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5.05.30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축소를 말하지 않는 노동·사회 공약

주4.5일제와 인구감소 시대 사회갈등

사회진보연대
현재 한국 사회는 장기 저성장, 소득 양극화, 초고령사회 및 인구 감소라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노동·사회정책의 핵심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그에 따른 격차를 완화하는 노동정책과, 초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며 세대·성별·지역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정책이다.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선관위 주최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정년 연장, 국민연금 개혁, 건강보험 재정 위기, 노동시간 단축,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보장,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후보 간의 거친 공방과 상호 비방 속에 노동, 사회 정책의 쟁점은 정치적 네거티브의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노동자 친화성'을 앞세우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임금삭감 없는 주4.5일제"라는 급진적 공약을 대표 노동정책으로 내세웠다. 주5일제를 주4.5일 또는 주4일제로 바꾼다는 정책은 노동시장과 전국민적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의제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까지도 이를 어떤 경로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경사노위 위원장과 고용노동부장관을 역임했다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시장 규제철폐를 주장하고 주52시간제 개편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강조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역시 어떻게 격차를 축소하고 광범위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격차축소를 외면한 ‘주4.5일제’ 공방
 
이번 선거에서 ‘주 4.5일제’는 그나마 언론의 관심을 끈 노동 이슈였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임금 삭감 없는 주4.5일제'가 주목받자, 국민의힘은 “근로시간을 줄이는데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 비판했다. 그리고는 주 40시간을 유지하며 유연근로를 도입하는 주4.5일제를 공약을 곧바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 방안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어 정책의 실현 경로는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사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급격한 노동시간 단축이 초래할 부작용이 크다는 사실이다. ‘주 52시간제’조차 대기업과 하청 간의 격차가 확대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주4.5일제는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도 주4.5일제, 혹은 주4일제를 실행할 수 있는 부문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일부의 정규직뿐이다. 설령 1차 노동시장에서 임금삭감없는 주4.5일제가 안착할 수 있다 해도 그럴 여력이 전혀없는 중소영세·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과 소득감소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주4.5일제가 그럴듯한 노동 공약으로 보이지만 분절된 노동시장이라는 현실에서 국민적 인식 또한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최근 한국노총과 <매일노동뉴스>가 실시한 국민 1,008명 대상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5%가 주4일제 또는 주4.5일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용형태 별로도 차이가 나타나느데 정규직의 50.4%가 동의한 반면, 비정규직은 35.5%,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45.7%만 동의했다. 이는 주4.5일제가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에만 혜택을 줄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비정규직·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득 격차가 노동시간 격차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임금 삭감 없는 주4.5일제'는 현실성 떨어지는 표심용 공약에 불과하다.
 
아울러 과거 노동시간 변화의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법정노동시간 단축이 실질적인 노동시간 감소가 아니라 변형근로제 도입 등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과 교환되어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2003년 주5일제(주40시간제) 도입 당시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는 유연화 조치가 함께 시행되었고, 민주당이 집권한 2018년 문재인 정부의 주52시간 상한제 역시 2021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맞바꿔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강한 한국의 조건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변형근로제의 확대, 노동 유연화의 강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재명 후보의 주4.5일제가 실행된다면 그 역시 그만큼의 노동유연화를 허용하는 정책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설비 가동률을 낮추기 어렵거나 휴무 없이 상시 근무가 필요한 사업장의 경우, 주4.5일제나 주4일제를 도입하려면 노동 형태의 대폭적인 유연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급진적인 노동시간 단축 주장은 기업의 노동시간 운영의 경직성을 강조하는 명분이 되어, 인력 충원의 어려움이나 비용 부담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나 특정 업종에 노동 유연화 요구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한편,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을 계승하고 있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소위 '69시간 논란'을 빚었던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를 그대로 명시하며 탄력근로 및 선택근로제 사용기간을 최소 반기 이상으로 확대하는 공약을 내세운다. 세계적 수준의 한국의 장시간 노동이 변형근로제 확대와 유연화 정책을 매개로 고착되어 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러한 공약은 애초부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는 것과 거리가 먼 접근으로 기업의 비용절감 요구를 단기적으로 수용해 더 많은 유연화만 반복해서 외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국민의힘은 윤석열정부의 실패한 근로시간 개편 시도가 왜 오답이었는지 평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3년 가을호,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 논란」 참고)
 
