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5.05.23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말하지 않는 대선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책임 없는 공약 남발
현재 한국경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0%대로 예상되며, 잠깐에 그치지 않고 잠재성장률 자체가 6년 내 0%대로 진입하리라 전망된다(한국개발연구원). 이런 상태 속의 이번 대선에서 거대 양당과 그 후보들은 자신이 경제를 살릴 적임자라며 각종 공약을 매일 같이 쏟아내고 있다. 이 와중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과거에 제시했던 이른바 ‘호텔경제학’이 화제가 되는 등 경제를 향한 대중적 관심과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심지어 ‘소비성향’이니 ‘승수효과’니 하는 경제학 개념도 언급되나,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구체적 현실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사회진보연대는 현재 한국경제가 구조적 저성장, 가계·기업·정부의 부채 급증, 수출위기 심화, 재벌체제의 비효율성이라는 복합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4년 겨울호, 「한국경제 전망과 제약 조건」) 이를 상기하며,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는가를 기준 삼아 거대 양당의 주요 경제 공약과 저변의 경제 인식을 평가하고자 한다.
낮은 잠재성장률, 급속한 정부부채 증가, 한계에 처한 수출 대기업
한국경제의 성장 여력이 급속히 소진되고 있는데, 그 속도는 OECD 평균에 비해 훨씬 빠르다. 노동투입, 자본투입, 총요소생산성이 모두 성장 둔화하고 있다. 특히 인구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노동시간도 감소하는 추세여서, 노동의 잠재성장률 기여도가 곧 마이너스대로 진입한다. 자본 투입의 경우, 이윤율 하락과 함께 투자 증가율이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생산성 증가율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경제 잠재성장률 전망 (출처: 한국개발연구원)
이는 한국경제가 총수요 측면에 작용하는 경기부양책(재정·통화정책)으로 대처 불가능한, 장기 성장의 차원에서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는 뜻이다. 이 한계는 역으로 재정·통화정책을 시행하는 데 큰 제약을 가한다. 어떤 식으로든 구조개혁 없이는, 한국경제가 0%대의 장기 저성장의 고착화를 피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재정·통화정책을 제약하는 족쇄로 가계·기업·정부의 부채 급증을 꼽을 수 있다. 이중 특히 정부부채의 엄청난 증가 속도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부채 규모 및 GDP 대비 비율 (출처: 열린재정 재정정보공개시스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규모가 선진국과 비교해 그리 크지 않으니 더 늘려도 괜찮다는 지론을 이번 대선에서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남이 빚을 얼마 지고 있냐가 아니라, 내가 향후 늘어가는 빚을 소득 증가로 따라잡을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지난 5년간 부채의 연평균 증가율은 국가채무(D1) 9.3%, 정부부채(D2) 8.5%, 공공부문 부채(D3) 8.1%로, 같은 기간의 경제성장률을 크게 앞질렀다. 이미 늘어나는 빚을 감당 못 하는 상태라는 뜻이다. 게다가 경기 부진 탓에 법인세와 소득세를 중심으로 세입이 대폭 줄어, 세수 결손이 2년째 발생하고 있다. 국고채 평균 조달 금리가 2020년 1.38%에서 2023년 3.57%로 상승했고, 국고채 총발행량 중 순발행 비중이 2020년 66.1%에서 2024년 31.5%로 감소하는 대신 차환 발행(쉽게 말해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지는 것) 비중이 증가했다. 돌려막기를 하며 추가로 빚을 지는 비용도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수출 대기업과 그 외 부문 간의 양극화는 한국경제의 고질적 문제인데, 최근에는 수출 부문 자체도 한계에 봉착했다. 중국의 기술 추격과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라는 압력에 더해, 재벌의 비효율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한국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그중 80~90%를 점하는 삼성전자의 위기가 지적된다. 대규모 자금조달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범용 반도체를 저렴하게 생산하는 데는 재벌구조가 유리했으나, 그룹 지배권을 우선하며 파운드리 분사를 거부하는 등 비효율적 사업구조를 유지한 탓에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에 밀렸다는 것이다.
수출이 둔화하는 가운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연 글로벌 관세전쟁은 외부 충격을 배가하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상당한 피해를 주리라 예상된다.
