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3.11.17

⑦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다극체제가 국제질서의 대안일까요?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사회진보연대
 

NL 일각의 찬사 섞인 평가와 달리, 중국, 러시아의 정치, 경제는 안정적으로 운영된다거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보적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 러시아 정권의 폭력, 인권탄압 행태를 단지 ‘반서방국가’라는 이유로 정당화하거나 못 본 체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권위주의 정권들을 지지하는 대신, 이들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대만, 홍콩, 이란 등지의 민중이 벌이는 투쟁에 주목하고 연대하는 것이 사회운동이 선택해야 할 길입니다.

 
현재 세계정세는 세계적 전쟁위험과 대안의 새로운 다극화 세계질서의 부상을 양대 특징으로 하는 인류사적 대전환기다. 미국의 일극체제에 맞서는 나라들은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결집해 브릭스11을 탄생시켜 대안의 다극화 세계질서 구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주권국가들의 평등과 호혜의 새로운 세계질서가 무력충돌과 경제대결의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 - 손정목 통일시대연구원 부원장, “세계적 전쟁위기. 피어나는 다극화 세계질서”, 《통일시대》, 2023.09.05.
 
다극체제 전환 진영은 공고화되고 확대되고 있다. 푸틴의 지지율은 60%대에서 80%대로 치솟았다. 러시아 국민 72%가 전쟁을 지지한다. 루블화의 가치 역시 (2022년) 3월엔 달러당 143루블까지 떨어졌으나 8월 1일 현재는 달러당 61루블로 치솟았다. 루블(ruble)이 ‘돌무더기(rubble)’가 되었다고 바이든은 비웃었으나 돌무더기가 된 것은 달러였다. - 2022년 민주노총×겨레하나 노동자 통일교과서3 『패권의 종말과 대전환, 우리 노동자는』
 
오늘 정세는 무엇을 뜻하나? 첫째, 조선(북한), 중국, 러시아로 대표되는 지구촌의 세 ‘반제자주핵전략국가’가 ‘전략적 연대협력관계’를 유지, 강화, 심화시키고 있는 정세를 뜻한다. 둘째, 위 세 핵전략강국을 중심으로 근본에서 반제자주적인 주로 이란, 시리아, 예멘,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같은 제3 세계 반제자주성향국가들이 조중러 세 반제자주핵전략국가의 지원, 엄호 하에 슬기롭게 상호연대하고 협력하는 정세를 뜻한다. 셋째, “나토/유럽연합 분열이 갈수록 심화되는” 정세를 뜻한다. - 정기열 21세기연구원 원장, “21세기 다극협력시대 반제자주원칙: 상호존중, 평화공존, 공동번영”, ≪민플러스≫, 2021.09.28.
 
위와 같이 여러 NL 그룹은 미국 혼자 주도하는 현재의 세계(‘일극체제’)와 달리 여러 국가가 주도권을 나눠 가지는 다극화(多極化, multipolar)된 세계는 더 진보적이고 평등할 것이며, 중국과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은 이러한 다극화를 주도하는 반서방, 반제국주의 세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다극주도세력의 힘은 커지는 반면 미국과 서방의 패권은 몰락하는 ‘전환기’라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한국도 이러한 다극지향진영과 함께 하는 것이 가치상으로도, 대세에도 맞는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평가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현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는 디지털 감시?
 
