. 또 김영삼 정부 시기 OECD 가입을 위시한 금융세계화의 충격과 노동자 민중의 저항으로 인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본격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마침내 1997년 가시화되기 시작한 재벌 체제의 위기로 인한 경제위기와 외환위기의 격랑 속에서 그동안 유예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민주화 세력’에 의해 적극 실행된다. 김대중 정부는 비상 위급 상황을 빌미로 김영삼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비상대권을 발휘하여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을 주도하고 금융자유화와 노동신축화를 위한 법제를 대거 도입한다. 이 과정에서 ‘국난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 ‘환란 청문회’와 같은 인민주의적 행태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동시에 대중적 저항을 미연에 봉쇄한다. 박정희에 대한 오래된 지지 경제발전에 대한 논쟁 이전에도 박정희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지속되었다는 점은 박정희 비판자들에게 큰 곤란으로 작용했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보수논객들이 책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고, ‘민주주의보다 경제’라며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확산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이지만, 실은 박정희에 대한 지지가 그 전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에게 근소한 차로 1위를 내주긴 했지만, 지금까지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중 지지도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대해 대중의 자발적 지지가 있었는가, 아니면 강제로 동원되었는가라는 학계 내부의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박정희 시대가 박정희 개인의 ‘위로부터의 독재’였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광범한 동의지반을 갖는 ‘아래로부터의 독재’였다는 분석이 제출되었다. 이에 따르면 독재는 강압과 그에 의한 민중의 희생 혹은 영웅적 저항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 실제로는 위로부터의 강제적 동원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동원 체제가 구축되었고, 나아가 대중의 광범한 동의지반을 향유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대중이 독재에 연루되고 심지어 그것과 공모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민중이 독재의 피해자였다는 도식이 곧 민중을 옹호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대부분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시대가 폭압과 폭력으로만 일관된 것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를 얻는 과정 역시 있었다는 것이 학계에서도 점차 인정되었고, 이후 이와 같은 파시즘 분석은 박정희 시대를 복합적으로 분석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진보학계를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인 조희연 교수는 박정희 시대를 ‘근대화를 향한 동원’을 주된 특성으로 하는 체제, 즉 ‘개발동원체제’라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개발동원체제는 ‘근대화라는 국민적, 민족적 목표를 향해 국가가 위로부터 사회를 강력하게 추동하고 동원하는 체제’로, 이 때 권력은 민중에 대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요소를 내포하는 선도성을 갖는다. 즉 국가가 국민을 가르치고 이끄는 역할을 하며, 국민도 이 과정에서 스스로 이를 적극적으로 따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고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로부터 반드시 해방되겠다’며 국가건설과 경제성장에 집착해왔던 모든 한국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새겨진 의식이자 삶의 태도가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공포로 변해 박정희의 개발모델을 가능한 대안으로 떠올렸다는 분석도 제출되었다. 이는 박정희에 대한 뿌리 깊은 지지의 밑바탕에 흐르는 정서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이처럼 대중의 자발적인 동의가 지금까지도 박정희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고 있다는 학계의 지적은 박정희의 발전주의가 경제정책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이념이기도 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발전주의는 박정희 시대의 대중동원기제에 대한 분석이나 박정희 향수에 대한 대중정서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현대화를 위한 정치이념이자 경제정책으로서 반공·발전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발전주의의 내적 모순과 한계, 그리고 이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안으로서 (발전주의의)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동시에, 그리고 역사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민주화 세력’으로 자신을 호명하는 정치세력은 박정희 시대를 박정희 독재에 대한 대중의 원한에 호소하는 기제로 활용함으로써 현재의 정치위기를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과거사 논란의 정치적 효과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과거사가 활용되면서, 박정희 시대를 평가함에 있어서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지양하고 억압 뿐 아니라 동원의 기제도 분석하려는 학계의 논의는 사장되고 흑백논리가 강화된다. 민주당의 박근혜 비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7월 5.16쿠데타 발언부터 인혁당 사건, 부마항쟁, 장준하 의문사, 정수장학회 문제를 연속해서 제기하면서 박정희와 박근혜를 동일화하고, 박근혜의 과거사 인식을 공격하고 있다. ‘유신은 온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군사독재세력의 발악’이라든가 박근혜는 ‘긴급조치 시리즈로 99%의 국민을 피해자로 만든 유신독재의 퍼스트레이디’라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정치적인 공격에서는 상대방을 악의 화신으로 만드는 흑백논리가 동원되기 일쑤고, 종종 실체보다 이미지가 부각되어야 하기 때문에 과장된 표현이 남발된다. 또한 박근혜의 지지율 하락이 목표이기 때문에 비판의 결론은 항상 박근혜를 향할 수밖에 없고, 대부분 박근혜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끝을 맺는다. 박근혜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 이후에도 이슈를 바꿔가며 비슷한 논지가 반복해서 재생산된다. 이렇게 과거사 논란이 다른 쟁점을 압도할 만큼 반복되는 이유는 실질적인 여야 간 정치이념 대결이 부재한 상태에서 다분히 허구적인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여야 공히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그 실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이런 지형에서 과거사 논란은 사실상 정책적으로 수렴하고 있는 여야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또 박정희를 절대 악으로 규정하며 박근혜의 당선을 마치 독재의 부활로 동일시함으로써,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비판을 무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편, 야권은 과거사 논란을 통해 박근혜를 공격하는 것 외에 다른 부수적 효과도 노리고 있다. 이들은 과거사 청산을 위해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노무현 정부 당시의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높게 평가한다. 구체적으로는 부마항쟁에 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한 국가기념일 지정과 피해자 보상이라는 공약이 문재인 캠프에서 제기되었다. 물론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과거사 평가는 광주항쟁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국가의 피해보상을 통해 사회변혁을 위해 희생했던 이들을 단순한 독재의 피해자로 전락시킨다. 이렇게 국가가 대중적 저항의 역사를 ‘민주화’라는 제한된 이름으로 포섭함으로써, 이를 계승하는 사회운동의 급진성을 관리 혹은 억압하는 효과도 낳는다.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취약성 야권은 과거사 논란을 통해 여야대립을 민주-반민주의 대립으로 치환시키려 하지만, 현재의 야권을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온 자유주의 세력이라 보기는 힘들다. 한국에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그 태동부터 취약했다. 한국전쟁과 민족분단, 토지개혁으로 인하여 사회주의 세력과 토지귀족 세력이 모두 몰락함으로써 계급적 토대를 갖춘 정당정치의 발전 가능성이 봉쇄되었다. 지주계급의 몰락은 보수주의 세력이 안정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토대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무능과 부정부패로 일관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난 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반공주의와 발전주의를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제시하면서 공화당을 창당하는데, 이는 지배층을 정당으로 통합하고 의회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재야세력은 개발독재에 저항했지만, 군사정부의 반공주의와 발전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독자적인 정치이념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신 이들은 미국과 일본에 종속적인 경제구조와 이에 따른 지역적 불균등 발전을 문제 삼고, 이것이 학연지연 등 연고주의에 기초한 개발독재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개발독재에 대한 인민주의적 비판은 일부 야당세력에 의해 수용된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김대중은 재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면서 낙후된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견고한 지지기반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박정희 시기의 야당은 자유주의 이념을 명확히 했다기보다, 낙후된 지역과 소외된 대중의 불만과 원한을 동원하면서 지지를 확산했던 것이다. 박정희 시대가 끝난 뒤 부마항쟁과 5.18 광주항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며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민정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당질서를 강제적으로 도입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추진하는데, 신군부에 맞선 재야운동과 사회운동은 이념적으로 분화하게 된다. 사회운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용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정치이념을 갖게 된다. 그러나 1987년 항쟁의 성과가 직선제 쟁취로 수렴되고,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해 사회주의 이념이 설득력을 잃자, 자유주의가 진보진영 내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게 된다. 이는 일부 사회운동의 제도권으로의 투항, 자유주의적 NGO의 부상, 노동자운동의 선별적 포섭으로 상징된다. 그런데 1992년 14대 대선에서 군사정부는 3당합당을 통해 김영삼을 필두로 한 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함으로써 지배분파는 군부와 자유주의 세력의 연합으로 변모한다. 3당 합당 이후 여당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제도화되는 반면, 자유주의 세력 일부를 여권으로 흡수당한 야당은 정치이념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여 창당, 재창당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회로 대선에서 승리한다. 1997년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은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사회구조를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뒤를 이은 노무현 역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진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은 곧 한나라당 및 조중동과 결합된 보수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로 매도하면서 장기불황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차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따라 사회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더불어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 체제를 유지해 온 자유주의적 NGO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점차 철회되고, 급기야 각종 부패 스캔들이 늘어나면서 노무현 정부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무현 역시 보수주의적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시작한다. 2005년 한나라당에 제안했던 대연정이 이를 극적으로 상징한다. 