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3.09.04

⑩진보정당이 발전하려면 민주노총이 변화를 주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민주노총 선거연합정당 무엇이 문제인가 10문 10답>

사회진보연대
10. 진보정당이 발전하려면 민주노총이 뭔가 변화를 주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보정치의 위기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쇠퇴하고 있다는 정치적 표현입니다. 오늘 진보정당의 분열과 위기는 민주노총의 계급적 대표성이 위기에 빠지고, 정치적 대표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민주노총 스스로 사회적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격차 축소를 통해 계급적 단결을 고취할 수 있어야 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사회세력화 전략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노조의 혁신, 당의 혁신이 접점을 찾게 되면 그 속에서 진보정치 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노총 계급대표성의 위기, 진보정치의 위기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진보 정치의 위기를 정당운동의 차원에서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진보정치의 위기란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쇠퇴하고 있다는 정치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던 2004년은 민주노총 내 갈등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거세진 데다, 민주노총이 대 정부 교섭 방침을 두고 좌충우돌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후자가 문제였는데 민주노총이 정부와 협력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교섭을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하면서 이것이 적절한가를 둘러싸고 일대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부 여당과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민주노동당 내에서의 논쟁과 짝을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갈등은 2005년 임시대의원회에서 시너와 소화기가 등장하는 폭력 사태로 비화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그 해는 노조 비리 사건이 폭발하던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기아차와 현대차의 채용 비리 사건이 3~4개월 간격으로 터진 데다, 11월에는 수석부위원장이 배임수수혐의로 구속되면서 지도부가 불명예 퇴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에 따른 계급 대표성 위기에다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까지 더해진 것입니다.
 
이 상황은 민주노동당에도 치명적이었습니다. 민주노총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화되고, 이는 곧바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에 사회연대전략을 제안하지만,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것이 ‘고통 분담론’, ‘정규직 양보론’에 불과하다며, 충분히 숙고하지 않고 반대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후 진보정당이 민주노총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더욱 강화됩니다.
 
 
민주노총의 야권연대 선거 경험과 노동 정치의 위기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만 야권연대를 도모한 게 아닙니다. 민주노총 역시 ‘반MB 야권연대’를 승인했습니다. 당시 민주노총은 진보정당 후보뿐만 아니라, 이들 진보정당 후보와 단일화한 ‘반MB 단일 후보’도 지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선거 시기의 야권연합에 적극 동참하고, 민주당에 대한 투표도 가능하게 열어둔 것입니다.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경험은 민주노총에는 진보정당과 다른 방식으로 후과가 남게 됩니다. 이때부터 민주노총은 민주당을 노동 현안 해결을 위한 창구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민주당 역시 진보정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노동 의제를 선택적으로 수용했고, 정치적 다수의 지위를 이용해 점차 주도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을지로위원회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21세기 초 진보정당의 출현을 가능케 한 대중적 기반마저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진보정당, 사회운동, 노동조합의 이슈, 정책을 주도하는 ‘적응 전략’에 성공하였고, 이를 당리당략에 활용하면서 노동조합운동, 사회운동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2012년 4월 8일 오전 민주노총과 민주당이 정책 협약식을 한 직후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함께 민주당 후보 집중 유세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날 김영훈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이름을 걸고 이용선 후보는 약한 자의 편에 서서 싸워왔다”며 “진정한 노동자 시민의 대표 이용선 후보를 국회로 보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이 잘살도록 하자”고 호소했습니다. 한명숙 대표는 “야권이 단결해 총선에서 승리하고, 정권교체를 이뤄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 함께 민주진보정권을 마련해 서민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출처: 참세상]
 
지금은 노동 의제 대부분을 민주노총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단기적 목표, 현안이라고 생각되는 의제일수록 민주당의 주도력은 두드러졌고, 민주당의 정치전략을 양해하지 않고는 민주노총이 제기하는 노동 의제를 드러낼 방법을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민주당에 기댄 제도개선 투쟁과 진보정당과 함께 하는 제도개선 투쟁은 목표와 성격을 분명히 달리합니다. 전자는 현안 해결에 유리할지 모르지만, 종국에는 민주당의 집권 전략에 종속되어야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이 경우 민주노총은 민주당의 후견인, 그리고 계급적 이익보다는 조합적 이익을 중시하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후자는 단기적 목표 달성에는 다소 불리할지 모르지만, 노동자운동의 문제 해결 능력을 축적하고 나아가 진보정치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면서 민주당과 독립적인 정치·사회운동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진보정치의 혁신을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민주당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민주노총 혁신에서 출발해야
 
노동자 정치세력화란 노동자 계급이 이념적·조직적으로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분별정립하여, 정치적·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운동전략 전반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재정립하고, 계급적 단결과 함께 민주노총 스스로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 즉 사회세력화 전략이 필요합니다.
 
민주노총의 사회세력화를 위해서는, 첫째, 진보진영이 민주당의 외곽부대에 불과하다는 사회적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역시 진보정당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야권연대에 대한 미망을 버리고 민주당의 포퓰리즘을 비판해야 합니다. 야권연대는 그 자체로 진보정치의 토대를 잠식하고, 민주당의 포퓰리즘은 노동자의 요구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 왜곡하고 소비할 따름입니다.
 
둘째, 국제정세와 한반도정세를 시야에 두고 위기의 세계질서를 조망하며 한국 사회운동의 역할을 제시하는 데 일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세계질서의 판을 흔드는 중대한 위험인데요, 우리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노동운동은 이러한 사안들에 대응하는 능력을 앞으로 더 키워나가야 합니다.
 
셋째, 기업별 노사관계를 극복하고 격차 축소를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장기침체 국면에서 사업장 단위의 임금 극대화 전략은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확대할 뿐입니다. 초기업 교섭을 활성화하고, 연대임금·연대고용을 통해 격차를 축소하는 운동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노동조합의 사회적 표상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노동 중심성이라는 말이 조합원의 (혹은 기업별 노조의) 실리주의적 이해를 정당화하거나 노조 상층 인사의 원내 진입을 옹호하는 것으로 왜곡되어선 안 됩니다. 보편적 권리로서 노동, 과학적 분석과 현실 정합성을 가지고 계급적 단결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노동, 격차를 해소하고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의미로서 노동,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노동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으로서 노동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상은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제언이지만, 사회운동 전체의 위상을 재정립하자는 제언이기도 합니다. 사회운동 모두가 곤란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노조의 혁신, 당의 혁신이 접점을 찾게 되면 그 속에서 진보정치를 재건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제어
노조
태그
진보정당 야권연대 정치방침 총선방침 노동자 정치세력화 선거연합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