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편집부장 정희찬입니다. 어제 참석했던 '북한인권' 워크샵 자료를 올립니다.

어제 워크샵에 대해 한겨레는 『진보권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면서 보수권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한 북한 인권 문제 논의에 균형과 깊이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북 인권 문제의 대안적 접근을 위한 선언문’에서 “남과 북 인권의 상호 증진을 위해 남과 북의 인권 주체들이 만나 ‘인권 대화’를 시작하기를 희망한다”며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현재 북 인권을 둘러싸고 흑백 논리로 치닫고 있는 대결구도를 극복하고 남-북의 인권 문제에 대한 대안적 논의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라고 보도를 하고 있네요.

그런데 발제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생각은 보도된 것과는 좀 다릅니다(아마 워크샵 전반적인 분위기나 워크샵의 제안배경을 기사에 반영한 것이겠지요). 사회진보연대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제안해서 워크샵에서 발제를 하게 되었는데 <선언문>에 대한 연명 여부를 참석자들에게 돌리는 과정에서 저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발제자 중에 서명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인권은 해방이나 민주주의와 다르지 않은 정치의 언어인데 이것의 전제는 정치의 주체, 저항주체의 형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인권'에 대해서도 사실 이러한 관점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사실 '인권적 개입'이나 대화와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이란 실은 네오콘의 '북한민주화'의 자유주의적 버젼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죠. 북한 내에서, 혹은 탈북자들 사이에서 국가-당에 종속되지 않는 자생적인 조직이 결성되는 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남과 북의 '인권주체' 들간의 대화란 불가능합니다. 해방이나 민주주의가 누구를 대신하거나 구호/원조의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데 남한의 운동진영이 '북한인권의 (평화적) 해결'을 자임할 자격이 있는가, 그 해결책을 내놓는 것은 상당히 오만한 태도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둘째, 만약 탈북자들이나 북한 내부에서 자생적인 조직들이 결성되고 인민들의 민주적 운동들이 개시되었을 때 대등한 주체들간의 수평적 연대의 관계맺음이 아니라면 현재 운동진영이 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체제의 위기와 그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비판적 평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근본적인 진단 없이 대책이나 (대안적)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많은 NGO들에게 보여지는 편향인 바, (한·미동맹을 전제하는) 남한정부나 (중심부 국가들의 침략을 사후승인하는) 유엔과의 파트너쉽 형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들과 단절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운동이 구호단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민중적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하는 것이죠. 섯부르게 '개입'을 전제하는 것은 단지 북한체제를 용인하는 가운데, 현상유지적인 대북유화정책(이는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의 하위범주이기 때문에 이는 지극히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구분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세째, 그렇다면 사회운동이 '북한인권'을 제기할 때는 '북한인권'을 별도의 항목으로 떼어놓고 분별적인 실천을 전제하기보다는 보편적인 권리들의 확장이라는 차원에서 남한을 관통하고 있는 투쟁 및 실천들과 연계하여 있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반미반전투쟁이라든가, 대안적 에너지를 위한 자본주의 산업체계에 대한 비판, 이주자들의 노동권과 거주이전의 자유 등등. 북한 체제의 위기는 그 내부의 저항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네오콘과 근본적인 쟁점은 북한 체제의 위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 내부의 인민의 저항주체 형성 여부를 둘러싼 것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인데요. 이 점을 간과한다면 단지 북한 인민에 대한 인도주의적/민족주의적 구호/원조라는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상이 <선언문>에 대해 지지하지 않은 저의 생각입니다만 아직 여러 가지로 불충분하고 잘못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사회진보연대 차원에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p.s. 참고로 <선언문>을 첨부합니다. 원래는 '발제자 선언'으로 제안된 것인데, 저처럼 판단을 유보하거나 충분히 연락이 되지 않아 "참가자 일동"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내용변화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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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권’워크샵 자료집 목차

