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여성정책을 비판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전 정부와 다른 특별한 여성정책을 내건 것이 아니었음에도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은 여성들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 3월 민주노총이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50.1%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매우 기대한다"거나 "약간 기대한다"고 답했다. 박근혜 정부 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거나 유지될 것이라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인식을 고려할 때, 여성노동자들의 절반이 기대감을 표명한 것은 의외다. ‘여성대통령이니까 여성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가 여성노동자들에게도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기대는 위험하다. 박근혜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라는 기조 하에 크게 여성정책을 가족정책, 임신출산양육 지원책과 여성 일자리 정책 세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른 어떤 의의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저하에 대처한다는 의의가 강조되면서, 임신출산은 권리라기보다 의무가 되고 있다. 또한 여성의 노동도 여성 스스로의 자립이 아니라 국가의 성장률에 기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출산 대책은 여성의 출산을 주요 문제로 삼고, 그 지원을 논한다는 점에서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사고하기 쉽다. 또 실제 여성운동이 여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저출산 문제를 레토릭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출산을 당연한 여성의 ‘의무’로 만드는 지원책과, 성장률 기여를 목적으로 여성을 ‘활용’하고자 하는 여성 일자리 정책이 과연 ‘여성을 위한’ 정책일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저출산고령화의 해결책으로 제출되는 출산율과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제고 정책이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이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과 앞으로의 운동방향을 밝히고자 한다. 한국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처법 저출산고령화는 세계 여러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일반적으로 △출산율 제고 △고령층여성 등 유휴인력 활용 △이주노동자 활용 △연금제도 개혁이 꼽히며, 세계 각국은 이 네 가지 정책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정책수단의 선택, 각각의 정책지향은 국가별로 상이하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영국은 노동인구의 부족에 대해 출산에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보다는 해외로부터의 노동력 유입을 택해왔다. 이들 국가와 달리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스웨덴이나 프랑스의 경우도 정책지향은 각각 상이하다. 스웨덴이 2인 소득가구 모델을 지향하는 반면, 프랑스는 생계부양자-가정주부 가족 모델을 지향한다고 분석되는데, 이러한 지향에 따라 출산율 제고를 위해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정책 수단도 차이가 난다. 한국 역시 이 네 가지 방법을 모두 택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갖는 특징은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도한다는 점, 고용률 제고 등의 과제와 맞물려 유휴인력활용을 주요하게 사고한다는 점, 연금개혁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 이주노동력의 활용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1970년대 강력한 출산억제책 사용 등 국가가 출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출산율 제고를 위한 국가개입 자체에 대해 별다른 비판이 없다. 또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강해 노동인구의 부족을 이주노동자의 유입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다. 이는 곧 노동인구의 확보를 위해서는 출산율 제고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은 저출산의 배경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저출산의 배경은 △가족 형성 및 구성의 변화 (비혼 및 만혼의 증가, 이혼율 증가 등) △여성의 교육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 증가라는 것이 통용된다. 그러나 여성의 교육수준과 경제활동 참가 증가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단순한 분석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OECD국가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는 여성의 교육수준과 여성고용율이 각각 출산율 상승과 비례관계를 갖는데,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처음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출산율이 감소하지만, 경제활동참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안정을 이룬 상태에서는 출산율 역시 안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노동참여가 당연한 사회에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히려 성평등 수준인데, 여성에게 여전히 가사와 양육의 1차적 책임을 지우는 국가보다 성차별과 성별분업 해체를 지향해온 국가들에서 대체로 출산율이 높게 나타난다.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으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거나 중단하는 현상을 꼽는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로는, △고용과 소득 불안정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환경 △경제적 부담과 양육 인프라 부족을 들고 있다. 특히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이유로 풀타임위주의 고용문화와 여성에 편중한 과도한 육아부담을 들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한국에서 출산율 제고 정책은 주로 일·가정 양립 정책과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책으로 구성된다. 정부의 정책지향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저출산 정책이 국가의 의도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를 낸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가족옹호의 성격을 띠는가, 어떤 가족모델을 지향하는가, 노동정책은 어떠한가 등에 따라 저출산 대책이 성별분업을 해체하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하며, 여성 일자리의 신축성이 강화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지향하는 가족의 상과 일하는 여성상은 어떠할까. 어떤 가족을 옹호하는가 가족옹호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에도 ‘건강한 가정 만들기’라는 국정과제 하에 ‘가족 가치 확산’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정부가 옹호하고자 하는 ‘건강가정’ 혹은 ‘가족 가치’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가 이에 대해 명확히 설명한 적은 없다. 하지만 ‘건강가정’이 이전부터 언급되어 왔으며,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으로까지 반영되었다는 점,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족 가치의 개념에 기대 정부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정부가 옹호하는 가족의 상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국가가 가족에 대한 개입 의사를 가족정책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표명한 최초의 법이다. 여기서 국가가 상정하는 가족의 기본적인 상이 무엇인지 확인 가능하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가족은 (합법적인) 혼인 관계가 없이는 구성될 수 없으며, 출산이 전제되는 가족구성이 바람직하다는 사고를 반영한다. 한국의 가족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한국사회에서 지향되는 바람직한 가족의 상을 추측해볼 수도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강화된 가족주의의 특징으로는 △ 3세대 가족보다 핵가족, 세대관계보다는 부부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성애 중심성을 확인하는 핵가족 담론이었다는 점, △가정적인 아버지상 옹호, 전업주부 아내의 지위 상승 등 가족주의가 젠더 평등의 이념과 부분적으로 결합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해져야 하는 여성을 핵가족의 아내 혹은 주부로 정체화하여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이상적으로 사고되는 ‘가족’은 ‘가정적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아내가 일정정도 평등한 관계를 맺는 이성애 핵가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과는 다른 점이 있지만, 여전히 성별분업이 유지되는 가족이다. 왜 여성인력활용을 강조하는가 저출산 시대 여성의 노동은 노동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현오석 부총리가 여성가족부에 보낸 기고문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현오석 부총리는 기고문에서 “저출산ㆍ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각국이 최선으로 꼽는 정책 대안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 “여성인력 활용이야말로 ‘늙어가는 거시경제’에 제동을 거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고, 우리경제의 성장동력” 이라고 언급했다. 