민주노총 통일교과서는 “미국에게 중국은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를 위반하는 가장 큰 도전국이다. 중국 역시 미국 질서를 거부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이 서구식 가치와 규범만을 강조한다며, 비서구 국가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다양한 중국식 가치와 규범이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중심의 질서를 거부하는 중국이 제시하는 대안을 살펴봅시다. 최근 중국은 자국의 민주주의는 ‘인민 민주’, 서구의 민주주의는 ‘선거 민주’라고 구분하며, 서구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라 돈을 가진 이들의 민주주의라고 주장합니다. 서구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 제도는 돈에 의해 좌우되기 쉽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세계의 민주주의 양식이 천편일률적일 수 없으니 중국은 중국에 맞는 길을 가겠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의 실체는 권위주의의 강화입니다. 중국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자국민에 대한 감시, 억압, 조작, 검열, 정치적 통제를 확대했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봅시다. 2022년 7월 중국 허난성에서 지방은행 4곳이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자, 이 은행에 돈을 맡긴 전국의 예금자 수천 명이 몰려와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예금주의 항의와 요구가 계속되자 허난성 당국은 1317명의 ‘코로나 건강 코드’를 격리 대상을 뜻하는 ‘적색’으로 조작했습니다. 은행에 항의하러 오지 못하도록 집회 참가자들의 외출을 금지한 것입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시민에 대한 보상 및 처벌 기제로서 ‘사회신용시스템’ 제도를 활용하여, 오직 통치에 순종적인 시민만이 사회·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신용시스템’이란 정부가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수집된 개인의 신용 및 금융 정보, 범죄 이력이나 사회활동 등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개인에게 일정한 점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 점수를 대출, 교육, 의료 보장 정책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사회신용 점수가 낮은 이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고속철도나 비행기 탑승, 고급 숙박시설 이용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자녀의 상급학교 진학이나 고용이 제한됩니다.
 
2019년 5월 중국 푸저우에서 열린 디지털 전시회에서 안면인식 장비가 방문객들의 나이·성별·머리 모양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모습. 2017년 중국 산둥성, 장쑤성, 광둥성 당국은 주요 도시 교차로에 안면인식 시스템을 설치하여, 보행자가 신호를 위반하면 스크린에 보행자 얼굴과 집 주소, 연락처 같은 개인 정보가 뜨도록 했다. 중국에 설치된 안면인식 카메라는 2017년 1억7,600만 대에서 2020년 6억2,600만 대로 급증했다. [사진출처: «로이터»]
 
이러한 디지털 기반의 권위주의적 통제모델은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권위주의 정권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적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사일 뿐,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부정합니다.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을 대체할 새로운 보편성을 제시하는 대신, 자유주의 이념에 미달하는 권위주의적 통제모델을 국제적으로 확대하는 중국의 행태는 세계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입니다.
 
 
제3세계의 빚의 덫과 적자로 귀결된 “일대일로”
 
또한 중국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대외정책인 ‘일대일로’(하나의 띠, 하나의 길)를 평가해 봅시다. 일대일로는 기존의 서구 중심 국제개발기구들이 불공정하여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지 않던 신흥국가들에, 중국이 개발자금을 제공하여 새로운 발전양식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야심차게 추진되었습니다. 중국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개발자금을 제공하고 대규모 인프라 구축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일대일로가 대안적 발전양식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들은 부채상환을 위해 영토와 시설물, 천연자원에 대한 이권을 중국에 넘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채 상환이 불가능한 수준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높은 이자로, 사업의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개발자금을 빌려준 탓입니다. 예를 들어 라오스 역사상 최대 공공사업이자 중국 일대일로 사업인 라오스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라오스는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차관 35억 4,000만 달러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라오스 GDP의 1/3에 해당합니다(김미림, 「중국-라오스 고속철도 공식 개통의 의미와 영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1.12.14.). 캄보디아, 라오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은 대외채무의 절반이 대중국 채무로 추정됩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중국에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금광, 발전소 등 국가 이권을 넘겼습니다. 중국에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국가가 자신의 항구 시설에 관한 권한을 중국에 양도하는 일들도 발생했습니다. 2015년 중국은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을 43년 간 조차하기로 했고, 2016년 그리스의 피레우스 항을 35년간 관리하고 운영할 권리를 획득했으며, 2017년에는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을 99년 동안 조차하기로 했습니다.
 
