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3.11.17

⑤미국이 신냉전을 조장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통일교과서 등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견제하려고 신냉전을 조장하고 공급사슬을 분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가 국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국제질서를 위협하여 갈등이 고조되는 정세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부상하는 중이 아니라 경제위기에 처한 상태이며, 이것이 통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급사슬 분리 역시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앞지를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서라기보다는 중국의 초법적인 기술 탈취 문제에서 비롯했습니다.

 
민주노총 통일교과서, 《민플러스》 등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전쟁을 유도하고 공급사슬 디커플링을 추진하며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해 신냉전을 조장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꾸로 중국과 러시아가 국내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국제질서를 위협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정세입니다.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경제는 미국을 추월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그 대신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 공격적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위기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또한, 경제위기를 돌파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국유기업 지원과 해외 기술탈취로 이어져 극심한 무역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시진핑 정권은 권위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을 지원하면서 이를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기존 질서를 거부하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질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략적 경쟁”은 중국의 이러한 행보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한다는 진단 아래 제시된 대응책입니다.
 
 
권위주의와 민족주의를 강화한 중국과 러시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가 뚜렷해졌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시행한다면 어떤 나라든지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라는 신화에 파산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미국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졌고, 이를 기존의 경제정책으로 대처할 수 없는 ‘뉴노멀’(New Normal)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경제 전망이 한층 더 어두워졌습니다. 미국의 정치적 위기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융화가 초래한 불평등으로 대중의 불만이 높아진 상황에서 인민주의적 정치인이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현상이 세계적으로 확산했는데,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처럼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정세를 NL 주류는 ‘다극화’로 규정합니다. 미국 일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아니라 여러 국가가 패권을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민플러스》는 지금이 다극화의 시대이자 신냉전의 시대라고 설명합니다(이정훈 편집기획위원, “중국의 고단수 외교와 한국의 하수정치(1)”, 2023.06.26.). 신냉전은 “지는 해 미국이 순리적 후퇴를 거부하며, 이 추세를 뒤집으려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는 무리수” 때문에 발생한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무리수는 “대만의 분리 독립 문제 등을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내세워 대만을 자극하며 중국을 노골적으로 포위 봉쇄하고 나토의 동진으로 러시아를 자극하며 적대전선의 세계체제(신냉전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는 중국 경제가 부상하면서 국제적으로도 미국과 다른 질서를 형성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민주노총 통일교과서도 “중국이 일본을 따라잡고 두 번째 경제 대국 지위에 오른 것은 2009년이다. 그리고 2030년경 미국까지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며, 전쟁을 통해 패권을 유지해온 미국은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왔다고 설명합니다.
 
정리하면 미국은 쇠퇴하지만 반대로 중국이 떠오르고 있어, 이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신냉전을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핵심적 견제 방법은 전쟁을 유도하여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적 고립과 군사적 패배를 노리는 것이죠.
 
하지만 중국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경제는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경제는 고성장시대를 마감하고 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그래서 신성장동력 발굴에 실패하면 경제 하강은 더욱 빨라지고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죠.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관건이지만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중국은 정부가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추진하는데, 정부 주도의 기술혁신은 성공 사례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국경제에는 거대한 파급력이 예상되나 뚜렷한 대책이 없는 위험들이 존재합니다. 기업 부채, 부동산 거품, 그림자 금융입니다. 그중에서 부동산 거품이 중국경제 위기의 뇌관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최근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 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부진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위기감도 커져서입니다. 2021년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회사인 헝다그룹의 파산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휘청였는데, 올해 다시 헝다그룹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또 다른 대형 부동산 업체 완다그룹도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중국의 수출입, 제조업 지표도 부진하고 청년실업률은 20%가 넘어 역대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25일, 한때 중국 최대의 부동산 개발업체였던(현재 5위)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이 최초로 달러 채권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출처: 연합뉴스]
 
경제성장 둔화는 중국정치의 안정성을 위협합니다. 중국공산당은 고속성장을 강력한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왔는데, 성장이 감속하면 대중의 불만이 정부를 향할 수 있어서입니다. 시진핑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적 정서에 호소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2021년 11월 제3차 역사결의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시진핑 동지의 핵심 지위를 확립한 것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역사 추진에 결정적인 의미”라고 발표했습니다. 민족적 과업을 완수하려면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을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의 권위주의는 계속 강화되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관례를 깨고 3연임을 강행하면서 권력 장악을 공고히 했고,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억눌렀습니다.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개막 사흘 전인 2022년 10월 13일, 베이징 교통 중심지인 시퉁대교에 현수막 2장이 내걸렸다. 현수막의 내용은 “코로나19 PCR 검사 대신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 문화혁명 대신 개혁을, 영수(우두머리) 대신 투표권을, 노예 대신 공민(公民)을”, “독재자 시진핑을 파면하라”였다. 이 구호들은 한 달 뒤 시작된 중국 각지와 세계 곳곳의 ‘백지시위’에서 자주 등장했다.
 
