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5.05.29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겠다 말하지 않는 대선

헌정위기의 원인에 대한 인식 없이 헌정수호를 약속할 수 있나

사회진보연대
5월 27일, 대선 투표일을 일주일 앞두고 정치분야 TV 토론이 열렸다. 주최 측이 제시한 세 가지 주제는 정치양극화 해소방안, 정치개혁과 개헌, 외교안보 정책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앞의 두 가지 주제에 관해 후보들이 말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우리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1. 정치양극화, 원인과 해소방안: 정치양극화의 원인은 상대방에게 있다?

 
TV 토론에서 네 명의 후보가 말한 바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발언 순서대로 요약했다.)
 
권영국 후보: 사회적 불평등이 정치양극화의 뿌리다. 상위 10%는 기득권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김문수 후보: ‘비명횡사, 친명횡재’는 내 편이 아니면 다 응징하겠다는 편가르기다. 본인은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
이준석 후보: 가장 심각한 가짜 뉴스는 부정선거론이다. 이재명, 김문수 두 후보도 부정선거론을 믿었다. 거짓말을 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바른 말 하는 대통령을 뽑으면 해결된다.
이재명 후보: 계엄은 야당을 말살시켜버리겠다는 시도라는 점에서 정치양극화의 극단적 형태다. 본인은 소통과 대화, 협치를 복원하고, 유능한 사람들을 편가르지 않고 제대로 쓰겠다.
 
각 후보가 말하는 정치양극화 현상의 문제는 모두 수긍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여야의 극단적 대립이 의회와 행정부의 대립, 즉 국가기관 간 충돌로 이어졌다. 정치양극화의 극단적 형태가 이번 계엄사태라는 이재명 후보의 지적은 타당하다. 또한 정치양극화, 정당양극화는 정당 내부의 일극화를 동반한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정당(내부)일극화에 관한 김문수 후보의 지적도 중요하다. 정치양극화는 선거불복을 동반하는데, 선거불복은 불공정한 선거만큼이나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다. 부정선거론이 가장 심각한 가짜뉴스라는 이준석 후보의 지적도 타당하다.
 
사회적 불평등이 정치양극화의 뿌리라는 권영국 후보의 지적도 당연히 중요하다. 사회적 불평등이 최소한 정치양극화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사회적 불평등 심화가 어째서 계급정치와 진보정치를 촉진하는 게 아니라 현재와 같은 정치양극화로 이어지는가, 그 과정에는 어떤 매개가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 정치를 이끌고 있는 중요 지도자인 모든 후보가 타당하고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왜 정치양극화 문제는 완화되지 않고 있는가. 그들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간단히 말해 자신에 대한 반성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도, 선고 요지에서 국회의 책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국회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피청구인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될 정치의 문제다.” 즉, 국회와 야당의 반성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단지 헌법재판관들만의 인식은 아닐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이미 행동했던 바에 대한 반성은 없이,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협치가 실현될 것이라고 단언할 뿐이다.
 
한편 김문수 후보는 본인의 다채로운 이력을 내세우며 자신이야말로 대통령이 되면 통합을 실현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일종의 ‘인물론’을 주장한다. 물론 정치지도자 개인의 정치적 자질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나, 대통령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듯 주장하는 행동이야말로 환상을 유포하는 것이다.
 
게다가 김문수 후보가 과연 적합한 정치관을 지녔는지 의문이다. 김 후보는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되기 전, 개헌 문제에 관해 "대통령 독재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국회 독재"라며 대통령보다는 국회의 권한을 견제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의 탄핵 시도와 예산 삭감, 특검 추진 등을 막을 제도가 헌법에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의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강 대 강의 대결에서 대통령의 더 강한 권한을 원하는 셈이다. 정치양극화를 해소하는 방안이 대통령에게 더 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일 수는 없다.
 
TV 토론을 보면, 마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곧 패배라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이미 우리의 정치문화에서 반성은 관용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더 강한 비난이나 처벌 요구로 이어지기 때문일까.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나는 잘못한 적이 없고 모든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는 태도야말로 정치양극화를 부추기는 태도 아닌가. 오직 권영국 후보만이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라고 기회를 주셨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진심으로 반성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2. 정치개혁과 개헌: 진정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려는 후보가 있는가

 
김문수 후보: 이재명 후보가 삼권분립을 파괴하고 삼권을 장악하려 시도한다. 입법폭주, 탄핵남발, 방탄입법에 이어 카카오톡도 검열한다는데 괴물독재의 신호탄이다.
이준석 후보: 이준석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개헌을 할 수 있고, 기득권 개헌 야합을 넘어설 수 있다.
이재명 후보: 5.18 정신 전문 수록, 책임정치 실현을 위한 4년 연임제 도입, 대통령 결선투표 도입, 계엄요건 엄격화, 대통령 거부권 제한, 국민 기본권 강화, 지방자치와 분권 강화.
권영국 후보: 광장개헌, 차별과 불평등 타파 개헌, 계엄 조항 변경과 5·18 정신을 담는 것으로 출발, 평등헌법·노동헌법·농민헌법·기후헌법·돌봄헌법.
 
