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5월 26일~27일 양일간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되었던 반전반핵평화 동아시아 국제회의 자료집 입니다.


* 자료집에 담겨 있는 사회진보연대 발표문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 동아시아 핵 위험과 반핵평화운동 |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

- 한반도 핵 위기에 대한 역사적 고찰 | 수열 (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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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 목차]


1. 환영사


2. 제1회의

-동아시아 핵 위험과 반핵평화운동(임필수, 사회진보연대)

-동아시아의 비핵화와 반핵평화운동(히로시 타카쿠사키, 원수협)

-미국의 평화-반핵운동(안네 밀러, 미국 친우 봉사회)

-북한 핵과 동북아 핵확산 위협(이상훈, 환경운동연합)

-동아시아 핵위협과 반핵평화운동(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토호쿠 아시아의 비핵화와 6개소 재처리공장(이노우에 토시히로/원수금)


3. 제2회의

-동아시아의 군사주의와 반전평화 운동(김승국, 평화 만들기)

-'반전 핵 불확산 동아시아평화회의'(후지모토 야스나리, 원수금)

-동아시아의 군사주의와 반전평화운동 토론문(홍성준, 전진)

-민중 주도의 비핵평화체제 수립을 염원하며...(고상균, 기사연)

-동아시아 비핵평화체제를 위한 평화세력의 과제(금민, 사회당)


4. 분과회의

-동아시아·비핵 평화의 연대(츠치다 야요이, 원수협)

-한국원폭피해자에 대한 일본정부의 천시와 차별정책(곽귀훈, 한국원폭협회 前 회장)

-투쟁의 원점은 노우 모어·히로시마 노우 모어·나가사키 노우 모어·히바크샤 그리고 투쟁의 토대에 핵무기 폐지 운동의 확대가... (나가사와 죠유부, 원수협)

-핵무기비확산조약(NPT)조약의 법적 문제점과 개선방안(이장희, 평화연대)

-한반도 핵 위기에 대한 역사적 고찰(수열, 사회진보연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분석(정용욱, 인권단체반전평화팀/강성준, 인권운동사랑방)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핵ㆍ중립화 연구(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 소장)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의 중립화 : 북한의 핵무기 개발부터 남북 통일까지(이재봉,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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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핵 위험과 반핵평화운동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


1. 한국의 ‘핵주권’?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고 발표한 직후, 신동아 2006년 12월호는 특별부록으로 <한국의 핵 주권>을 발행했다. 이 책의 부제는 “비핵화선언은 파기됐다, 우리도 농축하자!”였다. 이 책에는 신동아의 필진뿐만 아니라 한국수력원자력, 각종 원자력 관련 연구소 연구원, 원자력공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 책의 주장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한국의 ‘핵주권’을 제약하는 세 가지 요소는 ① 1956년 이승만 정권이 미국과 체결한 한미원자력협정 (한국의 재처리와 농축을 허용하지 않음), ② 1975년 박정희 정권이 비준한 핵확산금지조약(NPT) (박정권은 NPT에 가입하지 않은 채 중수로 도입을 추진하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NPT에 가입했다), ③ 1991년 노태우 정권이 북한과 합의한 한반도비핵화선언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허용한다,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 등이다. 이 중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북한의 NPT 탈퇴(1994년), 농축우라늄 계획(2002년), 핵실험을(2007년)을 통해서 파기되었다. 따라서 미국과 맺은 한미원자력협정만 개정하면 NPT가 허용하는 '핵의 평화적 이용‘ 내에서 우라늄 농축과 핵재처리를 통해 ‘핵연료주기 완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일본은 일찍이 ‘비핵3원칙’을 선언했지만 1988년 미일원자력협정을 개정해서 핵무기를 갖지 않고도 플루토늄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1988년 일본은 건설이 시작되지도 않은 제2의 재처리시설(로카쇼무라)의 건설 및 가동허가를 받아내어서, 명실상부하게 핵연료주기를 완성했다. 일본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보유하지 않았고 따라서 핵무기 보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하지만, 일본만이 수십 톤의 플루토늄을 축적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다. 따라서 미일원자력협정 개정은 한미원자력협정의 미래다.

 셋째, 2001년 미국 부시 대통령은 국가에너지정책에 대한 성명에서 원자력 이용 확대 정책을 천명했다. (클린턴 정부는 핵무기용 플루토늄과 우라늄 제조 반대, 플루토늄의 상업적 이용에 반대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여기에는 미국 원자력발전소 산업에 대한 각종 특혜를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4세대 원자로와 첨단 핵연료주기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포함된다. 미국이 새로운 정책을 통해 원자력 연구개발을 확대할 것이므로, 한국도 원자력 핵심기술을 확보하여 세계적인 원자력 재확산 추세에 적극 편승해서 원자력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과 일본의 ‘잠재적’ 위협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동맹관계 확장을 주장하는 지극히 상투적인 한국 보수세력의 논리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즉 북한이 핵개발에서 앞서 나가고 있고, 일본은 잠재적 핵보유국이므로,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최대한 활용해서 핵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핵주권’이라는 호전적이며 국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자극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의 주장에 대해 “핵발전과 핵무기는 분명히 다르다”고 위안하며 그 주장을 맹종하다보면 결국 언젠가 우리는 핵무기 개발의 문턱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여러 국가가 원자력발전에 관심을 보인 이유에는 핵무기 개발을 위한 기술축적과 원료획득이라는 의도가 반드시 동반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공통의 핵물리학적 기초, 공통의 과학기술 연구, 동일한 화학적 원자력산업, 공동의 경제적 예산, 실제적으로 공동의 정부조직 등등).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의 명확한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핵의 평화적 이용’ 범위를 확대하자는 모든 주장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의 잠재적 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2002년 발표된 <핵태세보고서>는 미국은 핵전력의 새로운 삼중점(New Triad)으로 핵공격체제(미사일, 잠수함, 폭격기), 방어체제(미사일방어망), 국방인프라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국방인프라’는 핵 복합체를 말하는 것으로, 미국은 핵무기 공장의 연간 핵탄두 생산량을 현재 350기에서 600기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적 생산시설’에 새로운 대량의 플루토늄이 필요하며, 이에 관한 계획도 추진될 것이다. 따라서 부시 정부의 새로운 핵무기 전략과 원자력 산업 발전 계획이 깊은 연관성을 맺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핵무기 공격․방어․생산 능력을 확장하고 원자력산업의 부흥을 꾀하고 있는 현실, 세계 각 국의 추세와 상반되게 일본이 고속증식로와 핵재처리시설을 통한 플루토늄 이용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의 주요한 비판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의 핵 정책을 자신의 미래로 생각하는 경향은 한국의 반핵평화운동이 경계해야 할 우선적 쟁점이 아닐 수 없다.