이처럼 남한에서 자유주의는 그 이념적 지향이 불명확했고,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은 끊임없이 지역주의나 보수주의와 제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유주의 세력이 독자적인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물질적 토대가 남한 자본주의에 부재했기 때문이다. 야권은 정권을 잡은 뒤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노동자민중을 적절히 포섭하고 관리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설사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이들은 안정적인 통치기반 확보를 위해 보수주의 세력과 연대했다가 이것이 위기에 빠지면 다시 파기하는 행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공학만 남은 후보단일화 논의 후보단일화의 역사를 보더라도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여야대립이 단순히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민주화 세력’의 대선 승리는 두 번이었는데, 두 번 모두 후보단일화로 승리했다.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의 ‘DJP 연합’과 16대의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후보단일화가 그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김영삼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증폭된 상황에서 15대 대선에 임한 김대중은 역대 군사정부와 그들과 제휴한 자유주의 세력을 반민주적이고 부패한 ‘지역패권주의’ 세력이라고 공격하고, 이들을 경제위기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그 자신도 결국 보수주의 세력인 자민련과 제휴하여 승리하였다. 이는 당시에 ‘진보적 지역주의’의 논리로 포장되었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단일화 역시 이념과 정책을 무시한 채, 재벌 정치인과 손잡는 단일화 전술이었다. 상대적으로 견고한 기반을 가진 보수정당에 맞서야 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묻지마 단일화’가 진행되었다. 한국의 반복되는 후보단일화 시도를 두고 최근에는 게임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한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 분석에서는 그간 대선에서의 정당 간 선거연합에서 ‘뭉침’을 통한 지지율 상승과 지분 배분과 같은 정치적 거래의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였다고 보고, 연합을 주도하는 정당의 대선 승리확률과 연합대상정당에 대한 지분 배분을 중요 변수로 활용한 게임모형을 적용하여 다양한 경우의 수를 따진다. 이 연구의 결론은 오로지 연합을 주도하는 정당의 당선 가능성이 상당할 때만 의미 있는 선거연합이 형성된다는 것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이념적 연합보다 당선이후의 지분 배분이 선거연합을 좌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최근 한 언론에서는 단일화를 위해 문재인과 안철수가 각각 어떤 전략을 써야하는지를 컨설팅 보고서 형태의 기사로 제출하기도 했다. 대선주자를 일종의 상품으로 보고, 11월 25일 후보 등록일까지 최대한 시장점유율(지지율)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분석한 글이다. 이 기사에서는 문재인에게 ‘서민’ 시장이 비어있으니 선점하라, 하지만 ‘서민’은 너무 자주 보던 것이니까 ‘적통’ 키워드로 밀고 나가라, 등의 조언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이미 한국의 선거가 일관된 이념과 정책을 시험받는 장이 아니라 당선을 위한 인민주의적 수사에서 누가 뛰어난가를 시험받는 장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현재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의 단일화 논의도 독재심판과 민주주의 세력의 승리를 위해 당연시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정치공학적인 방식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허구적 구도에 갇히지 말자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을 주도한 구 집권세력이 정권교체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역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중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선거 시기 이들을 압박해서 설사 아주 작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 하더라도, 운동의 주체적 역량이 없다면 이마저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대선이 끝나면 경제위기라는 객관적 제약 속에서, 그리고 이를 빌미로 한 관료와 재벌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크다. 민중운동은 여야의 허구적 대립 속에서 왜곡, 은폐되거나 굴절되는 계급대립이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의 투쟁으로 몸소 증명해왔다. 과거사 논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현재 여야의 대립 구도를 민주 대 반민주라는 옛 구도와 중첩시키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야권의 시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대선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광해’ 고르지 말고, 직접 `광해’가 되자
[인천토론회]2012 대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자료집 목차 1. 2012년 대선투쟁 방향 -변혁적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건설을 위한 전국활동가모임 2. 2012년 사노위 대선방침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공동실천위원회 3. 대안적 운동의 재건을 위한‘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이 필요하다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4.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자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 5.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2012년 대선 토론문 -좌파노동자회 인천위원회 6.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 -진보신당 인천시당
대선후보들의 경제정책, 이전과 과연 다를까?
『안철수의 생각』 출간과 힐링캠프 출연 이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이 더욱 상승세를 타고 있다. 양자구도 설문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후보와 미세한 차이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고, 다자구도에서도 박근혜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후보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꼽히고 있지만, 사실 그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바 없다. 정치인이 아닌 기업가 출신 교수가,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열렬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박근혜 대세론을 뒤엎을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런 상황, 즉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안철수 원장이 급부상한 계기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였다. 9월 1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보도되었다. 다음 날 그가 “국회의원과 다르게 시장은 바꿀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발언한 후, 그는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서울시장 선거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더욱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은 9월 6일 안철수 원장이 후보직을 양보한 일이었다. 약 50%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던 그는 약 5% 지지율을 얻고 있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안철수 원장은 기존 정치인과 대비되는 진정성, 순수성을 가진 인물로 상징되었다. 공식 선거운동 돌입 후, 안철수 원장은 박원순 후보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직후 안철수 원장은 유력한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그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상황을 가정하여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안철수 원장의 높은 지지율이 거듭 확인됨에 따라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안철수 현상이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특히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단독과반을 차지하자,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부각된다. 안철수 현상이 기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기존 정치가 민생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능했고 정치인들은 사익 추구에 골몰했기 때문에, 그 실망감이 안철수 원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표출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왜 하필 그것이 안철수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을까? 공정, 공생, 공감 우선 안철수 현상에 앞서 안철수 개인에 주목해보자.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말과 행동은 공정, 공생, 공감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첫째, 그는 공정한 경쟁을 거쳐 성공한 인물로 그려진다. 안철수는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업체 창립자로, 기업을 그만 두고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거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도전적인 삶을 살았고 모두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은 반칙 없이 이루어진 성공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한국경제를 삼성동물원에 비유한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경제민주화를 지지하고 재벌과 중소기업의 공생을 주장한다. 그는 과거 자신이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을 1천만 달러에 사겠다는 외국 보안업체의 제안을 거부하고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또 60억 원 상당의 주식을 업체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배분하기도 했다. 그의 과거 행적은 승자독식을 추구하는 탐욕적 기업가라는 재벌의 이미지와 그를 구분해주며, 공생이 가능하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듯하다. 셋째, 그는 2년 간 27개 지역에서 청춘콘서트를 개최하며 청년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자 했다. 청춘콘서트는 한 번 개최될 때마다 약 1,600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알려졌다. 안철수는 청년층의 고달픈 현실에 귀 기울이고, 불공정한 기업 생태계를 비판하며 청년층을 위로하고자 했다. 그 결과 이제 그는 청년들의 멘토, 나아가 ‘국민멘토’로 불리고 있다. 상식파 안철수의 생각 최근 그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대담집을 통해,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복지, 정의, 평화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한다. 첫째, 안철수 원장은 광범위한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아가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의미에서 복지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급한 복지정책으로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아동수당제 등 보육정책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의료민영화 반대 등 의료정책 △고등학교 의무교육, 대학등록금 인하, 무상급식 확대 등 교육정책 △공공임대주책 확충, 세입자 보호 등 주거정책을 꼽는다.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 각 정당이 활발히 제출해온 복지정책들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재원마련이 필수적이므로 세입을 늘려야 한다. 안철수 원장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고, 이 외에도 탈세에 대한 처벌 강화, 법인세 실효세율 증가, 주식양도차익과세 대상 확대, 파생상품거래세나 토빈세 도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산층도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되,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합리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관료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증세없는 복지확대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 등을 수용한 입장이다. 