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인터내셔널 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G8 정상회담 반대시위에 다녀와서
류미경(투자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 사무국)

"Assassini! Assassini!"(살인자들!)

드디어 시위 행렬을 만났다. 2001년 7월 20일, 제노바는 carabineraie라는 이탈리아의 전투경찰로 가득했다. 수십대의 검은색 차를 거리곳곳에 세워두고 힘을 준 눈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폈다. 골목을 통과하여 마침내 큰 길가로 들어섰을 때, 수 많은 군중들은 외치고 있었다. 'ASSASSINI!(살인자들!)' 방송차에서 행렬을 지휘하는 한 사람은 '지금의 사태에 대한 대응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광장으로 모이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향해 '지금 싸워야 한다. 앞으로 진격하자'라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었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을 예감했던지, 몇몇은 스폰지로 팔을 휘감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플라스틱 판으로 만든 방패를 들고 있었다. 옆의 한 사람을 붙잡고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겁니까?'라고 어렵사리 물었다.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새까만 carabineraie 무리들은 최루탄을 난사하며 시위행렬을 공격해왔다. 'Piano! Piano!(침착하게!)'라고 서로를 안심시키며 행렬은 조금씩 후퇴하기 시작했다. 잠시 골목으로 피해있다 다시 나와보니, 어느새 그 거리는 새까맣게 점령되었고, 20여명의 사람들이 머리에 손을 얹고 무릎을 꿇린 채 경찰들에게 포위되어 발길질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몰랐던 것이다. 방송차 위의 사람이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했던 그 사건이 경찰이 정확하게 머리를 겨냥하여 쏜 총에 맞은 한 청년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ASSASSINI'가 경찰의 폭력성에 항의하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살인자'를 지칭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숙소를 향해 걷던 도중에 인도위의 흥건한 선혈을 보고서도, 나와 함께 거리에 서 있던 누군가가 경찰의 총에 맞아 스러졌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우리가 총을 맞을 이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Don't owe! Won't pay!"(빚진게 없으니, 값지 않겠다)

제노바 소셜 포럼이 열리는 동안, 시내 곳곳의 벽면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었다. 더 이상의 남은 힘이 없이 갈비뼈가 앙상히 드러난 한 흑인 여성의 비쩍 마른 젖을, 포동포동 살찐 백인 사내아이가 빨고 있는 장면이었다. 한국의 수많은 민중들을 실업과 빈곤으로 내몰고 뒤이어 아르헨티나, 터키, 멕시코, 동남아시아를 또다시 강타하는 세계 경제의 위기에 아무런 해법이 되지 못하는 투기자본의 팽창을 위해, 남반구의 무수한 민중들이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질병을 치료하지도 못할만큼 '외채에 대한 이자'가 공공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오직 초국적자본의 무한한 이윤 창출을 위한 활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목표 아래, 남반구의 여성노동자들이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도 하루에 1달러도 채 안되는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서부터, 원주민들이 스스로 개발하여 수천년동안 전수해온 토착식물을 치료약으로 사용하는 지식을 '특허라는 제도로 수탈해가는 것까지 민중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파괴해버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실상을 이토록 적확하게 드러낼 수가 있을까?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인 7월 16일부터 해변에 설치된 천막에서는 '공공 포럼(Public forum)'이 진행되었다. 연일 열띤 토론이 계속되었고, 전세계에서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해갔다. 남반구를 중심으로 하는 외채거부운동 네트워크인 쥬빌리 사우스(Jubilee South)가 개최한 포럼에서는, 현재 남반구 국가가 지고 있는 모든 외채가 '불법적인 것'이고 그것을 상환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80년대, 1세계로부터(은행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남반구에 투여된 자금이 5670억 달러였고, 그것의 6배나 되는 3조 4500달러를 갚었음에도 불구하고, 2조700억달러를 여전히도 빚지고 있는 상황이 그 실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 IMF, 세계은행등의 초국적 기구들은 '빈곤감축'이라는 허울속에, 외채탕감의 조건으로 초국적 투기자본의 놀이터를 만드는 것에 다름아닌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노동자 민중의 생존은 파탄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리고는, G8 정상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자고 했다. "Don't owe! Won't pay!"(빚진게 없으니, 갚지 않겠다.)


