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호황: '신경제의 승리인가 또다른 재앙의 서막인가' 신경제의 등장 지난 2월부로 이미 9년을 경과한 미경제의 호황은 도무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경제는 지난 4/4분기에도 6.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유지했다. 뿐만아니라 미경제의 이같은 장기 호황은 '고성장-저물가­저실업율의 이상적 균형을 실현함으로써 새로운 지속적 성장 모델의 등장, 이른바 '신경제의 출현'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경제'란 인터넷-정보기술 분야에 의한 고도 성장 경제를 지칭한다. 정보통신분야의 기술혁신으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와 장기 호황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제 논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터넷 산업을 위시한 정보통신 분야는 일반 제조업 등 전통산업과는 달리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수확체감의 법칙이란 어떤 상품을 추가로 한단위 더 생산할 때 드는 비용(한계비용)이 점점 증가하기 때문에 생산을 늘릴수록 전체 수익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정보통신분야에선 수확체감 대신 수확체증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부문이 대표적인 예이다. 소프트웨어를 최초로 고안·생산할 때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거액의 연구개발비 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프트웨어를 일단 개발만 하면 이를 추가 생산하는 비용은 급격히 떨어진다. 따라서 아주 적은 비용으로도 이 상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 이런 정보통신분야의 속성은 소위 `네트워크 효과'와 결합돼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신경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수확체증이나 네트워크 효과등 정보통신분야의 속성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생산성 증가를 가져오는 경제구조를 말한다. 생산성 증가가 이처럼 끊임없이 이루질 경우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이 설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 경제학계의 다수는 신경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인터넷 산업에 의한 국민경제 수준에서의 생산성 향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99년 10월 미 상무부가 발표한 지난 40년간의 미경제지표 수정치에 따르면 90년대 미 경제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2.1%에 이른다. 이는 분명 지난 생산성 향상수준에 비해 높은 것이다. 따라서 피상적으로 보면 이는 90년대 들어 급부상한 지식·정보산업이 이같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것처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몇가지 의문점이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이같은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진 것은 상무부가 경제 지표수정시 다음 세가지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생산성 향상에 영향을 주는 자료를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했고, 둘째, 과거에는 `비용'으로 간주했던 컴퓨터 소프트웨어 구입을 이번 수정치에서는 `투자'로 분류했으며, 셋째, 기술적 사항인 생산성 측정의 테크닉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생산성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노스웨스턴 대학의 로버트 고든 교수의 최근 연구는 컴퓨터분야를 중심으로 한 `신경제'가 고도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고든 교수는 90년대의 생산성 향상분중 3분의 1은 측정오차이고, 다른 3분의 1은 경기순환에 따른 향상분이며, 나머지 3분의 1만이 컴퓨터 분야에 의한 기여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수정 경제지표를 근거로 한다해도 컴퓨터 분야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신경제 주창자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미경제호황은 신경제의 등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미경제호황의 다른 원인들 그렇다면 미경제호황의 다른 원인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미경제호황의 출발점은 91년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91년의 미국경제는 본격적인 호황을 맞이했다기보다는 걸프전 종결에 따른 일시적인 경기회복국면으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오히려 본격적인 호황은 93년부터 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냉전과 걸프전 완결에 따른‘평화분담금’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방예산의 점진 삭감으로 금융긴축이 가능해졌고, 자본비용도 낮아졌다. 또한 93년 이후 미국경제호항의 특이한 현상인 `저물가­고성장'이란 현상은 무역적자와 강한 달러정책의 조합에 의해 가능했다. 90년대 미국의 고성장은 소비주도였다. 소비가 지나쳐 저축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수입품이 많이 들어올 경우 소비를 늘리더라도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다. 여기에 강한 달러까지 결합하면 수입물가는 더욱 안정돼 저물가기조 유지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미 경제의 장기호황은 소비주도성장→주가 상승→해외자금 유입→달러 강세→주가 추가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진단된다. 