한국경제의 저성장 고착화에 대해 대처하려면, 근본적으로는 생산성 둔화를 어떻게 지연 내지는 막을 것인가와 더불어, 급증하는 정부부채, 수출 대기업과 그 외 부문의 양극화 및 재벌체제의 비효율성,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가속된 수출위기 등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직시하고 풀어야 한다. 한국경제의 이러한 구조적 위기를 다루지 않는 일시적 경기부양책들은 대책으로서 적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조적 위기를 심화시키고 대응력을 더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특정 부문·기업 대상의 산업정책으로 점철된 경제 공약
: 경제적 효과에 대한 고려와 전략이 없고, 재정 낭비와 정치적 논란만 낳을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한국 정치를 책임지는 거대 양당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다루기는커녕, 재정정책에도 미달하는 산업정책이나 소득 지원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인공지능(AI) 기본사회’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전국 확대’를 대표 사례로 들 수 있겠다. (두 공약은 사실 양 후보가 모두 내건 것이나, 상대적으로 더 내세우는 쪽의 내용을 기준으로 서술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전면에 내세운 경제 공약은 ‘AI 기본사회’ 건설이다. “AI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겠다”, “국민 누구나 쓸 수 있는 ‘한국형 챗GPT’를 만들겠다”, “엔비디아 같은 회사를 설립해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등 야심 찬 발언과 함께 말이다. (김문수 후보도 이에 덩달아 ‘AI 투자 100조 원’을 공약했다.) 올해 AI 관련 정부 예산이 추경을 포함해도 약 3.6조 원인데 100조 원을 어찌 조달하겠다는 것인지 현실성이 없고 구체적 계획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이재명 후보는 지난 18일 대선 토론회에서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지원해 민간 기업들과 합동으로 국내 LLM(거대 언어모델), “주권(sovereign) AI”를 개발하며 그 방식은 해당 주체들이 알아서 정할 것이다, 그리고 ‘100조 원’은 ‘당장 한 번에 그만큼 투자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식으로 부연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가치사슬 (출처: 한국개발연구원)
그런데 산업정책 자체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상당한 국가재정을 투여하겠다면서 이 후보의 설명에서 AI 산업 생태계 이해에 기초한 산업전략마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수용 LLM(거대 언어모델) 구축과 같은 국내 AI 기초모델 개발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기업들의 AI 활용과 관련된 특수 서비스 개발과 수출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등 말이다. 전자는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기에 대기업 중심이며, 후자는 스타트업 중심으로 현재 한국 AI 산업에서는 후자의 기업 사례가 더 많다. “한국형 GPT” 같은 표현처럼 이 후보의 초점은 전자에 맞춰져 있는데, 국내 LLM의 경우 이미 네이버 등의 민간기업이 모델을 구축해 온 바 있다. 따라서 최소한 이 후보가 말한 “주권 AI”가 그런 민간 모델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정도는 내용이 있어야 했지만 없었다. 게다가 현재 AI 기업들이 정부에 주로 요구하는 것은 인프라 투자, 특히 고성능 GPU 확보와 국내 특화 데이터셋의 구축인데, 이 후보가 말한 방향은 그와 초점이 다르다.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산업정책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어찌저찌 민간 부문을 끌어들인다 쳐도, 100조 원 규모면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국내 투자 규모를 봤을 때 글로벌 펀드를 대거 유치해야 하는 수준인데, 그들이 “국민이 무료로 사용하는” 내수용 LLM 개발에 투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글로벌 펀드에 상당한 이권을 보장해 주지 않는 한 말이다. ‘주권 AI’에 기초한 ‘AI 기본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허황되거나 모순인 셈이며,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몇몇 기업에 돈을 뿌리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상술했듯 한국의 국가재정 지출 여력이 상당히 제약된 상황에서 산업정책을 쓴다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해 민간의 새로운 산업부문 형성과 자립을 도울 것인지, 나아가 이것이 한국경제 전반에 어떤 식으로 파급되게 할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기존 산업이 AI를 활용하는 데서 생산성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는지, 이것이 노동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세심히 고려하여 정책을 세워야 한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나 지적재산권 이슈 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후보의 발언을 볼 때, 기술의 경제적·사회적 효과에 대한 논의를 꼼꼼이 살피지 않고 그저 ‘AI 기술이 유망하다고 하니 국가재정을 때려 넣겠다’는 수준에 머무는 듯하다. 군사독재 시절의 발상인데, 지금의 한국경제는 신기술의 도입이 경제성장이나 구조 개선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결함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공유한다. 그는 경기도지사 시절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을 치적으로 강조하며 ‘GTX 전국 확대’를 주요 경제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재명 후보도 이를 공약했지만, 김 후보 측이 주로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교통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 목표를 해치는 국가주도적 산업정책이자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GTX 전국 확대 공약 (출처: 김문수 후보 대선 공보물)