1부. ‘북인권’ 문제의 대안적 접근방식 검토
‘북한인권’ 과 미국의 대북정책_정희찬(사회진보연대)
북한인권과 인권의 보편성_류은숙(인권운동사랑방 부설 인권운동연구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_정태욱(영남대 법학교수)

2부. 북사회와 에너지관리
북 사회의 전력난 비교분석 및 해결방안_이경호(전국전력노조 대외협력국장)
북한 에너지 문제의 정책적 해결 방안 제안_이현민(부안시민발전소)

3부. 북이탈주민(탈북자) 인권
북 출신 이주자,그들은 누구이며 무엇이 문제인가?_김정아(인권운동사랑방)
유엔과 미국의 북한이탈주민 인권문제 해법의 비판적 고찰_조백기(찬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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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권’ 1차 워크샵 선언문

지난 11월 17일 EU가 발의한 ‘대북인권결의안’이 결국 유엔총회에서 통과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엔인권위원회는 그동안 이미 세 차례에 걸쳐 ‘대북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해 유엔인권위는 대북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이후 대북특별보고관을 임명하는 등 북 인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유엔인권위든, 유엔총회든 프랑스 이민자 사회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나 미국의 빈민 문제?인종차별 문제와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결의도 결정한 바는 없다.

북 인권에 대한 유엔의 ‘특별한 관심’은 ‘정치적 공세’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실제로 북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유엔의 다른 활동과는 별도로 유엔인권위나 유엔총회의 결의안은 북 인권 개선을 실질적으로 지원하지 못한다. 북 역시 그동안 유엔인권위의 대북인권결의안에 반발해왔고 이번 유엔총회의 대북인권결의안에도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 같은 국제 사회에서의 ‘망신주기(naming and shaming)’는 ‘인권’의 이름을 빙자한 정치적 공세일 뿐이다.

북은 그동안 유엔의 권고에 발맞추어 꾸준히 국제 인권 기준에 맞추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가장 시급하게 식량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사회의 식량 지원을 통한 유엔 기구와의 협력을 유지해왔고, 형법 개정을 통해 사형의 조건을 엄격히 하고 죄형법정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 사회는 다른 체제의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적 기반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다른 철학적 기반은 다른 개념과 논리를 낳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로 발달해온 인권의 개념과 논리가 사회주의 사회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는 조건이 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개념과 논리를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의 개념과 논리를 맞추어 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북 사회에도 인권침해가 존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최근의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는 바로 식량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생존권 침해였다. 다른 인권침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국제 사회의 어떤 나라에서도 인권침해가 보편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해왔다. 북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가 북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국가 일반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인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 정부도 좀더 투명하게 북 사회의 상황을 밝힐 필요가 있다. 그것이 북 체제를 위협하는 외부 요소들의 제거와 동시에 진행되어야함은 물론이다.
미국을 선두로 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북 체제를 위협해왔다. 미국 의회를 통과한 ‘북인권법’은 북 체제 붕괴의 의도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남쪽에서는 매년 한-미 합동 군사작전으로 대북 선제공격이 가능한 군사훈련을 해온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바야흐로 북과 중국을 겨냥하는 미국의 위협이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에게 실질적인 체제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인권적 ‘개입’과 ‘체제 위협’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된다. 경제 봉쇄, 북 체제에 대한 외부의 위협은 북의 인권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명백한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 북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북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격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북에 대한 국제 사회의 위협은 우리의 평화적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평화적 생존권은 다른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남과 북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남과 북이 긴밀한 협조 하에 상호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남과 북 인권의 상호 증진을 위해 남과 북의 인권 주체들이 만나 ‘인권 대화’를 시작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현재 ‘북인권’을 둘러싸고 흑백 논리로 치닫고 있는 논의 지형을 극복하고 남-북의 실질적인 인권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에 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상호 인권의 증진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벌여나가는 것이 분단으로 인한 폐해를 줄여나가고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