그러나 강한달러를 호황의 원인으로 보는 이같은 설명은 강한달러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이 사후적인 설명일 뿐 진정한 원인을 밝히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앨런 그리스펀의 신화나 클린턴의 자화자찬이 이 대목에서 출현한다. 실제로 대선정국을 맞은 미국 정가에선 호황을 자기 공로로 돌리려는 각종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보다 분명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내 계급계층간의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의 불안정화, 주변부국가들의 외환위기와 경제적 파탄, 그리고 이 문제점들을 작동시키고 수출해낸 세계적인 무역-금융질서의 재편에서 찿을 수 있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궁핖화 80년대의 가혹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의해 괴멸되다시피한 미국 노동운동은 기업의 다운사이징과 인건비 절감 경영을 모두 수용했다. 경기팽창 덕분에 전체 실업율은 30년만의 최저치인 3%대로 떨어졌다고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모두의 것이 아니였다. 미국의 도시 영세민의 실업율은 현재 위기수준에 도달되어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일부지역의 경우 젊은층 실업률은 30%를 넘어선 형편이다. 지역적 편차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용구조의 악화'이다. 10여년에 걸친 강도높은 구조조정의 결과 노동시장의 극단적인 신축화(유연화)로 인해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해지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사용직에서 계약직으로, 계약직에서 임시직으로 한단계씩 아래로 이동하고 있 다.그뿐이 아니다. 터프츠대학 기아·빈곤 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현재 미국내 6명의 어린이 가운데 1명이 굶주리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약 3천만명이 끼니를 걱정하는 빈곤상태에 빠져있다고 한다. 주변부 국가의 위기와 경제파탄 또 하나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미국 경제호황의 중대한 원인은 94년의 멕시코, 97년의 동아시아, 98년 러시아로 이어지는 '주변부의 계속된 외환위기와 경제파탄'이다. 이들 위기의 배후에 미 투기자본의 절묘하고 거대한 입출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미경제의 더 큰 이익은 오히려 위기를 야기한 직접적인 투기이익보다도 '위기이후'에 발생했다. 80년대 미국경제를 추월할 것 처럼 보였던 일본경제는 장기간의 (신용)공황에 빠져들었고 유럽경제는 정체되었다. 또한 남미의 몇몇 나라에서는 계속되는 외환위기를 이기지못한채 아예 자국화폐를 법적으로 포기하거나, 시장에서 그 유통이 중단되는 이른바 '(사실적, 정책적) 달러화'가 도입되었으며, 태국등지에서는 자국화폐의 변동율을 달러의 변동율에 링크시키는 '달러-페그제'등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한 나라의 화폐주권을 통채로 양도받는 새로운 형태의 종속유형이 등장한 것이다. 달러의 가치가 오르기 시작했고 강한달러에 힘입어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게된 미 자본시장은 전세계 자본을 끌어들여 미국은 막대한 자본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1993-97년간 순자본유입액 7938억 달러, 83-97년간 순자본유입액 총 1조6442억달러) 그 결과, 99년 2714억달러에 달하는 사상최대의 무역적자(93-99년간의 경상수지적자 누적액 약 1조900억달러)를 기록한 미국경제는 오히려 자본수지흑자와 경상수지적자를 조합함으로써 고성장-저인플레이션의 이상적 경제를 실현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값싼 외국산 원자제와 상품을 수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성장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조절해왔던 것이다. 호황이후 그러나 어떤 호황도 영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떤 마감인가이며, 그것의 양상은 전적으로 호황이 양산하는 숨겨진 모순의 성격과 그 성장에 달려있다.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 호황의 의미는 내적 모순의 성장을 통한 위기의 확대/심화 과정이며, 공황은 그것들의 폭력적 해결방식에 다름아니기때문이다. 개인저축율의 하락과 국가채무, 나날이 누적되어가는 경상수지적자, 또 이같은 실물경제와는 대조적인 증시과열과 금융화의 문제는 미국경제호황의 불안정성을 대표한다. 그리고 이같은 불안정의 이면에는 장기호황의 근본적 원인으로 진단되는 노동의 불안정화/궁핖화와 주변부 경제의 위기/세계경제의 불균형 심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판단컨데 미국경제호황의 마감이 유럽과 일본에 의한 미국경제의 좌초로 결과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않아 보인다. 인터넷 산업기술의 압도적 우위와 바이오 산업에 대한 독보적 지위는 물론이거니와 미국경제호황은 기본적으로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수렴점으로 한 금융과 무역질서 재편의 토대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미경제호황의 종말은 오히려 (그 시점이 언제이든, 그 양상이 연착륙인가 경착륙인가에 상관없이) 장기호황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미국경제 내부의 문제점들을 (미국경제호황에 의해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있는) 주변국 경제와 (오랜 불황의 탈출을 모색하고 있는) 일본경제로 급속히 이전(移轉)함을 통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국경제는 한편 으로는 호황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호황의 근본적 모순(원인)을 작동시킨 금융과 무역질서의 재편이 일단락되는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하강함으로써 '세계경제위기'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 경제호황은 신경제의 승리이기보다는 또다른 재앙의 서막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