2. 미국과 동아시아 핵무기 경쟁 


 냉전 붕괴 이후 핵무기 경쟁이 드디어 종식될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대중의 희망이 무산된 후, 오히려 핵무기 경쟁은 더욱 냉정한 핵무기 논리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우리는 미국의 ‘실현 가능한’ 핵전쟁 구상에 따라 핵무기의 실전 사용 가능성이 더 높아졌음을 자각해야 한다. 핵전쟁의 위험이 과거와 같이 현재에도 상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오히려 더 높은 위험에 처하게 되지 않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세계전략은 세계경제를 삼극 중심으로 재편․집중함으로써 배제된 지역을 창출한다. 미국은 배제된 지역에 대해 의도적 무관심을 보이거나 민중의 상호절멸을 조장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세계의 새로운 분할(“원한의 경계선”)은 폭력의 확산을 자극하며, 이는 세계적 핵확산이라는 추세와 조응한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핵패권주의를 통해 핵무기의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원인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이를 자국 핵 군사력의 확장을 통해 억제하려는 모순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핵패권주의와 세계 각국의 핵민족주의 간 상호작용을 통해 궁극적으로 세계적 핵확산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는 동아시아 핵경쟁 구도의 특히 다음과 같은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첫째, 미국은 '절대적인 핵우위' 정책을 고수하며, ‘승리하는 핵전쟁’이라는 미망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핵 감축에 대한 세계적 압력에 직면하여, 핵무기 감축을 위해 노력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핵무기의 타격력과 파괴력을 높이고, 미사일방어망(MD)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핵전쟁에서의 생존가능성을 높이는 ‘승리하는 핵전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2002년 부시행정부는 STARTⅡ(2차 전략무기감축협상)을 실행하는 대신에, 러시아와 ‘전략적 공격무기 감축 협정‘(모스크바조약)을 서명했고, 미국 상원은 2003년 비준했다. 이는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핵탄두 보유상한을 조약 발효 후 10년 이내에 1,700-2,200기로 제한하는 것으로, STARTⅡ보다 진일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스크바 조약은 미국이 예비용 전략핵탄두 보유와 다양한 전술핵무기 개발, 보유를 제한할 수 없다. 특히 STARTⅡ는 모든 다탄두 대륙간미사일을 제거하고, 잠수함발시탄도미사일(SLBM) 핵탄두 상한을 1750개로 제한했지만, 모스크바조약은 핵탄두의 수만 제한하기 때문에 다탄두미사일을 계속 보유할 수 있게 하며 미국이 강점을 지닌 SLBM을 다탄두체계로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미국 상원은 모스크바 조약이 미국 핵무기 보유의 유연성을 보전할 수 있게 한다며 높게 평가했다.  <핵과학자회보>에 따르면 2006년 현재 미국은 국내 12개 주와 유럽 6개 국가(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영국)에 거의 10,000기의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다. (러시아는 4,978기의 전략핵탄두, 3,500기의 전술핵탄두, 11,000개의 예비 전략핵탄두와 전술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어서 핵탄두 보유량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버금간다.)


 둘째, 최근 미국의 군부, 정보기관, 보수적 싱크탱크와 언론이 중국의 핵무기 능력을 지극히 과장하는 양상이 강화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은 새로운 미사일, 구축함, 잠수함, 전투기 도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잠수함과 미사일 능력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모든 기관들이 2004년 중국의 핵잠수함이 일본 영해를 침입한 사건을 문제로 삼으며, 이를 중국의 태평양 진출 시도의 상징으로 단언하고 있다. 또한 미국 정보기관은 중국이 2015년까지 미국 대륙 영토를 75-100기의 탄두로 공격할 수 있다고 줄기차게 경고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2015년까지 새로운 동풍 미사일(DF-31A) 45-55개를 배치할 수 있다는 가정을 당연시한 결과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중국이 제2의 ‘진주만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고 부각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중의 기억을 회상시키는 교묘한 이데올로기적 술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따르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중국 잠수함은 아직까지 1981년에 건조된 단 한 척에 불과하며, 핵무기를 탑재하여 원거리 정찰을 시도한 적은 없다. 또한 DF-31A는 아직까지 비행실험 단계일 뿐이다. 하지만 중국 역시 미국의 핵공격 능력 향상을 근거로 자신의 핵무기 능력 현대화를 합리화하며, 이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작용-반작용 경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한편으로, 미국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중국에 대해 압도적 핵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1년 미국 국방부의 추산에 따르면 중국은 100여 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와 다르게 중국이 새로운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국은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과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언론이 말하는 중국의 ‘진주만 공습 준비’는 아직까지 지극히 허구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핵우위와 중국의 핵열세라는 것이, 핵무기의 절대적 파괴력을 고려할 때 그 역시도 허구적인 비교라는 점이다. 중국이 미국 핵공격을 억지하기 위해 필요한 핵탄두는 단지 20기일 수도 있다. 20개의 장거리 핵미사일이 20개 도시를 공격하면 4000만 명의 사상자를 낳고, 미국과 캐나다를 뒤덮는 방사능 낙진을 유발할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이 중국의 20개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격납고을 정밀타격하면 1,100만 명의 사상자를 낳고, 중국 3개 성에 걸쳐 방사능 낙진을 뿌릴 것이다.따라서 미국이 중국의 핵위협을 과장하는 것의 문제점을 심각히 우려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논리가 미국과 중국의 작용-반작용을 통해 중국이 (아무리 중국의 핵능력이 미국에 비해 비대칭적이라고 하더라도) 핵경쟁의 단계적 상승에 편승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셋째, 과거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공격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단지 암시적으로만 드러냈지만, 부시 정부가 채택한 새로운 국가전략은 이를 공식화했다. 따라서 NPT의 소극적 안전보장을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했으며, 이로써 NPT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 흔들림으로써 NPT의 미래 자체를 어둡게 했다.