GTX의 1km당 건설비는 약 712억 원으로, 광역도로(277억)나 간선급행버스(67억)에 비해 훨씬 비싸다. 현재 수도권에 추진 중인 GTX 노선도 한 노선당 총사업비가 3~4조 원에 이르며, 전국 확대를 한다면 그 액수가 수십조 원에서 수백조 원에 달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지방에서는 근교 이동시 다른 교통수단 대비 철도 수요가 극히 낮다. 가령 수도권에서는 시·도 간 이동 시 철도 이용 비율이 27.1% 정도지만, 광주·전남권은 0.4%에 불과하다. 김 후보가 ‘경기도에서 해냈으니 전국에서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오류라는 것이다. 당연히 민간투자를 끌어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만약 건설을 강행한다면 그 손실은 정부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지역의 인구와 산업 분포, 입지, 소득 구조에 대한 세밀한 분석에 기초해 ‘GTX 전국 확대’의 경제적 효과나 지방발전 전략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국가재정을 때려 넣으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수준으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지역발전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수요가 없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지역경제에 별반 기여하지 못한 채, 단지 지자체 나아가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는 지역발전에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던 재원을 버리는 셈이다. 나아가 지역발전의 명분 자체를 손상시킬 수 있다.
김문수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국가주도적 경제관을 비판하며 민간주도 성장을 강조하고 ‘규제 완화’를 제1의 경제 공약으로 내세운다. 그런데 그는 지난 18일 대선 토론회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규제 완화의 대표 사례로 반도체특별법의 ‘주 52시간 제한’ 완화를 들었다. 이는 김 후보가 ‘민간주도 성장’을 ‘특정 기업의 요구를 편향적으로 들어주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술했듯 반도체 산업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위기는 그 경영구조의 비효율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서 주 52시간 규제를 푼다고 될 일이 아니고, 근본적으로는 수익성보다 그룹 지배권 유지를 우선하게 만드는 재벌구조를 개혁해야 할 일이다. 김문수 후보는 앞서 ‘GTX 전국 확대’도 그렇고, ‘규제 완화’의 사례로 꼽은 것도 그렇고, 말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국가주도적 경제관을 공유하고 있다.
‘주 52시간 제한’ 쟁점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AI 기본사회’든 반도체특별법이든 특정 산업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산업정책 자체의 쟁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GTX 전국 확대’는 ‘산업’정책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평가할 수 있다.) 산업정책은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국내 산업·기업을 보호하나, 한편으로는 혜택을 받는 기업들이 경쟁력 없이 정부 재정에 의존하는 ‘좀비 기업’이 되거나, 특정 기업과 정부 간의 정치적 거래와 부패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이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왜 특정 부문·기업을 지원해야 하는가의 형평성 문제를 낳으며,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한국에서 그런 논쟁은 정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을 향하기보다 정쟁(政爭)으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서 재벌 특혜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으며, 같은 맥락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지역화폐 사업이나 재생에너지 사업도 논란이 될 수 있다. 가령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서해안에 지역 재생에너지 생산지를 구축하고 일명 ‘에너지고속도로’를 지어 전국에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앞서 ‘GTX 전국 확대’와 마찬가지로 수익성 문제가 지적되는데, 만약 공약을 강행한다면 과거 박정희 정부가 재벌을 육성했듯 정치권과 연결된 특정 산업·기업·지역에만 세금을 쏟는 것에 대해, 대중적 반감이 초래될 수 있다. 특혜 논란은 재생에너지 쟁점에 관한 합리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의 결합
: 역진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 모두 경쟁적으로 특정 집단을 타겟으로 혜택을 주는 공약을 쏟아내고, 그 재원 조달의 현실성과 정책의 효과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덜 논의되고 있지만 경제적 효과는 더 클 수 있는 감세 공약에도 주목해야 한다.

