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2일 “핵안보정상회의 대항 국제포럼” 발표문]

한반도 핵위험의 현실성: 한반도는 미래 핵전쟁의 실험장이 될 것인가?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

1. 고리 핵발전 정전 사태와 북한의 로켓 실험

한반도 핵위험은 실제 상황이다.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반도 핵위험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고리 핵발전소 정전 은폐 사건이다. 2월 9일 고리 발전소에서 정전 사태가 벌어졌으나 발전소가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다 발각되었다. 핵발전소 정전은 2011년 후쿠시마와 같은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수력원자력과 지식경제부가 ‘고장 제로’를 강조하며 작업자와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고리 발전소 측은 오히려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자 했다. ‘세계 원자력 5대강국’을 자처하는 한국 핵발전의 비루한 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 하나의 사건은 3월 16일,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북한은 2006년에 인공위성을 발사한 지 석 달 후 1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2009년에는 한 달 후에 2차 핵실험을 했다. 인공위성 발사는 탄도미사일 실험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은 핵실험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다. 따라서 북한이 조만간 3차 핵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핵발전소라는 잠재적 핵폭탄을 안고 있다. 또한 한국은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핵전쟁의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다. 하지만 한국인은 오랜 시간 동안 핵숭배 사상이나 무감각에 익숙해졌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그러한 인식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1년 국제여론조사기관 IPSOS와 로이터 통신이 24개국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인의 61%가 핵발전에 반대한다고 답했고, 그 중 66%는 후쿠시마 사고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이러한 변화를 봉쇄할 계기가 되길 바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의를 통해 수립될 보다 튼튼한 핵안보 체제는 더욱 안전하고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에 기여할 것이며, 이로 인해 원자력은 인류의 복지와 녹색 성장을 위한 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는 핵안보정상회가 내건 “더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라는 표어에 담긴 위선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후쿠시마의 재앙 이후 나타난 한국인의 인식 변화의 계기를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2.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와 ‘사용가능한’ 핵무기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4월 프라하 연설에서 미국 국가안보 정책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감축하며 세계 핵군축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맹세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은 세계에서 핵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점점 더 감소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핵전력 예산을 삭감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해 말하면서도 노후한 무기를 대체하여 미국의 핵무기고를 현대화하려는 다개년 계획을 제안했다. 새로운 급의 핵 잠수함, 새로운 폭격기와 전투기, 최신 핵탄두와 미사일에 소요될 비용은 향후 10년간 1,85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대목은 미국이 기존 핵전력을 재활성화하는 방식이다. 미국 정부는 저위력 핵무기 옵션을 현대화하려고 한다. 핵무기 탑재가 가능하도록 F-35 JSF(합동폭격기)를 개조하고 B-52와 B-2 폭격기를 대체하는 다른 장거리 폭격기도 핵무기 탑재가 가능하도록 전환하고자 한다. 미국 정부는 남아 있는 B-61 핵폭탄도 정밀도를 높이고 파괴력을 낮추는 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또한 정확도는 높고 위력은 낮은 새로운 공중발사 핵 순항미사일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현재의 오하이오급 잠수함을 대체하는 차세대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도 추진하고 있다. 그것도 현재 잠수함이 보유한 것보다 파괴력이 낮은 핵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가 그러한 변화를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과 러시아가 2010년에 체결한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은 현재 2200기까지 보유 가능한 전략핵무기를 1550기로 감축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2012년 2월 15일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가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략핵무기 배치숫자를 줄이기 위한 3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1,790기에 이르는 전략핵무기를 1,000~1,100기로 줄이는 방안과 700~800기, 300~400기로 줄이는 방안.) 따라서 미국 정부는 배치된 핵무기의 수는 감축하되 배치된 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될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지상 발사, 또는 잠수한 발사 탄도미사일을 포함하여 현재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광대한 지역에 방사성 낙진을 살포하고 수많은 비전투원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미국 본토가 핵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어떤 전쟁 시나리오에서도 이처럼 무차별적인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통념에서 볼 때 대체로 부적절하게 여겨진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과 같은 핵보유국과 전쟁을 벌인다면 상대방은 핵전력으로 위협을 가할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은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재래식 전력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저위력의 정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핵무기의 실전 사용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핵정책보고서(NPR)는 "핵무기를 추구하는 정권을 다루는 방식으로 핵 군비 경쟁은 부적절하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오바마 핵정책의 진실은 그와 다르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핵무기 현대화는 핵군축의 외양을 띠지만 실제로는 핵전쟁의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또한 그 전쟁터가 한반도가 될 가능성도 더욱 높아진다. 오바마 정부의 핵군축 정책은 단지 불충분한 것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것이다.