둘째, 안철수 원장은 경제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의 지원과 국민의 희생 위에서 성장한 재벌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재벌대기업은 편법상속, 일감몰아주기, 골목상권 진출, 부정부패 등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기업생태계를 동물원에 비유하며,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독점계약과 단가후려치기)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성장잠재력 저하를 우려한다. 안철수 원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개혁 △공정거래법 강화 △정부의 중소기업 집중 지원 정책 △노사관계 개혁 △기업집단법을 통한 재벌규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을 제시한다. 이 역시 4.11 총선 전후로 각 정당이 제출한 재벌개혁-경제민주화 정책을 종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원장은 복지와 정의, 즉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평화라고 주장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그는 특히 남북 간 경제협력을 강조한다. 남북 간 경협을 진전시켜 서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접촉창구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대북정책에 있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시 군량미 전용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도 필요한 발언은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또 대외정책에 있어 그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대북정책, 동북아균형자론 등을 기본 입장으로 수용하되, 보수세력이 제기해온 ‘퍼주기 논란’에 대응하기 위한 보완책을 절충한 것이다. 이처럼 복지, 정의, 평화라는 안철수의 생각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은 △경제민주화와 내수론 △사회위기에 대응한 복지정책 △남북 경협과 동북아균형자론 등 그 기본골격을 민주당에서 가져왔다. 다만, 재정건전성, 퍼주기 논란 등 보수세력이나 관료들의 문제제기를 수용하고 절충함으로써, 가장 중도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는 스스로 진보도 보수도 아닌 상식파라고 주장한다. 상식파 안철수의 절충적 대안은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가령, 그가 경제민주화를 위한 핵심과제로 제시하는 재벌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원하청 간 이윤분배를 목적으로 할뿐 노동자에 대한 분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수활성화 역시 노동자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수출재벌과 이명박 정부 역시 내수활성화를 지지해왔다. 문제는 이들이 내수활성화와 고용창출을 핑계로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복지정책 역시 사회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위기관리적 성격을 가진다. 게다가 재벌 정책이나 저임금과 노동유연화 정책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의 일부이다.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종속되어 있고 그것은 전략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재벌을 개혁하고,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안철수의 생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의 전반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세력관계의 변화없이 불가능하다. 말로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한 노무현 정부가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했고 또 한미동맹을 한층 강화했다는 사실은 안철수가 제안하는 대안의 실현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국정치의 불안정성과 정당정치의 변모, 그리고 안철수 안철수 원장에게 단적으로 드러나는 중도 지향성은 오늘날 정당정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중도 지향성은 오랜 기간 꾸준히 강화되어 왔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극우파와는 달리 일자리 창출, 복지 정책 등을 펼친 중도우파였다. 이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중도좌파 또는 중도우파, 나아가 탈이념의 실용주의라고 호명하고 있다. 정당 차원에서도 중도로의 수렴이라고 할만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새누리당은 4.11 총선을 기점으로 복지정책을 대폭 수용하며 ‘좌클릭’을 했고 반대로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한 후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며 ‘우클릭’을 시도했다. 이처럼 탈이념 중도 지향성이 강화되는 경향은 안철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던 기본적인 배경을 이룬다. 그리고 그 구조적 원인은 한국정치의 심화되는 위기와 불안정성에 있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는 5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이합집산은 이념과 노선의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선거 승리를 위한 파벌 간의 갈등과 협상에 따라 좌우되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대권 후보자의 신당 창당, 기존 야당의 통합과 분당, 정당 외부의 참신한 인물 영입을 통한 이미지 쇄신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정당이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스 정치인을 중심으로 사당화되어 있었고, 그만큼 이념적계급적 기반이 취약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그림1] 민주화 이후 선거 기점에서의 정당체계의 구성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이후 정치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1997년과 2007년 두 번의 경제위기라는 충격과 장기불황을 경험하는 가운데 누가 대통령인지, 누가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는지와 무관하게,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관철되어왔다. 사실상의 정책적 수렴 상황에서 국회는 거수기화 되지만 오히려 정당 간, 정치인 간 이전투구는 더욱 극심해진다. 여전히 정당과 정치인은 스스로의 지지기반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지엽적인 쟁점을 크게 확대하거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폭로정치가 지배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국회는 민생문제에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곳으로 상징되고, 정당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냉소가 더욱 심화된다. 이와 동시에 삼김시대가 종료하면서 노무현 정부 전후로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스정치가 약화되고 유동적 중도층 유권자가 크게 확대된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에 대응하는 한편,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정당의 핵심적인 생존전략이자 선거전략으로 부상한다. 금융시장 개방과 이에 동반하는 국내 제도 개선, 수출재벌 중심의 FTA 추진, 노동유연화, 한미동맹의 현대화 등 지배 양당의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이 사실상 신자유주의로 수렴한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이 만드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에 대응하는 것이 지배세력 공통의 과제로 부각된다. 2010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무상급식 논란을 계기로 크게 확대된 각 정당들의 복지정책에 대한 관심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좌클릭’으로 표현되듯 각 정당 복지정책도 일정하게 수렴한다. 여전히 각 정당의 지역적 지지기반은 중요하지만, 점차 중도지향성을 내세운 포괄적 호소가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또한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적인 전략으로 부상함에 따라 각 정당은 정당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냉소를 불식시키기 위해 선거전문가를 영입하고, 새로운 선거기법을 도입하며, 정치권 바깥으로부터의 참신한 인물을 후보로 영입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 중도층을 겨냥한 선거기법이 본격 도입된 계기는 2002년 16대 대선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최초로 여론조사를 통해 대선후보로 결정되었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정의로운 세상’과 같은 모호한 구호에 호소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와 같은 선거기법은 각급 선거를 거치며 일반화되고 더욱 발전된다. 기존 정치권 바깥에서 참신한 인물을 찾고자하는 시도도 강화되어 왔다. 역대 대선에서 정주영, 이인제, 이회창, 조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고, 문국현,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까지 정당 바깥의 인물이 발휘하는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총선에서도 인물 영입은 계속되어왔고, 재야인사, 학생운동 출신, 법조인, 교수, 언론인, 기업가, 고위관료, 의사, 약사, 건축가, 배우 등이 정당으로 충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정치의 변모는 단기적으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켜왔다. 여전히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없고 이념적계급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휘발성 높은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아주 잠시 동안 묶어두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여러 선거기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당의 이념적 지향성과 당원의 요구보다는 당 바깥의 여론조사 결과가 가지는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당 바깥의 인물 영입이 당의 생존에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됨에 따라 정당의 존립기반 자체도 매우 취약해진다. 안철수는 이와 같은 불안정한 정치토양에서 등장했다. 안철수 현상은 정당 자체가 대중의 불신대상이 되어 정당에 몸담지 않은 전문가출신 비정치인이 미디어를 통해 기존 정치인들의 인기를 선거에서 압도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게다가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도 여전히 기존 정당으로부터의 영입 제의를 거부하고 ‘상식파’로서 제3지대에서 자기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새롭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유동적 중도층의 관심을 집중시킬 더욱 극적인 야권단일화 선거이벤트로 향해가는 사전 단계일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위기의 표현이고, 그 일부다.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의 타협점으로서 안철수 그러나 정치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어떤 인물이 대안으로 등장하는지는 대중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된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낳았고, 이는 747 공약을 내세운 권위주의적 지도자인 이명박의 당선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2007년-2009년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7% 경제성장 공약은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또한 2008년 촛불집회는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듯 이명박 정부가 불통정부라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분향소에서 500만여 명이 조문을 했고, 장의기간 동안 봉하마을에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탄압에 의한 희생이라는 이미지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무현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 결과 17대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던 친노계 정치인들이 일거에 정치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무능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부 시기의 온갖 실정은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기 말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노무현은 물론이고, 부패한 측근들에 대한 기억도 지워질 수 없었다. 게다가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한 당사자는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 따라서 반MB 투쟁이 강화되더라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안이 구 집권세력일수는 없다는 점은 대중적으로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명숙, 유시민, 문재인은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안철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원칙과 상식을 강조하는 인물인 동시에 성공한 경제인이다. 