다음날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부총리가 여성인력 활용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표 1] 저출산 극복을 위한 법안 및 계획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이기도 했던 고용률 제고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서도 여성인력 활용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의 대상으로 청년장년여성이 꼽히는데, 그 중 여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미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은 대부분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선전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자리는 단기적이고 저임금인 경우가 많아, 수치상으로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언정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고용률 포장에만 급급하고, 일자리의 질은 낮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한국의 대기업 중심의 수출지향적 경제구조가 노동신축화를 필수로 한다는 점과 연결된다. 이러한 경제구조를 유지하려면 물량에 따라 노동자들의 수를 신축적으로 조절해야 하고,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저임금을 유지해야 한다.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노동자들의 조달이 어려워지고, 저임금 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는 4-5%의 실업률이 유지되는 것을 완전고용이라 보는데, 이는 신자유주의가 특징으로 하는 노동자의 신축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의 산업예비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인력 활용정책도 이러한 맥락 하에서 진행된다. 박근혜 정부 여성정책의 문제점 정상가족 규범 강화 ‘건강한 가정 만들기’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가족정책은 가족의 이상적인 상을 설정하고 그렇지 않은 가정에 대한 지원을 통해 가족을 육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가족 구성의 변화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가족이 사회에 기능적인 단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가족정책은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단위로서의 가족’을 지원하는데, 이는 가족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가족 규범의 강화는 비혼동거부부동성애자 등의 권리를 제약한다. 또한 여성의 이중부담도 강화한다. 여성들은 가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도 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가사와 양육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가족 해체 등 위기가족 지원 강화’ ‘취약가족의 가족기능 회복 및 자립 강화’ 등 건강가정이 아닌 가족에 대한 가족정책을 따로 설정하고 있다. 지원이 필요한 특별한 가족에는 다문화 가족 역시 포함된다. 그런데 이렇게 취약가족과 다문화가족을 특별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정의하는 것은 낙인효과를 낳고, 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옹호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여성은 합법적인 혼인관계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른 가족을 구성할 수도 있고, 결혼이 반드시 출산을 전제할 필요는 없으며, 출산이 정상가족 내에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건강한 가정’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모든 자기결정을 비정상인 것으로 여기고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비혼모 지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건강한 가정’을 강조하는 이상 공식적 남성 파트너가 없는 비혼여성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족주의 강화 속에서는 그 어떤 선별적 지원도 가족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공공 보육은 뒷전인 양육지원정책 그 동안 여성운동노동운동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 보육의 공공성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해 왔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은 최근 남성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 여성들이 사용함으로써 성별분업 완화효과가 적고, 대다수 비정규직 여성들은 산전후 휴가조차 쓸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했을 때 보육의 공적보장이야말로 비정규직 여성들까지 그 성과가 공유될 방안이기 때문이다. [표 2]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 그러나 지금까지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1990년 이후 해마다 증설되어 2011년 39,842개가 설치운영되고 있으나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율은 5.3%에 불과하다. (<표 3> 참고) 영아전담 보육시설은 2005년 883개에서 2011년 638개로 오히려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확대’를 계획으로 세웠는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국공립 보육시설을 매년 50개씩 신축, 매년 100개씩 기존 운영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이 전부다. 4만에 육박하는 보육시설 규모를 고려할 때 국공립보육시설 비중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면피용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보육 시스템의 확충은 뒤로 한 채, 0~5세의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확대에 힘을 쏟으며 금전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당장 올해 3월부터 보육료 지원이 확대되고, 양육수당이 처음으로 지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민간보육시설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육료 지원은 실제 보육료의 일부만을 지원할 뿐이다. 또한 양육수당 지급은 여성들을 가정에 머무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한국과 같이 소득재분배 제도가 미비하고 여성들이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해 전체 가처분소득 중 양육수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지 않은 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욕구를 낮추고, 여성들이 스스로 가족 내에서 자녀양육을 선택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표 3] 어린이집 연도별 설치 및 운영 현황(2007년-2011년, 단위: 개소) 여전히 강조되는 시간제 일자리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취해진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유연근무제)였다. 그동안 시간제 일자리는 기존의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 자릿수를 늘리는 것이며, 노동시간과 장소는 유연화하되 시간활용도를 높여 집중적으로 생산량을 높이고, 노동통제를 통해 노동강도를 높이고자 하는 정책이라고 비판되었다. 시간제노동자들은 서구 국가들에서도 전일제 근로보다 2배 이상 높은 빈곤률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짧은 노동시간으로 실업보험 등의 수급조건을 맞추지 못해 복지제도로부터도 배제되는 등 이중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양육기의 2-3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양육책임의 부담을 벗은 그 외 연령대의 여성에게도 시간제 일자리를 강요한다. 그리고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경력개발이 불가능한 저임금 서비스직에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제 일자리를 늘린 결과 여성 시간제노동자는 급증하고 있다. 2012년 3월 현재 시간제노동자는 170만 1천 명인데 비정규직 중 시간제노동자는 29.3%로 불과 1년 전에 비해 2.8% 포인트 상승하였다. 이 중 여성은 2011년 3월 35.6%에서 2012년 3월 39.5%로 15만 명이나 증가한 반면, 남성의 경우 16.6%에서 17.5%로 약 1.5만 명 증가하는 소폭 상승에 그쳤다. 이렇게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만족도는 낮다. 이는 여성들이 단시간 일자리에 만족해서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있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내놓은 개선안이 바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기 이미 제출되었던 정책으로, 박근혜 정부 여성정책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 ‘반듯한’은 상용직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하루에 3-6시간 일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일 수밖에 없고, 여성의 소득은 가족 내에서 부차적인 지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 또한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비정규직 여성들은 정규직 여성들보다 일·가족 갈등을 더 많이 경험하고 가족의 정서적 지원은 더 적게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제 시간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과 가족 모두에서 경제활동이 저평가되는데, 이는 가족 내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가사분담을 요구하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 즉 현재 한국의 일가정 양립정책으로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며, 가사와 육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여성이 져야 한다는 인식도 바꿀 수 없다. 