핵무기 비보유국가에 대해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은 NPT가 시작된 후 항구적 쟁점이 되었다. 소극적 안전보장은 핵무기 비보유국가가 핵무기 보유를 추구하는 것을 막는 유인이자, 세계적 핵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단계로서 간주되었다. 하지만 핵무기 보유국가는 NPT에서 소극적 안전보장을 성문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구속력이 없는 선언으로 유지하고자 했다. 특히 미국은 2002년 <핵태세보고서>에서 “북한,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에 대해 미국이 처한 긴급 상황에서 핵능력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또한 핵태세보고서가 발표된 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와 싸우기 위한 국가전략>을 발표했고, 부시는 이를 공식화하는 <국가안보명령 17호에 서명했다.

한편 비핵무기지대(Nuclear-Weapon-Free-Zone)는 NPT의 외부에서 지역적, 세계적 안전을 개선하려는 시도다. (물론 NPT는 비핵무기지대 창설을 허용한다.) 그러나 비핵무기지대 창1설에서도 핵보유국의 ‘소극적 안전보장’은 중요한 쟁점 사항의 하나다. 미국이 NPT 틀 내의 소극적 안전보장을 무효화하는 것과 유사하게, 이러한 미국의 핵전략은 비핵무기지대 창설의 미래를 지극히 어둡게 한다. (덧붙여 기존의 비핵무기지대 협정은 ‘핵의 평화적 이용’을 수용하거나 권장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비핵무기지대의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넷째, NPT 체제에 대한 미국의 자의적 태도는 세계 각국의 핵개발 욕구를 심각하게 자극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3월 미국과 인도는 핵협력협정에 전격 합의했다. 그 내용은 인도의 22개 핵시설 가운데 민수용시설에 대해서는 국제사찰을 실시하는 대신 8개 군수용시설은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인도는 미국의 승인 하에서, NPT에 가입하지 않고도 여섯 번째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특별지위를 누리게 된 셈이다 (인도는 현재 75~115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에 파키스탄이 적극적으로 협조한 후 파키스탄과의 전략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핵실험 이후 파키스탄에 가해진 제재의 대부분을 완화했다. 2005년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한 F-16 전투기 판매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한 대 당 약 44억 원인 F-16 전투기를 24대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NPT는 세계적 핵확산을 막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녔다 (핵보유국의 핵감축, 소극적 안전보장을 강제할 규정이 없다는 점). 하지만 최근 미국이 자신의 배타적 이익에 따라 NPT의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는 결국 NPT 자체의 정당성을 더욱 침식하며, 궁극적으로 세계적 핵확산 추세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핵공격 능력은 미국-러시아 핵감축 협정의 외양 속에서 정밀성과 파괴력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의 핵무기 능력 확대를 명분으로 그 정당성의 일부를 찾고 있다. 미국은 ‘절대적 핵우위’와 ‘승리하는 핵전쟁’이라는 목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소극적 안전보장이라는 NPT의 절대적 기둥의 하나를 명시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은 NPT에 대한 자의적 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NPT의 근본적 결함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3.‘북한 예외주의’? 


 이러한 조건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 사회에서 핵문제에 관한 복합적인 논쟁을 폭발시켰다. 초기에는 북한의 핵실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즉 북한을 (NPT 외부의) 핵무기 보유국으로 간주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핵실험에 실패했고 아직 핵무기 보유단계로 간주할 수 없는지, ‘사실 확인’ 차원의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논쟁은 즉각적으로 북한 핵실험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로 넘어갔다.

한국은 1980년대 민중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미국의 한반도 핵전쟁계획, 핵무기 배치, 핵전쟁훈련(팀스피리트훈련)이 극히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한 적이 있다. 이를 통해 최소한 민중운동의 핵무기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최근 부안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사회운동이 지지 의사를 밝힌 바가 있었다.

따라서 북한의 핵보유 시도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북한의 핵보유 시도에 대해 방어적, 변호론적 태도를 보인 경향의 입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의 핵보유 시도는 미국의 핵독점, 핵패권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으며, 미국의 대북 전쟁계획에 대한 최소한의 억지력이자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상용 수단이라는 것이다. 즉 북한의 핵보유는 ‘정의의 전쟁’(just war)을 위한 수단이거나, 최소한 적극적으로 지지하긴 어렵더라도 미국의 핵위협에 대비해 일차적 비판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변호론적 입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핵전쟁에서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 사이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실행된 핵폭격은 총력전의 완성이자 초월로 간주할 수 있다. 핵전쟁이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별, 군사시설과 비군사시설의 구별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절대적 파괴, 절멸의 극한을 현실화했다는 의미에서는 총력전의 완성이다. 하지만, 핵전쟁은 근대전쟁이 수반했던 민족적․민중적 동원 체계를 상대화한다는 점에서는 총력전의 초월이다. 핵전쟁은 대중을 전쟁에 참여시키기 보다는 체계적으로 배제하며, 모든 권한을 지배자에게 집중시킨다. 핵전쟁 발발 여부는 최고 지도자의 배타적 권한에 속하게 되거나,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자동화된 반응으로 진화한다. 민중에 대한 절대적 파괴, 민중의 절대적 소외로서의 핵전쟁에서 더 이상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은 무의미해진다.