그는 노무현처럼 서민의 친구이면서도 노무현과 달리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은 인물로 보인다. 또 그는 반칙 없이 성공한 경제인으로, 특권층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며 공정성을 잃어버린 이명박과도 대비된다. 즉, 안철수는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에서 대중들이 찾아낸 화해의 형상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유능한 노무현이자 착한 이명박이다. 이는 안철수 원장이 과거 노무현, 이명박에 투표했던 유동적 중도층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득표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장기적으로는 그 지지기반이 더욱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이념적, 계급적 기반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그를 뒷받침할 정당 기반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지원 없이는 안철수 원장의 대선대응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여전히 그가 불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심각한 정치적 불안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안철수 지지층의 상당수는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더 지지하는 중도보수층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향후 정세에 따라 지지층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다. 게다가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소통이 성장과 고용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날 경우, 대부분의 유동적 중도층이 등을 돌릴 수 있다. 물론 안철수는 정치적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합리적 이해조정과 국민과의 소통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NGO 출신 전문가를 각종 국가위원회로 영입하고 노사정협의기구를 통해 노동운동을 포섭함으로써 합리적 이해조정의 외양을 갖추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가 청춘콘서트,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큰 인기를 끌었던 점에 착안한 여러 이벤트를 기획하여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특정 정세를 계기로 국민들로부터 반감을 얻고 동시에 각 정당들로부터의 정치공세에 직면할 때 안철수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세력기반이 취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는 중요한 참고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그는 탄핵국면을 통해 대중에게 대통령 개인에 대한 재신임을 물음으로써 상황을 극적으로 돌파했다. 여론정치가 만들어낸 안철수 대선이 1년 가까이 남아있던 시점부터 이미 여론조사 기관들은 안철수가 지지하는 야권단일후보 대 박근혜 양자구도 설문조사,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대 박근혜 양자구도 설문조사 등 각종 여론조사를 실시해왔다. 이중의 불확실성을 가정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기관 별로 결과의 편차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기관들은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앞 다퉈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안철수 원장 대 박근혜 후보의 양자 구도로 선거의 틀을 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여론정치를 뒷받침하는 여론은 실제 여론이 아니라 여론조사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인 경우가 많다. 먼저, 여론조사가 전제하는 가정들이 사실 편향되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음으로, 여론조사는 질문에 대한 선호를 즉각적으로 표출하게 함으로서 선택과정에서의 참여와 선택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과정을 누락한다. 실제 상황에서 주장은 세력관계를 반영한 것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 마지막으로, 여론조사는 개인의 단순한 선호를 모아 엄청난 중요성을 담은 결론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는 확률적 대표성에 기대어 과학성을 보장받고, 이를 근거로 하나의 통일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세력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여론조사는 정치적 행동의 중요한 근거이자 도구가 된다. 여론조사 기관과 함께 언론매체는 여론정치를 주도한다. 언론매체는 주어진 여론조사 결과를 단순히 보도하는 수동적 주체가 아니다. 언론매체는 여론조사의 설계 및 문항구성에 관여하고, 특정한 선거구도에 맞춰 그 결과를 해석함으로써 여론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특정 후보 대세론을 띄우는데 일조하거나, 반대로 그것을 뒤집는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언론매체가 구성한 문제를 정치인들에게 부과하거나, 반대로 정치인들이 구성한 문제를 언론매체가 선별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언론은 대선 3-4년 전부터 차기 대선후보군을 선정하고 선거구도를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후보에 관한 기사량이 증가한다. 선두 후보의 긍정적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미디어가 가공한 여론에 매우 민감해지고, 그 결과 미디어 정치인이 출현한다.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정치 없이 안철수의 급부상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부터 편향된 이중의 가정, 경쟁적인 여론조사 결과 발표 및 보도를 거쳐 안철수 대 박근혜 양자구도가 기정사실화되어왔다. 또한 안철수 원장 스스로도 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언급과 자신의 인생사를 적절히 혼합하면서 여론정치와 상호작용하는 미디어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왔다. 만약 그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또는 그를 후보로 내세운 야권연대 선거운동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그 정당은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의 성격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은 매스미디어라는 매개와 인물의 상징화를 통해 정치전략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정당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앞서 살펴본 정당정치의 변모, 즉 유동적 중도층으로부터의 득표를 최우선 목표로 선거전문가가 주도하고 중도적이고 포괄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정당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낳은 안철수 지금까지 살펴본 안철수 현상의 원인들은 지난 10년 간 민중운동이 직면한 현실이었고 동시에 그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전개된 민중운동의 효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지난 10년 간 전개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가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1997년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선 출마를 계기로 본격화된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출범 초기 나름의 헌신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운동적 성격은 점차 축소되어왔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된 이후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 경향이 강화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으로부터 지원을 획득(세액공제, 득표)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당의 인력과 재정은 노동자운동의 역량 강화를 고려하지 않은 의정지원 활동에 편중되었다. 이에 따라 스타정치인에 의존하는 경향도 강화되었다. 민주노총 역시 정치 영역을 민주노동당에 맡겨놓고,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2007년 분당 이후 진보정당 운동은 한없이 추락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의 경쟁구도 속에서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 경향이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2012년 총대선에서 반MB 야권연대의 승리를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전략을 구체화하여 신자유주의 구집권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자 했다. 민주노총도 반MB 야권연대를 겨냥하여 진보대통합을 추진했으나 이는 진보정당 간의 갈등을 더욱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방조 속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내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과열경쟁, 부정선거 사태로 인해 민중운동 전체가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 실패의 직접적 원인은 의회주의 노선과 연립정부 전략을 밀어붙인 세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타정치인의 배신 또는 권력야욕도 그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왜 의회주의 노선과 스타정치인의 배신이 그토록 강화되었는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정치의 변모라는 정세 속에서,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활동가와 핵심지지층을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그 운동적 성격을 강화해나가고자 하는 진보정당 모델은 점차 현실의 다른 정당들의 운영방식과 비교할 때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은 진보정당 내 잠재적 갈등을 유발한다. 만약 진보 정치인들이 의정활동을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하고자 하고, 더 많은 유동적 중도층 유권자와 접촉하고자 할 경우, 이념적 통일성이 강한 활동가나 평당원과의 갈등이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소위 대중성과 선명성 사이의 갈등으로 드러나지만, 사실 어떤 유권자층을 향한 대중성인가와 관련된 문제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을 상징했던 2004년 총선 사례는 진보정당이 직면한 잠재적 갈등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당시 민주노동당을 선택한 (비례)정당투표자들의 특성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이 얻은 10석은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당원이나 적극적 지지자들의 표에 의해서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노조 조합원과 그 가족들의 경우 다른 집단에 비해 민주노동당 지지 비율이 높게 나타났지만, 전체 득표에서 조합원과 그 가족의 표가 차지한 비중은 매우 낮았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계층적으로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이었고, 이념적으로도 열린우리당 지지층과 구분되지 않는 유동적 중도층이었다. 이들은 탄핵정국 전후로 정당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이었고, 그 실망감을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당투표로 반사적으로 표현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성장의 결과 또는 그것을 반영하는 계급투표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내 잠재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었다.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당원 및 적극적 지지자와 유동적 중도층의 이원적 지지구조에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를 점차 강화하게 된 것은, 결국 유동적 중도층을 중심으로 당의 노선과 운영이 변모해갔다는 점을 의미한다. 의회주의와 집권전략을 노선으로 채택한 당내 정치세력이 이 변모를 주도해나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통합진보당 창당은 이러한 진보정당의 우경화된 변모를 공식화한 사건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잠재적 갈등 상황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손쉽게 주어진 정치현실에 적응하고자 했던 주체들의 합작품이었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립정부 구상을 위해 국민정당화되고자 스스로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한 민주노동당, 유시민 중심의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적 모습을 보여 온 국민참여당, 스타정치인 중심의 통합연대가 바로 그들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당 내에 그나마 남아있던 활동가 당원 중심성에 최종적으로 파산선고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원 중심성을 강조하는 구당권파는 보수언론으로부터 구태정치로 공격받고, 신당권파는 ‘국민의 눈높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포괄정당, 선거전문가정당으로 당을 재편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그 동안 진보정당에게 정치를 일임함으로써, 노동자 정치를 새롭게 형성할 주체적 역량이 심각하게 유실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민중운동 주류가 야권연대라는 목적에 종속됨에 따라 민중운동의 이념적·조직적 정체성도 혼란에 빠져있다. 