질 낮은 여성일자리 창출 여성운동은 정부가 여성고용정책의 범위를 협소하게 사고한 것에 대해 비판해왔다. 노동정책 전반이 여성 차별적인 효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성고용정책의 범위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특수한 정책에 한정하면서 여성에게 맞는 일자리를 따로 제시하는 경우는 많았다. 박근혜 정부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이전부터 추진되어 온 정책이다. 2008년에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이 마련되었고,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 여성 특화 교육이나 취업지원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더욱 강화하겠다고는 하나 이는 효과도 미미하고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성별 직무분리나 여성의 저임금 직종으로의 집중현상을 지속시킬 수 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일자리는 주로 여성들이 일하면서 생기는 돌봄의 공백을 메꾸는 사회서비스 일자리이다. 사회서비스는 사회 내 구성원의 재생산을 위한 제반의 사회적 기반 서비스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교육, 교통, 주택, 의료, 에너지, 물 등의 공적 기반시설을 전제로 한 서비스영역과 보육, 가사, 간병, 장애인 활동보조 등 돌봄 서비스 중심의 대인 서비스가 모두 포함되는데, 여성 일자리로 강조되는 것은 후자이다. 사회서비스는 설비투자 비용의 부담이 없는 대인서비스이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서비스산업 취업자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1.5%에서 2012년 5.7%로 크게 증가하였고, 특히 2005년 이후 증가한 취업자(212만명)의 약 42%(81만명)가 사회서비스산업에서 창출되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산업의 월평균 임금(188만원)은 전체 산업 평균(210만원)보다 낮고 연평균 임금 증가율도 산업 평균을 하회한다. [그림 1] 돌봄노동의 임금수준 :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자료:LIS) 임금 수준이 이렇게 낮은 것은 돌봄 서비스가 전통적인 여성의 일이고, 사회가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대신 민간시장을 활성화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재원을 부담해서 이용권(바우처)을 지급한다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러한 돌봄의 시장화는 일자리의 질을 더욱 떨어뜨린다. 각국 돌봄노동자의 임금수준을 비교해보면, 공공부문을 통해서 사회서비스를 주로 제공하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았지만 한국을 비롯하여 민간시장 메커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가들에서는 낮게 나타난다. ([그림 1] 참고) 이중부담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여성들이 가사와 양육의 1차적인 책임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가정의 양립정책과 여성 일자리 정책 역시 여성에게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이중부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출산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포기하거나 모성이 노동시장에서의 약점으로 작용하고 장시간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에서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족 내로 역할을 제한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가족 내 역할을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가족 내 역할을 맡아야 하는 관계를 형성하지 않거나, 의도한 것보다 적은 수의 아이를 갖거나 아이를 갖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선택은 출산율을 저하시켜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출산을 선택할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 중 50%가 5년 내에 외벌이 부부가 된다. 여기에서 여성들이 일가정의 양립을 시도할 것인가, 육아에 전념할 것인가를 저울질 할 때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 직업전망의 부재, 자녀양육을 어머니가 담당하는 것이 좋다는 사고, 남편과의 가사와 양육 분담의 어려움, 보육시설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둘러싼 갈등을 거친 뒤에, 여성들은 전망 없는 일자리를 이중부담을 안고 유지하느니 육아에 전념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친족관계를 활용하거나 공백으로 두거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선택한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중부담을 줄여 양쪽을 병행하려 노력한다. 우선 육아휴직 활용이 있다. 그러나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들은 정규직 등으로 제한된다. 또한 활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이 영유아 보육 기간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길지 않으며, 육아휴직의 사용이 오히려 직장에서의 승진 등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자녀보육을 시설을 이용하거나 친족관계를 활용하여 해결할 수도 있다. 한국은 여전히 보육시설이 부족하고, 시설양육에 대한 불신도 커 친족관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녀보육은 주로 친족 내 여성노인이 맡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도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저소득층은 가족 내 여성노인도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보육을 대행하는 친족 내 여성노인에게 일정한 경제적 보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친족관계를 이용해 가족 내 돌봄의 공백과 복지의 공백 양자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돌봄의 (재)가족화가 장기적으로 보면 반(反)사회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첫째, 보육의 공공성이 확충되고 보육의 사각지대가 해소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돌봄을 다시 가족 내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공공 보육교육이 강화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둘째,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45%라는 높은 노인 빈곤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노인복지를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노후 소득보장 등 사회안전망 재구축에 대한 요구를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저소득층 여성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있다. 특히 이들이 종사하고 있는 서비스생산직 노동은 전문직에 비해 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부족하고, 저임금이기 때문에 자녀돌봄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자녀를 양질의 보육환경에 맡길 수도, 친족 내에서 보육대행자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취학 전에는 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취학 후에는 가정에 혼자 두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보살핌 경험의 차이는 보살핌의 위계를 형성하고 시설양육의 낙인으로 이어지고,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 기능하게 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된다. 여성,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여성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직장과 가사양육으로 인한 이중부담을 지고 있었고, 이것이 곧 저출산으로 드러났다. 이중부담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고, 저출산 대책은 오히려 이를 전제하거나 강화했다. 각자의 조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감내해 온 여성들은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여성에 대한 복지 확대? 저출산 시대, 주류 여성운동은 이를 레토릭으로 삼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지원을 따냈다. 그러나 일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여성의 현실을 나아지게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성에 대한 일부 지원은 전체 여성들을 저임금과 빈곤으로 내모는 노동조건의 악화에서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성별분업의 재생산과 이중부담의 강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대안을 요구하는 식의 여성운동은 이제 그 조건조차 해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류 여성운동의 정책대안을 수용하는 매개였던 여성가족부는 그 위상이 계속 하락해왔고, 이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역전되지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정책 중 핵심을 차지하는 임신출산양육지원정책은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며, 여성을 위한 맞춤형 복지로 선전된다. 