현행 근로소득세 과세표준 구간과 세율 (출처: 중앙일보)
근로소득세제 개편(과세표준 물가연동제, 공제액 및 공제 범위 확대)은 양대 후보가 다 제기하는 공약이다. 과세표준 구간이 오랫동안 고정돼, 명목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을 반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득세율이 오른다는 게 주요 근거다. 물론 현행 과세표준 구간이 2008년 이래 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기에, 물가 상승에 따른 과표 구간의 변경 내지는 물가연동제가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는 일리가 있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실효 소득세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다는 점이다. 세율 자체도 낮을뿐더러 각종 공제가 적용되어, 전체 노동자의 33.6%가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과표 구간을 상향 조정하고 공제액을 확대한다면, 사실상 소득 중상위층 이상의 근로소득자가 감세 혜택을 추가로 얻게 될 것이다. 근로소득제 개편 공약이 수도권 중산층을 노린 공약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는 세율이 높은 집단의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안 그래도 결손이 발생하고 있는 소득세 수입을 더욱 줄일 것이다. 조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후보들의 공약과 반대로, 전 구간에서 실효 소득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문수 후보는 근로소득세제 개편에 더해, 법인세와 상속세 인하까지 약속하고 있다. 기업 세금을 깎아 주면 투자가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는, ‘공급 중심 경제학’의 전형적 논리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는 ‘부두 경제학(voodoo economics, 미신과 같이 비합리적인 경제이론)’이라는 말의 효시가 됐는데, 세금 감면이 투자의 증가로 반드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며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던 탓이다. 기업의 투자 결정의 가장 주요한 요인은 수익성(이윤율)이라는 점에서, 세금 감면이라는 대증요법보다 경제구조의 개혁이 더 중요할 것이다. 게다가 소득세와 마찬가지로, 안 그래도 결손이 나고 있는 법인세를 감면한다면 정부재정 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상속세 인하에 관해 국민의힘은 중소기업 승계의 어려움을 명분으로 들며, 실제로 한국 중소기업이 창업 세대 이후 대를 잇지 못하고 파산하는 문제는 노동시장 측면에서도 현재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는 한국 경제구조가 양극화된 상태에서 중소기업의 저생산성으로 인한 2세대의 경영 회피가 원인일 것이다. 상속세 인하는 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부동산을 상속하려는 수도권 중산층의 표를 노린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근로소득세제 개편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문제는 양당 후보 모두 감세를 공약하는 동시에 정부재정으로 특정 층위의 집단에 혜택을 주는 공약을 수도 없이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물론 5월 22일에 전가의 보도인 ‘기본사회’를 다시 꺼내 들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보편적 기본소득’보다는 선별적 소득지원 정책을 여러 집단에 펼치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공약들을 합치면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요구하는데, 과연 각각의 선별적 지원책이 어떤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에 대처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없다. 보편적 지원이냐 선별적 지원이냐는 잘못된 쟁점인데, 후자 역시 (앞서 산업정책의 단점처럼) 경제적 효과는커녕 그저 특정 집단에 돈을 뿌리고 끝날 수 있고, 이는 형평성 논란과 정쟁으로 귀결될 수 있다. 상술했듯 정부재정의 여력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그 지출은 신중히 즉 분석과 논의에 입각해 풍부한 근거를 갖추고 해야 할 것이다.

일명 '호텔경제학'에 대한 설명 (출처: 경향신문)
이재명 후보가 과거에 제시했던 이른바 ‘호텔경제학’이 지금 화제가 된 데에는 국가재정 낭비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정치권 논쟁의 초점은 엇나가 있다. ‘한계소비성향 1 미달’(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이냐 ‘승수효과’(이재명 후보)냐를 말하기 이전에, 애초에 케인즈주의적 재정정책은 총수요관리정책이지 경제성장과 관련된 정책이 아니며, 심지어 이번 대선에서 쏟아지는 공약의 대다수는 케인즈주의적 재정정책조차 아닌, 소득지원 정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경기순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상술했듯 노동투입, 자본투입과 생산성이 모두 둔화하는 상태라는 뜻이며, 이는 재정정책·통화정책과 같은 총수요관리정책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이에 미달하는 선심성 소득지원 정책은 더더욱 그러하다.
