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3.08.25

민주노총 선거연합정당, 무엇이 문제인가

8월 23일 <등촌동 워크숍③> 참관기

사회진보연대
 
 
지난 4월 24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 위원장 직권으로 상정될 예정이었던 ‘정치방침 총선방침 수립의 건’은 20일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 중집 회의의 격론 끝에 안건 위상이 ‘토론 건’으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24일 임대 이후 중집 논의기구를 구성하고 다음 대의원대회에 올릴 중집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합의한다. 위원장 직권으로 안건을 상정하고 다수결로 결정을 하는 것이 어쩌면 빠른 결론을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격한 논쟁을 벌이고 지난한 논의과정을 거쳤나? 최선의 합의를 위해 최대한 애를 쓰는 것은 민주주의를 조직운영의 원칙으로 삼는 민주노조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민주노총은 정권의 모진 탄압과 격랑의 정세 속에서도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을 내딛어 왔다.
 
4.24 임시대대 이후 민주노총은 정치방침과 총선방침 후속 논의를 위한 기구를 꾸리고 매주 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매월 중집에 이를 보고하고 관련 논의를 이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8월 17일 중집 회의에서도 ‘정치방침·총선방침 논의의 건’은 “결론없이 종결”된다. 하나의 정치방침안과 세 개의 총선방침안을 놓고 토론을 하였으나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에 임시대의원대회 일정 확정 건은 심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양경수 위원장은 당일 중집 회의에서 직권으로 임시대대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다시 민주주의의 원칙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된 상황에서 지난 23일 사회진보연대 공공운수노조 회원모임은 세 번째 <등촌동 워크숍> “민주노총 선거연합정당, 무엇이 문제인가”를 개최했다. 박준형 회원이 사회를 보고 이상욱 회원이 발제를 맡았으며, 서원철 공공운수노조 기획부장과 박성식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 그리고 건설노조 현장활동가가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패권을 일삼으며 혁신을 거부한 진보정당
 
“진보정당의 이념-노선은 후퇴하였고, 조직은 분열하였으며 노동자운동 역시 영향력있는 세력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어째서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을까요. 반성과 성찰 없이 당위를 앞세워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는 것은 과거의 실패를 똑같이 재연할 수 있습니다.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의 혼란과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대의원들의 우려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상욱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국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목표와 현재 민주노총이 처한 현실의 괴리를 짚으며, 어째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발제문을 통해 조목조목 분석했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 건설에 참여하였던 2000년 당시에는 정파연합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존재하였고, 대중조직과 정당 간의 상호 협력과 긴장 관계가 유지되었던 때였다. 그러나 특정세력(자주파)이 당권을 장악하고 당직과 공직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당내 민주주의는 훼손된다. 의회주의와 원내정당화 경향으로 지배연합 교체나 정파 안배, 책임정치 등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자주파의 패권주의는 당내 이념-노선 차이를 억압하면서 갈등을 더욱 키웠는데,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을 북한의 자위권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옹호하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북한 스스로 파기한 사실에 대한 당내 비판적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이어서 터진 ‘일심회’ 사건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2007년 대선에서 정세와 동떨어진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핵심 슬로건으로 밀어붙여 대선 참패의 원인을 제공하였음에도 혁신안을 거부하고 결국 분당사태를 초래한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으로 진보정당이 쪼개진 후 2011년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와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결성하고, 일견 선거연합과 야권연대를 통해 19대 총선에서 성과를 거둔 듯 보였으나, 곧바로 부정경선 폭로와 이를 거부한 당권파(자주파)의 폭력사태가 터져 나온다. 이에 민주노총은 2012년 8월 중집 회의를 열어 통합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정한다. 끝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과 배타적 지지방침의 최종적 실패가 선언된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전략을 스스로 해체한 민주노총
 
