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핵보유 선언 사태와 관련,
본조직 임필수 정책국장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과
이전에 기관지에 발표된 글들을 다시 정리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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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북한 외무성 이름으로 발표된 '핵보유선언' 성명은 앞으로 정세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원래 성명서에는 제목이 붙어있지 않으나 언론에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나 봅니다).

이 문제에 관해 몇 가지 단상을 적어봅니다.


1. 북한 외교부 성명의 '비가역성'

이번 성명을 두고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미국이 기존의 대북 강경책을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며 또한 일본이 '가짜 유골' 문제를 제기하며 대북 여론을 점점 더 악화시키려는 의지가 분명하므로 북한이 6자회담의 또 다른 참가국인 중국과 남한의 선택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한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견이 대체로 지배적인 듯하더군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번 사건을 단순히 기존에 북한이 구사했던 외교술의 연장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그동안 북한의 핵보유 사실이 언론을 달구게 되었던 몇 번의 계기는 주로 비공개회담 자리에서 북한의 관리가 "핵무기를 가지게 되어 있다",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 등 어느 정도 '알쏭달쏭'한 발언을 통해서였다면, 이번에는 외무성의 공식성명을 통해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핵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대책을 취할 것이다'라고 매우 명시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일 듯합니다.

또한 이번에 '6자회담의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것은 재참여를 결정할 만큼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분명한 명분이나 실효성 있는 반대급부가 제시되어야만 새로운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재참여가 이루어지려면 기나긴 굴곡을 거쳐야 할 것이 분명하고, 그 결과는 대화의 완전한 중단이나 아예 새로운 협상 틀의 대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을 듯합니다.

두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이번 북한의 성명은 한반도의 상황이 '비가역적'인 과정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2. 북한의 '로드맵'은?

그런데 언론에서 미국, 일본, 한국, 중국의 향후 움직임에 대해서는 전망이나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북한의 움직임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더군요. 저는 이 문제에 관하여 그냥 퍼뜩 떠오르는 사건은 1998년의 광명성2호(또는 대포동미사일) 발사 실험이었습니다만... (당시에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하고 종합적인 대북정책 조정을 위한 보고서 작성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만...) 북한이 '외교적' 수단이 더 이상 통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혹시 과거와 유사한 방식을 반복하지는 않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3. 북한 핵과 핵무기주의

한편 북한의 '핵보유선언'은 또 다른 방향에서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대중적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운동권 내에서 직접적인 논쟁을 낳을 것입니다). 바로 '핵무기주의'에 대한 찬반양론이겠지요.

북한의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의 공격적 핵무기주의에 대항하는) '자위수단으로서 불가피하다', 또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불변이며, 북한의 핵무기는 오히려 비핵화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라는 입장이 바로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관해 2년 전쯤에 <사회화와 노동>에서 이처럼 북한이 잠재적인 핵능력을 실제로 핵무기화로 현실화하는 것에 대해

"현재 부시 정부는 '반테러전쟁'을 거치며 "매파 개입"(hawk engagement)으로 노선을 전환하는 중이다. 북한과의 갈등을 유발해 북한의 "정신적 타락"을 부추기고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잠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이 취하는 방식을 모방하여 군사적 대결구도를 증폭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크게 높일 뿐만 아니라, 북한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경쟁의 회오리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전쟁을 거쳐 50여년간 한반도에서 핵무기 위협을 가한 미국의 정당성을 그 아래로부터 허무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고 썼습니다만...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토론을 하려면 몇 가지 논점이 더 추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1) 방어적(또는 억제적) 핵무기 전략이 성립 가능한 것인가? 또는 핵무기주의를 공격적/방어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과거 1970-80년대 유럽의 반핵평화운동이 재활성화되면서 유럽의 공산당들의 태도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던 것과 유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프랑스 공산당은 미국의 핵무기와 핵전략은 비판하면서 소련의 핵무기/핵전략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결국에는 자국의 핵무기/핵전략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귀결된 바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반핵평화운동은 핵숭배의 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핵무기주의는 공격주의/방어주의의 차원으로 분류될 수 없는 '절멸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대항폭력'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핵무기주의에 입각한 군사전략을 무어라 포장하건 간에 '상호공멸보장'이나 '적국의 핵능력의 초토화'(양자 모두 인민의 초토화)에 기반한 것이므로 극단적인 공격주의가 핵숭배의 핵심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만...

그렇다면 북한의 핵은 이러한 '절멸주의'라는 잣대의 예외가 될 수 있을까요?

2) '비핵화를 위한 핵보유'는 성립 가능한 주장인가?

이에 관해서는 현재 북한이 탈퇴한 핵확산금지조약(NPT)가 내건 목표도 '궁극적인 비핵화'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핵무기보유국은 비핵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는 말입니다. 말과 행동은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는 전래의 격언을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4. 몇 가지 자료들

마지막으로, 이 문제에 관해 참조할만한 자료들을 일단 예전에 사회진보연대 기관지나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압축파일로 묶어서 올립니다.

1) 한반도와 미국 핵무기 위협의 현재성: 미국의 핵선제공격 옵션은 NPT와 제네바합의를 위협한다
(2002년 11월 작성)
- 이 글은 미국의 공격적인 핵무기주의와 NPT체제의 기만성을 주로 다루면서, 이러한 기성이 북한이나 다른 여러 나라들의 핵개발 욕구를 강하게 자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 에티엔 발리바르, 평화를 향한 대장정 (* 번역: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 이 글은 1970-80년대 유럽의 반핵평화운동의 주요 쟁점을 다루면서, 프랑스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적 불균형을 지적하고, 기술관료들에게 독점된 외교.안보 이슈에 대한 대중정치토론 문화를 재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3) 군사화된 세계와 동북아에서의 미사일 경쟁
(1998년 10월 21일 작성)
- 이 글은 1998년 북한의 대포동미사일 발사실험을 계기로, 역으로 남한의 미사일 개발과 핵 개발 역사를 살펴보면서 동북아의 (핵)미사일경쟁이 상호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4) NMD, '승리하는 핵전쟁'으로의 진보?
(2000년 9월 18일 작성)
- 이 글은 당시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NMD/TMD가 언론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히도 미국의 핵무기 전략 확대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5) 미국의 핵전력: <핵태세보고서> 분석
- 이 글은 부시 정부가 냉전의 해체 이후에도 어떻게 핵무기체제와 핵전략을 발전시키고 있는가, 나아가 실전에 활용가능한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는가를 분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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