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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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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의 계급적다층적 성격을 드러내다

김기태, 하어영『은밀한 호황』(이후, 2012)

박상은 | 정책위원
2009년 한 해 동안 한국 남자 10명 중 4명(37.9%)이 성매매를 했으며, 일생 동안 5명(49%)이 돈을 주고 성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 성매매를 일부 남성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지표다.
2010년 성매매 거래 추정량은 4,699만 건이며, 우리나라 성매매 집결지와 알선 업소에 종사하는 성판매 여성 인구의 추정치는 142,248명이다. 2010년 1년 성매매 거래액은 6조 6,258억 원으로 같은 해 우리나라 영화 산업 매출(1조 2천억 원)의 다섯 배 이상이다. 성매매가 불법인 상황에서 관련 자료나 수치가 투명하게 공개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성 산업의 규모는 더욱 클 수 있다.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성매매를 하나의 산업으로 보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남성들의 일반적인 문제이자, 하나의 산업으로 존재하는 성매매를 어떻게 볼 것인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논의는 빈약하다. 성판매 여성들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다른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성매매란 낯설거나 불편한 주제였다. 나머지 다수의 남성은 성매매의 공범자이거나, ‘나는 아니다’라고 회피한 방관자였다.
2004년 9월 23일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은 한국 사회에 성매매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계기였다. 특히 피해자로 여겨진 성판매 여성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투쟁에 나서고 자신들을 ‘성노동자’라고 호명하면서 ‘성노동’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논쟁은 현재 소강상태이며, 쟁점은 정리되지 않은 채 잠복되어 있다. 『은밀한 호황 - 불꺼지지 않는 산업,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는 성매매의 현실을 꼼꼼히 취재해 신중한 언어로 우리에게 성매매의 실태를 알린다. 이를 통해 잠복된 쟁점을 다시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한국 남성들의 성구매 실태

한국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남성들이 성매매에 동참할까? 이는 정부의 묵인과 방조의 전통 때문이다. 정부는 한편에서는 성매매를 불법화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방임하거나, 때론 적극적으로 ‘포주’ 노릇까지 떠안았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전후에는 1980년대 말까지도 ‘외화 벌이’를 위해 성매매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전통이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불법이 아니다’라는 인식에 영향을 줬다. 성구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중 “성매매특별법은 낙태 관련법이나 국가보안법처럼 사문화된 거 아닌가” 라는 응답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서두에서 언급한 한국인 남성의 성구매 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2005년 미국에서 성매수 경험이 있는 남성의 비율은 4%다. 합법적으로 성매매가 가능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네덜란드도 각각 16%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인 남성의 성구매는 국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인 남성을 ‘고객’으로 하는 성매매 업소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비롯해서 러시아 등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까지 퍼져있다.
어떤 남성들이 어떤 경로로 성매매에 동참하게 된 것일까?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남성들보다 오히려 학력이 높은 ‘고학력 화이트칼라’ 집단이 성구매에 더 적극적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를 보면, 남성들은 혼자 성매매 업소를 찾기 보다는 군 입대, 회식, 접대 등을 매개로 성을 구매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성매매 업소에 함께 가는 이들과 성매매를 통해 연대감을 고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은밀한 호황』은 연대감이야말로 일반적인 한국 남성이 성구매를 합리화하기 위한 자기 논리의 뿌리라고 지적한다.
성구매를 합리화하는 논리는 이 뿐만은 아니다. ‘성욕이 왕성하니 여성의 성을 사서라도 반드시 해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 ‘성매매 여성도 원해서 하는 것이고, 성매매는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하는 일상적인 경제 행위’ 라는 논리가 더해진다. 여기에 ‘공급자들에 의해 부추겨진다’ 와 ‘성매매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성 접대 관행상 혹은 조직 논리로 어쩔 수 없이 성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추가된다.
남성들이 성매매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의 인터뷰에 응한 10명 중 6명은 ‘성매매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성매매 여성에게 미안함을 느낀 적이 있다’ 고 대답했다. 성매매가 대가를 주고받는 거래라는 의견은 10명 중 5명이 제시했다.
어떻게 남성들의 성구매를 줄일 수 있을까? 『은밀한 호황』은 대안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양성평등 인식을 기를 수 있는 청소년기 교육과 같은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위한 대책과 단기적으로는 성매매 재범 방지 차원에서 실질적인 처분과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강경론을 동일한 비중으로 언급한다.