이처럼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주4.5일제 또는 노동시간 유연화 공약은, 노동시장 격차라는 구조적 현실을 외면한 채 표면적인 공약 경쟁에 머물고 있다. 비록 이번 대선이 노동정책을 쟁점을 논의할 여건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노동 공약이 노동시장 구조 개선과는 무관하게 각자의 지지층을 겨냥한 선심성 약속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은 분명한 문제다.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시대, 사회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초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제도변화는 세대와 계층 간 이해관계가 얽힌 가장 까다로운 쟁점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공약과 발언은 대체로 지지층을 의식한 단편적·대증적 접근에 그치고 문제의 복잡성과 심각성을 직시하고 공론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초고령화 시대 노동시장 최대 이슈인 ‘정년연장’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법적 정년연장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김문수 후보는 일률적 정년연장을 반대하고 임금체계 개편과 계속고용을 주장한다. 국민연금 개혁방안에 대한 공약도 상이하다. 이재명 후보는 2025년 18년만에 여야가 합의한 국민연금 모수개혁이 기금 고갈과 막대한 보험료 부담을 청년세대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에 대해 "안하는 것보다 낫다"며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연금의 구조개혁보다는 '기본사회'와 정책 연계해 기초연금 부부 감액제도 개선 등을 언급하거나 "생애주기별 소득보장 확대" 등 추상적 언급만 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는 국민연금 2차 개혁 추진을 언급하며 청년세대의 참여 보장을 명시하고,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연금급여나 보험료율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공약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보장성 강화 정책 등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위기도 쟁점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향후 건강보험 재정적자 폭이 확대되는 가운데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지원확대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 양 당 후보는 뚜렷한 대책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이재명 후보는 역시 "기본사회" 정책과 연계해 통합돌봄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김문수 후보는 원칙적인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강조할 뿐이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는 정년연장을 둘러싼 경영계와 노동계의 이견이 극심한 가운데, 정년퇴직 후 65세까지 계속고용을 의무화하는 절충안을 공익위원 제언 형태로 권고했다. 그러나 이 역시 노사 모두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현실적 합의 도출은 요원한 상황이다.
 
연금 개혁이나 건강보험 재정 개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기금 고갈과 제도 위기를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세대·계층 간 이해 충돌은 첨예하고, 사회적 논의 기반은 극도로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시기 후보들은 자칫 표를 잃을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 앞에 '갈등 회피형'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떤 후보는 청년층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정책으로, 어떤 후보는 노인층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공약으로 이 사안에 대한 종합적 접근을 대체한다. 각자의 지지층만을 의식한 단편적인 주장들은 대선 이후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현상만 유지할 무책임한 정치의 표본을 미리부터 보는 것 같다.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는 사회 갈등의 해법은 현세대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미래 세대와의 연대의 원칙을 정립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격차축소 없는 노동사회 정책의 위험 
 
대선 이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한국 경제와 정치를 규정짓는 구조적·제도적 결함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우리가 노동·사회 정책에서 반복적으로 격차 해소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처럼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사회적 갈등과 불안이 노동의 격차선을 따라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성장이 장기화되면서 노동자 간 경쟁은 한층 격화되고, 인구구조의 급변은 세대 간, 계층 간 긴장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주4.5일제처럼 화려하게 포장된 노동정책이나, 특정 세대·계층의 지지를 겨냥한 사회정책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된다면, 격차 확대를 넘어 사회 갈등이 통제력을 상실한 채 확산할 것이다.

누구도 보편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특수한 이익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정부의 정책으로 자리한다면, 우리사회는 현재의 복합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선거를 앞둔 지금, 사회운동은 격차 해소 없는 노동사회정책이 초래할 위험을 진지하게 되짚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줄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제어
노동
태그
대선 노동시장 인구감소 공약 주4.5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