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기관지 월간 <사회운동> 2006년 10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영어본도 자료실 '반미반전'란에 등록되어 있으니 함께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는 반전팀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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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서의 정치, 정치로서의 전쟁: 포스트-클라우제비츠적인 변이들

에티엔 발리바르 (2006년 5월 8월)

* 번역: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편집자주]

이 글은 에티엔 발리바르가 2006년 5월 8일 미국 에반스톤에 위치한 노스웨스턴 대학의 ‘앨리스 벌린 카플란 인문학 센터’에서 행한 공개강좌의 강연문이다.

전쟁과 폭력 문제에 관한 그의 분석은 이미 『사회운동』에 두 차례 게재되었다. 앞서 실렸던 두 글을 먼저 소개하면, 「평화를 향한 대장정」(사회운동, 2006년 1-2월호)은 1982년에 작성된 것으로 뉴레프트리뷰 출판사가 조직한 심포지엄에 제출된 논문을 편집한 『절멸주의와 냉전』에 담긴 것이다. 1970년대 말 미국과 나토가 유럽에 신형핵무기 배치를 강행하면서 강대국 간의 핵전쟁 위험이 다시금 고조되고, 이에 따라 서유럽에서 반핵평화운동이 다시 분출했다. 발리바르는 이 글에서 동서 핵대결의 ‘세력균형’이란 논리의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서유럽의 각국들이 먼저 핵무기 도입․배치를 중단․폐기하고 나토 동맹체계를 해소하는 ‘일방적 군비축소’와 ‘적극적 중립주의’를 단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또한 비슷한 시점에 폴란드 연대노조 운동을 비롯해 동유럽에서 민중운동이 확산되는 것에 주목하며, 냉전체제 전반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양 진영의 운동이 수렴점을 찾으려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한편 두 번째 글, 「잔혹성의 지형학에 관한 개요: 세계적 폭력시대의 시민성과 시빌리티」(사회운동, 2004년 6월호)는 2004년에 출판된 것으로, 앞서의 글이 냉전 시대의 산물이라면 두 번째 글은 냉전이 붕괴된 후의 세계정세를 ‘세계적 폭력’이란 관점에서 조망한다. 이 글은 지금의 세계가 전쟁, 이른바 ‘인종청소’, 경제의 파멸로 인한 기근과 절대빈곤, 대재앙(외견상 자연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규모의 살인과 같은 유행병, 가뭄, 홍수, 지진) 등 잔혹한 폭력의 지대를 창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극단적 폭력은 상이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누적효과를 낳고, 결국 세계를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로 분할하는 ‘초국경’(원한의 경계선)을 생산한다. 나아가 세계적인 시민성을 창출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정치적 조건으로 인하여 죽음의 지대의 인민은 불필요한 잉여로 간주되고, 외부세계는 예방적 반봉기라는 관점에서 이 지대에서 벌어지는 상호제거 또는 절멸을 조장하거나 이에 개입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전쟁으로서의 정치, 정치로서의 전쟁: 포스트-클라우제비츠적인 변이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다양한 전쟁이론을 고찰한다. 저자는 전쟁에 관한 클라우제비츠의 대표적인 명제들의 유효성에 대해 질문하고 그의 이론체계에 내재한 난제와 모순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대표적인 명제는 현실을 설명하는 묘사로 해석될 수 있지만, 역으로 군사적 목표가 정치의 목적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처방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전투로 실현되는 군사전략의 자율화와 파괴 경향이 억제되지 않는다면 ‘제한전쟁’은 ‘절대전쟁’으로 극단화되고, 정치의 조건 그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왕조전쟁에서 19세기 국민전쟁으로 현실의 전쟁이 전개된 역사는 ‘극단으로의 상승’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개념이 극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 이르러서는 군사전략의 근대적 주체였던 국가-인민-군대의 통일체가 해체되면서 폭력의 국가 독점과 민족국가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통합이 점점 더 의문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쟁의 역사는 한 단계 더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대별되는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전통을 검토하면서 마오쩌둥의 ‘유격대․지구전’ 이론이 클라우제비츠의 경고를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경유해서) 인식하고 정치적 목적에 종속된 군사전술이란 지향을 실천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마오쩌둥 역시 혁명정당이 국가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문화혁명을 경과하면서도)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유격대․지구전 이론을 통해 역전된 국가와 인민의 위계관계가 다시 당-국가의 우위로 재역전되는 경향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국가에 의한 폭력의 독점(억압적 국가장치의 재건)과 절대전쟁으로의 진화 경향(정치의 조건에 대한 파괴) 역시 재확립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