이러한 조건은 여성운동이 여성의 권리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사회적 조건이 변화해야 하는지 보다 복지의 수혜자로서 여성이 왜 더 많은 복지를 얻어야 하는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성이 더 많은 복지를 얻어내는 것이 여성의 권리 강화와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엄마가 키우는 것이 옳으므로 보육료 지원보다 양육수당이 더 많아야 한다.’ 는 논리로 여성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페미니즘이 이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강화를 위한 운동이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가사와 양육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픈 여성들 스스로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여성,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우리는 적극적으로 여성이 처한 조건을 드러내고 ‘여성을 위한 것’으로 추진되는 정책의 기만성을 고발하되, 이것이 단순히 부족한 여성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해체할 수 있는지,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횟수와 시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지하는지를 정책에 대한 판단 뿐 아니라 우리의 요구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우선 ‘단위로서의 가족’을 지원하는 가족정책을 비판해야 한다. 가족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설정하는 가족정책은 그 자체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이는 여성이 가족을 구성하면 대부분 이중부담을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감내한 채 선별적 지원을 받으라는 이야기와 같다. 또한 양육지원은 현금급여보다 공공 보육 시설의 확충공공 보육 시스템의 강화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누구나 양육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또 가정과 시설양육에 대한 위계화를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여성을 위해 ‘여성’을 넘어선 요구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노동신축화 정책이 여성에게 더 큰 차별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하고, 여성의 이름으로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인상을 외쳐야 한다. 또한 사회복지시스템의 재구축이 돌봄 서비스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일자리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여성들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 특히 이중부담으로 인해 가장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려 있는 저소득층 여성들, 정부가 ‘여성 일자리’라 강조해 온 돌봄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여성노동자들이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산발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단결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여성과 노동자의 이름으로 연대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보육교사간병인장애인활동보조인 등이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보육협의회의료연대 돌봄지부 등 노동조합을 통해 투쟁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을 노동자운동의 과제로 삼아, 박근혜 정부의 기만적 여성정책에 맞서 싸우자.
[토론회]‘고용률 70%’와 노사정대타협 2013년 5월 27일 14시 /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저출산 극복 대책에 대한 비판과 향후과제 - 박근혜 정부 하 여성운동의 과제 요약 ∙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이 시행된 지 10여년이 지남. 저출산‧고령화가 곧 잠재성장률의 하락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에 대한 합의가 광범위하게 형성된 가운데, 출산장려정책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 정책이 곧 여성정책과 등치되고 있음. 박근혜 대통령 역시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책을 여성정책으로 발표하였는데, 그중 양육부담을 경감시킬 보육정책의 비중이 높음. ∙ 지금까지 저출산·고령화 대책과 관련한 각종 법안 및 계획이 제출될 때마다 여성운동 진영과 노동조합‧사회단체의 개입 및 비판이 있었으나, 주류 여성운동은 정부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출산장려정책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이유로 이에 합의함. ∙ 그러나 저출산 극복 대책은 출산을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로 사고한다는 점, 정상가족 규범을 강화하여 정상가족 외부에 있는 여성을 배제한다는 점, 낙태권을 제한하는 이데올로기를 조장한다는 점 등에서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침해함. 또한 여성노동의 신축성을 강화하고, 돌봄노동을 저평가하며, 돌봄을 (재)가족화 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노동권을 약화시킴. ∙ 여성운동․사회운동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적정인구를 상정하고 낮은 출산율을 곧 경제성장의 저하로 보는 정부의 관점을 비판할 필요가 있음. 다시 말해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성장의 관점이 아니라 인구의 연령 구성의 변화로 접근해야 함. 사회운동은 이러한 관점 하에서 출산율과 관계없이 여성의 재생산권리 보장할 것과 출산율 제고보다 여성활동참가율 제고를 주요 과제로 삼을 것, 또 이 과정에서 여성노동권이 강화되어야 함을 주장해야. ∙ 여성운동․사회운동은 첫째,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실제로 여성들의 노동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대한 여성 노동자들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조사가 필요함. 둘째, 정부의 저출산 대책의 효과 중 하나로서 가족 이데올로기가 역으로 강화되었는가, 또 강화되었다면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함. 이를 통해 여성노동자운동의 조직적 대응을 위한 과제를 규명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함.
첫 여성대통령의 출범, 엄마를 부탁해!
김기태, 하어영『은밀한 호황』(이후, 2012) 2009년 한 해 동안 한국 남자 10명 중 4명(37.9%)이 성매매를 했으며, 일생 동안 5명(49%)이 돈을 주고 성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 성매매를 일부 남성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지표다. 2010년 성매매 거래 추정량은 4,699만 건이며, 우리나라 성매매 집결지와 알선 업소에 종사하는 성판매 여성 인구의 추정치는 142,248명이다. 2010년 1년 성매매 거래액은 6조 6,258억 원으로 같은 해 우리나라 영화 산업 매출(1조 2천억 원)의 다섯 배 이상이다. 성매매가 불법인 상황에서 관련 자료나 수치가 투명하게 공개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성 산업의 규모는 더욱 클 수 있다.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성매매를 하나의 산업으로 보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남성들의 일반적인 문제이자, 하나의 산업으로 존재하는 성매매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논의는 빈약하다. 성판매 여성들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다른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성매매란 낯설거나 불편한 주제였다. 나머지 다수의 남성은 성매매의 공범자이거나, ‘나는 아니다’라고 회피한 방관자였다. 2004년 9월 23일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은 한국 사회에 성매매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계기였다. 특히 피해자로 여겨진 성판매 여성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투쟁에 나서고 자신들을 ‘성노동자’라고 호명하면서 ‘성노동’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논쟁은 현재 소강상태이며, 쟁점은 정리되지 않은 채 잠복되어 있다. 『은밀한 호황 - 불꺼지지 않는 산업,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는 성매매의 현실을 꼼꼼히 취재해 신중한 언어로 우리에게 성매매의 실태를 알린다. 이를 통해 잠복된 쟁점을 다시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한국 남성들의 성구매 실태 한국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남성들이 성매매에 동참할까? 이는 정부의 묵인과 방조의 전통 때문이다. 정부는 한편에서는 성매매를 불법화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방임하거나, 때론 적극적으로 ‘포주’ 노릇까지 떠안았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전후에는 1980년대 말까지도 ‘외화 벌이’를 위해 성매매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전통이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불법이 아니다’라는 인식에 영향을 줬다. 