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한국정치 | 2023.10.06

영장기각 후 정치전망

이재명 대표체제의 연장은 민주당의 사당화와 극한 정치대결을 가속한다

사회진보연대
 
미국 하원의장이 해임되는 초유의 사태로 미국 하원이 마비되었다. 정치 양극화 속에서 공화당 일부 강경파 의원들의 극단적 행동이 초래한 결과다. 남 일 같지 않다. 대결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국회를 파행으로 치닫게 하는 일은 이미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하고 각종 비리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되는 상황임에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수사를 정치탄압으로 간주하며 국회를 볼모로 삼았다. 그 행태가 이 대표의 단식으로 절정에 달했다가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국회가 정상화되는 길은 민주당이 대표 사법리스크와 분리하여 대결의 정치를 지양하는 것에 달렸으나 현재로서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고 여긴 민주당이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어서다.
 
 
구속영장 기각이 무죄선고는 아니다
 
체포동의안 가결로 최대위기에 직면했던 이재명 대표가 구속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하자 민주당의 기세가 등등하다. 검찰이 야당 대표에 대해 300회가 넘게 압수 수색하고 여섯 차례나 소환조사 했음에도 영장이 기각됐다며, 없는 죄를 조작하려던 수사가 실패한 것이니 사필귀정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정치검찰의 기획 수사로 야당을 탄압한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하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구속영장 기각이 무죄선고는 아니다. 법원은 유무죄를 가린 것이 아니라 증거인멸의 염려에 대하여 구속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위증교사와 백현동 개발사업은 이미 인적 물적 자료가 확보되어서 증거인멸을 할 수 없고, 대북송금은 피의자가 현직 야당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라 증거인멸 염려를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게다가 판사는 검찰이 제기한 세 가지 혐의에 대해서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백현동 개발사업은 이대표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만한 상당한 의심’이 된다고 했으며, 대북송금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대표가 구속을 피했을 뿐이지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출처: 중앙일보]
 
영장기각 논리가 모순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판사가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된다면서도 위증교사의 우려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혐의가 소명된다는 사건은 이재명 대표가 2018년 ‘검사 사칭’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판과정에서 위증을 사주했다고 의심받는 것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위증을 사주한 통화 내용 녹취를 증거로 제출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피의자가 대중적 감시로 함부로 행동하기 어려운 야당 대표라서 위증교사 우려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북송금 재판과정에서 변호인들이 이화영과 상의 없이 다른 입장을 주장하거나, 민주당 의원과 접촉한 이화영 부인이 진술을 번복하도록 압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처럼 사법 방해로 의심받을 만한 정황이 있어서 피의자가 야당 대표라서 위증교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납득가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여당이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김기현 대표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치주의가 유린당한 결과”라고 했고, 윤재옥 원내대표는 “결론을 내려놓고 짜 맞춘 비논리적 판단”이라고 했다. 법원의 판결이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한다. 여당은 판결의 유불리에 따라 사법부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는 끝나지 않았다
 
민주당은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재명 대표의 무죄가 소명된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법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본격적인 재판리스크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이미 두 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검찰이 추가로 기소하면 최대 5개의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대장동 재판(위례·대장동 개발 특혜의혹과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은 10월 6일을 시작으로 주 2회 열릴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도 격주로 진행되고 있어 이재명 대표는 매주 2~3회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여기에 검찰이 위증교사, 백현동 개발사업,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각각 기소할 경우 이 대표가 출석하는 재판은 최대 5개로 늘어난다. 때문에 이대표가 재판에 참여하면서 대표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재판에서 이 대표에게 불리한 증언이나 증거가 제출될 때마다 민주당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과 정진상의 재판도 진행 중인데 이들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이대표의 정치적 입지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한편 검찰은 법원이 혐의가 소명된다고 봤던 위증교사 혐의를 우선 기소할지 검토하고 있다. 물론 영장심사 판사가 이대표의 혐의가 소명된다는 것이 곧바로 유죄라는 의미는 아니며, 재판에서 혐의가 증명되어 유죄판결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유죄가 선고되면 이 재판만으로도 이대표의 정치생명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위증교사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데, 지난해 법원은 위증(교사)과 증거인멸 범죄의 절반가량에 금고나 징역형을 선고했다. 따라서 유죄가 확정되면 이대표는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금고형이나 징역형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가결파 숙청과 이재명 사당화
 