대만 문제는 중국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 공격적 대외정책을 펼치면서 부상했습니다. 이를 본 대만 시민들은 중국과 통일하면 민주주의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중국과 거리를 두려고 했습니다. 시진핑 정권이 2019년~2020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를 진압하고 홍콩보안법을 도입한 과정은 대만 내에 “오늘은 홍콩, 내일은 대만”이라는 우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오늘은 우크라이나, 내일은 대만”이라는 위기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며 ‘대만 통일’ 주장을 밀어붙이면서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고립과 군사적 패배를 노려 대만 침공을 유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2019년 8월 14일, 홍콩 경찰이 송환법 반대 시위대에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발사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법이 반체제인사와 사회운동 탄압에 악용될 것을 우려하여,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 최장 기간의 시위를 펼쳤다. [출처: 로이터]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 경제가 침체하자 푸틴은 경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해졌습니다. 저항세력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대(大)러시아 애국주의’를 한층 더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러시아 애국주의는 과거 소련의 영토에 속했던 독립국들을 향한 팽창 의지로 노골화했습니다. 한편 권위주의를 강화한 푸틴 정권은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주변국의 민주화 운동, 탈권위주의적 흐름이 러시아에 영향을 미칠까 경계했습니다.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의 민주화 운동을 견제하는 동시에 대러시아 애국주의를 실현하는 최적의 케이스라고 판단하고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했습니다. 크림반도 합병으로 푸틴의 지지율은 급격히 치솟았고, 푸틴은 2020년 개헌을 통해 초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원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해석은 러시아 내부의 변화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귀결된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면죄부를 주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 미국은 중국과 공급사슬을 분리할까요?
 
머지않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리라 전망하는 민주노총 통일교과서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공급망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경제적 포위망을 좁힌다고 주장합니다.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앞지를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미국이 공급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지식재산권 적자 국가입니다. 특허와 저작권에 있어 중국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훨씬 큰 비용을 외국에 지불합니다. 반면 미국은 지식재산권 부문에서 압도적 흑자를 보고 있습니다. 미국 GDP의 38%가 지식재산권, 기술독점 수입에서 발생할 정도입니다.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앞지르는 상황은 아직까진 상상하기 어렵죠.
 
그렇다면 미국이 공급사슬에서 중국을 분리하려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중국이 기술혁신을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탈취하고 해외 기업들에 불공정한 기술이전을 강요해서입니다. 중국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독자적인 기술개발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성공 여부도 확실하지 않아, 중국은 해외로부터 기술을 이전받는 전략을 정부 주도로 취했습니다. 중국은 중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에 중국 기업과의 합작회사를 설립하거나 중국 기업으로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투자 허가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중국 국유기업들이 첨단기술 획득을 목표로 미국 기업 및 자산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파견한 스파이가 특정 기술을 노리고 외국 기업에 의도적으로 접근한 사례나, 외국 기업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핵심적인 영업 비밀을 도용해 중국 경쟁업체에 넘긴 사례도 다수 발각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법인을 상대로 한 미국 기업의 지적재산권 소송이 급증했고, 미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에 중국 당국에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트럼프 정부는 대중국 보호관세로 대응했고, 바이든 행정부도 글로벌 공급사슬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의 공급사슬 분리는 중국의 기술력이 미국을 추월할 것을 우려해서라기보다는 중국의 지적재산권 탈취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이 주됩니다.
 
2018년 10월 4일, 미국 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중국이 수년간에 걸쳐 마더보드에 감시용 칩을 심는 방식으로 애플과 아마존 등 미국 주요 IT기업의 기밀을 수집했다”며 좁쌀만한 마이크로칩을 공개했다. [출처: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물론 사회운동의 관점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주도해 구축한 현재의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 체제가 지식과 기술의 확산을 막는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대안적 규범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중국 또한 선진국에서 빼낸 기술로 발전시킨 자국 기업의 지식과 기술을 철저히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특허권이라는 기존 규칙을 깨고 미국이나 유럽 기업의 첨단기술을 빼내서 자국기업에 넘겨주고 있지만,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사회를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미국 반대를 무조건 옹호하는 사고 틀에서 벗어날 필요
 
민주노총 통일교과서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견제하려고 전쟁을 유도하고 공급사슬 디커플링을 추진하며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해 신냉전을 조장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중국과 러시아가 국내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국제질서를 위협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정세입니다. 이에 대응하여 제시된 미국의 ‘전략적 경쟁’은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견제한다기보다, 이들의 권위주의와 공격적 대외정책에 대응한다는 문제의식에 가깝습니다.
 
전략적 경쟁을 냉전에 유비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긴밀히 상호 연결된 가운데, 특히 중국이 세계 경제에 깊이 통합된 가운데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적 교류가 막힌 봉쇄정책을 기본으로 했던 과거의 냉전과는 다릅니다. 미국 경제는 대중국 무역적자를 중국의 미국 국채 구입으로 메꾸는 ‘달러환류’를 통해 유지되고 있으며, 여전히 중국은 이 메커니즘을 지탱하는 핵심국가입니다. 그래서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견제도 무역 단절이 아니라, 중국에 다자주의적 국제질서 준수를 요구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배제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즉, 전략적 경쟁은 갈수록 원심력이 커지는 중국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로 다시 포섭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사회운동의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이러한 질서를 자국에 유리하도록 위선적으로 활용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대만 침공 위협처럼 ‘무력으로 주권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질서의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행태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국가자본주의와 권위주의도 미국 자본주의 모델의 대안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미국에 대한 거부는 무조건 옹호해야 한다는 반제국주의 진영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차피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이유로 현존 질서를 거부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옹호한다면,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신 오히려 자유주의에도 미달하는 퇴행의 길로 향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사회운동은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평등,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을 실현할 것을 주장하며 강대국의 위선적 행태를 비판하고,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대안적 국제질서를 모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제어
평화 국제
태그
반핵 북핵 국제연대 우크라이나 전쟁 다극체제 국제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