이런 민중운동의 주체적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안철수나 박근혜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는 현실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안철수 현상의 효과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자. 안철수는 공정, 공생, 공감이라는 가치, 그리고 정의, 복지, 평화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의 대안은 기존에 제시된 여러 정당의 입장을 절충한 것으로 가장 중도적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안철수의 대안은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그 실현가능성도 지극히 낮다. 안철수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킨 정치의 불안정성에 따른 정당정치의 변모와 관련된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기 형성된 대중이데올로기 지형 속에서 안철수는 하나의 타협점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정치는 안철수를 박근혜의 대항마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안철수 현상은 정치의 불안정성이 낳은 효과이자, 그것을 더욱 심화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안철수 지지층의 유동성, 그리고 그의 취약한 정당기반은 향후 안철수의 정치가 정치적 불안에 휩싸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반복되어 온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의 일부로 기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현실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부정할 도리는 없다. 지배 양당과 구분되는 대안세력으로서 민중운동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자신의 전략을 민주노동당으로 구체화했다. 그러나 진보정당 운동은 결과적으로 지배 정당들의 변모를 뒤쫓아 가며 몰락했다. 이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더욱 심화시켰으며, 대안세력으로서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안철수가 급부상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중운동은 2012 대선의 구경꾼으로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근본적으로 평가하고, 대선 이후의 정세에 대비한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을 위해 민중운동 제 세력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1. 총파업 투쟁이 필요하다 금속노조 단결의 힘을 보여주자 2. SJM 자본의 추악한 탐욕, 현대차의 음흉한 계획 3.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쌍용차 문제해결에 즉각 나서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총파업 투쟁이 필요하다 금속노조 단결의 힘을 보여주자 SJM과 만도의 직장폐쇄의 본질 지난 7월 27일, SJM 안산공장과 만도 평택, 문막, 익산 공장에서 자본가들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번 직장폐쇄가 특정 시나리오 아래 기획된 것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2,000여 명의 용역들이 당일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사업장에 진입한 것이나, 경찰이 두 눈뜨고 보는 가운데 백주대낮에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점에서나, 법이 허용한 직장폐쇄의 범위를 넘어 신고절차도 무시하고 휴가 직전에 동시에 전개한 점에서나, 원청의 양해 없이는 부품업체가 직장폐쇄를 단행하기는 어려운데 두 회사 모두 아이러니하게도 현대기아차의 부품업체라는 점에서나, 다 그렇다. 물론 각기 개별적인 이유도 있다. SJM 오너들은 2010년 SJM 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여, 비제조부문 계열사에만 이익을 남겨 그걸 독식하려 했다. 위기감을 느낀 금속노조 SJM지회가 반발하자 SJM 오너들은 이를 진압하려 했다. 2008년 만도기업 경영진으로 복귀한 한라그룹 오너들은 만도기업 재도약을 내세우고, 올해 경영혁신과 원가절감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금속노조가 분명 걸림돌이었다. 오너로서는 노조를 통제할 수단이 필요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사갈등 유발 → 공격적 직장폐쇄 → 용역투입→ (노노갈등을 활용한) 어용노조 설립 → 민주노조 죽이기’라는 섬뜩한 노조탄압 시나리오가 만도에서 벌써 구체화되고 있다. 직장폐쇄 직후 만도에는 어용노조가 들어섰는데, 이들 어용세력들이 기업별주의를 강조하며 금속노조의 역사를 부정하고 현장을 혼탁하게 하며 금속노조 탈퇴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완성차 지부를 향한 금속노조 말살 시나리오가 이제는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다. 공격받고 있는 금속노조 총파업 투쟁 전선 금속노조는 총파업전선을 호기롭게 밀어붙여왔다. 하지만 주간연속2교대제, 비정규직 철폐 등 금속노조의 핵심 의제들에 근거해서 15만 금속노동자의 투쟁을 조직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 쟁취를 위한 완성차 지부의 공동투쟁도 미흡했고 비정규직 철폐, 사내하청 정규직화 투쟁도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핵심의제를 쟁취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드높이거나,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의 반격에 대응할 힘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7월 20일 전후로 일부 사업장 지부들과 지회들은 여름휴가, 8월 전후에 임단협을 타결하려고 의견접근 해왔다.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총파업 투쟁의 성과가 어떻게 귀결될지 의문을 품을 때, 금속노조가 3차 총파업을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자본가들이 역공을 취한 것이다. 금속경기지부의 핵심사업장을 뒤흔들고, 금속산별로 완전히 전환하지 못한 기업지부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를 출현시키는 공세를 전개한 것이다. 금속노조 총파업 투쟁, 단결된 투쟁으로 노조파괴음모 박살내자! 이번 직장폐쇄는 단순히 개별 사업장 차원의 공세가 아니다. 이것은 금속 총파업 전선을 뒤흔들고, 금속노조를 파괴할 요량으로 자본가들이 전개하는 총공세다. 금속노조 전체가 자신의 명운을 걸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악덕 용역경비업체, 공격적 직장폐쇄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의 정치적, 경제적 잇속을 뒤흔들 수 있는 투쟁이 필요하다. 방법은 하나다. 3차 총파업 투쟁을 실질적으로 성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별교섭을 자제시키고, 전국적 투쟁 응집력을 높여야 한다. 지난 13일과 20일 금속노조 총파업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노조 탄압에 맞서 왜 금속노조가 하나가 되어 싸워야 하는지 조합원들과 토론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총파업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SJM지회 노동자들이 금속노조를 믿고 개별적 현장 복귀없이 단결할 수 있다. SJM 회사에 강력한 타격을 주면서 포악한 직장폐쇄를 응징할 수 있다. 그래야 만도지부 조합원들이 어용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민주노조를 지켜내려는 힘을 다시 모을 수 있다. 그래야 2010년 발레오만도에서부터 시작된 ‘직장폐쇄 → 노조파괴’ 흐름을 막아낼 수 있다. 3차 총파업투쟁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키자! 금속노조의 단결 투쟁으로 직장폐쇄·노조파괴의 음모를 이번에는 반드시 분쇄하자! 2. SJM 자본의 추악한 탐욕, 현대차의 음흉한 계획 2010년 SJM은 SJM 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세우고 자회사를 새롭게 재편했다. 상장사이며 생산이 주목적인 SJM은 최소수익만 얻어 겨우 생산 활동만 가능하게끔 하고, 비상장 계열사에서는 SJM과의 각종 거래에서 최대의 이득을 남기도록 하여 그룹의 이익을 비상장회사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재편한 것이다. SJM 회장일가의 탐욕 지주회사인 SJM 홀딩스는 거의 모든 수익을 한국칼소닉과 티엔엔 등 비상장 계열사의 배당에 의존한다. 한국칼소닉과 티엔엔은 각종 ‘수상한 거래’를 통해 이익을 남기고 SJM 홀딩스에 막대한 배당금을 나눠준다. SJM 회장 일가는 SJM 홀딩스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배당금 및 임원 급여로 막대한 수익을 챙긴다. 2010년에만 34억 원의 수익을 챙겼다. 이 금액은 SJM 한국법인의 영업이익 29억 원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해진 내부거래와 자금흐름에 문제제기한 금속노조 SJM 지회는 SJM 회장 일가에게는 눈엣 가시였다. 이것이 직장폐쇄의 첫 번째 동기다. 현대차의 음흉한 계획 SJM의 직장폐쇄로 금속노조의 총파업 전선이 뒤흔들리면 이득을 보는 회사가 또 있다. 바로 교섭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현대기아차다. 현대기아차는 SJM과의 거래에서 중국 현지공장의 바이백 상품 일부를 용인해주는 등 편의를 봐주고 있다. 또한 직장폐쇄로 납품기일을 못 맞추면 귀책사유가 무조건 부품사 경영진에게 있게 된다. 따라서 완성차기업의 윤허 없이 부품사가 단독으로 직장폐쇄에 돌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손안대고 코푸는 격이기에 SJM 경영진의 책임도 눈감아주고 있다. 이것이 직장폐쇄의 두 번째 동기다. 3.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쌍용차 문제해결에 즉각 나서라! 대중적 투쟁과 사회적 연대의 확대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로 인한 사회적 살인의 스물 두 번째 희생자가 돌아가신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그 동안 경찰의 숱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쌍용차 지부와 쌍용차 범대위는 대한문 분향소를 사수하면서 정리해고의 문제점을 사회적으로 알려내고 해고자 복직을 위한 연대를 폭넓게 구축해왔다. 쌍용차 범대위는 국정조사와 청문회 개최를 주장해왔다. 불법적인 회계조작으로 인한 정리해고 과정을 낱낱이 폭로하고 정리해고가 원천무효임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자본을 정치적으로 압박해서 해고자 복직을 쟁취하고, 또한 2009년 77파업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과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도 끝까지 묻고자 한다.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외면 쌍용차 문제가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의제로 됨에 따라, 뒤늦게나마 정치권에서도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30여 명의 의원들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의원단을 구성했고, 환노위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다루기 위한 소위원회가 제안되었다. 그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쌍용차 투쟁이 만들어낸 성과 중 하나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이마저도 외면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환노위에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위를 구성하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2009년 쌍용차 투쟁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 책임자인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을 국책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겉으로는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얘기하면서, 스물 두명의 목숨을 잃게 만든 전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자 정리해고 철폐와 해고자 복직의 걸림돌인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정치적 타격을 가해야 한다. 이미 범대위는 8월 8일부터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 앞에서 72시간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이는 시작이다. 8-9월 정치적 공간에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쌍용차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실시는 다른 투쟁에도 힘을 줄 것이다. 만도, SJM에서의 용역깡패 투입과 살인적인 폭력행위는 이미 그 전에 유성, 쌍용차 등에서도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투쟁은 공통의 고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타격과 더불어 다시금 대규모 대중투쟁을 성사시켜 쌍용차 투쟁에 승리의 쐐기를 박아야 할 것이다. 폭력적인 노조탄압과 추잡한 자본의 행태를 폭로하고 정리해고 철폐와 해고자 복직, 용역깡패 철폐와 민주노조 사수 투쟁 전선을 정치적으로 확대하자.