 둘째, 핵무기의 존재 자체가 전쟁유발요인이다. 또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핵전쟁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은 핵보유 자체가 전쟁유발요인이라는 인식을 가로막는다. 핵무기 그 자체가 '절대무기'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핵무기의 개발, 배치, 이전 등 매 국면마다 이를 강행하려는 세력과 막으려는 세력 간의 충돌 위험과 긴장이 발생했다.

 셋째, 북한의 핵 개발 의도가 얼마나 정당한지 따질 때, 쉽게 간과하는 사실은 이것이 세계적 핵확산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자, 그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10년 후 세계적 핵보유국의 숫자는 지금과 다를 것이라는 예상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핵보유 시도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모든 핵개발 국가가 궁극적인 목표가 비핵화라고 주장하는 것과 몹시 닮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의 비핵화가 아니라 바로 당장의 비핵화 문제를 다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핵위협을 막는 수단은 ‘핵무기 보유’가 아니라 대중적인 반핵평화운동의 힘이라는 관점을 확고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4. 반핵평화운동과 일방주의


 그렇다면 반핵평화운동은 어떤 요구를 내걸고 대중적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냉전시기 핵경쟁의 메커니즘과 반핵평화운동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과거 냉전이 가장 첨예해진 시기에도 미국과 소련은 의례적 협상을 진행했고, 군비통제와 군비축소를 위한 다양한 형태의 협상이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몇몇 제한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따라서 핵무기와 여타 군사정책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은 다자간, 양자간 협상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 밝혀야했다. 일부는 협상의 성공을 위해, 또는 협상에서 특정한 입장을 격려하기 위해 효과적인 압력 행사를 추구했다.

하지만 평화운동이 이러한 활동으로부터 내린 일반적 결론은 이러한 협상이 군비를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군비증강의 변명이나 눈가리개로 주로 기능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평화운동 집단은 미소 협상을 통한 상호 군축합의를 넘어서, 자국 정부에 의한 일방적, 단독의 군비축소(unilateralism)를 촉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갔다. 특히 1980년대 초 정점에 이른 유럽의 반핵평화운동은 핵실험의 중단, 군사기지의 제거, 특정 군사전략의 폐기 등 자국정부의 일방주의적 행동을 촉구했다. 일방주의적 행동을 위한 요구는 원칙적으로 정부에 대한 대중의 압력을 통해 쟁취될 수 있으며, 정부의 행동은 뉴스 미디어와 여론에 의해 감시될 수 있다. 반면 운동이 다자간, 양자간 협상을 요구한다면 협상과정을 자세히 파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우며, 협상 과정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협상의 실패에 대한 비난은 상대편에 대한 책임 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군비통제나 군비축소를 위한 국가간 협상에 기대하기에 앞서 한국에서부터 반전반핵 평화운동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의 돌파구를 열어야 할 것이다. 최근 6자회담 2․13 합의는 발표되자마자 초기 이행조치가 미궁에 빠졌고, 협정 구조의 근본적 불안정성 때문에 그 누구도 장래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우선적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무현정부의 모든 군사주의적 노선을 반대하고, 남한에서부터 전쟁유발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을 펼쳐나가자. 최근 노무현정부는 주한미군 재배치(한강 이남으로 이전)와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허용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쟁 개시 가능성을 더 높이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노무현정부는 이지스함,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도입함으로써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암묵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노무현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빌미로 한국의 무기증강을 시도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 모든 움직임이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고 전쟁의 실행 가능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주둔미군의 철수, 호전적 한미동맹의 해소, 한반도 군비감축을 통해 전쟁유발요인을 남한에서부터 제거하는 것이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그것은 적대국이나 경쟁국이 ‘먼저 해야 한다’ 또는 ‘동시에 해야 한다’는 세력균형 논리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남한에서부터 일방적인 군비축소와 전쟁태세 해소가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의 이상을 확실하게 천명하자.

 둘째, 핵무기에 대한 숭배나 무감각을 깨고, 핵무기주의에 철저히 반대하자. 2005년 8월 미국의 핵폭격 5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가 해외기관과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남한의 핵문제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그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일본의 86%, 독일의 93%가 핵보유에 대해 반대의견을 피력했지만, 한국은 52%가 핵보유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 40대 응답자들은 20대나 50대 이상에 비해 한국의 핵무기 보유 찬성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각각 58.5%, 58.7%, 46%, 46.35%),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비율도 더 높았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 이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비율은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흐름은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의 핵보유가 궁극적으로 ‘통일한국’의 핵보유로 이어져서 동아시아에서 일본, 중국과의 핵무기 경쟁에서 한국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대중적 환상이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 한국, 일본, 중국 각국별로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적으로 증폭되고 있으며, 이는 각국에서 호전적,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를 크게 자극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기류는 동아시아의 핵무장화에 크나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핵무기주의는 민중에 대한 절대적 파괴와 절대적인 정치적 소외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하자.


우리는 바로 지금도 핵전쟁은 진화하고 있으며, 현재의 시점이 과거 냉전 시기보다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더 적다고 낙관할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다. 반면 반전반핵 평화운동이 대중운동으로 펼쳐져야 한다는 요청은 너무나 긴급하다고 주장하고자 했다. 오늘 반전반핵평화 동아시아국제회의를 지지하고, 참여한 모든 분들이 이러한 우리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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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핵 위기에 대한 역사적 고찰

수열 (사회진보연대)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과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 실험에 뒤이어 마침내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후 2007년 2월 5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선언 초기이행조치(2․13합의)’가 이루어지면서 한반도 핵 위기는 극적 타결을 맞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2․13합의에서 약속한 초기단계 60일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BDA 동결 자금 문제에 발이 묶여 2․13합의의 실질적인 진전은 전혀 보이질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핵 실험을 계기로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과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있으며 동시에 동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핵확산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제 한반도의 핵 위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1945년 미국의 핵 투하로 시작된 세계적 핵 경쟁은 1970년에 체결된 UN의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통해 타협점을 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1974년 인도의 핵실험은 ‘핵의 평화적 이용’(핵발전)이 핵무기로 전환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980년대 미국이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하면서 ‘우주 핵전쟁’이라는 새로운 위험이 대두했고, 소련은 감당할 수 없는 핵경쟁의 수렁에서 침몰했다. 소련의 붕괴 이후 핵무기와 절멸주의의 위험은 인류의 역사에서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떠올랐다. 하지만 15년 이상이 지난 현재의 세계는 어떤가? 1995년 NPT의 무기한 연장이 결정되고 1996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 채택되면서 핵무장에 대한 제한은 강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실이 그러한가? NPT가 허용한 핵의 평화적 이용을 핵무장으로 전환하려는 현실적·잠재적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NPT 체제로는 세계적 핵확산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핵보유국의 핵위협과 핵공격을 막을 수 없으며, 비보유국의 ‘국가주권’에 대한 요구와 항상 충돌하고 핵개발 욕구를 자극할 뿐이다.