"탕!탕! 우리는 당신들에게 총을 겨누는 것 말고는 할것이 없소."

제노바의 해변 한 구석에 호화유람선을 띄워놓고 호사스러움을 만끽하며, G8 정상들은 그 그림이 바로 이 행성의 현실임을 여지없이 증명해주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빈곤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빈국을 위한 세계화'를 이루어 내겠다고 소리높였다. 회담이 끝난 후 전세계의 빈곤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방안을 합의해냈다며 흐뭇해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은 결국 신자유주의 아래 죽어가고 있는 전세계의 민중을 철저히 배신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3세계의 외채로 인한 빈곤 문제에 대한 해법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가속화하고, 세계 무역질서로 편입하도록 하며, 초국적 자본의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삐풀린 투기자본의 활동무대를 극대화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더불어서, 실상은 초국적 제약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한 방안일 뿐인, 에이즈와 말라리아, 결핵의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로 연내에 13억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그 액수가 실제 에이즈 퇴치에 필요한 금액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300만이나 되는 아프리카의 환자들을 제끼고, 중심부 국가로 에이즈가 확산되지 않도록 '치료'가 '아닌 '예방'의 목적으로 사용하자는가 하면, 값싼 복제약품을 구입해서는 안되고 10배나 비싼 오리지날 약물만을 구입해야 한다는 주장들은 이를 확인시켜준다.
그들은 위기에 빠진 세계 경제에 대하여, 전세계 민중의 생존의 위기에 대하여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이다. 점점 거세어져 가는 민중의 분노에, 할수 있는 것이라곤 폭력으로 이를 꺾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회담장 근방을 비표를 소지한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Zona rossa(적색지대)로 설정하고, 주변을 방벽으로 둘러싸고 콘테이너 박스를 쌓아 도로를 차단하였으며, 지대공 미사일 부대를 비롯한 셀 수 없이 많은 병력을 대비시키는 등, 삶을 희망하는 전세계 민중을 향한 전쟁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폭력을 일삼는 시위대는 죽어도 마땅하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투자협정·WTO 반대 국민행동'은 주한 이탈리아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제노바에서의 살인만행에 대하여 항의하였다. 각종 살상무기를 소지한 수많의 경찰병력을 회담장 주변에 배치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진압을 자행하는 상황에서, 카를로 줄리아니라는 젊은이의 죽음은 결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예고된 것이었음을 주장했다. 또한, 살인만행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어 진행된 면담에 나선 카를로스 트레짜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그 젊은이의 죽음에 대해 이탈리아 정부는 이미 유감을 표시했다. 검찰이 조사를 진행중이고 지금으로써는 할말이 없다'는 어이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G8 정상들은 시위대들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논의했고, 특히 이탈리아 정부는 외채탕감을 발의하기까지 했는데, 왜 폭력진압만을 문제삼느냐? 폭력은 경찰이 아닌 시위대들이 저지른 것이다. 제노바의 절반을 파괴하고 100명이 넘는 경찰을 다치게 한 것은 바로 시위대이다.'라며 시위에 참석한 이들의 폭력성을 탓했다. 그의 주장과 일관되게, 언론은 제노바에서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폭도들의 난동'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카를로 줄리아니에 대해 '가출', '음주운전', '공무집행방해', '무정부주의자'라는 전력을 들먹이며 죽어 마땅한 자로 규정했다.

"투쟁만이 살 길이다!"
제노바에서 경찰의 살인적인 폭력이 계속된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있다. 독립미디어센터 사무실에 난입하여 몽둥이세례를 날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연행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 여권, 다이어리등을 압수했다고 하고, 500여명이 병원에 있고, 100여명이 실종되었으며, 경찰서 안에서 또한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제노바는 바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던 대우자동차의 노동자들이 피투성이가 되었던 부평이고,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효성의 노동자들이 식칼로 위협당하고 무참히 짖밞혔던 울산이며, 망치와 도끼를 든 경찰들이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레미콘 노동자들을 급습하였던 여의도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노동자 민중의 삶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미 그들은 전세계 민중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고 전쟁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