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강화가 동반되지 않는 정당정치로의 집중은 이미 실패한 미래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는 비단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반의 도덕적, 운동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통합진보당의 출범,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실패와 새누리당의 승리, 총선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이후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폭력을 수반한 첨예한 갈등은 두 개의 커다란 효과를 낳았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등 지배세력으로 하여금 대대적인 이념, 색깔공세를 야기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에게 통합진보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혹은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의 절박함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반면, 후자는 논의와 모색의 수준을 여전히 넘어서고 있지 못하다. 한편 민주노총 중집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 철회’ 입장이 말해주듯이 민주노총 주류세력 세력을 포함한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다수 세력들은 혁신비대위, 즉 비당권파들의 혁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그렇다면 우리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는 당권파들의 시각으로, 이는 이번 사태를 정치이념을 둘러싼 당내 분쟁의 문제로 규정한다. 부정선거와 같은 도덕적 문제는 당권경쟁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며,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주파(즉 당권파)와 진보적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비당권파 세력 간의 당권 경쟁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자주파를 제거하기 위한 유시민, 심상정 류의 공작설로 이어진다. 둘째는 비당권파들의 시각으로, 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어져온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비당권파가 당권파를 제어하고 통진당을 혁신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바라본다. 셋째는 통합진보당 사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최종적 실패를 상징한다는 시각으로, 그 동안 노동자를 돈 내고 표 찍는 동원대상으로 취급해온 정치적 대리주의, 국회의원 당선에만 목매는 선거주의/의회주의 등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누적된 문제가 무리한 자기 정파의 국회의원 확보 경쟁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판단한다. 첫 번째 당권파의 주장은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당권파는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의 무원칙한 통합에 대한 많은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세력이다. 당권파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위해 자신의 이념을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모호한 내용으로 수정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을 저버렸고, 국참당과의 통합을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세력이 크기 때문에 국참당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와서 자신들이 원칙 있는 운동집단인양 공작설을 제기하는 것은 대중들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당권파는 지배세력과 제도정당정치 시스템을 얕잡아 보고 운동의 가치와 원칙을 가볍게 여겨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해야 한다. 두 번째 입장은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에 반대하여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안을 일차 부결시켰다가 이후 통합에 찬성했거나, 통합 이후 현실론을 내세워 통진당을 지지한 세력들(비당권파를 포함해 민주노총의 상층부의 다수 세력)의 태도이다. 비당권파들은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국참당 세력과의 공조를 통해 통진당의 이념과 내용을 더욱 자유주의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최근 ‘애국가’ 논란이나 통진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보고서의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 철수 입장 재정립, 재벌해체론 재검토 등의 내용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통진당을 더욱 탈운동화, 자유주의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세 번째 입장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시각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장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향후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방향과 경로에 대해서는 그 내부에 상당한 견해차이가 존재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최종적 파산 선고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 21의 결성과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통령 후보 출마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자. 일단 민주노동당의 출범 과정은, 한국사회의 구조를 변혁하겠다는 이념과 전략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민주노총의 1996-1997년 총파업 과정에서 제기된 노동자 국회의원의 필요성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을 의회주의 정당으로 규정하고, 민주노동당의 출범을 비판하는 일각의 입장도 있다. 그러나 보수정당과 자유주의 정당의 양당구조가 고착화된 한국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정한 성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초기 당직/공직 겸직 금지를 포함하여 당의 의회주의, 선거중심 정당화를 제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지역과 현장의 투쟁에서 각 지역 당 조직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운동적 성격이 축소된 반면 의회주의적 노선은 강화되어 왔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 당선을 계기로 당의 선거주의, 의회주의 문제,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소위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 노선 갈등 문제가 심각하게 확대되어 왔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채로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지원 획득(세액공제, 득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당의 인력과 재정이 의정지원에 심하게 편중되고,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경향을 강화해 왔다. 민주노동당은 소위 ‘좋았던 시절’에 신자유주의에 맞선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지 못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을 위한 운동 전략을 방기했던 것이다. 특히 2007년 분당 이후에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의 경쟁구도로 인해 선거주의, 의회주의 경향이 더욱 확대되었고, 양당에 대한 노동현장의 비판적 여론 또한 확대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 평가 없이 2012년 총대선에서의 반MB 야권연대를 겨냥한 민주노총의 ‘진보대통합’ 계획은 양당의 갈등만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반MB 야권연대’ 선거방침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방조와 지원 속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진당 출범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통진당 내부의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과열경쟁, 부정선거 사태로 인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체가 전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번 통진당 사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와 비판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미 국참당과의 통합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향후 당권파-비당권파의 ‘한 지붕 두 가족’의 갈등구조, 검찰경찰을 동원한 공안탄압, 조중동을 포함한 지배세력의 색깔공세 속에서 통진당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자신의 이념과 노선을 더욱 자유주의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당권파는 비당권파가 통진당을 민주당화시킨다고 비판하지만,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다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말이 좋아 선거연합이지 온 국민의 지탄거리로 전락한 통진당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에 집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민주노동당 활동과정에서 드러났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으로 그들을 지지, 묵인해온 것이 현재의 통진당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썩은 살은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해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개척해야 한다. 민주노총, 철저한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진보정당 운동이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에서 벗어나 의회주의로 경도된 데에는 민주노총의 책임이 크다. 민주노동당을 탄생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 민주노총이 정치사업을 ‘국회의원 배출’과 ‘정당을 통한 입법사업’에만 국한하면서 조합원들을 돈 내고 표 찍는 수단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현장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학습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확대하는 노조다운 정치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않은 것이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대중적 투쟁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약해지다 보니, 진보정당들도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벗어나 원내정당으로 변모해가는 데 있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못지않게 부정경선 논란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통합진보당 지지에 반대하는 조직 내부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묵살하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여 우경화된 집권전략으로 경도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지지, 지원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된 노선에 맞춰 반MB 야권연대를 제1의 총선방침으로 결정했다.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야당의 하위파트너로 전락시킨 것이다.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유회되면서 ‘정치방침’과 함께 별도의 안건으로 토론하기로 했던 ‘총선방침’ 건에 대해 토론하지 못했고, 김영훈 위원장은 대의원대회에서 위임하지 않은 ‘총선방침’ 건을 중집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대의원대회 직후 개최된 중집에서 반대 입장을 가진 중집위원의 항의와 퇴장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조합원 ARS 여론조사를 통해 ‘비례대표 집중투표 정당’을 결정하는 것으로 표결을 강행했다. 게다가 당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상당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는 참여하지 않은 채, 통진당을 지지하는 ‘조사에 응하고 싶은 산별과 조합원’의 명단을 받아서, 그것도 약 22만 조합원 중 2만 3천여 명이 응답한 결과만으로 조직의 방침을 결정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였다. 