친명계 의원들은 구속위기에서 생환한 이재명 대표를 옹위하며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하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마자 친명계는 원내지도부를 끌어내렸다.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러나 속내는 당대표 궐위 시 원내대표가 실질적으로 당을 이끌게 되는데 비명계인 박광온 원내대표가 맡게 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평가된다. 원내대표 선거는 속전속결로 치러졌다.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발부가 결정되는 날 투표가 진행되었고 홍익표 의원이 선출됐다. 그는 “이재명 체제 아래서 총선을 치르겠다”고 했다. 이 대표가 구속되더라도 실질적인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각오로 해석됐다. 민주당 지도부에서 비명계 축출은 이어졌다. 체포동의안 가결 후 비명계 송갑석 최고위원이 사의를 밝히자 이대표가 곧바로 수리했다. 반면 친명계 조정식 사무총장 사의는 사실상 반려했다. 친명계는 체포동의안 가결을 명분으로 지도부 내 비명계를 제거하고, 완전한 친명 체제로 재구축한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가결표를 행사한 의원들에 대한 공격도 거세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외상값을 치러야 할 때”라는 자극적인 선동을 하면서 가결표를 행사한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시사하기까지 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김종민·설훈·이상민·이원욱·조응천 의원을 가결파로 지목해 징계청원을 넣었고, 동의자가 5만 명이 넘어 지도부가 답변해야 하는 상황이다. 곧 윤리심판원에서 징계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그리고 강성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수박(비명계)판별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수박판별 기준은 △비위 검사 탄핵 법안 발의에 주저했던 의원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 의원 △대의원제 정상화 개혁안에 반대한 의원 등이다. 모든 항목에 해당하는 김종민, 윤영찬 의원은 당도 5로, 친명계 정청래 최고위원은 당도 0으로 분류됐다. 이대표는 친명 의원들과 강성지지자들에게 자중하라는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이에 반발하여 비명계인 조응천 의원은 친명계와 강성 지지층의 숙청 흐름이 이재명의 사당화 시도라며 민주정당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상민 의원도 영장기각으로 사법리스크가 해소된 것이 아니므로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아직 ‘숙청’을 할 것인지 ‘통합’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다. 만약 비명계 의원들을 징계하거나 공천에서 페널티를 준다면, 강성 지지층을 규합하고 당의 목소리를 친명으로 일원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명계 의원들이 반발하여 이탈할 경우 분당을 초래해 총선에서 불리해질 수 있어 섣불리 선택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반대로 통합하기도 어려운데 이미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공천 경쟁이 극심할 것으로 전망되어서다.
 
 
진보당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비판한다
 
한편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체포동의안 부결 입장을 밝혔다. 불체포특권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회의원에게 국민과 헌법이 부여한 투쟁의 무기이자 유일한 방어수단인데, 검찰 독재 윤석열 정권의 칼날이 이재명 대표를 향하고 있어서 방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당이 단결하여 정부에 맞서야 독재정권의 폭압을 심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당의 태도를 보면 이재명 대표가 정치 수사라도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던 교섭단체 대표발언이 마치 없던 일 같다. 민주당 의원들조차 제1야당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면 대표가 공언한 것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가결투표로 이어졌는데도, 진보당은 친명 의원들과 유사한 행보를 했다. 강성희 의원이 민주당도 아닌데 친명 의원 모임인 처럼회에 가입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탈퇴했던 전력을 떠올리면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을 자임하면서 이대표의 혐의가 위중함에도 정치 수사로 치부하고, 민주당에 종속된 행동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재명 대표체제의 연장은 극한 정치대결을 가속한다
 
영장기각으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 이재명 대표는 친명 일색으로 당을 통일하고 정부에 대한 반격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대표는 추석연휴 직전에 윤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마치 범죄혐의에서 벗어났으니, 야당 대표로서 존중을 표할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무응답으로 사실상 거절했다. 이후 이 대표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투표를 격려하며 ‘정권의 폭정을 멈추’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대여 공세의 포문을 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10월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대해서도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폭주를 확실히 바로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에 대한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의혹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10월 6일 이균용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고,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의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안건으로 처리할 예정이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진교훈 후보가 지지율 우위에 있다고 평가되는데, 선거에 승리하면 정권심판론이 통했다는 자신감을 얻어 민주당은 총선까지 대결태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국정 운영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극한 정치대결을 피할 수 없다. 야당 대표를 향해 제기된 혐의가 정부 여당의 정치탄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면 여당과 정상적인 관계 형성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대표의 취임 이후 지금까지 국회가 몸살을 앓았고, 이대표가 직을 유지하는 한 파행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대표 체제의 연장으로 한국 정치의 불행이 언제 종식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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