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신문에 실린 월든 벨로의 글입니다.


<G8 경찰폭력의 숨겨진 진실>



이탈리아 제노바는 사상 최대의 경찰폭력이 자행된 가장 큰 규모의 반세계화 시위가 열렸던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지난달 21일부터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8국(G8) 회의의 대안회의로 같은 장소에서 열린 `사회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제노바에 머물렀다. 이 포럼과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20만명이 제노바에 모여들었다.

21일 저녁 나는 사회포럼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한 건물에서 몇몇 언론사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 수십명이 건물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몇몇 기자들은 신분증을 내보였지만 경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경찰봉을 휘두르며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을 밀어붙였고 우리는 건물 바닥에 쭈그려 앉아야 했다. 다음 몇시간 동안 우리는 꼼짝없이 감금돼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은 폭력시위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전 시내를 그런 식으로 뒤지고 다녔다.

그 전날인 20일부터 경찰은 이미 `전쟁'을 선포한 상태였다. 무장경찰을 실은 밴 차량은 시위대를 뒤쫓아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집고 미친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8천~1만명이 된 시위대는 거리를 따라 주요8국 회의가 열리는 팔라조 듀케일 지역까지 평화행진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애초부터 시위형태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무조건 시위대를 강제해산시킬 목적이었던 듯 최루탄을 마구 발사하기 시작했고, 흩어진 시위대 사이로 밴 차량들이 질주하며 경찰봉을 든 경찰들을 수없이 쏟아냈다.

나는 오후 4시30분께 첫 부상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얼굴을 가득 덮고 있었고 이 모습을 본 시위대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시위대 중의 한사람, 카를로 길리아니가 경찰차를 향해 소화기를 던지려다가 경찰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앰뷸런스 차량의 사이렌 소리는 오후 내내 시내를 울렸다. 나는 전쟁 같았던 그날 하루에만 50명의 기자를 포함해 모두 150여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작전은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시민 불복종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박탈했다.

한 젊은 여성은 경찰진압을 피해 등산용 로프를 이용해 건물 벽을 오르려다 경찰에 의해 난폭하게 끌어내려졌다. 이 여성이 중간에 로프를 놓쳤거나 끊어졌다면 또다른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사실 일부 시위대들의 폭력행동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해 보였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몇몇 시위대원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길에 세워져 있는 차량을 불태웠고, 창문을 모조리 부쉈다. 이런 장면들은 방송이나 신문 카메라기자에게 좋은 사진거리를 제공했으며 곧바로 전세계에 전송됐다.

각국의 경찰은 반세계화 시위의 폭력성을 조장하고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폭력시위자들을 고용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벨기에의 독립 언론매체인 <인디미디어>의 한 소에트는 “반세계화 시위가 열렸던 프라하와 바르셀로나에서 몇몇 폭력시위자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발생한 불상사는 경찰의 과도한 진압으로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 많은 참가자들이 제노바의 철저한 무장화를 지시한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 아직도 분노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노바에 어마어마한 경찰병력을 투입한 이탈리아 중앙정부의 행위는 시위가 예상되는 사회포럼의 개최를 굳이 막지 않고 허락한 지방정부의 노력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1970년 레바논 내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베이루트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을 지휘했던 한 이탈리아 전직 장군의 얘기는 사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그는 “베이루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2500명의 병력도 충분한 수준이었다. 베를루스코니가 전국에서 불러모은 2만명의 특수경찰을 이 작은 도시에 배치해야만 했던 절박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애틀·워싱턴·프라하 등 반세계화 시위가 열렸던 다른 도시들처럼 제노바의 사회포럼 참가자들은 기업 주도의 세계화를 걱정했다. 1주일이 넘는 기간동안 사회포럼은 △환경 △빈국의 부채문제 △무역자유화의 함정 등을 주제로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주요8국 회의는 시위대나 대항포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시위도중 사망한 길리아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제노바 회의가 책임이 없음을 애써 강조했을 뿐이다.

이번 회의는 바로 수만명의 시위대들이 전세계에서 모여 결사적으로 반대하려 했던 세계무역기구의 새로운 라운드의 출범을 앞당기기 위한 자리였다. 당연히 시위대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세계화가 가져올 위기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주요8국은 이번 회의가 `그들만을 위한 잔치', 그들 나라가 세계와 관련이 없는 `그들만의 나라'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