여성들의 성매매 유입 경로 및 탈성매매의 어려움

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원인은 크게 ‘가출’과 ‘빈곤’이다. 성매매 경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에서 20살 이전에 성매매를 시작한 15명 가운데 12명이 가출 경험이 있다.
여자 아이들을 가출로, 성매매로 떠미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가난이다. 가족 관계의 영향도 컸는데, 가출과 성매매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부모와의 동거비율이 낮았다. 또한 성폭행을 경험한 비율도 높았다. 가난, 폭력, 방임으로 인해 집에서 나온 가출 청소년들은 노동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에 막혀 일자리를 아예 구하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구해도 처우가 밑바닥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직 성매매 시장만이 청소년에게 열려있다.
앞의 경우에 비해 높은 연령에 성매매에 들어선 여성들의 경우, 가출과 같은 경험은 적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학력이나 별다른 기술이 없는 여성들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 수 있는 돈의 액수는 지극히 적다. 가족의 병원비, 동생의 등록금, 자녀 양육비 등을 위해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많다.
한국 남성들이 국경을 넘어 성을 구매하러 가는 것과 동시에, 한국인 성매매 여성들 역시 미국과 일본, 호주 등 해외로 진출해 있다. 해외에 있는 한국인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침해는 훨씬 심각하다. 한국인 여성들이 해외로 팔려나가는 한편, 필리핀과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여성들이 한국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된다. 빈곤 국가일수록 여성이 인신매매를 동반한 성매매의 덫에 빠질 위험이 크다.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들은 포주와 마담에게 중간착취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되고, 심한 경우 감금당하기도 한다. 『은밀한 호황』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탈성매매에 성공한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탈성매매를 좌우하는 조건에 대해 이 책은 「성매매 실태 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한다.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도울 수 있는 요인은 세 가지다. 첫째, 성매매 유입을 전후해서 사회적 경험 및 활동의 폭이 넓었던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탈업소 및 탈성매매의 가능성이 높았다. 성매매 업소에서 생활했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일상생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탈성매매와 자활에 곤란함이 많다. 둘째, 정서적 지지자는 탈성매매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다. 성판매 여성들은 가족과의 유대가 약하거나, 성매매에 유입된 이후에 가족 및 지인과 연락을 끊는 경우가 더욱 많아 탈성매매 과정에서 힘들 때 도움 받을 정서적 지지자를 찾기 어렵다. 셋째 요인은, 해당 여성이 주거와 생계비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립의 가능성이다. 탈성매매 과정에서 여성들은 현저히 줄어든 수입으로 생활하는 것을 감수하고 적응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적어도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탈성매매 상태를 지속해 나가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초반에는 탈성매매 의지가 굉장히 높아도, 당장의 생활비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립지원금으로 탈성매매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성매매의 강력한 인력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외부의 여러 가지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