이 조사를 대행한 업체(사회동향연구소) 대표는 바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였으며 민주노총은 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회계 지침마저 위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대의기구를 무력화하면서 여론조사로, 그것도 전체 조합원의 5%에 불과한 응답률로 조직의 중요 방침을 결정하여 민주노조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조직 내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켰다. 411 총선은 민주노총이 제1의 방침으로 삼았던 야권연대의 실패와 새누리당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제는 실종되었고, 전략지역인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진보정당이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는 참혹한 결과가 나왔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과의 선거구 협상으로 13석을 얻었지만, 곧바로 부정선거 논란과 당내 폭력사태 등으로 전국민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주노총이 정치세력화 운동을 평가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의식 수준에 대한 진단과 평가나, 이념적 수준에서든 조직적 수준에서든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현 주소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관계(혹은 민주노총의 헤게모니) 수준에서, 그리고 분당(혹은 분열)의 제약에 빠진 진보정당 운동과 법제도의 제약에 빠진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라는 수준에서 외형적인 진단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민주노총은 ①새롭게 제기되는 대중정당 운동의 상에 걸맞도록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대안적 상에도 걸맞도록) 임금, 고용 문제는 기업단위 노조에 맡기고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산별노조운동을 재편하며, ②(통합)진보정당에 대한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 집단 당원 가입, 현장당원 활동체계 구축, 100억 조성, 지도체계 참여 등을 진행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①의 경우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 전략으로 노동자 계급 내에 분할과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산별노조총연맹 차원에서 노조운동에 가장 중요한 고용과 임금을 둘러싼 투쟁전략, 노동자의 주체형성 전략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②의 경우에도 현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저버린 진보정당 운동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전략 없이 조합원을 정당의 자원으로 동원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장 조합원을 정치의 주체, 투쟁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적극적인 민주노조 운동의 재건을 위한 구상 없는 조합원 동원 방식은 지금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결국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제2의 정치세력화 방침은 현 시기 정당운동의 목표를 ‘집권’(집권시대 노동운동)으로 상정하고, 당의 집권을 위해 산별노조 운동을 개조하자는 본말이 전도된 구상이다. 현재 진보정당의 우경화는 민주노조 운동의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의 취약함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재건 전략이 필요한 것이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마저 포기한 당 운동에 대한 의존을 더욱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와 폭력사태는 노동조합 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운동성을 상실한 사이비 진보정당의 실체를 사회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당권파에 대한 비난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 필요하며,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철회가 선언되어야 한다. ‘조건부지지 철회’라는 모호한 기대를 접고, 그동안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당면한 총파업 전선 구축과 민주노총의 전면적 혁신에 착수해야 하며, ‘민주노조 답게’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통해 노동자민중의 희망으로 거듭나야 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다양한 모색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철회’ 입장이 보여주듯이 민주노총 집행부와 산별노조연맹 대표자 다수는 통합진보당의 혁신비대위가 중앙위 결정사항을 관철시키고 일정하게 당을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선거에서 구 당권파와 손잡은 강병기 후보가 당선되거나 혹은 당선되지는 않더라도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제명되지 않고 일정한 세력을 과시하는 상황이 되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신승철 전 사무총장, 정용건 민주노총 부위원장, 나순자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등이 노동포럼을 결성하여 민주노총의 재편과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공동행동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구 당권파를 비판하면서 통합진보당 내부의 혁신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 중 일부는 통합진보당의 개조와 혁신 가능성에 회의적이고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통합진보당의 출범에 반대하여 직간접적으로 ‘3자통합당 배타적지지 반대,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선언운동본부)에 결합했던 세력들의 경우,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논의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과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이 제안하여 결성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제안자모임).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노동전선), 그리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전태일 노동대학)이 노동자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주요 세력이다. ‘제안자모임’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바탕으로 작년 12월부터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노동운동 내 중앙파로 알려진 ‘공공현장’ 활동가들과 금속의 ‘현장노동자회’(현노회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내부의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일부 활동가들, 진보신당 일부 당원을 포함하여 200여 명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제안자모임’은 진보신당 내 일부 그룹,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 연구자 모임(진보교연)’ 등과 긴밀히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안자모임’은 향후 노동자정당 건설과정에서 진보신당이 함께 해야 하지만, 진보신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현장이 중심이 되고 진보신당은 이러한 흐름을 지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노위’는 그 동안 추진해온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과정에서 현장 활동가 직접 조직화의 한계를 인식하고 좌파 현장 활동가들의 주체적 당 건설 논의와 실천의 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결정했다. ‘사노위’는 통진당 우경화 이후 좌파 현장 활동가들이 당 건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당노선과 세력범위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있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사회주의 정당 노선만이 아니라 반통진당 좌파통합정당 입장의 활동가들까지 참가하는 공동의 토론장이 형성되고 현장 활동가들이 노동자정당 건설의 주체로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노위’의 현장 재조직화 사업은 ‘노동전선’의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지역산별 활동가 정치토론 계획과 결합하여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전선’은 당의 노선과 관련된 쟁점들을 중심으로 지역과 산업 별 현장정치토론을 진행하고, 이후 9-10월 활동가대회를 개최하여 변혁적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모임을 결의한다는 계획이다. ‘노동전선’은 가능한 많은 세력이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노선을 뒤로 하고 세력을 합치자는 식의 ‘좌파통합정당론’을 경계하며 미래지향적이고, 노선을 중심으로 한 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전태일 노동대학’은 지난 해 부터 “3자 야합당”(통합진보당) 건설에 반대하면서 민주노총 중심의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강조해왔고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지역별 토론 등을 강화해왔다. 지난 6월 1일 1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통합진보당 사태와 노동자 정치운동의 진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태일 노동대학 김승호 대표는 발제문을 통해 ‘반제/반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목표로 변혁적 대중정당’(지향하는 이념은 사회주의를 분명하게! 현 단계 변혁의 과제는 낮은 수준의 반제/반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으로!), ‘민중투쟁 전선체와 함께 투쟁하는 정당, 사회운동적 정당’, 당 건설 경로로서 ‘진보정치세력들의 통합과 외연확대(이른바 재구성)가 아니라 진보정치운동의 급진화’, 산업별/지역별로 현장으로부터 주체형성을 통한 ‘정치적 투쟁정당’ 건설 등을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위의 주요 세력들의 행보와 더불어 정파를 뛰어넘는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논의 흐름과 각 세력 간 협력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정행 기아자동차노조 전 수석부위원장과 김일섭 대우자동차노조 전 위원장, ‘변혁산별’ 및 금속 비정규투쟁본부 활동가 등 금속노조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변혁정치모임)이 제안되어 50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모임을 개최했다. ‘변혁정치모임’은 무너진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현장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변혁적 현장실천과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초기 금속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참가를 제안했으나, 다른 산별까지 참가자를 확대하고 있다. ‘변혁정치모임’에는 ‘3자 통합당 반대 선언운동본부’와 같이 민주노총의 범좌파 세력 현장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변혁정치모임은 지역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전국의 활동가들이 현장실천과 정치세력화 운동을 새롭게 모색하는 만큼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가하고 있는 만큼 현장활동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입장과 정당건설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입장이 공존하고 있어, 이후 모임의 전망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원심력이 작동할 우려도 큰 것이 현실이다. 또한 위 노동자정당 건설 세력들과 변혁정치모임에 참여하는 개별 인사들 간에 상호 협력을 위한 집담회가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집담회에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각 세력들의 공동행보, 즉 공동의 기구 건설 등이 제안되었으나, 현 시점에서는 각 조직의 논의수준, 정당의 성격과 노선, 건설경로 등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안자모임’의 경우 통진당 사태 이후의 현실적 대안으로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의 기구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으나, ‘노동전선’의 경우, 당 건설 관련 내부 조직화 미비와 상층 중심의 조직건설에 대한 비판적 입장, 당 노선에 대한 입장 확인의 필요성 등을 근거로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태일 노동대학’의 경우도 당 건설 경로와 관련하여 ‘변혁정치모임’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당 건설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담회는 이러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틀인 ‘변혁정치모임’을 통한 현장 논의 활성화와 이후 공조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체적인 주제를 잡고 공동의 토론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른 한편 진보신당 창준위의 경우 전국위원회를 통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창당 법적 시한인 10월 전 창당을 목표로 하며, 여건이 충분치 않을 경우 형식적인 독자 재창당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관련하여 당 내 일각에서는 진보신당이 정치적으로 파산한 상태에서 9월 말로 시한을 정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그 동안의 진보신당 활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부재한 것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정당 추진 흐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진보신당이 일관된 의지를 갖고 지지, 지원해야 한다는 비판적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어디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번 통진당의 부정선거, 당내 폭력사태는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에게 그 동안 진행되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시에 미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그리스를 필두로 한 유럽의 경제위기로 인해 조만간 불어닥칠 한국경제의 위기, 그리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정권과 자본의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 변혁적인 정치세력 결집도 필요하다. 