2022년 7월 9일, 스리랑카 반정부 시위대가 대통령궁을 점거한 모습. 라자팍사 대통령은 이날 밤 퇴임을 발표했다. ‘70년 만의 최악의 경제난’에 빠진 스리랑카는 같은 해 4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이 해 말까지 스리랑카가 갚아야 하는 대외부채는 70억 달러(8조 7990억원), 향후 5년간 상환해야 할 대외부채는 250억 달러(31조 4250억원)이었다. 이중 약 20%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생긴 것으로, 대외부채 급증과 코로나19로 인한 관광산업의 타격이 겹쳐 경제난과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출처: 게티이미지]
 
둘째로, 일대일로 참여국들은 생각했던 경제 발전 효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중국은 중국 기업이 공사를 수주하고 원자재와 노동력 역시 중국에서 들여오는 것을 일대일로 사업 융자 제공 조건으로 달았습니다. 따라서 일대일로 참여국 내에서 일자리가 창출되지도 않고 원자재 판매도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높은 이자율로 인해 중국에 대한 부채의 굴레에 빠질 뿐이었습니다. 서구가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방식을 그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대일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중국의 강제노동수용소를 묵과할 수 있을까요?
 
중국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장밋빛 전망들의 실상은 위와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인권 문제도 도저히 묵과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제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강제노동’과 ‘인종탄압’이라는 매우 심각한 인권 문제를 상징하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강제노동수용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중국 당국의 공식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연평균 100만 명 이상 규모의 소수민족 강제노동수용소를 운영하는 중국을 과연 우리가 세계질서를 이끄는 국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UN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상세한 보고서를 발간했듯, 신장 강제노동수용소의 존재는 UN 및 국제인권단체들의 노력으로 밝혀졌습니다. 강제노동수용소의 모습이 위성사진으로 드러나고, 2018년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위구르인 100만여 명이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다고 보고하자, 강제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중국 정부는 2020년, 연평균 노동자 약 129만 명에게 ‘재교육 시설’에서 ‘직업교육’을 실시했다고 마지못해 밝혔습니다. 테러와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의 전파를 막고 빈곤 퇴치와 노동구조 개선을 위해 표준 중국어, 기술 교육 등을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그간 모든 제기가 ‘일부 개인의 증언에 의존하는 서방의 악의적 거짓말’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인 중국 정부의 대응이 거짓말이었음을 자인한 셈입니다.
 
2022년 5월 영국 BBC 등 14개 언론사는 중국 공안(경찰)의 신장 강제노동수용소 관련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수감자들의 수감 사유 대부분은 사실상 무슬림 소수민족이라는 이유였으며, 수용시설에는 모든 지역에 무장경찰이 배치되어 있고 탈출을 시도하는 수감자는 사살한다는 원칙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중국 당국의 내부 문건을 통해 강제수용소의 현실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습니다.
 
신장 지역에서의 강제노동은 인민과 체제의 적으로 규정된 이들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 탄압, 정치경찰이 관할하는 강제수용소를 통한 교화와 재교육, 강제노동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기업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과거 소련의 ‘굴라크(정치범수용소) 체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소련과 달리 중국은 세계경제에 깊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즉,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된 상품이 글로벌 공급망을 따라 전 세계로 보내지므로, 신장 강제노동 문제는 인권 침해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와도 결부됩니다.
 
위성사진을 통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시 다반청구 내 수용소부지의 2015년, 2018년, 2020년 모습을 비교한 사진. «AP»는 2021년 7월 22일 서방 언론 가운데 최초로 이 수용소에 출입을 허용받아, 실태를 취재하고 보도했다. «AP»에 따르면, 7m 높이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있는 다반청 수용소는 26만 9318평에 달하며 1만 명 이상이 수감되어 있다. 위구르인 수감자들은 감방 한쪽 구석에 일렬로 앉아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알리는 영상을 시청한다. 통제실 직원들은 20여개 모니터로 240여개 감방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수감자들은 자리에 묶인 채 영상을 통해서만 변호사, 친척, 경찰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있다. [출처: BBC]
 