성구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중 “성매매특별법은 낙태 관련법이나 국가보안법처럼 사문화된 거 아닌가” 라는 응답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서두에서 언급한 한국인 남성의 성구매 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2005년 미국에서 성매수 경험이 있는 남성의 비율은 4%다. 합법적으로 성매매가 가능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네덜란드도 각각 16%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인 남성의 성구매는 국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인 남성을 ‘고객’으로 하는 성매매 업소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비롯해서 러시아 등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까지 퍼져있다. 어떤 남성들이 어떤 경로로 성매매에 동참하게 된 것일까?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남성들보다 오히려 학력이 높은 ‘고학력 화이트칼라’ 집단이 성구매에 더 적극적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를 보면, 남성들은 혼자 성매매 업소를 찾기 보다는 군 입대, 회식, 접대 등을 매개로 성을 구매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성매매 업소에 함께 가는 이들과 성매매를 통해 연대감을 고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은밀한 호황』은 연대감이야말로 일반적인 한국 남성이 성구매를 합리화하기 위한 자기 논리의 뿌리라고 지적한다. 성구매를 합리화하는 논리는 이 뿐만은 아니다. ‘성욕이 왕성하니 여성의 성을 사서라도 반드시 해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 ‘성매매 여성도 원해서 하는 것이고, 성매매는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하는 일상적인 경제 행위’ 라는 논리가 더해진다. 여기에 ‘공급자들에 의해 부추겨진다’ 와 ‘성매매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성 접대 관행상 혹은 조직 논리로 어쩔 수 없이 성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추가된다. 남성들이 성매매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의 인터뷰에 응한 10명 중 6명은 ‘성매매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성매매 여성에게 미안함을 느낀 적이 있다’ 고 대답했다. 성매매가 대가를 주고받는 거래라는 의견은 10명 중 5명이 제시했다. 어떻게 남성들의 성구매를 줄일 수 있을까? 『은밀한 호황』은 대안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양성평등 인식을 기를 수 있는 청소년기 교육과 같은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위한 대책과 단기적으로는 성매매 재범 방지 차원에서 실질적인 처분과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강경론을 동일한 비중으로 언급한다. 여성들의 성매매 유입 경로 및 탈성매매의 어려움 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원인은 크게 ‘가출’과 ‘빈곤’이다. 성매매 경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에서 20살 이전에 성매매를 시작한 15명 가운데 12명이 가출 경험이 있다. 여자 아이들을 가출로, 성매매로 떠미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가난이다. 가족 관계의 영향도 컸는데, 가출과 성매매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부모와의 동거비율이 낮았다. 또한 성폭행을 경험한 비율도 높았다. 가난, 폭력, 방임으로 인해 집에서 나온 가출 청소년들은 노동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에 막혀 일자리를 아예 구하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구해도 처우가 밑바닥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직 성매매 시장만이 청소년에게 열려있다. 앞의 경우에 비해 높은 연령에 성매매에 들어선 여성들의 경우, 가출과 같은 경험은 적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학력이나 별다른 기술이 없는 여성들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 수 있는 돈의 액수는 지극히 적다. 가족의 병원비, 동생의 등록금, 자녀 양육비 등을 위해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많다. 한국 남성들이 국경을 넘어 성을 구매하러 가는 것과 동시에, 한국인 성매매 여성들 역시 미국과 일본, 호주 등 해외로 진출해 있다. 해외에 있는 한국인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침해는 훨씬 심각하다. 한국인 여성들이 해외로 팔려나가는 한편, 필리핀과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여성들이 한국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된다. 빈곤 국가일수록 여성이 인신매매를 동반한 성매매의 덫에 빠질 위험이 크다.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들은 포주와 마담에게 중간착취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되고, 심한 경우 감금당하기도 한다. 『은밀한 호황』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탈성매매에 성공한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탈성매매를 좌우하는 조건에 대해 이 책은 「성매매 실태 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한다.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도울 수 있는 요인은 세 가지다. 첫째, 성매매 유입을 전후해서 사회적 경험 및 활동의 폭이 넓었던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탈업소 및 탈성매매의 가능성이 높았다. 성매매 업소에서 생활했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일상생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탈성매매와 자활에 곤란함이 많다. 둘째, 정서적 지지자는 탈성매매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다. 성판매 여성들은 가족과의 유대가 약하거나, 성매매에 유입된 이후에 가족 및 지인과 연락을 끊는 경우가 더욱 많아 탈성매매 과정에서 힘들 때 도움 받을 정서적 지지자를 찾기 어렵다. 셋째 요인은, 해당 여성이 주거와 생계비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립의 가능성이다. 탈성매매 과정에서 여성들은 현저히 줄어든 수입으로 생활하는 것을 감수하고 적응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적어도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탈성매매 상태를 지속해 나가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초반에는 탈성매매 의지가 굉장히 높아도, 당장의 생활비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립지원금으로 탈성매매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성매매의 강력한 인력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외부의 여러 가지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 저자들이 스스로 밝히듯이, 이 책은 성매매에 대한 대략의 스케치에 중점을 두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빌려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다. 마지막 6장에서 저자들은 성매매를 둘러싼 페미니즘 내부의 논쟁과 성매매 활동가들,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쟁점을 제기하는 수준이지만, 성매매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그 중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자.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첫째, 성매매가 성폭력과 달리 계약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둘째, 성매매는 성폭력과 다르게 수입 창출 활동이라는 측면도 있다. 특히 서비스산업의 확장에 따라 많은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노동을 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성적 서비스의 판매와 다른 노동력의 판매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셋째, 성매매와 성폭력을 등치함으로써 성판매여성이 경험하는 성폭력을 개념화하기 어렵다. 성매매가 성폭력이므로 성판매여성은 항시 성폭력을 당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판매 여성들은 성노동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성폭력은 반대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다르게 성판매 여성들도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한 여성이라는 대안적인 이미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성매매 여성 가운데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성매매의 계급적 성격은 분명하다. 가난한 여성, 자원을 적게 가진 여성이 성매매에 빠지기 쉽다. <영국성판매자집단>의 대변인이자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인 제임스는 “우리는 빈곤한 여성이 없다면 성을 팔 여성은 한 사람도,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은 성매매가 다른 임금 노동보다 더욱 열악하거나 여성 자아에 더 치명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판매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서구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한국에서는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 비로소 논의의 물꼬가 터졌다. 