김문수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삼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는데, 이는 타당하다. 실제로도 민주당은 대법관 100명 증원 법안과 비법조인 대법관 임용 법안을 추진하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5월 26일 철회했다. 이재명 후보도 나의 뜻이 아니라며 물러섰고, TV 토론에서도 자기 생각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런데 민주당이 추진하다 철회한 ‘사법부 개혁’은 가벼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해외 여러 나라에서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집권한 후 사법부를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려 한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는 법원 산하에 있던 검찰을 법원에서 분리시켜 행정부 산하에 두고, 또 법관의 징계를 담당하는 고등징계법원을 별도로 설치하려고 시도 중이다. 폴란드 ‘법과 정의당’은 대법관 임명권을 사법부에서 정부로 변경했고, 헝가리 오르반 총리는 법관 정년을 낮추면서 친정권 인사로 대거 교체했다. 모두 사법부 개혁을 명분으로 삼지만, 실은 사법부 독립성을 심대하게 파괴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찰개혁’에 이어 ‘법원개혁’이 실제로 무얼 목표로 하는지 앞으로도 계속 주시해야만 한다.
 
그런데 김문수 후보는 본인의 적극적인 정치개혁안이나 개헌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5.18 헌법전문 수록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동의한다, 계엄선포 국회 사전동의 절차 도입에 찬성하냐는 질문에 (사실상) 찬성하지 않는다는 식의 수동적인 답변만 했다.
 
TV 토론 며칠 전에 국민희힘이 발간한 대선 공약집에는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 추진하고, 4년 중임제 도입을 위해 2028년 4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동시 선출하는 방향의 개헌을 제시했다. 또한 대통령 불소추특권과 국회의원 불체포 면책특권 폐지,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국민소환제 도입도 공약했다. (대통령 불소추특권 폐지는 이재명 후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본인이 당선될 경우 임기를 2년이나 단축하면서까지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중대한 공약을 왜 TV토론에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크다. 당이 발표한 공약은 그야말로 구색 맞추기이고, 대통령 후보 본인은 공약에 진심을 담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김문수 후보 본인은 강한 대통령 리더십을 선호하고, 후보 선출 전에 임기단축을 전제로 한 개헌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말로 개헌을 여러 번 약속하고도 당선되면 이런저런 핑계로 약속을 뒤짚기 쉽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김문수 후보에게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한 뚜렷한 정치개혁이나 개헌의 상이 무엇이라도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TV토론에서 개헌 공약을 분명히 제시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재명 후보가 그 전에 이미 발표했던 내용 중에 ‘총리 국회추천제’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실수일까. 총리 국회추천은 현행 대통령제를 다른 무엇으로 변경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리는 그 다른 무엇을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준대통령제’ 등등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변화는 다른 여러 개헌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유사한 점도 있으므로, 이 문제야말로 현재 개헌 방향으로 최선인지 깊은 토론이 필요한 문제다.
 
다시 강조하자면, ‘총리 국회추천제’는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개헌안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변경 사항 중 하나며, 따라서 개헌 방향에 대해 제시한다면 이를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항이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가 줄줄이 낭독한 개헌안 요지 중에 이 내용만 쏙 빠졌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총리 국회추천제가 빠진다면, 그 개헌안은 문재인 정부 당시 조국 법무부장관이 발표했던 대통령 개헌 발의안과 대동소이해진다.) 실제로는 강한 의지가 없다는 뜻이 아닌지 의문이 드는데, 기우이길 바란다.
 
권영국 후보는 정치개혁 방향으로 위성정당방지법과 결선투표제 도입을 강조했다. 권영국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 결선투표 도입하자고 제안했으나,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 선거에만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보기에 어떤 선거제도가 아무리 좋은 방안이라고 하더라도, 의회에서 합의를 거치지 않고, 즉 다수가 소수의 반대를 무시하고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정의당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은 손해를 보는 측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조정이 없다면, 격렬한 후폭풍이 따를 수밖에 없다. 위성정당방지법 역시 이미 실패한 길을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결선투표제 도입도 마찬가지로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권영국 후보 측은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고 할당제를 강화하여, 의회 내에서 노동자, 여성, 농민과 사회적 약소자의 사회적 대표성을 확대하는 게 궁극적인 정치개혁의 상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처럼 의회에서 사회적 대표성을 확대한다면, 그 의회는 어떻게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정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고 견제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한 대안적 상, 간단히 말해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개헌안을 권영국 후보와 민주노동당이 적극적으로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
 

3. 결론: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말하지 않는 대선

 
이대로 대선이 끝난다면.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시기처럼 아무런 국회 논의와 합의 과정 없이 대통령 개헌을 발의했다가 유야무야되는 해프닝이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국회 합의 없이도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을 상징하는 권한 중 하나다.) 또, 그러면서 강한 대통령 리더십을 내세우다가 다시금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이재명 후보 측이 여전히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사법부를 흔들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종합하면, 거대 양당 후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헌정위기를 낳은 여러 원인의 한 축을 도외시하면서 헌정수호, 헌정발전을 논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타락을 막고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역할은 앞으로도 더욱 중요할 것이다.
 
 
주제어
정치
태그
대선 개헌 제왕적 대통령제 정치개혁 정치양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