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 2025.08.04
2025년,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토론과 모색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②
8월 3일 오전 10시,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의 첫 순서인 히로시마 국제회의가 개막했다. 해마다 진행되는 국제회의는 세계 각국의 반핵평화운동에서 온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토론하며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공동 과제를 도출(“히로시마 국제회의 선언문”)하는 자리다.
본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거기에 필자가 따로 참여한 히로시마 국제회의 선언문 검토회의까지 포함하면 오후 9시까지 그야말로 강행군하는 동안, 발표도 많았고 쟁점도 그만큼 많았기에 좀 더 자세한 소개는 《계간 사회진보연대》와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 추후 하겠다. 여기에서는 실제 발표 순서와 무관하게 필자가 인상 깊었던 발표자와 쟁점 위주로 소개한다.

현 세계정세 평가
2025년 현재 세계정세가 곳곳에서 핵무기 사용 위협을 동반한 전쟁이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 군비경쟁이 재개되어 핵전쟁 위기가 냉전 종식 이후로 전례 없이 고조되었다는 인식을 국제회의 발표자 모두 공유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생후 9개월에 피폭을 겪은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 히단쿄)의 카나모토 히로시 운영위원은 지난해 피단협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무척 기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이스라엘-이란 전쟁,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격에 더해, 북한의 거듭되는 미사일 발사 시험과 북한군 러시아 파병으로 한반도의 분단이 심화하면서 핵무기는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핵 금기’가 날이 갈수록 흔들려 세계가 너무나 위험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영국 핵군축캠페인(CND) 부회장 캐롤라인 루카스는 현 상황이 정확히 얼마나 위험한지를 짚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핵무기를 보유한, 합치면 세계 핵탄두 수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유일하게 남은 주요 핵 통제 조약인 뉴 스타트(New START, 신전략무기감축협정. 실전배치 핵탄두 수와 대륙간탄도미사일·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전략폭격기의 수 제한 합의)마저 곧 사라질 상황이다. 2019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냉전 종식의 상징인 미소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사거리 500km~5,500km 중거리 미사일 폐기 합의)에서 철수하고, 2022년 초부터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시작한 러시아가 2023년 뉴 스타트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면 2026년 2월에 뉴 스타트가 만료되며, 그러면 반 세기 만에 처음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를 제한하는 조약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이 두 국가는 지금도 이미 핵무기 “현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트럼프 행정부는 의회에 보낼 2026년도 예산안에서, 미국의 핵무기 개발과 생산을 총괄하는 국가핵안보국(NNSA) 예산을 무려 29%나 인상한 250억 달러로 제출했다. 이는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로 가장 큰 규모다.

한편 이준규 포럼평화공감 연구자는 현재의 어지러운 정세를 ‘다극화’ 과정이라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부 사회운동 세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다극화론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북러군사동맹의 복원조차도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가 해체된다며 반기지만, 이러한 맥락의 소위 ‘다극화’나 ‘다극성’은 긍정적인 다자적 협력의 세계질서와는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극화론의 주장과 달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사건은 강대국의 ‘세력권’ 주장에 불과하며 군비경쟁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원폭 80주년을 맞은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의 결의
세계정세가 이와 같이 격랑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80주년을 맞은 일본 반핵평화운동의 각오가 남달랐다. 이번 세계대회 개막 전부터 피폭자들은 여러 인터뷰에서 “나는 원폭 90주년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부디 살아있을 때 하루빨리 핵무기 없는 세상을 보고 싶다.”라고 말해왔다.