책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은 한국 여성운동 내의 논쟁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성노동과 성노동자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처한 곤란 청소년 성매매보다 주변적 쟁점이었던 성인 성매매 문제가 여성운동의 중심 의제로 떠오른 계기는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이다. 대명동 화재사건 한 달 후에 토론회가 개최되며 ‘윤락방지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었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01년 4월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위한 전문가회의'를 구성하여 법안 마련작업을 시작했다.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규정하는 경우, 강제적 성매매와 자발적 성매매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주류 여성운동은 성매매 여성은 성을 팔도록 강제되었을 뿐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전문가회의가 마련한 법안은 모든 성판매 여성을 ‘성판매된 자’라고 규정하는 대신, ‘성판매된 자’와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를 구분하였다. 여성운동가들은 자발적 성매매를 부정했음에도, 정작 강제적 성매매와 자발적 성매매를 구분하고 ‘자발적 성판매여성’을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청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매매방지특별법의 곤란은 시행 직후 곧바로 드러난다. 성판매 여성들이 처한 다층적 현실을 ‘자발적 행위’와 ‘피해’라는 이분법으로 나눈 상황에서, 성판매여성은 피해를 호소해야 하고, 또 국가가 그 피해를 피해로 인정해야만 처벌을 면제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완전한 비범죄화가 아닌 상황에서 성판매 여성은 자신의 피해를 어떻게 입증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소진되었다. 법이 나눈 ‘성매매 행위자’와 ‘성매매 피해자’라는 구분은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고, 여성은 자발적인 행위자일 때도 착취와 폭력의 피해자일 때도 있다. 그러나 법은 이를 고려할 수 없었다. 더욱 큰 곤란은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과 동시에 성판매여성들이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이면서 드러났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당일 일명 ‘미아리 텍사스’에서 500여 명이 모여 생계보장과 성매매방지법 시행 유보를 요구하는 집회를 였었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이튿날 대구로, 10월에는 청량리, 용산, 영등포와 수원인천 등 수도권, 평택과 부산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성판매 여성들의 시위에는 업주들이 동참했고, 이는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주도한 여성단체들이 이 시위를 업주들의 사주를 받은 행동으로 판단한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시위에 참여한 성판매 여성들을 면접한 연구자들은 상당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했고, 업주와의 공동행동은 조직화 경험이 없는 이들이 새로운 운동세력으로 등장할 때 기존의 비공식적 연결망을 활용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여성단체가 자신들을 업주들에게 조종당하는 존재로, 자신들의 요구를 거짓 주장으로 비하하자 성판매 여성들은 여성단체에 불신과 적대감을 품게 되었다. 성판매 여성들은 한겨울 국회 앞에서 단식투쟁과 침묵시위를 하는 등 더욱 단호하고 절박한 방식으로 저항했다. 11월 1일 시작된 단식투쟁은 73일간 지속되었고, 이후 독자적 조직화를 모색하던 여성들은 2005년 3월 5일에 ‘전국성노동자준비위원회’(전성노위)를, 6월 29일에 ‘전국성노동자연대’(전성노련)를 출범했다. 이로써 한국 최초로 ‘성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건 조직이 탄생했다. ‘성노동자’ 규정의 긍정성 ‘성노동자’는 성판매 여성들이 최초로 자신들의 ‘일’에 낙인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한 호명이었다. 이는 자신들이 다른 노동자와 다르지 않은 시민, 곧 시민사회의 평등한 일원임을 선언하는 의미를 지녔다. 2005년 8월 27일 전성노련에서 분화해 만들어진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의 활동은 ‘성노동자’라는 호명이 어떻게 ‘성매매 피해자’와 달리 저항의 자원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민성노련은 출범과 동시에 12대 강령을 제시한다. 강령은 ‘성노동자’를 시민권자, 곧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존재로 규정하는데, 이러한 자기호명은 범죄자인 ‘성판매행위자’와 보호 대상인 ‘성매매 피해자’의 정체성을 모두 거부하는 것이었다. 또한 강령은 생존권뿐만 아니라 노동권을 주장했다. 운동 초기에 성매매방지법 시행 유보라는 소극적 수준의 생존권 요구에 그쳤다면,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으로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는 적극적 주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민성노련은 출범 직후인 9월 7일 업주들의 조직인 민주성산업인연대업체와 단체협약을 맺었다. 또한 민성노련은 성매매를 남성의 성착취이자 인신매매로 파악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달리 빈곤과 양극화의 문제로 진단했다. 민성노련은 ‘노동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기반해 성판매 여성이 범죄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존재임을 선언했고, 업주들과 단체협약을 맺는 데 성공함으로써 집결지에서 겪는 다양한 착취와 인권유린을 외부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와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민성노련 운동에는 몇 가지 제약과 곤란이 존재했다. 가장 큰 제약은 성매매를 금지하는 법률과 사회적 낙인, 도시재개발 압력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조직을 확대하거나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이외에도 성노동자운동이 처음부터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한 여성단체들과 반목하면서 출발하여 대외적 연대 지반이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성노동권’에 동의하는 사회여성단체들이 연대의사를 밝혔지만, 이들과의 연대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고립 속에서 민성노련은 합법적 규제주의 찬성 등 ‘자본가’인 업주들의 입장에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민성노련은 조합비로 사무실 운영비를 충당하지 못해 사무실을 폐쇄했고, 2009년 6월 제4회 ‘성노동자의 날’ 이후 성명서 발표 등 대외적 활동은 중단된 상태다. 현재는 민성노련과 성노동운동네트워크 활동가들이 결성한 ‘성노동자 권리모임 GG’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성노동/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 성노동자를 주체화하는 호명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성노동’과 ‘성노동자’라는 개념은 곧바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우선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므로 노동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앞서 페미니즘 내부의 논쟁을 통해 본 것처럼 이러한 입장은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남아있게 되는 구조’를 설명하지 못한다. 성매매는 여성들에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다. 그런데 여성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면, 이들이 실제 일을 하면서 제기할 수 있는 권리는 없어진다. 성매매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포주로부터 부당하게 임금을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휴일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폭력을 당하지 않으며 일할 권리, 인신매매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보장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현존하는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재 성판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의 인권과 노동에 대한 권리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성노동을 인정한다면 성상품화를 인정하고, 성매매를 유지하자는 것이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성매매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성매매를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를 존치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성매매가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이 될 수는 없고, 궁극적으로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성매매 근절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의 원인인 자본주의, 가부장제, 성 상품화 등 사회구조적 원인들을 제거하는 투쟁을 통해 가능하다. 노동력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런 현실을 지양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투쟁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런 현실을 지양할 수 있기 위해선 성노동자가 스스로 조직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성노동자 개념과 성매매 비범죄화는 결국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냐는 비판 역시 있다. 