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직군제, 무기근로계약과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정지현 | 회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지난해 12월 우리은행은 노사합의를 통해 1만 1천 여 명 노동자 중에 정규직의 임금동결을 전제로 직접고용 비정규직 3100명을 올해 3월부터 정규직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분리직군제’는 비정규직 문제의 새로운 해법인양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분리직군제’는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비정규직에게 득이 되지 못하는 제도다. 무엇보다도 비정규 관련 악법이 7월 1일부터 시행되어 비정규직의 대량양산이 예고되는 이 시점에서 ‘분리직군제’는 차별금지조항을 피하면서도 차별을 고착화하는 데 기능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분리직군제’는 이미 이전부터 신인사제도라는 성과급제를 바탕으로 한 노동자 통제정책과 연장선상에 있고, 실제로는 정규직도 아닌데 마치 정규직이 된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 것이다.


‘분리직군제’의 내용을 보면, 차별의 고착화와 저임금을 부르는 또 하나의 비정규직일 뿐 정규직화도 고용안정을 이룩한 결과도 아니다. 대부분의 업무에서도 상시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여 문제가 되지만, 은행창구 업무에서도 늘 인원이 필요한 상시업무이기 때문에 해고하더라도 인원을 다시 충원해야 한다. 실제 은행권에서는 계약을 계속 갱신하면서 일하는 장기계약자가 많이 있고,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규직을 정리해고한 뒤 업무의 필요에 의해 다시 비정규직으로 재입사시키는 경우도 많다. ‘분리직군제’에 따라 A~D로 등급을 나누고, ‘업무 부적합 경고 3년이면 해고’, ‘C, D 등급을 2년 이상 받으면 해고’ 등으로 고용불안을 미끼로 한 노동자의 자기통제 강화라는 측면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고용안정의 보장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만을 별도 직군으로 묶어 고용은 보장하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로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이 골자인데, 이를 두고 자본가들이 고용을 보장하되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는 요인인 임금 저하를 용인하는 기막힌 제도라고 격찬할 정도로 특정한 노동자들의 신분을 묶어두고 차별을 영속화하는 반노동자적인 제도이다. 임금과 노동조건, 그리고 승진의 기회에서 정규직들과는 다른 완전한 차별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정규 법 시행과 관련한 문제이다. 통과된 기간제 법으로 인해 금융,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각 업종에서 계약직노동자들이 사전 계약해지 되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노동위원회 차별시정조치로 인해 차별을 피해가기 위한 별도의 비정규직 직군제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 사용자측은 지난 8월에 ‘분리직군제’ 도입 이유도 당시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법 개악안 중 ‘차별금지조항’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한 비정규 관련 노동법 통과이후 1월에 경총에서는 '비정규직 법률 및 인력관리 체크포인트' 라는 내부 책자를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피해가는 방법을 유포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리직군제’는 결국, 차별금지 조항은 피해가되 차별은 더욱 고착화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이고 이런 상황에서 저임금의 고착화 역시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의 70%가 여성노동자인 상황에서 이 문제가 여성노동자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한마디로 여성노동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더욱 심각해진다. 은행권 비정규직의 86.5%가 여성노동자인 것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금융권 내 여성 차별문제는 대단히 고질적인 문제이다. 금융권에는 오래전에 ‘여행원제’라는 성차별적인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배되는 직접차별 조항이라는 여성운동 진영의 끈질긴 주장이 있고나서 1993년 노동부의 시정조치에 의해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후 은행권은 코스별 인사관리제도인 ‘분리직군제’를 도입함으로써 수년 동안 여성에 대한 간접차별을 자행해 왔다. ‘신인사제도’에 기반을 둔 이러한 ‘분리직군제’는 개인적 차원의 차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형태의 차별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과 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우 컸다. 금융 기관에서 비정규직은 대부분 여성이고, 업무 역시 단순 지원업무로 나눠지고 있다. 단순 업무, 하위직, 접객 업무에 대해 여성행원의 집중배치 경향은 금융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된 뒤 이들이 비정규직으로 다시 채용되는 현상으로 직결되었으며, 이는 비정규직 문제와 융합하여 성차별의 문제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점점 더 업무와 고용형태, 성별을 연동하여 고착화시키는 방식으로 차별이 교묘해지는데 이는 비정규 법안의 차별금지 조항으로 더욱 나타날 것이며, 더욱더 여성노동자에 대한 간접 차별은 증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분리직군제’를 통한 정규직화 방안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차별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에게는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금융계에서는 우리은행 사례와 같은 ‘분리직군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단지 금융분야에서만이 아니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전 업종에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공공부문은 ‘분리직군제’와 비슷한 ‘무기근로계약제’ 문제로 시끄럽다. 무기근로계약이라는 용어는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문비정규대책에서 등장했다. 이는 근로기준법 23조에 있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통상적으로 지금까지는 이런 표현을 정규직으로 인식해왔다)를 ‘무기근로계약’로 둔갑해버린 것으로 사실상 정규직화가 아니다. 또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일 뿐이다. 무기근로계약은 비정규직이 하던 업무를 정규직이 하던 업무와 분리하여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을 통해 동일업무가 아니므로 합리적 차별의 기준이 될 수 있게끔 만드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실제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계약직의 시험을 통한 정규직화 이후 상당수의 비정규직을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여 비정규직 사용을 정당화 한 사례가 있다. 고용형태상의 차별이 아닌 업무의 차이에 의한 차별로 합리적인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차별이 공식화될 것이며,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처럼 금융분야에서는 성과급제를 포함한 ‘분리직군제’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전 직종에서는 차별을 피하기 위한 무기근로계약을 도입하는 등, 정규직도 아니고 기존의 비정규직도 아닌 새로운 비정규직을 만들어서 비정규직을 영속시키려는 시도들이 점점 확산되고 있어 그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 이러한 방안은 불안정노동에 더욱 직면해 있는 여성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노동자의 제대로 된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새로운 모습인 분리직군제와 무기근로계약을 저지해야 할 것이다.