저자들이 스스로 밝히듯이, 이 책은 성매매에 대한 대략의 스케치에 중점을 두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빌려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다. 마지막 6장에서 저자들은 성매매를 둘러싼 페미니즘 내부의 논쟁과 성매매 활동가들,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쟁점을 제기하는 수준이지만, 성매매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그 중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자.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첫째, 성매매가 성폭력과 달리 계약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둘째, 성매매는 성폭력과 다르게 수입 창출 활동이라는 측면도 있다. 특히 서비스산업의 확장에 따라 많은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노동을 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성적 서비스의 판매와 다른 노동력의 판매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셋째, 성매매와 성폭력을 등치함으로써 성판매여성이 경험하는 성폭력을 개념화하기 어렵다. 성매매가 성폭력이므로 성판매여성은 항시 성폭력을 당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판매 여성들은 성노동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성폭력은 반대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다르게 성판매 여성들도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한 여성이라는 대안적인 이미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성매매 여성 가운데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성매매의 계급적 성격은 분명하다. 가난한 여성, 자원을 적게 가진 여성이 성매매에 빠지기 쉽다. <영국성판매자집단>의 대변인이자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인 제임스는 “우리는 빈곤한 여성이 없다면 성을 팔 여성은 한 사람도,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은 성매매가 다른 임금 노동보다 더욱 열악하거나 여성 자아에 더 치명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판매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서구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한국에서는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 비로소 논의의 물꼬가 터졌다. 책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은 한국 여성운동 내의 논쟁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성노동과 성노동자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처한 곤란
청소년 성매매보다 주변적 쟁점이었던 성인 성매매 문제가 여성운동의 중심 의제로 떠오른 계기는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이다. 대명동 화재사건 한 달 후에 토론회가 개최되며 ‘윤락방지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었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01년 4월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위한 전문가회의'를 구성하여 법안 마련작업을 시작했다.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규정하는 경우, 강제적 성매매와 자발적 성매매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주류 여성운동은 성매매 여성은 성을 팔도록 강제되었을 뿐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전문가회의가 마련한 법안은 모든 성판매 여성을 ‘성판매된 자’라고 규정하는 대신, ‘성판매된 자’와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를 구분하였다. 여성운동가들은 자발적 성매매를 부정했음에도, 정작 강제적 성매매와 자발적 성매매를 구분하고 ‘자발적 성판매여성’을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청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매매방지특별법의 곤란은 시행 직후 곧바로 드러난다. 성판매 여성들이 처한 다층적 현실을 ‘자발적 행위’와 ‘피해’라는 이분법으로 나눈 상황에서, 성판매여성은 피해를 호소해야 하고, 또 국가가 그 피해를 피해로 인정해야만 처벌을 면제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완전한 비범죄화가 아닌 상황에서 성판매 여성은 자신의 피해를 어떻게 입증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소진되었다. 법이 나눈 ‘성매매 행위자’와 ‘성매매 피해자’라는 구분은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고, 여성은 자발적인 행위자일 때도 착취와 폭력의 피해자일 때도 있다. 그러나 법은 이를 고려할 수 없었다.
더욱 큰 곤란은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과 동시에 성판매여성들이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이면서 드러났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당일 일명 ‘미아리 텍사스’에서 500여 명이 모여 생계보장과 성매매방지법 시행 유보를 요구하는 집회를 였었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이튿날 대구로, 10월에는 청량리, 용산, 영등포와 수원인천 등 수도권, 평택과 부산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성판매 여성들의 시위에는 업주들이 동참했고, 이는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주도한 여성단체들이 이 시위를 업주들의 사주를 받은 행동으로 판단한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시위에 참여한 성판매 여성들을 면접한 연구자들은 상당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했고, 업주와의 공동행동은 조직화 경험이 없는 이들이 새로운 운동세력으로 등장할 때 기존의 비공식적 연결망을 활용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여성단체가 자신들을 업주들에게 조종당하는 존재로, 자신들의 요구를 거짓 주장으로 비하하자 성판매 여성들은 여성단체에 불신과 적대감을 품게 되었다. 성판매 여성들은 한겨울 국회 앞에서 단식투쟁과 침묵시위를 하는 등 더욱 단호하고 절박한 방식으로 저항했다. 11월 1일 시작된 단식투쟁은 73일간 지속되었고, 이후 독자적 조직화를 모색하던 여성들은 2005년 3월 5일에 ‘전국성노동자준비위원회’(전성노위)를, 6월 29일에 ‘전국성노동자연대’(전성노련)를 출범했다. 이로써 한국 최초로 ‘성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건 조직이 탄생했다.