성매매 비범죄화는 성매매 여성들이 형법으로 인해 범죄의 피해자로 보호되거나, 범죄자로 처벌받는 것으로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주장된 것이다. 이를 특정 공간에서 성매매를 허용하는 합법적 규제주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모든 성판매 여성이 범죄자의 신분이 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측면에서 비범죄화는 의의를 지닌다. 여성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게 하라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원칙은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이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성매매문제를 해결하는 기본 원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성노동자들이 단순히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과 삶의 질곡에 대해 주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 이들 자신의 해방도 시작된다. 성매매를 ‘폭력’이 아니라 ‘노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매매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성적 관행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할 성적 관행이라 할지라도, 성노동자들에게 이것이 ‘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성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적 문제를 간과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은밀한 호황』은 ‘해당 여성이 원하지 않는, 외부적인 변수에 의해 강요된 성매매’ 문제로 대부분 주제를 한정했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외부 변수를 인신매매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주로 빈곤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로 사고했다는 점이다. 즉, 여성의 빈곤화와 노동시장 진입의 어려움이 성매매로의 유입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성매매를 다뤘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저자들이 인정한대로 이 책은 ‘성노동’ 문제를 부록처럼 짧게 다뤘기 때문에 독자들은 여전히 성매매에 동반되는 폭력이나 노예적 관행에 더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유일하게 성노동 쟁점을 다루는 6장은 스스로를 ‘성노동자’라고 부르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아 편견을 깨보자는 메시지를 던지지만, 이는 책 전반을 구성하는 심각한 성매매 실태에 비해 가볍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성판매 여성들이 성매매방지법에 맞선 투쟁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성노동자’로 호명하는 과정이 던지는 메시지를 좀 더 진지하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여성‘대통령’이 아니라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사진1%] 지난 11월 18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대선 슬로건으로 제시하면서,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의 마음 같은 섬세함과 강인함으로 (나라를)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슬로건은 선거전략적인 측면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진입장벽에 부딪히고 부당한 차별을 받아온 많은 여성들이 소위 금녀의 영역인 고위직에 여성이 진출하는 것 자체에 긍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이 때문에 이번 슬로건이 특히 수도권 중산층 고학력 여성으로부터의 득표를 목표로 한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여성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기존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효과도 가진다. 어쨌든 슬로건 발표 직후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여성층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다. 박근혜 후보의 일가정 양립 정책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의 여성정책은 과연 여성에게 긍정적일까? 박근혜 후보의 6대 여성정책을 살펴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출산을 장려하고 이를 지원하는 내용이 그 핵심을 차지한다. 1번부터 4번까지 정책은 모두 일가정 양립 및 출산장려·지원 정책이다. 이는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기 추진된 정책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2%]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한 것은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남성 가장이 받을 수 있는 임금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맞벌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일할 수밖에 없고 또 이로 인한 가정 내 공백을 채울 공적 사회서비스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출산 현상도 동시에 나타났다. 문제의 원인이 경제위기,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그리고 부족한 공공서비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가 제시한 정책은 핵심을 벗어나 있다. 고학력 여성의 정부 요직 진출, 저소득층 가구의 출산 부담 완화 같은 정책들은 여러 계층의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개별적으로 지원하여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둘 뿐이다.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생색내기식 정책인 것이다. 또한 박근혜 후보는 여성의 경제활동 복귀를 위한 지원으로 직업훈련과 알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먼저 여성의 경력단절이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여성노동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여전히 소수 정규직을 제외하면 사용하기 어렵다. 임신을 하면 암묵적으로 퇴사를 종용받는 경우도 많다. 박 후보의 정책에는 그 동안 정부가 방관해온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빠져있다. 경력단절 이후 여성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역시 직업훈련과 알선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IMF 이후 전체 노동자의 고용률이 하락하고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하다. 가령 여성노동자의 59.4%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약40%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여성은 일도 하고 가정도 보살펴야 한다는 이유로 단시간 비정규직 여성 일자리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또한 맞벌이가 필수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 가장이 생계를 부양한다는 편견으로 여성의 노동은 보충적인 것,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며 낮은 임금을 강요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증가한 보육, 간병 등 기혼 여성이 주로 일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들이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였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조건에서는 직업훈련과 알선을 해봤자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 다시 고용될 뿐이다. 연령별 여성 고용현황을 살펴보면 40세 이전까지는 정규직이 비정규직 보다 많지만, 40세 이후로는 비정규직이 더 많고 특히 50세 이상부터는 취업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처럼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감내하도록 구조화된 여성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직업훈련과 알선이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그 정책은 일부 고학력 여성의 경력단절을 완화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 후보의 정책은 여성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낮은 노동조건, 공공서비스의 부족 등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여성에게 값싼 노동력이자 무급의 가사노동력으로서 이중의 부담을 지우면서 경제위기와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어려움이 있어도 어쨌든 가사와 양육은 여성이 모두 책임져야하고 경제성장을 위해 출산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효과를 가진다. 