일본 단체들은 1954년 시작된 전국적인 ‘원수폭 금지 서명운동’과 1955년 8월의 첫 원수폭금지세계대회를 일본 반핵평화운동의 “원점”으로 여기는데, 원점 당시의 양대 목표였던 ‘피폭자 구호 및 연대’와 ‘모든 핵무기 철폐’를 2025년 현재에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가 논의의 핵심이었다. 피폭자의 염원은 무엇보다 핵무기 자체를 없애 다시는 인류가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고, 지난 80년 동안 세계 핵무기 철폐 운동을 조직하고 견인하는 데에는 피폭자의 역할이 막대했으므로 두 목표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사쿠마 쿠니히코 히로시마현피단협 이사장은 일본 피폭자 운동의 현황을 소개했다. 2025년 3월 기준, 피폭자는 일본 내에 99,130명, 히로시마현 내에 48,310명이 남아있다. 그런데 생존 피폭자의 수는 앞으로 줄어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늘어날 수도 있다. 피폭으로 고통받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설정한 여러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피폭자 건강수첩’을 받은 공식 ‘피폭자’(일본어 발음인 ‘히바쿠샤’가 세계적으로 쓰이는 고유명사가 되었다)가 되지 못한 이들(‘피폭 체험자’ 등의 명칭으로 불린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가 겉으로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들을 예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서 피폭자 연대 운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일본 정부가 지정한 ‘피폭 지역’ 밖에서 방사능 낙진이 섞인 ‘검은 비’를 맞고 피폭된 사람들을 피폭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 정부를 상대로 계속되어왔고, 피단협이 연대한 이 싸움을 통해 피폭자의 범위와 수가 점점 늘어났다. 피단협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피폭된 이들을 피폭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싸움에도 함께 하고 있다. 사쿠마 이사장은 나아가 피폭자의 범위를 피폭 2세, 3세와 같은 후손까지 확장하여, 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도 1995년 제정된 ‘피폭자 원호법’과 유사한 보건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피폭 2세, 3세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가 올해 피단협 총회의 주요 주제였고, 향후 운동의 방향은 “정부가 잘못된 전쟁을 일으켜 생겨난 피해자들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틀로 하여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살리고 피폭자가 아닌 전쟁 피해자들까지 구제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사쿠마 이사장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024년 12월 히로시마고등재판소는 히로시마 피폭 2세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피폭자와 피폭 2세는 원폭의 영향에서 의학적·과학적으로 현저한 차이가 있다”며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검은 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오야 마사토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 명예교수는 나가사키에서도 ‘피폭 체험자’가 피폭자 건강 수첩을 받을 수 있도록 싸우고 있으며, 거리와 시간에 따른 피폭의 영향을 규명하여 폭심지에서 12킬로미터 내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적절한 구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소개했다.
역사적인 피단협, 원수협, 원수금 3단체 공동성명
핵무기 철폐를 위해 어떤 운동을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현재 세계 94개국이 비준한 UN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중심으로 핵보유국들을 압박하는 구상과 관련한 활동 제안이 주를 이뤘지만,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해서는 필자가 쓴 여러 글에서 이미 상세히 소개해서 이번 보고에서는 생략한다.

핵무기금지조약 외에 이번 국제회의에서 일본 참가자들이 강조했던 것은 이번 7월 23일 피단협과 원수협(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 원수금(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의 역사적인 공동 기자회견 및 성명 발표와 같은 공동행동의 의의였다. 이것이 왜 역사적이고 중요한 일인지를, 일본 내의 대중적 평가를 소개할 겸 NHK의 보도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원수협과 원수금이 공동으로 성명을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원수협은 일본 참치 어선 ‘제5후쿠류마루’호가 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 행해진 미국의 수폭 실험으로 피폭당한 것에 항의하는 여론의 고조에 힘입어, 핵무기 철폐를 목표로 하는 전국 규모의 평화 단체로서 1955년에 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핵실험 등을 둘러싸고 내부에서 노선의 대립이 일어나, 당시 사회당에 가까운 사람들이 탈퇴해 1965년에 원수금을 결성해 따로따로 활동해 왔습니다.” (원수협과 원수금의 자세한 역사는 사회진보연대가 지난달 발간한 소책자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세계로』의 1부와 3부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러한 역사를 딛고 7월 23일 발표된 3단체 공동성명은 “핵무기 사용 위기가 커지는 오늘날, 일본 사회운동이 해야 할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모든 입장의 차이를 넘어 피폭의 실상을,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일본과 세계에 호소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선언했다.