 NPT나 핵 확산 금지가 핵 패권을 위한 제국주의적 논리의 연장이라면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우리는 20세기를 지배했던 핵 숭배사상과 미소의 핵 군비 확대와 대결했던 반핵평화운동에서 교훈과 지향을 끌어와야 한다.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별이 무의미해지고 모든 민중이 절멸의 목표물이 되는 핵전쟁에서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핵평화운동은 '핵보유가 전쟁을 막는다'는 군사적 세력균형의 논리를 거부하고, 핵보유 그 자체가 전쟁유발요인이라는 사실을 운동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1. 한반도 위기의 고유성과 현재성


1) 냉전 체제와 한반도

미소 양 진영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화된 한국전쟁 이후 동아시아는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냉전 체제가 꼭 필요했던 미국에 의해 일본의 전후 부흥을 전면으로 하는 냉전 쇼윈도우의 혜택이 한반도에 부과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정치․군사적인 고립을 조장하는 한편, 남한에 대한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지속하고 동아시아에서 미군 기지를 영속화하면서 자신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 결과 남북의 경제적 격차는 늘어갔지만, 국가 간 체계의 불안정성은 항구적인 것이 되었다.


2) 국가 간 체계의 변화와 미국의 세계 전략

미국의 전면적인 개입전략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한계에 이른다. 결국 미국은 1969년 ‘닉슨독트린’을 통해 주요 지역에 하위 파트너를 육성하는 간접적 관리방식으로 세계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그러나 하위 파트너들과 제3세계에 대한 미소의 무장 지원이 반주변 국가들의 군사적 자급자족을 향한 열망과 섞이면서 지역 차원의 군사화가 급증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미소 헤게모니에 균열이 생긴 후 안보위협을 느낀 지역 국가들에서 한층 강화된다.

냉전 체제의 붕괴 이후 중간 규모의 군사력을 갖춘 국가들이 미국의 위협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고, 미국은 각지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할 새로운 세계 전략의 틀이 필요했다. 유럽의 군사력 확장을 조기에 제어하고 국지적 위협세력의 급증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 확장을 지속하게 되고, 미국과 여타 국가들의 군사력 차이는 더욱 확대된다.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구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 지역강국으로의 성장이 분명한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미국은 동아시아(특히 한반도) 주둔미군의 영향력을 줄일 수 없었다. 미국은 현상 유지를 선택, 남북한 ‘교차승인’을 거부하게 된다. 정상국가의 지위를 요구하는 북한과 한반도에서 자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미국 사이의 갈등이 상수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3) 무장한 세계화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통해 물질적 팽창을 해오던 미국 법인자본주의가 1970년 이윤율의 저하로 인해 급격히 정체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적 팽창이 시도된다. 198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는 자본의 흐름을 급격히 역전시켰다. 1980년대 이후 세계의 자본은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으로 다시 집중되었고, 그 결과 세계 여타 지역에서는 오랜 경기침체가 나타난다.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신흥시장만을 포섭하고 다른 지역은 배제하기 때문에, 냉전 이후 국가 체계의 불안정성은 더욱 확대되었다. 지역적 긴장과 위기도 더불어 확대되는데, 미국은 도리어 예방을 구실로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게 된다. 2000년 6월 발표된 미국 국익위원회의 보고서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문제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방어’를 꼽고 있다. 이는 안보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제까지 국가 안보는 국가 영토의 불가침을 의미했는데, 이제는 세계적 축적 시스템을 보호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화한다.

이렇듯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해 가속된 세계 질서의 해체를 관리하고 지역 강국의 등장을 제어하기 위해 미국은 자국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부르고 있다.


2.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 선제공격 전략과 핵우산 정책


1) 대량적 보복전략 (1950년대)

 ․핵 독점 혹은 압도적인 우위 아래 사회주의 진영 봉쇄, 군사동맹 확대.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어떤 재래식 공격에도 핵으로 맞서겠다는 ‘비대칭적인 핵선제 공격’ 전략.

 ․280mm 핵포탄 및 핵탄두가 탑재된 어니스트 존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1958). 마타도어 핵 탑재순항미사일 공군대대 상주(1959). 특히 마타도어 핵 순항미사일은 중국과 소련도 목표.

 ․1960년대까지 개전초기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 방위전략.


2) 공멸보장 & 유연대응 (1960년대)

 ․소련 핵공격역량 성장.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 - 대량 핵 보복공격으로 위협함으로써 상대방의 핵무기 선제사용을 억지하자는 전략. 이는 2차 공격능력(공격을 받고도 핵 반격의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는 것)에 의해 보증. 따라서 미국은 2차 공격능력을 보증하기 위해 핵무기 숫자의 확대, 핵무기체계의 다변화 시도. 이것이 이른바 ‘핵 억지론’의 주요 골자.1)

 ․미국본토가 아닌 경우 대량적 보복전략 유지. 이후 제한핵전쟁론으로 진화.

 ․한반도에 사정거리 1,800km인 메이스(Mace) 배치(1961). 원자파괴탄․핵지뢰배치(1964).

 ․이와 함께 게릴라전 혹은 내전(혁명)에 대한 대응으로서 재래식 무장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


3) 유연대응 핵전략 & 제한 핵전쟁론 (1970년대)

 ․제한된 핵공격에 대해서는 대규모 핵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제한적인 핵으로 대응. 국지적 분쟁에서 ‘핵 유연 대응’ MAD의 보충.