졸속 통과된 노인장기요양법, 결코 사회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박주영 | 회원. 공공서비스노조 의료연대지부 부설 미조직센터 희망터

노인장기요양법에 거는 국민의 기대

지난 4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재석의원 260명 가운데 255명의 찬성을 얻어 노인장기요양법이 가결됐다. 투표에서 단 한 표의 반대표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법안의 필요성을 모든 국회 성원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말일 게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간병문제, 요양문제의 사회적 해결, 즉, 고령화시대에 필수적인 정부차원의 법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법은 그동안 사회적 책임 없이 개별 가족과 여성에게 노인요양 책임이 전가되었던 현실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인식한 정부의 현실적 시도인 것이다. 정부가 법안이 통과되기도 전부터, TV광고를 내보내며 대대적인 법안홍보를 벌인 것은 이러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받고 있음을 애써 알리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통과된 노인장기요양법은 민생파탄으로 돌아올 뿐이다

그러나, 과연 이 법안이 그러한 기대에 부합하는가? 과연 수많은 노인과 또 노인을 부양해야 할 가족들은 돈 걱정 없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이 제도를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해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가? 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관에 대한 관리와 규제에 대한 책임을 과연 정부가 질 것인가? 4월 2일 통과된 법안으로는 이 질문 어느 것 하나에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

지난 1월 23일 국회에서 열렸던 ‘장기요양보장제도 공공인프라 확충을 위한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는 현재 민간노인요양시설 등에 대한 관리를 전혀 못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더구나, 법안이 통과될 경우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기관들은 100% 민간위탁이 될 것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모름지기 하나의 법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공적 인프라가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나 그것이 사회적 기대가 확산되고 있는, 노인을 비롯한 복지서비스일 때 공공성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과제다. 간병?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시설들이 우후죽순으로 양산될 경우,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수익 중심으로 운영되는 민간시설들은 한편으로 고급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고가의 시설과 장비를 동원하며 중산층 이상의 계층을 타겟으로 삼을 것이며, 또 한편으로 서비스의 기본적인 질조차 담보하지 못한 부실한 시설들이 양산되는 양극화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나마도 어떤 시설이건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국민들은 서비스 이용 비용 중 본인부담금20%를 내야 한다. 한 달 시설이용료가 300만원이면, 한 달에 60만원, 최소 6개월이면 360만원의 돈이 있어야 한다. 도대체 이만한 부담을 할 수 있는 가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 뿐인가? 시설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들은 어떤가? 민간위탁된 요양시설들은 운영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병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아예 뒷전으로 둘 것이 뻔하다. 이미 일본에서 도입된 개호보험제도를 보라. 일본의 개호보험 노동자인 ‘헬퍼’들은 개호보험제도 도입 이후, 월급노동자에서 시급노동자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노동조건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일본의 재가노인요양서비스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개호노동자 헬퍼의 임금은 대부분 시간 급여인데, 대상자의 집으로 이동하는 시간, 대기시간, 보고서 기입시간 등에는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다. 또한 대상자의 사정으로 돌발적으로 일이 취소되었을 때도 휴업보상이 안 되며, 몸을 다쳐서 일을 쉬더라도 아무런 보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권리가 없다.


