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3.09.04

⑧‘당 중심 노동운동’은 뭔가요?

<민주노총 선거연합정당 무엇이 문제인가 10문 10답>

사회진보연대
8. 노동운동의 어떤 세력은 ‘당 중심 노동운동’을 외치던데, 그건 무엇인가요?
 
 
정당에 대한 접근법과 노조에 대한 접근법은 구분을 두어야 합니다. 정당이 이념과 정책의 합의, 일관성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면, 노동조합은 정견, 종교, 성별, 인종 등등의 차이를 넘어 노동자 대중이 광범위한 단결을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당 중심 노동운동은 당에 대한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노조를 입맛에 따라 분리시킴으로써 산별노조 질서와 충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노조의 자주성이라는 원리를 보존해야 합니다.
 
 
당이 주도하는 노동조합 정치활동
 
‘당 중심 노동운동’은 진보당이 채택한 노선입니다. ‘당 중심 노동운동’의 정의가 무엇인지 공개적이고 체계적으로 밝힌 것이 없어 정확히 확인하긴 어렵지만, 진보당 기관지 《너머》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보당이 정치적으로 선도하고 공장의 당조직이 정치적 선봉대가 되어 노동조합의 투쟁을 아래로부터 안받침하고 정치투쟁으로 지향시키는 당 중심 정치투쟁”. 즉, 당이 미조직 노조 건설에 앞장서고, 노조 내 당조직이 정치적 선봉대가 되어 노조를 정치투쟁에 나서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보입니다.
 
[출처: 진보당 기관지 《너머》]
 
이들은 변혁적 노동운동의 조직적 주체가 진보정당이라는 점을 명시합니다. 이 진보정당은 “정권을 전취하는” 목표를 가지며 이를 위해 “노동자 대중에게 당의 사상과 이념을 전파하는 선전부대”이자 “노동자 정치간부를 육성하는 사람사업 공장”이라고 규정합니다. “당 중심 노동운동 전형단위의 실천적 표현은 ① 조합원 50% 입당, ② 의결단위를 통한 배타적 지지 확보, ③ 현장 당분회와 현장위원회 전면적으로 건설”이라 설명합니다. 이러한 진보당의 당중심 노동운동은 2024년 총선에서 원내 정당화, 즉 국회의원 당선자 배출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당 중심 노동운동은 언뜻 보면 좋은 의미 같습니다. “노동계급의 정권 전취 투쟁”을 실현하기 위해 “1만 당분회와 10만 활동 당원을 조직한다”는 계획은 노조가 공장 울타리를 넘어 정치투쟁에 나설 수 있는 묘안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노조 안에 당조직을 세우면 노동자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걸까요? 당조직과 무관한 조합원들은 어떤 정치투쟁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당 중심 노동운동은 오히려 노조를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 아닌가요?
 
 
정파노조의 폐해
 
노동조합은 성별, 인종, 소득, 정견 등 노동자 내부의 다양한 차이를 넘어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위한 조직입니다. 자본주의를 변혁하기 위해 노조는 전체 노동자를 포괄해야 하는 정치적 임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는 개별 기업노조를 넘어 산별노조로, 또 산별노조를 넘어 총연맹으로 단결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노조는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들이 다양하게 공존하며 토론과 설득을 통해 상호 견제하는 운영원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지금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다양한 차이를 넘어 단결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조 내 건강한 정파 활동은 필요할 수 있지만, 특정 정파가 노조활동을 독점하는 정파노조는 해악을 낳습니다. 민주노총 내 다양한 정파들도 특정 정치적 견해를 다수 조합원에게 강요하는 일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진보당의 ‘당 중심 노동운동’은 정파 활동의 차원을 넘어 노조 안에 당의 하부조직을 건설하는 정파노조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조의 정치 활동을 조직한다는 명분으로 노조의 운영과 당원 가입과 당분회 활동을 연계시키는 방식입니다. 일례로 진보당은 노조가 필요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신규노조 가입과 동시에 당원가입서를 쓰도록 강요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즉,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것을 노조 활동의 요건으로 삼는 방식으로 정치활동을 한다면, 이는 민주노조의 제1원칙인 자주성과 민주성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입니다. 또 최근 진보당 김재연 전 진보당 상임대표가 노조 재정으로 정치후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입건되었습니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지만, 노조와 정당의 이런 부적절한 유착관계 논란만으로도 노조 내부의 혼란과 갈등이 커져 단결력이 크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노조가 특정 정당에 종속되는 정파노조가 되면,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은 파괴됩니다.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가 노조 운영의 기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정치 견해를 달리하는 조합원은 노조 활동에서 배제될 위험이 많아집니다. 나아가 정파노조가 더 극단화된다면 정당의 정책과 방침에 대한 노조의 비판도 금기가 됩니다. 노조는 당의 노선을 실현하는 전달벨트일 뿐이기 때문에 노조와 정당 간의 상호작용은 없고 일방통행만 허용됩니다. 정파노조는 공장 울타리를 넘어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노조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는 폐해를 낳을 것입니다. 진보당의 ‘당 중심 노동운동’은 노동자 전체의 단결을 해치고, 노조의 정치투쟁을 특정 정당의 정치활동에 대한 지지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계급적 단결과 양립 불가능
 
노동조합은 정당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정치적 역할이 있습니다. 노조의 임금 투쟁과 단체협약은 광범위한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유력한 경로입니다. 산별노조로의 단결과 연대는 경제변화와 산업구조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방어하고 생산을 통제할 수 있는 노동의 힘을 만들어냅니다. 산별노조는 이 힘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하여 자본에 대항해 주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노조가 광범위한 단결을 이루어 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입니다.
 
그러나 ‘당 중심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정파노조는 이러한 산별노조의 정신과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특정 정파의 정치노선에 동의하는 일부 노조를 따로 묶어내는 방식으로 활동영역을 확장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토전쟁에서 자신의 영지를 확대해나가는 것과 같이, 민주노총의 산업별, 업종별, 지역별 질서에서 정파노조의 세력화를 위해 끊임없이 조직경쟁과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업종을 넘어 노동자 대단결을 이루려는 산별노조를 정치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보다, 특정 정파노조를 동원하는 것이 당장의 정치활동에서는 더 쉬울 수 있지만, 이는 노동조합의 방식이 아닙니다. 당과 달리 노동조합은 광범위한 대단결에 기반을 둬 정치적·사회적 운동을 합니다.
 
 
정당으로부터 자율적인 노조의 지지·협력
 
과거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가지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노조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물론 노조는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고 보편적 권리를 옹호하는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조와 정당이 서로 지지, 협력하는 관계와 조합원의 당 가입을 요건으로 노동조합을 특정 정당에 종속시키는 관계는 전혀 다릅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창립 직후 다음과 같이 민주노동당과의 조직적 관계를 공식화했습니다. “정당과 노동조합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조직체이면서도 상대적 독자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상호존중과 이해, 긴밀한 협력관계가 요구된다” (2001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즉,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은 정당과 별개로 노조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정세의 필요에 따라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고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정당이 정세적으로 어떤 노선을 지향하는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의 실패를 반성하지 않고 과거의 행태를 반복하며 변화된 정세에 대응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특정 시기, 특정 정당에 대한 노조의 지지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지향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 정치운동에 대한 지원입니다. 따라서 어떤 내용으로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인가는 노동운동 내부에서 치열하고 심도 있게 논의하며 합의를 만들어 갈 문제입니다.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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