한편 재정지출 확대를 경제성장이 아닌, 복지나 소득 재분배 측면에서 요구하는 여론도 있다. 그런데 재정 불안에 따른 피해를 소득 하위층이 가장 심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원달러 환율의 추이 (출처: 구글)
상술했듯 한국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수출 둔화까지 겹치며 기업 수익성이 악화하고, 정부재정 상황이 계속 안 좋아지면서, 국채를 비롯한 원화 자산 보유의 이점이 사라지고 원달러 환율이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이후 달러가치가 잠시 하락했으나, 그 직전에 환율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수준에 육박했으며 (국가채무 증가가 미래세대의 부담이라는 점에서 비판이 많지만) 이 상태가 계속되면 미래세대가 오기도 전에 환율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인지하며 한국의 부유층은 물론이거니와 중산층도 이미 광범위하게 해외자산 특히 미국자산으로 도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재정 불안과 원화가치 하락,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등의 부담을 떠안는 집단은 미래세대 혹은 해외자산으로의 도피가 어려운 소득 하위계층일 것이다. 각종 선심성 소득지원 정책이 결국에는 역진적 결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재정 운영의 실패는 전 국민의 불행으로 이어지기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재정적 여력을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할 것이다.
관세전쟁의 국내 경제적 효과 분석과 대책 논의가 시급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상호관세는 유예됐으나,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에 대한 관세(3월 12일),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수입에 대한 관세(3월 27일)는 부과됐고, 향후 반도체 관세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는 모두 한국의 주력 산업을 심히 타격하며,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업체뿐만 아니라, 그 하청업체, 미국 외 다른 나라와 거래하는 업체 등 다방면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 수출 거래 축소 내지는 중단 위험 증가, 수출 수요 위축에 따른 물량 감소, 수익성 악화에 따른 납품단가 인하 압박, 현지 공급 압박에 따른 투자 및 생산비용 증가, 국내 산업공동화, 미국 외 수출시장 경쟁 격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의 경제적 효과가 서로 처지가 다른 업체들에 상이한 방식으로 가해질 것이다. 가령 자동차 산업만 하더라도, 대미투자를 꾸준히 추진해 온 현대·기아차와 대미수출에 집중해 온 한국GM, 그리고 부품사 중에서도 미국 이전이 가능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 간의 처지가 갈리고 있다.
문제는 대선 후보들의 발언에서든 토론회에서든 관세 부과가 한국경제와 산업들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식과 해법 논의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대선 토론회에서는 통상 문제 대응이 주요 주제 중 하나였음에도, 외교노선 그것도 ‘한미동맹’과 ‘친중’을 둘러싼 이념공방에 논의가 머물렀다. 물론 통상 문제는 외교와 분리할 수 없지만, 후보들에게 통상 문제 대응 자체에 관한 구체적 전략이 없어 보인다. 국내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가운데, 이를 분석하며 정부는 그런 복잡성을 고려한 균형 있는 대책을 어떻게 낼 것인지 논의하지 않으면, 결국 방위비 부담금 인상과 같이 또 국가재정으로 관세 부담을 완화하는 수준에서 그칠 수 있다. 이는 시장에서 협상력이 보다 약한 처지의 기업, 주로는 국내 중소기업이 타격을 입고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가재정으로 다 해결해 주겠다는 말 속에서
눈을 감지 말자고 이야기하자
현재 한국경제는 구조적 저성장, 가계·기업·정부의 삼중 부채 급증, 수출위기 심화, 재벌체제의 비효율성이라는 복합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런 상황일수록 사회운동이 경제의 객관적 현실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하며,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지금 대선에서 거대 양당 후보의 공약이나 그 저변의 경제 인식을 볼 때,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구조적 위기를 직면하고 이를 국민에게 그대로 설명하며 해법을 모색하려는 태도를 찾기 어렵다. 과거 발전주의 시절처럼 여전히 ‘국가가 재정을 쓰면 경제는 좋아진다’는 인식, 자기 지지율과 표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선심성 지원 정책의 난무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장기 저성장을 더욱 고착화하며, 그로 인한 경제위기의 피해는 당연히 취약층부터 받을 것이다. 아무리 급하게 치러지는 대선이라 하지만, 그동안 한국의 거대 정당이 한국경제의 상태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사회운동은 시민에게 결국 피해를 줄 수 있고, 국가의 구제에 시민사회가 종속되도록 만드는 방향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일수록 시민들이 경제 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현실을 호도하고 대증요법이나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며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피해를 줄 정치인을 경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