3. 핵물질, 핵기술 전파 저지는 이란과 북한 제재를 위한 우회적 수단

오바마 정부는 2009년 프라하연설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강화하자고 요구했고, 2010년 핵안보정상회의는 오바마가 제시한 의제를 승인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당시 국제원자력기구의 가장 큰 시험대 중 하나는 이란이었다. 그렇다면 2010년 핵안보정상회의는 미국의 이란 정책에 어떤 기여를 했나?
2010년 핵안보정상회의 전까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정부들은 이란에 대해 제재보다는 대화를 선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어떤 제재도 인도주의적 파국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중국은 이란과의 교역에 악영향을 끼치는 수단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터키와 브라질도 이란 제재에 반대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란을 고립시키려는 오바마 정부에 어려움을 주었다.
하지만 2010년 핵안보정상회의는 미국에 대한 각국 정부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은 핵비확산에 대한 지도력을 확립함으로써 이란의 핵기술 개발을 봉쇄하기 위한 권위를 획득하고자 했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공격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의지가 있다고 설명하는 방식 대신에 이란이 테러리스트 집단에게 핵 물질과 핵기술을 전파함으로써 핵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을 동일한 핵 위협 국가로 묘사하고자 한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실험을 앞두고 북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의 미사일 엔진 시험대가 이란 샤히드 헤마트 발사장의 시설과 매우 유사하다는 분석이 벌써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도 “북한과 이란의 오랜 미사일 관련 협력을 고려할 때 두 시설의 유사성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2010년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란 핵문제에 관해 미국의 책략이 펼쳐지는 장으로 활용되었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도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그와 유사한 장이 될 것이다. 미국은 핵물질과 핵기술의 세계적 확산 저지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북한 핵문제를 다루고자 할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핵위협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장이 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공격 옵션을 유지하며 매년 대규모 전쟁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북한 제재를 위한 우회로가 될 것이다.

4. 핵테러 위협은 실존하는가?

군사집단, 테러집단이 핵무기를 제조하거나 획득할 위험은 진정 존재하는가? 그러한 집단은 실제로 핵무기를 폭발시킬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무기급 핵분열성 물질을 무기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특히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를 개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우며, 제조하더라도 그 파괴력은 훨씬 더 낮을 수 있다.
또한 테러집단이 그것을 획득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폭발을 감행할지 여부도 예상하기 어렵다. 알카에다와 같은 집단들이 광신적이라고 치부하기 쉬우나 그들도 매우 이성적이며 목적의식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엄청난 인명의 살상시키고 세계의 멸망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테러집단이 핵폭발을 감행할 능력이 있냐는 질문보다는 그들이 ‘왜’ 그걸 추구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숙고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핵테러의 가능성이 핵물질, 핵기술의 확산 때문인지, 미국의 중동정책 때문인지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들의 위협이 얼마나 크든 간에 과거 냉전 시기에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상정한 핵 홀로코스트에 비교할 수는 없다. 핵테러의 위험은 아직 상상에 불과한 것이지만 핵보유국의 핵공격전략은 바로 지금도 실현 가능하다. 따라서 핵보유국의 핵무장 해제를 위한 운동이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다.

5. 한반도 핵위험과 반핵평화운동

2차 핵안보정상회의는 왜 한국에서 열리는 것인가? 그것은 한국 정부가 미국 핵정책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의 반확산 전략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핵개발론 집단은 NPT가 허용하는 '핵의 평화적 이용‘ 내에서 우라늄 농축과 핵재처리를 통해 ‘핵연료주기 완성’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핵의 평화적 이용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핵안보정상회의의 대전제에 적극 동의하며 핵숭배를 조장하는 모든 캠페인에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한국에서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을 구성하여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소중한 움직임이다. 한국에서 이중의 핵위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반핵평화운동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60~70년간 한국인을 지배한 핵숭배 사상과 단절하고, 미국 핵정책 추종을 벗어날 수 있다면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진전을 위한 중대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아직 한국 반핵 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는 취약하지만 한반도 핵위험은 점점 더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