박근혜 후보의 아동 성범죄 강경대응 정책 박근혜 후보는 줄곧 아동 및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한 강경대응을 강조해왔는데, 최근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 확정됨에 따라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 11월 20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돈 크라이 마미> 시사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는 아동 및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해 “사형까지 포함해서 아주 강력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2005년 한나라당 당대표 시절 전자발찌법을 통과시켰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외에도 박근혜 후보는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와 같은 정책들은 사회안전과 관련된 정책들이지만, 동시에 (특히 자녀를 둔) 여성들과의 공감폭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마련된 여성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범죄를 몇몇 ‘비정상적 개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등 이들에 대해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성범죄를 예방하는 데 한계적이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은 개인들 간의 갈등이나, 이상이 있는 사람의 일탈적 행동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은 술을 마시고 행한 실수, 좋아하는 마음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한 일, 변태와 같이 비정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범행 등으로 풀이되곤 한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성범죄에 대한 반응에서도 이러한 접근방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범죄자들이 아동포르노를 즐겨봤다거나, 게임에 중독되었다거나, 대인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등 그들의 비정상적인 특징을 범행의 원인으로 연결 짓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이 성폭력과 성범죄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성폭력은 여성을 성욕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가 양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성문화 일반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한다. 대중매체나 인터넷에서 여성의 노출 사진과 영상이 쏟아져 나오고, 섹시함을 강조한 광고를 통해 소비를 부추기는 행태가 일상화 되어있다. 또한 술시중을 드는 서비스부터, 노래방 도우미, 성매매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산업이 대규모로 존재한다. 이처럼 여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는 성문화에 익숙해진 남성들이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면서 다양한 성폭력이 발생한다. 성범죄는 그러한 성폭력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성범죄에 대한 분노여론을 자신에 대한 지지여론으로 전환시키려는 박근혜 후보의 전략은 성범죄를 실질적으로 예방하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실질적인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성차별적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중들이 사회적 문제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나서 자신의 지역과 공동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전개할 때 실질적인 변화는 가능하다. 특히 여성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안타까운 여성대통령 논쟁 안타깝게도 박근혜의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계기로 촉발된 논쟁 속에서도 역대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한 반성, 진정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성찰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에 대해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 측은 “출산과 보육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살지 않은 박근혜 후보에게 여성성은 없다”, “박 후보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일 뿐”이라고 논평했다. 황상민 교수는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워보지 않은 박 후보는 생식기만 여성이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 여성에 미달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또한 박근혜가 분만대 위에서 박정희를 출산한 그림 <골든타임>은 더 큰 논란을 만들었다. 박근혜 처녀 논란 및 박근혜 출산설에 착안해 딸이 아버지를 낳는 장면을 그려넣은 이 그림은 정치적 풍자라기보다는 여성성에 대한 공격과 조롱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 측에 대해 “미혼여성에 대한 집단모독”이라고 반격했고, 나아가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박후보의 인생을 “국가와 결혼한 삶”이라고 주장하며 기묘한(?) 방법으로 박근혜 후보를 방어했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논쟁 구도이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에 진정성이 있는지, 그의 정책이 여성의 권리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그의 과거 정치행적과 현 정책을 두고 논쟁하면 될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의 결혼 및 출산 여부가 논란의 중심에 자리 잡은 현실은 여성과 여성정치인을 바라보는 기성 정치권의 시각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의 선택의 문제이고, 또 결혼, 출산, 보육의 경험 여부 자체가 여성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라는 상식이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번에 박근혜 후보가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내세우게 된 데에는 지난 10여 년 간 민주당과 주류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면서, 여성=부드러움, 여성=반부패, 여성의 정치진출=진보라는 등식을 강화해온 것도 일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명숙 의원이 2006년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로 임명되자 여성단체들은 뜨겁게 환호했고 여성으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깨끗한 소통의 새로운 정치를 열 것이라 기대했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통합당 여성 의원들은 이번 박근혜 여성대통령 슬로건과 관련 “박 후보는 여성 대통령의 덕목인 평등, 평화지향성, 반부패, 탈권위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등식은 현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여성의 기존 성역할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이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택한다는 것, 그 자체가 변화와 쇄신”이고,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민생을 챙기는 리더십”이 필요하며, 가정주부가 가계부를 쓰듯 “나라살림 가계부”를 공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부당한 등식을 차용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여성대통령 슬로건은 민주당과 주류 여성운동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빈곤과 차별을 확대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대다수 여성노동자의 대중운동을 바탕으로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포괄적 운동전략 보다는 여성의 정치권 진입에 급급했던 여성운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한편, 박근혜 후보와는 정반대로 문재인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특전사 경력을 강조해왔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1월 1일 강원 지역을 찾아 “군대도 안 간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이 수두룩한 정당이 어떻게 안보를 말할 수 있나”며 “나는 6.25전쟁 때 북한 체제가 싫어 피란 온 피란민의 아들이고 특전사 군복무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안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후보가 바로나 문재인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한 바 있다. 4.11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싹쓸이한 강원지역 그리고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여성성을 강조하는 박근혜 후보와 남성성을 강조하는 문재인 후보는 과거 지배 양당 간 논쟁구도를 뒤바꿔놓은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후보의 행보는 기존 지지층으로부터 일정한 반발을 무릅쓰고 진행되는 것이다. 보수주의 세력 내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고, 자유주의 세력 내에는 문재인 후보의 행보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두 후보가 이런 전략을 선택한 것은 양자 구도에서 어차피 자신에게 투표할 고정 지지층의 반발을 일정부분 무릅쓰더라도 상대방의 지지층을 흔들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여성의 삶의 개선과 권리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빠져있다. 여성의 정치권 진입에 급급했던 기존 여성운동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여성의 빈곤과 차별을 확대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포괄적인 운동전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가 직접 나서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지역사회를 바꿔나가면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