 ․군사력파괴전략. 핵무기체계의 정교한 기술적 진보를 상징.

 ․북의 견고한 지하시설에 핵무기 등으로 공격을 퍼붓는 공지전(AirLand Battle) 계획 수립. 한미 가상핵공격 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매년 실시. 이때, 핵 적재가 가능한 랜스 미사일 배치.

 ․남한 박정희 정권의 독자적인 핵개발 정책을 막기 위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공식적 으로 천명. 한국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특히, 미사일)를 전폭적으로 지원.


4) 보복능력 확보전략 (1980년대)

 ․제한핵전쟁론 유지.

 ․미소 중거리핵미사일 폐기.

 ․미국 해양 전략 강화. 동아시아에서 토마호크 미사일 증대, 원자력 잠수함과 핵 항공모함의 한국과일본의 기항횟수 급증.

 ․전략방위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 - 우주배치 탄도탄 요격시스템을 통해 소련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한다는 구상. 기술적 한계와 막대한 재정소요로 지지부진.


5) 핵전략 유지 및 비확산정책 (1990년대)

 ․이라크, 북한 등을 적국으로 삼아 냉전 이후 패권유지 전략 모색. 이들 국가의 핵개발 의혹 제기.

 ․부시, 지상 및 해상 및 전술핵 전면 폐기를 선언(1991.9).

  - 전술핵무기의 유용성 상실. 중강도 전략에는 적절하지 않고 첨단 과학에 힘입은 재래식 무기의 위력과 경제성이 전술핵무기를 대신할 수 있는 상황. (1차 이라크 전쟁에서 확인)

  - 핵무기 수평적 확산 제어. 지역 강국의 핵개발 가능성 상승. 수평적 확산을 막기 위해 정치적․도덕적 명분을 축적하기 위함.

  - 전략폭격기용 전술핵무기와 전략핵무기는 그대로 유지. 한반도 핵우산 정책 역시 그대로 유지. 이에 따라 한미, 주한미군 전술 핵무기 전면 철수 합의(1991.10)

 ․남북,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1992.1) - ‘남과 북은 핵무기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않는다.’,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한다.’,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가 주요 골자. 부시의 전술핵 전면폐기에 따른 후속조치의성격이 강함.

 ․전역미사일방어망(TMD, Theater Missile Defense) / 미국본토미사일방어망(NMD, National Missile Defense) : 1993년 SDI 구상을 전면 중단하고 TMD 추진. 1998년 북한의 대포동미사일 시험발사를 계기로 미․일 TMD 연구협력 양해각서 체결.


6) 핵 선제공격, 핵사용의지 확대 (2000년대)

 ․2001년 2차 핵태세보고서(NPR) - 미국은 이 보고서에서 “통상적인 무기로는 파괴할 수 없는 목표물의 파괴”,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공격에 의한 보복”, “기타 불시의 군사사태” 등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크게 확장. 또한 중국․러시아․이라크․이란․북한․리비아․시리아에 대한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천명한 뒤, 정밀타격능력 강화, 정보수집능력 확대, 전천후․전지형 장거리 타격 수단 확보, 새로운 유도 타격무기 개발과 같은 핵군사력 개편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 미국이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무기’보다는 ‘실제로 사용가능한 무기’로서 핵무장을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구상.

 ․미사일 방어망 MD(Missile Defense) - 방어대상을 우방국까지 확대. 지상 및 해상 요격 시 항공기 이용을 가미, 중간단계 뿐만 아니라 초기 발사단계까지 포함하는 다층적 요격체제 구축이 목표. 이를 위해 2002년 6월 ABM 협정에서 탈퇴. 한국정부 역시 암묵적으로 MD 참여.


3. 남한의 핵 열망과 북한의 핵개발2)


1) 남한의 원자력 발전과 핵 개발

 남한은 1971년 웨스팅하우스社의 일괄수주로 고리 1호기를 건설한 이래 고리, 월성, 영광, 울진에 18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체 전력의 40% 정도를 충당하고 있다.

1973년 3월 장거리지대지 미사일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플루토늄을 얻기 위해 프랑스 SGN社의 재처리 시설과 캐나다의 NRX형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1974년 인도의 핵폭발 실험 이후 핵 확산을 철저히 경계하던 미국 정부의 압력으로 중단되었다.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을 비준하지만, 1976년 ‘국산 핵연료 개발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1982년 TRIGA MarkⅢ 연구용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우라늄 혼합물을 추출하고, 같은 해 생산한 금속 우라늄(150kg) 중 일부(3.5kg)을 이용하여 2000년에 평균농축도 10%의 농축우라늄(0.2g)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3)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핵 발전량이 많은 나라이다. 국내에는 이미 고리, 월성, 영광, 울진에 18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고 전체 전력의 40% 정도를 충당하고 있다(1,572만kW 용량). 더욱이 울진에 2기(200만kW)의 핵발전소가 추가로 더 건설되고 있으며 2015년까지 8기(960만kW)의 추가 건설이 계획 중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까지 한국은 총 36기, 2,732만kW 용량의 핵발전소가 가동될 것이다. 또한 동일한 부지에 최고 12∼10기의 핵발전소가 동시에 가동되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대 용량, 최다 기수의 핵단지가 조성될 것이다. 핵 발전은 저렴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으며 인류와 생태계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핵물질과 핵기술 자체가 평화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으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전 용도를 위해 사용되고 나온 사용 후 핵연료는 재처리를 통해 언제든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 특히 캐나다형 중수로 원자로는 경수로 원자로에 비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법이 용이하다. 국내 원자로 가운데 월성의 4개 원자로가 캐나다형이다. 이는 1974년 인도의 핵무기 개발을 가능하게 했던 원자로와 같은 유형이다.