 
마피아 관례와 ‘전통적 가치’에 의존하는 러시아 권위주의
 
2022년 초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러시아 좌파는 러시아의 현실을 “법치주의가 아니라 ‘마피아 관례’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묘사합니다(포슬레, “‘프리고진의 행진’은 무엇에 관한 것이었나?”(번역), ≪사회운동포커스≫, 2023.06.28.). 단적으로, 푸틴 집권 이후로는 부정선거 의혹, 집회에 대한 폭력적 진압, 그야말로 ‘마피아’를 연상시키는 반정부인사·언론인 암살 사건, 체첸 등 ‘조작’된 테러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시위와 반전활동가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한편, 지배층 중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기업가들의 의문사가 계속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6월 푸틴 정권이 ‘비공식 통치’의 도구로서 육성해온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이 반기를 들어 모스크바 인근까지 진격하고, 여기에 군대와 시민들이 전혀 저항하지 않는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이러한 통치의 불안정성이 폭로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소련 붕괴 이후 전체 수출액의 60~70%를 석유, 천연가스 수출이 차지할 정도로 자원 수출에 매우 크게 의존하는 산업구조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를 관리하는 거대 국유기업들은 ‘실로비키’(군대, 비밀경찰 출신 인사)라는 푸틴의 측근 그룹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푸틴과 연고를 지닌 이들이 거대 국유기업과의 수상한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푸틴과 ‘경제공동체’를 구성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러시아의 경제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 경제는 장기저성장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푸틴 정권은 장기 통치를 위한 기반으로 대러시아 애국주의와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종교(러시아 정교)와 ‘전통적 가치’를 동원하여 여성권·성소수자의 권리 등을 억압해왔습니다. 가족 내에서는 폭력 범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전통적 통념을 근거로 통과된 2017년 가정폭력 처벌 완화법,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문화적, 가족적 가치와 전통을 보호하고 서구의 반가족 이념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올해 7월 통과된 성전환수술·성별변경 금지 법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푸틴 정권은 또한 무력을 통해 주변국의 권위주의를 지원해왔습니다. 1994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퇴진 위기에 처하자, 푸틴은 벨라루스에 러시아군을 파견하였으며 경제 지원을 실시했습니다. 2022년 1월, 토카예프 정권의 요청으로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무력 진압에도 러시아군이 투입되었습니다.
 
2022년 4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부활절 의식에서 만난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 총대주교(왼쪽)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 정교회 신자는 러시아 인구 약 1억 4천만 명 중 1억 명에 달한다.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 대통령이 2022년 9월 ‘부분동원령’을 발동한 뒤로 예배에서 신자들의 참전을 촉구하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은 천국에서 영광과 영생을 누린다”,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죽으면 모든 죄가 씻긴다” 등의 설교를 하여 세계 종교인들의 비판을 받았다. [출처: AP]
 
따라서 우크라이나 민중은 러시아의 권위주의와 인권 탄압이 우크라이나 사회에도 강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특히 좌파·노동조합·페미니스트·유태인·성소수자와 같이, 억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그룹들이 적극적으로 항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에 맞서는 세계 민중의 저항에 함께 합시다
 
‘반서방 다극화 연대’에 함께 하자는 NL 주류의 주장은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의 권위주의 정권을 그 나라 민중과 동일시하며 이 정권들과 연대하자는 맥락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들에는 자국 정권의 권위주의에 반대하며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이 있습니다. 결국 쟁점은 소위 ‘반서방 연대’ 권위주의 정권들을 ‘반(서방)제국주의’ 대안세력으로 인식하고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반서방 국가’의 권위주의·팽창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과 연대할 것이냐입니다.
 
2022년 5월 25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전선으로 떠나는 날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 안토니나 로마노바가 유니폼에 달린,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유니콘 휘장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로이터]
 
“봉쇄 대신 자유”를 요구한 중국 ‘백지시위’
 
2022년 11월 24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주민 1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따라 건물 입구에 설치된 구조물로 인해 주민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해 생긴 사고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사건은 3년 간 지속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발의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한 달 전인 10월 22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데 대한 불만도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이로써 1989년 ‘천안문 항쟁’ 이후 33년 만에 일명 ‘백지(白紙)시위’의 물결이 중국 전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시위에는 오늘날 중국에 민주주의와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는 제기와,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직접적인 규탄까지 등장했습니다.
 