이러한 정세적 조건으로 인해 노동자운동의 주요 정파들이 대부분이 통진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당 건설을 추진하는 세력들 간의 역사적인 상호 불신, 당의 성격과 노선, 추진 경로를 둘러싼 이견으로 뚜렷한 진척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 동안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는 한편으로는 진보정당의 정치적 대리주의, 의회주의와 선거주의에 원인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이 민주노조답게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현장 활동(학습과 투쟁, 정치적 실천)을 소홀히 하고, 노조를 진보정당운동의 동원부대로 전락시킨 것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 민주노총이 투쟁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굳건히 하지 않을 때, 진보정당은 노조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당의 우경적 노선전환과 원내 정당화 경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노동자계급이 이념적, 조직적으로 보수주의 혹은 자유주의 정치세력과는 분별 정립하여 정치적, 사회적으로 투쟁력과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운동 전략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노동자정당 혹은 진보정당 운동을 일컫는 개념으로 축소되어 사용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하고, ‘계급적 단결을 통해 노동해방, 평등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노동조합운동’과 ‘변혁적인 노동자정당’, ‘계급동맹의 실현을 위한 전선운동’을 포함하는 운동 전략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을 바로 세우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대중운동의 취약한 토대를 강화시키는 계획 없이 ‘집권’을 위해 노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값비싼 교훈이다.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으로부터 출발해야 따라서 현재와 같은 노동운동 주요 정파의 정당 건설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민주노조 혁신/재건을 위한 활동의 상대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상반기부터 진행된 ‘3자 통합당 반대 선언운동본부’ 활동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당 건설에 대한 선언운동본부 내부에 이견이 부각되면서,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전국지역 투쟁전선 구축을 위한 공동활동,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각 정파의 주요 관심사가 모두 당 건설에 쏠려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현재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어느 정파도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한 현장, 지역 활동가들의 공동실천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 건설 논의가 중심이 되면서 구체적인 현장, 지역의 공동실천 논의는 상대화되고 있다.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가 당 건설을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당의 성격과 노선, 건설경로 등에 대한 이견으로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공동 논의와 실천조차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통진당 사태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의 진보정당, 노동자정당 운동에 대한 실망과 정치적 냉소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견지하는 노동자정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의 교훈이 말해주듯이 민주노조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의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노동자정당 건설 사업은 이미 실패한 미래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지역, 현장의 운동역량이 취약한 조건에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중심으로 역량을 배치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을 혁신재건하기 위한 역량은 그 만큼 취약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건설이 민주노총의 활동을 강화시키지 못했듯이 노동자정당 건설이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강화를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 세력들이 현재의 지역과 현장의 주체적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당 건설로 역량을 집중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의 활동력을 더욱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민주노총의 주요한 투쟁에서의 지속적인 패배,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혁신의 지체,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 복수노조/타임오프를 필두로 한 제도적 개악과 노조 탄압 공세 속에서 현장은 패배주의와 실리주의가 확대되어 왔다. 민주노총은 출범 이후 1기 권영길권영목 집행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 이후 2기(이갑용고영주 집행부, 2기 보궐 단병호이수호 집행부), 3기(단병호이홍우 집행부)를 제외하면 사회적 합의주의-노사협조주의(코포러티즘) 노선이 집행부를 주도해왔다. 이들의 노선은 ‘진보정당을 통한 의회진출과 제도화’, ‘산별노조를 통한 교섭의 제도화’, ‘사회적 교섭과 노사협조주의’라는 전략으로 표현되었고, 현장의 투쟁력과 역동성을 조직하기보다는 ‘사회적 교섭 틀’의 구성과 선거에서의 득표에만 집착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파 혹은 범좌파 세력들 또한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강화를 위한 일관된 정치적 실천과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해온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특히 최근 민주노총 다수 정파인 전국회의의 ‘집권시대 노동운동’ 노선은 노동조합을 통합진보당의 집권을 위한 동원수단으로 사고하며, 2012년 총선, 대선을 겨냥한 반MB 야권연대 방침으로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의 집권을 위한 동원부대로 전락시키고 있다. 향후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 지지를 둘러싼 갈등, 민주노총 내 정파별 조직화 경쟁, 산별노조의 무기력으로 인한 조직이탈 흐름(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 국민연금지부를 포함한 6개 노조의 통합추진위 결성), 민주노총 직선제 과정에서 예상되는 선거부정 사태 등으로 인해 내부적 갈등의 격화와 정권/자본의 외부적 탄압이 겹쳐져 급격하게 붕괴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앞으로 닥쳐올 심각한 위기국면을 대비하면서 민주노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전국회의와 같은 우경화된 노선에 비판적인 민주적변혁적 세력들이 전국적-지역적 차원에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활동과 공동논의, 나아가 전국적인 활동가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적 활동가 조직 따라서 노동운동 내부의 변혁적 현장실천과 변혁적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고민하는 현장 활동가들은 민주노조의 혁신과 재건을 중심적인 논의과제로 하여 지역과 현장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의 실천을 확대해야 하며, 지역과 현장에 뿌리를 내리는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적 활동가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은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한 지역과 현장의 공동 실천을 기본으로 하면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의 전략 논의 ▲2012년말 민주노총 선거(직선제 예정) 공동대응 ▲2012년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을 중심으로 공동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첫째,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재건을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념, 노선, 활동방향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요 과제에 관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 논의와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한국자본주의의 구체적 진단과 사회변혁을 위한 노동조합의 전략,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한 민주노총-산별노조연맹 투쟁의 혁신, 생존권 보장과 사회변혁을 위한 제도적 요구와 그 실현을 위한 투쟁 전략,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새로운 전략, 현장 활동과 투쟁력 강화를 위한 민주노조 조직혁신 방안, 노조 민주주의의 강화와 투쟁기풍/조직문화의 혁신, 자주적인 재정확보와 재정 배분의 혁신방안,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 평가와 새로운 전략,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과 여성사업 강화,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강화, 조합원 교육/소모임 활동의 강화와 지역, 현장 일상 활동의 복원, 지역, 현장 활동 강화를 위한 활동가조직의 혁신과 소통, 연대의 강화 등. 둘째, 2012년 말 민주노총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가 부정선거 사태로 치달을 경우 민주노총의 심각한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직선제 실시 준비상태 등에 대한 공동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며, 직선제가 실시될 경우 변화된 선거제도를 고려한 구체적인 선거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를 어떤 세력이 운영하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또 다시 진보정당운동(그것도 사이비 진보정당인 통진당)에 종속된 노조운동 노선, 사회적 합의주의-노사협조주의 노선이 민주노총의 집행부를 운영할 경우, 향후 경제위기 정세에서 민주노총은 더욱 무기력해질 것이다. 셋째, 2012년 12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 지도부 선거 결과 및 향후 당권 경쟁의 결과 등 일부 변수가 있더라도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선대로라면 대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 노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을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의 지지부대로 전락시키겠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대선방침은 최소한 이러한 민주노총의 무원칙한 반MB 야권연대 방침을 저지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답게 민주노총의 요구를 중심으로, 노조의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대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여론화하고 대선 후보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선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대선에서 독자후보 전술 등은 변혁적 정치세력들의 논의와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를 거쳐 가능성을 검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정당 건설은 이러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논의와 공동실천, 전국적 활동가조직으로의 발전을 지원하면서,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변혁적 정치세력 간의 논의의 성과를 교류하고, 주객관적인 역량을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당 건설 추진경로를 밟아야 한다. 변혁적인 노동자정당, 사회운동적인 노동자정당은 노선의 선명함과 주체들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민주노조 운동, 대중운동의 역량과 투쟁력이 취약한 조건에서 조급하게 노동자정당을 추진한다면 정당으로서의 사회적 영향력이 거의 없거나, 통진당처럼 자유주의화/우경화의 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