2) 1차 북핵 위기

 북한은 1985년 NPT 가입하고 6년 만인 1992년 IAEA 안전협정에 서명한 이후 IAEA 사찰을 진행했다. 북한은 90g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IAEA는 (미국 정보기관이 제공한 정보에 근거해) 플루토늄 생산량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것이 이른바 ‘1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었다.

 IAEA는 특별 사찰을 요구했는데, 북한은 IAEA 정보 근거의 부적절성과 1993년 1월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에 항의하며 1993년 5월 NPT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을 진행하면서 북한은 NPT 탈퇴를 유보하고 미국은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두 번째 북미 고위급 회담에 즈음하여 유엔안보리 대북결의안 채택 여부를 놓고 격렬한 대립(1994년 3월)이 벌어진다. 한국과 미국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기로 합의하자 북한은 NPT 탈퇴를 강행하겠다고 경고했다. 북미간의 대화에 진전이 없자 북한은 5MW 원자로에서 8천개의 폐연료봉을 추출(1994년 5월)했다. 이에 IAEA는 대북 제재안을 결의(1994년 6월)하자 북한은 IAEA 공식 탈퇴를 선언하게 된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1994년 6월)하면서 사태는 해결 국면에 접어드는 것으로 보였다.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 합의서’를 체결하게 되는데, 주요 내용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동결과 NPT에 규정된 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은 200만 kW급 경수로를 건설하고, 경수로 건설 전까지 난방용 중유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양국은 완전한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며, 미국은 핵무기로 북한을 위협하거나 공격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것까지 서약하게 된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의 내용이 알려지자 미국 내에서 격렬한 비판들이 쏟아졌고, 미국은 제네바 합의 이행을 유보하고, 경수로 건설 역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었다.

1998년 8월 북한이 인공위성을 보내기 위한 3단계 로켓을 발사하게 되면서, 미국은 미사일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게 된다.4)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뒤 2000년 10월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하여 클린턴과 ‘그 어느 정부도 상대방에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북미 공동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이때 북한은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 원조를 받고 장거리 미사일을 규제하는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에 가입하여 미국이 추가적으로 제시했던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다시 일본을 향해 배치된 100여기의 노동미사일을 문제 삼아 방북을 취소하였고, 합의는 파기되었다.


3) 2차 북핵 위기

 제네바 합의 이행(2003년)을 앞두고 북한은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 손실 문제를 제기했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 대화 재개를 선언했지만, ‘제네바 합의에 담긴 핵 비확산의 이정표가 연기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경수로 건설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2단계 사찰활동은 합의대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 규정했는데, 이는 북한이 군사적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는 것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핵 태세 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에 반발하면서 미국과의 모든 협의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우랴늄 프로그램(HEU)을 재개했는지 여부를 추궁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미국의 안전 보장과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일괄 타결하자는 대담한 제안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이로써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었다. 2002년 11월 미국은 중유 공급 중단을 선언했고, 2002년 12월에 KEDO가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2002년 12월 북한은 봉인되었던 영변 핵시설의 재건설 및 재가동을 선언하면서 IAEA 사찰단을 추방했다. 급기야 2003년 1월 NPT 탈퇴를 선언하고, 이에 대해 미국이 군사적 행동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사태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2003년 8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진행된 4차례의 6자 회담은 북한과 미국 간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미국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핵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북한은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을 구분하여 군사적 핵무기 계획만을 폐기하겠다고 답했다. 4차 6자 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은 사실상 ‘말대 말’ 수준의 합의에 불과하며, 북한의 의무는 명시된 것에 비해 미국의 반대급부는 모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후 회담일정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애매하고 모호. 이런 의미에서 상호 의무와 관계 정상화를 명시하고 있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4차 회담이 막바지 시점이던 9월 15일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 아시아(BDA) 은행을 ‘자금세탁우려’ 기관으로 지정하면서 ‘대북 금융제재’를 시작했고, 이는 북미대결의 최전선이 되었다.


4) 북한 핵실험

한반도에서 핵 경쟁이 본격화된 데에는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며, 끊임없이 원인을 제공하였음은 분명하다. 미국은 1991년 전술핵무기 폐기를 선언하고는 연이어 한반도 비핵화선언(1992년)까지 이끌어냈지만, 이는 핵확산을 줄이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이 약속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 불사용은 그자체로 믿을 수 없는 모순적인 것이었는데,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핵우산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국가 간 위계를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중핵이라고 할 때, 북한의 안정보장은 사실상 처음부터 거절당했던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외교정책이 ‘접촉’으로 바뀌건, 악의적인 ‘무시’로 바뀌었건 사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더구나 미국이 2차 핵태세보고서에서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북한 등 핵 비보유국에 대한 핵 선제공격까지 천명한 상황이라면 이후 전개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2005년 핵보유를 선언한 이래 북한은 이를 구체화 2006년 10월 9일 핵실험 단행하게 된다.


4. 북한 핵실험의 세계사적 의미: NPT체제의 몰락


 애당초 새로운 핵경쟁의 출현 위험은 이미 197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핵 개발은 손쉽게 핵무기 제조기술로 전화될 수 있었고, 국가 간 체계의 불평등성이 핵무기로 공고화된 상황에서 지역강국으로의 도전을 꿈꾸는 국가에게는 핵무기 보유가 무엇보다도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닉슨독트린이 이후 자신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국가의 생존전략이 확대되고 지역차원의 군사화가 진행되면서 핵보유 열망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미국과 소련 등 기존 핵보유국들은 핵확산을 제어하고자 평화적 목적의 핵기술을 보장하면서도 비핵국가들의 핵무기 보유 열망을 포기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되는데, UN의 권위아래 ‘국제적이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을 통해 핵확산을 금지하는 조약(NPT,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이 바로 그것이다. 핵보유국들의 핵독점으로 핵확산을 막는다는 것이 NPT체제를 통한 핵확산 방지의 요체지만 NPT체제는 핵보유국의 수직적 핵확산, 즉 핵무기의 질적 개량에는 UN이 아무런 제어를 할 수 없고, 오로지 핵비보유국에 한해서만 UN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 IAEA)가 ‘포괄적인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불평등한 조약(심지어는 의결에서조차 핵보유 5개국은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이다. 또한 핵보유국의 핵비보유국에 대한 소극적인 안전보장 즉, 선제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것이어서 NPT체제는 처음부터 불안정한 것이다.