민생파탄의 서곡, 노인장기요양법

한미FTA가 체결된 바로 다음날, 국회는 그야말로 민생파탄의 또 하나의 서막을 올린 셈이다. 노인복지를 주도하게 될 첫 출발이 될 노인장기요양법은 향후 몇 십년간 노인복지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시킬 것이다.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사는 것, 노후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은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바람이자 권리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빈곤의 심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늙는 것에 대해 더욱 큰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국회에서 졸속적으로 통과된 노인장기요양법은 이러한 불안을 그대로 현실로 바꿀 것이다. 증가하는 국민부담, 파탄나는 노인복지, 불안정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간병노동자들의 희생,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 노인장기요양법에 담겨있는 것이다. 사회적 필요와 기대, 그리고 그 이름값에 걸맞은 노인장기요양법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민영화?시장화 되는 간병서비스가 아니라, 공공성과 노동권이 담보된 노인장기요양법이 절실하다. 졸속 통과된 법안을 철회하고 제대로 된 법안의 전면개정을 위해 전사회적인 관심과 투쟁을 모아내야 할 것이다.

어울려 살기, 그리고 함께 시작하기

이꽃맘 | 회원, 참세상 기자

들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 꽉 막힌 화분에서 혼자 피는 것이 아니라 담장 밑에서, 하수구 옆에서, 아스팔트 사이에서 어울려서 핀다. 옆에 있는 풀을 죽이지도, 혼자 돋보이기 위해 커다란 꽃을 피우지도 않는다.


들꽃들에게는 어울려 산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인 것 같은데 우리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저 내가 돋보이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일어날 것을 끊임없이 세뇌하며 살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힘들어 해도, 누군가 죽어가도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어울려 살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어울려 산다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여성주의를 고민하면서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인간으로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낀다. 여성임을 돋보이기 위한 여성주의가 아님에도 누군가는 여성의 이야기만 한다. 여성의 이야기가 노동자의 이야기고,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가끔 까먹는 것 같다. 그렇게 여성주의는 또 다시 어디로부터 고립되고 어울려 사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어울려 사는 데 싫증이 나고, 짜증도 날 만 하다는 그녀들의 심정이 절실히 이해가 되면서도 그렇게 돼버린 그녀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어울려 살기 위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이는 무조건 어울려야만 한다는 강요가 아니다. 무조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강요도 아니다. 그저 커다란 지구 속 하수구 한 귀퉁이에 핀 들꽃이 지구와 어울리듯이 우리도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을 사는 이치가 아닐까하는 조그만 바람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어울릴 수 없고,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로 나뉘는 일들은 함께 어울릴 수 없고, 여성의 노동과 다른 노동과 어울릴 수 없고, 여성주의와 노동운동이 어울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들을 담아 시작해보려 한다. 뭘 많이 알아서, 글을 잘 쓸 수 있어서 소식지의 한 귀퉁이를 빌어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다. 그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소식지 속에 나의 들꽃 얘기가 어울릴 수 있는 작은 바람만 있다. 무슨 얘기를 앞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정해진 건 하나도 없다. 그냥 살다가 드는 작은 고민들을 담아 나눠보려고 한다. 그렇게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우리도 한번 어울려서 잘 살아보자! ^-^


p.s. 소식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걸로 아는데 다들 한 꼭지씩 맡아서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함께 어울려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