이상욱 국장은 진보정당 분열 과정에서 확인된 문제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의 2012년 총선방침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2010-2011년 김영훈 집행부는 ‘반MB 민주대연합’ 노선과 진보대통합을 추진하였고, 2012년 대의원대회에서 유회된 총선방침을 중집에서 통과시켜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집중투표정당’(사실상 배타적지지)으로 결정하는 독단을 일삼았다. 이때부터 민주당(민주통합당)은 진보 정치가 생산해 온 노동정책을 선택적으로 수용했고, 정치적 다수의 지위를 이용해 점차 주도권을 행사한다. 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노동 의제를 활용하면서 노동조합은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게 된다. 한편 총선에 앞서 민주노총이 민주통합당과 체결한 정책협약은 민주노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을뿐더러, 민주노총이 민주통합당의 노동정책을 지지하고 민주통합당의 당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되어 충격을 더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본래 목표는 노동자계급이 이념적, 조직적으로 제 정치세력과 분별·정립하여 영향력있는 세력으로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권연대와 진보대통합을 내세워서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민주당에 종속되어버린 총선방침은 민주노총 스스로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의미를 망가뜨린 과정이었다. 이상욱 국장은 당시를 1997년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추구한 운동전략이 해체되는 불행한 시기였다면서, 과연 이러한 실패의 교훈이 지금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저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박성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며, 배타성을 드러낸 정파 운동의 실패, 정파 운동의 갈등을 덮을 압도적 대중 운동의 부재, 당과 대중 운동의 구별 정립 실패, 자주파 운동의 친북 행보와 방아쇠(트리거) 효과라는 네 가지 원인을 짚었다. 나아가 현재 논란이 되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안이 대중의 현실과 동떨어진 실체 없는 공허한 언어의 짜깁기 수준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말 오랜 부재와 허기 끝에 만드는 정치방침이라면, 좀 더 구체적으로 대중적 갈망과 정서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연합은 중장기적으로 도모할 가치가 있지만, 운동의 혁신과 이념의 현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민주노총의 변화와 혁신, 사회정치세력으로 거듭나자
 
토론자로 워크숍에 참가한 건설노조 현장활동가는 대중조직 내에서도 특정 정파에 의한 패권주의와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며 이것이 민주노조 운동의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면서, 양경수 집행부의 강행으로 선거연합정당이 새롭게 건설된다고 했을 때 유사한 갈등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덧붙였다. 서원철 공공운수노조 기획부장은 민주노총이 스스로 혁신하며 진보정당들과 더불어 상호 신뢰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진보정당은 우선 노동자 대중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강화해야 하는데, 계급적 단결을 촉구하는 의미에서의 격차 해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의 과제로, 진보정당들과 함께 선거 제도와 정치 제도 개혁에 나서는 것, 조합원 정치 교육을 일상 사업화 할 것, 그리고 사업장을 넘어선 지역 차원의 실천과 새로운 노동 의제로 진보정당들과 공동 투쟁을 전개할 것을 제시했다.
 
 
이상욱 발제자는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하기보다 조합원만의 특수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혁신과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안전운임제와 노란봉투법과 같은 노동자의 간절한 요구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 왜곡하고 소비하는 민주당의 포퓰리즘과 단절하여 실종된 진보정치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 정파노조 폐해 극복 등 과거를 넘어서는 민주노총의 이념-노선 입장 수립도 중요한 과제임을 짚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표상이 취약한 토대를 강화할 계획없이, 의회 진출이나 집권을 위한 ‘무조건 통합’과 야권연대는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민주노총을 더욱 분열시키고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서원철 토론자도 민주당이 진보정당, 사회운동, 노동조합의 이슈와 정책을 주도하는 적응 전략에 성공했고 이를 활용하면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기반을 흔들고 있는데, 이러한 상태는 민주노총이 추구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맞지 않으므로 단절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박성식 토론자 역시 민주당과의 결별 선언이 쉽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헤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며 향후 고민을 이어가자고 발언을 덧붙였다.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96-97 총파업 투쟁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모아나가기 위한 토대와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현시기 노동자 대중의 열망과 바람은 무엇인가. 민주노총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처한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민주적 조직운영의 원칙을 흔들면서까지 속전속결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합의를 도모하는 토론을 통해 민주노조의 단결을 다지고 제 진보세력 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실천이 요구되는 때이다. 민주노총 선거연합정당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은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민주노총 중집 논의기구에서 제출한 하나의 정치방침안과 세 개의 총선방침안에 대해 <등촌동 워크숍>에서 논의된 내용은 발제문과 토론문을 참고 바란다. 홈페이지 공개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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