‘성노동자’ 규정의 긍정성
‘성노동자’는 성판매 여성들이 최초로 자신들의 ‘일’에 낙인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한 호명이었다. 이는 자신들이 다른 노동자와 다르지 않은 시민, 곧 시민사회의 평등한 일원임을 선언하는 의미를 지녔다.
2005년 8월 27일 전성노련에서 분화해 만들어진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의 활동은 ‘성노동자’라는 호명이 어떻게 ‘성매매 피해자’와 달리 저항의 자원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민성노련은 출범과 동시에 12대 강령을 제시한다. 강령은 ‘성노동자’를 시민권자, 곧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존재로 규정하는데, 이러한 자기호명은 범죄자인 ‘성판매행위자’와 보호 대상인 ‘성매매 피해자’의 정체성을 모두 거부하는 것이었다. 또한 강령은 생존권뿐만 아니라 노동권을 주장했다. 운동 초기에 성매매방지법 시행 유보라는 소극적 수준의 생존권 요구에 그쳤다면,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으로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는 적극적 주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민성노련은 출범 직후인 9월 7일 업주들의 조직인 민주성산업인연대업체와 단체협약을 맺었다. 또한 민성노련은 성매매를 남성의 성착취이자 인신매매로 파악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달리 빈곤과 양극화의 문제로 진단했다. 민성노련은 ‘노동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기반해 성판매 여성이 범죄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존재임을 선언했고, 업주들과 단체협약을 맺는 데 성공함으로써 집결지에서 겪는 다양한 착취와 인권유린을 외부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와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민성노련 운동에는 몇 가지 제약과 곤란이 존재했다. 가장 큰 제약은 성매매를 금지하는 법률과 사회적 낙인, 도시재개발 압력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조직을 확대하거나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이외에도 성노동자운동이 처음부터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한 여성단체들과 반목하면서 출발하여 대외적 연대 지반이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성노동권’에 동의하는 사회여성단체들이 연대의사를 밝혔지만, 이들과의 연대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고립 속에서 민성노련은 합법적 규제주의 찬성 등 ‘자본가’인 업주들의 입장에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민성노련은 조합비로 사무실 운영비를 충당하지 못해 사무실을 폐쇄했고, 2009년 6월 제4회 ‘성노동자의 날’ 이후 성명서 발표 등 대외적 활동은 중단된 상태다. 현재는 민성노련과 성노동운동네트워크 활동가들이 결성한 ‘성노동자 권리모임 GG’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성노동/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
성노동자를 주체화하는 호명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성노동’과 ‘성노동자’라는 개념은 곧바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우선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므로 노동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앞서 페미니즘 내부의 논쟁을 통해 본 것처럼 이러한 입장은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남아있게 되는 구조’를 설명하지 못한다. 성매매는 여성들에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다. 그런데 여성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면, 이들이 실제 일을 하면서 제기할 수 있는 권리는 없어진다. 성매매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포주로부터 부당하게 임금을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휴일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폭력을 당하지 않으며 일할 권리, 인신매매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보장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현존하는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재 성판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의 인권과 노동에 대한 권리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성노동을 인정한다면 성상품화를 인정하고, 성매매를 유지하자는 것이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성매매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성매매를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를 존치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성매매가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이 될 수는 없고, 궁극적으로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성매매 근절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의 원인인 자본주의, 가부장제, 성 상품화 등 사회구조적 원인들을 제거하는 투쟁을 통해 가능하다. 노동력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런 현실을 지양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투쟁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런 현실을 지양할 수 있기 위해선 성노동자가 스스로 조직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성노동자 개념과 성매매 비범죄화는 결국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냐는 비판 역시 있다. 성매매 비범죄화는 성매매 여성들이 형법으로 인해 범죄의 피해자로 보호되거나, 범죄자로 처벌받는 것으로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주장된 것이다. 이를 특정 공간에서 성매매를 허용하는 합법적 규제주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모든 성판매 여성이 범죄자의 신분이 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측면에서 비범죄화는 의의를 지닌다.

여성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게 하라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원칙은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이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성매매문제를 해결하는 기본 원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성노동자들이 단순히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과 삶의 질곡에 대해 주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 이들 자신의 해방도 시작된다.
성매매를 ‘폭력’이 아니라 ‘노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매매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성적 관행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할 성적 관행이라 할지라도, 성노동자들에게 이것이 ‘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성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적 문제를 간과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은밀한 호황』은 ‘해당 여성이 원하지 않는, 외부적인 변수에 의해 강요된 성매매’ 문제로 대부분 주제를 한정했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외부 변수를 인신매매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주로 빈곤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로 사고했다는 점이다. 즉, 여성의 빈곤화와 노동시장 진입의 어려움이 성매매로의 유입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성매매를 다뤘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저자들이 인정한대로 이 책은 ‘성노동’ 문제를 부록처럼 짧게 다뤘기 때문에 독자들은 여전히 성매매에 동반되는 폭력이나 노예적 관행에 더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유일하게 성노동 쟁점을 다루는 6장은 스스로를 ‘성노동자’라고 부르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아 편견을 깨보자는 메시지를 던지지만, 이는 책 전반을 구성하는 심각한 성매매 실태에 비해 가볍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성판매 여성들이 성매매방지법에 맞선 투쟁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성노동자’로 호명하는 과정이 던지는 메시지를 좀 더 진지하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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