 NPT체제 하에서도 이스라엘, 인도․파키스탄, 이란․이라크, 남아공, 브라질, 한국․북한 등에서 핵보유 시도들은 계속 확대되었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이런 시도를 중단한 나라도 있었지만 핵 비보유국의 핵보유 열망은 중단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5년 25년의 시효를 가지고 있었던 NPT체제가 시효 만료될 처지에 이르게 되자 한반도에서 전개된 ‘1차 북핵 위기’를 제네바합의로 봉합하고, 비핵보유국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핵보유국들은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Comprehensive Test Ban Treaty)를 체결했는데, 이런 상황을 지렛대 삼아 1995년에 열린 NPT 5차 평가회의는 NPT체제를 무기한 연장했다.


 그러나 수직적 핵확산을 중단하기 위한 핵보유국들의 이행은 지지부진했다. 1999년 미국은 CTBT에 대한 국회비준을 거부하였고, 2002년에는 미사일방어망 개발을 위해 탄도탄요격미사일(ABM, Anti-Ballistic Missile)협정을 파기하더니 2003년에는 소형핵무기의 연구개발을 금지해 온 '스프랫페이스' 조항마저 폐지했다.

심지어 지난해 있었던 NPT 6차 평가회의에서 미국은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국가의 농축 및 재처리를 아예 불허하자고 주장했다. NPT체제를 뒷받침해주는 ‘소극적 안전보장’도 휴지조각이 난 마당에 이제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마저도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핵비보유국들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미국의 핵태세를 비난하였고, 이에 따라 NPT 6차 회의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바로 이어 2006년 이란의 핵보유 시도가 가시화되고, 북한은 핵실험을 실시했다.


 미국 자신에 의해서건 새로운 핵보유국의 탄생에 의해서건 NPT체제는 이제 사실상 자신의 역사적 운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핵보유국들은 NPT체제를 통해 핵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했고 또 여전히 그렇다고 주장할 테지만, 현실의 역사는 NPT체제가 핵보유국들에 의한 수직적 확산은 물론이거니와 핵보유국 확대라는 수평적 확산 역시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것의 궁극적 원인은 핵보유국들(특히 미국)의 핵독점 노력이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국가 간 불평등을 보증하는 이상 핵 독점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핵확산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보유국의 핵독점에 의존하는 NPT체제는 핵확산을 막을 수 있는 국제기구로서 유효한 틀이 될 수 없다. 이 말은 동시에 UN 역시 핵확산을 중지할 수 있는 어떠한 유효한 힘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UN의 권위에 근거한 핵확산 방지 노력 역시 NPT체제의 실효성이 붕괴된 것과 동시에 유의미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5. 오늘날의 전쟁과 반전평화운동


1) 냉전 해체 이후 전쟁의 양상

․1차 미국․이라크 전쟁(1991-92년), 1차 유고슬라비아 전쟁 - 세르비아 보스니아 전쟁(1995년), 2차 유고슬라비아 전쟁 - 세르비아 코소보 전쟁(1999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2차 미국․이라크 전쟁 (2003년).


 이들 전쟁은 과거 영국헤게모니 시절 식민지점령전쟁처럼 영토 확장을 목표로 한 전쟁도 아니며, 그렇다고 1차 세계대전처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도 아니다. 또한 냉전시대 흔히 볼 수 있었던 냉전의 전선(반공주의의 확산)을 지키기 위한 전쟁도 아니다. 1990년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냉전이라는 군사적 대립이 해체된 이래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전쟁의 위협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1991년 1차 미국․이라크 전쟁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는 다시금 전쟁과 폭력의 확산이라는 ‘세계적 무질서’의 증대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빠졌다. 주요 양상은 첫째, 전쟁이 중심국이 아닌 주변부에서 발발하고 있으며, 둘째, 주변부간의 전쟁은 ‘인종청소’로 상징될 만큼 종족말살․여성말살이라는 인종주의적 실천을 동반하는 절멸적인 양상을 띠고 있으며, 중심부-주변부의 전쟁은 전쟁을 주도하는 측에게는 전쟁의 피해가 상당부분 ‘가상적’이지만, 피해지역에서는 ‘전면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동시에 후자의 전쟁 역시 주변부간의 전쟁을 닮아가고 있다.


2) 민중의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

 북한이 되었건 다른 어느 나라가 되었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핵무기와 같은 절멸의 무기 개발과 군사력 경쟁이 촉발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을 고립․봉쇄하고자 한 미국의 호전적 대외 전략이며, 핵 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란 미명으로 민중을 기만하는 NPT 체제의 한계다. 이 속에서 6자회담과 같은 국가 간의 외교협상 틀은 표출된 갈등을 일시적으로 ‘관리’할 뿐이며, 미국의 일방적이고 호전적인 대외 전략이 계속되는 한 동아시아는 언제나 전쟁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최근 진행된 한미전시증원연습(RSOI)이나 한미기동훈련(Foal Eagle), 베트남 전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올 여름의 태평양 군사 훈련 등은 미국의 호전적 군사 전략이 결코 변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세계화는 민중의 안전과 평화를 파괴할 뿐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레바논 파병에 이르기까지 남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을 보조하고 미국의 패권 전략에 봉사할 뿐 민중의 평화적 생존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철저하게 짓밟았고, 이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야만과 전쟁의 폭력으로 점철되고 있다.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동북아시아 주변 국가들은 군사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정한 국가의 군사력 확장은 지배계급이 공포를 확산시키고 군비 경쟁의 악순환 구조에 주저 없이 뛰어들 수 있게 하는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외교 협상의 진전과 2․13합의 이행을 기다리는 것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는 보장되지 않는다. 자주국방이라는 명목 아래 추진되고 있는 한국군 군사력 증강 시도에서부터 주한미군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미군 재배치 문제 등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직접 행동이 절실한 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