성명에 덧붙이는 발언에서도 원수협의 츠치다 야요이 사무국차장은 “이런 중요한 호소를 3자로 합의해 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단체가 호소했냐가 아니라 국민 모두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실상을 알릴 책임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수금의 타니 마사시 사무국장도 “일본이 피폭 80년을 어떻게 맞이할지는 세계도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역사적인 경위는 있지만 그것을 논의할 장황한 시간은 없다. 이번 성명이 각 단체에 순풍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3일 국제회의에서는 이 일에 대해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어떻게 성사시킬 수 있었는지 뒷이야기가 솔직히 궁금합니다.”라고 질문한 참가자도 있었는데, 야스이 마사카즈 원수협 사무국장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2024년 말에 피단협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25년은 원폭 80주년이라 지난 해부터 원수금과 공동행동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2020년에도 4~5월 NPT(핵무기비확산조약) 평가회의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합의했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NPT 평가회의가 연기되면서 무산되었다. 그래도 이때 공동 대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수금 활동가들과 교류를 이어간 것이 도움이 되었다. 피폭자와의 연대, 핵무기 철폐라는 목표도 현재 원수협과 원수금이 다르지 않으며, 현 정세에서 피폭국 일본이 핵무기금지조약에는 가입하지 않고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을 심화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인식도 일치했다. 획기적인 이번 공동성명을 계기로 이러한 운동을 전 국민적 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기억을 세계로, 후대로
이상의 내용도 흥미로웠고, 여기에 담지 못한 내용도 많으나, 들으며 가장 마음이 무거워진 때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박정순 선생의 발표였다. 한국인으로서 느낀 바도 크지만, 한국인이 아닌 참가자 대다수에게도 이날의 가장 인상 깊었던 순서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소 학술적이고 비장한 느낌의 발표가 많았던 반면, 박정순 선생의 발표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로서 살아온 지난 80년의 세월을 밝고 힘이 넘치는 어조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박정순 선생은 일본어로 발표했다. 선생은 1934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서, 1945년 피폭 이후 한반도로 돌아올 때까지 일본어만 쓰며 자랐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세계대회 참가 중인 상황상 발표 중 세 문단만 공유한다. 나중에 발언문 전체를 번역하려 한다.
“어머니는 피폭으로 인한 질환들로 오랜 세월 고통스러워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얼마나 비통하게 원폭을 원망하는지 끊임없이 중얼대셨습니다. 모든 게 다 원폭 탓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제 생각에, 어머니는 피폭되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살고 덜 고생하셨을 겁니다.
제 얘기를 하자면, 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두 번의 전쟁(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제 92세입니다. 원폭으로 말미암아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잃을 때의 슬픔 고통, 후회, 분노를 잘 압니다. 다들 분명 죽기에는 너무 젊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원폭피해자임이 드러나면 차별을 받을까봐) 아무에게도 제가 느낀 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제 작은 가슴에 80년 동안 담아놓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원폭피해 생존자의 자식들도 다양한 질환과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계속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원폭을 투하한 미국과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반드시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그 자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80년 동안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잊은 것이나 다름없는 한국 사회의 책임은 과연 없을까. 한국인으로서 내 책임은 없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것이 처음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를 접했던 2019년 5월 <비핵·평화를 위한 한일 국제포럼>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일본에서는 피폭자들과 연대하고 이들의 기억을 후대로 계승하는 ‘전 국민적 운동’이 이야기되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온 참가자들의 손을 활짝 웃으며 따뜻하게 잡아주시는 박정순 선생 앞에서 죄송스러운 마음과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앞으로 이러한 고민을 가능한 한 실질적인 활동으로 풀어가고 싶다.

일본원수협이 히로시마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상황실로 쓰고 있는 히로시마현피단협 사무실에 들러 사회진보연대가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는 것으로 8월 3일의 긴 일정이 끝이 났다. 마침 2019년 <비핵·평화를 위한 한일 국제포럼>에 참여했던 야스이 마사카즈 사무국장과 지난해 사회진보연대 사무실을 방문했던 국제국의 시마다 유히 씨, 두 반가운 구면이 맞아주었다. 사회진보연대가 만든 티셔츠 선물이 마음에 든다며 바로 갈아입어 본 두 분과의 사진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