세계가 코로나19 전염병 위기로 빠져든 뒤, 중국공산당은 초강경 봉쇄 정책과 빠른 ‘코로나 종식’ 선언을 중국 체제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증거로 내세워 왔습니다.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중국식 현대화’ 또한 “현대화는 서구화의 동의어가 아니다”(2022년 11월 3일)라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이 보여주듯, 경제·정치·문화에 있어 ‘중국 모델’은 서구식 체제와 다르며 더 우월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당대회 바로 한 달 뒤 “봉쇄 대신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백지시위가 터져 나온 현실은, 중국 민중이 그러한 ‘중국 모델’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여기에 저항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2022년 11월 30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재한 중국인 백지시위에 서 참가자들이 우루무치 화재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의미의 ‘우루무치중로’ 현수막과 백지, “백지혁명 중국”, “자유중국”, “시진핑 반대”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러시아에 자유를!” 요구하는 러시아 반전운동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개시된 이래로, 페미니즘 운동, 노동운동, 소수민족 해방 운동, 학생운동 등 다양한 러시아 사회운동은 푸틴 정권이 밝힌 개전 근거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러시아군 즉각 철수”, “징병 중단”을 요구하고 우크라이나 민중에 대한 연대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반전활동가들은 “전쟁이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연방에서 반전 활동을 벌이다 연행된 사람이 없었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러시아 사회에 민주주의와 자유가 부족했기에 푸틴의 야욕이 쉽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침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다시 러시아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 시민에 대한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러시아 사회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는 떨어질 수 없는 요구입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러시아에 자유를!”이라는 구호가 이를 상징합니다. 러시아의 제2노총인 러시아노동총연합(KTR)도 침공 다음 날인 2022년 2월 25일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러시아에 자유를!”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여, “군사분쟁의 직접적인 결과로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노동자민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침통함을 느낀다”며 “군사행동은 가능한 가장 신속하게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부분동원령’ 선포 사흘 뒤인 2022년 9월 24일, 서울 주한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재한 러시아인들의 <동원 반대! 전쟁 반대!> 시위.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나는 우크라이나와 연대한다”, “푸틴의 테러를 멈추자”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재한 러시아인 반전단체 ‘Voices in Korea’]
 
“여성, 삶, 자유”를 외치는 이란 민중
 
중국, 러시아, 북한과 함께 ‘반서방연대’를 형성하는 주요 국가인 이란에서도 2022년~2023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동맹휴업,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진행되었습니다. 2022년 9월 16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끌려간 22세 쿠르드계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가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9년 수립된 이란 이슬람혁명 체제와 신정일치 권위주의 통치, 여성억압, 경제실패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폭발한 것입니다.
 
이란 이슬람공화국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사주한 시위’라며 초강경 진압을 선포하고, 반정부 시위자들을 ‘신에 대한 반란’ 혐의로 사형을 집행하며 심지어 공개 교수형에 처하고 그 사진을 배포하는 등 극도의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9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에게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히잡과 순결법’을 통과시켰고, 10월 29일에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폭행당해 혼수 상태에 빠진 16세 아르미타 가라완드가 끝내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2022년 10월 23일 서울에서, 이란 내 반정부시위에 연대하며 시위에서 숨진 희생자들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재한 이란인 시위. “이란 여성들과 함께 일어나자”, “히잡 착용 강요 반대, 이슬람 정권 반대”, “이슬람 정권이 우크라이나인들을 죽이고 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사회운동은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의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라, 이에 맞서 투쟁하는 각국 민중과 연대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권위주의, 팽창주의에 맞서는 국제연대를 만드는 것이 진보적 사회운동의 기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무장과 중국, 러시아의 권위주의 확대에 둘러싸인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에 적합한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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