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 2025.08.12
인류의 마지막 피폭지, 나가사키에서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⑥
히로시마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이하 ‘참가단’)은 8월 7일, 부푼 마음을 안고 나가사키로 향했다. 나가사키의 프로그램 역시 각종 포럼과 강연, 현장 학습 등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여섯 번째 참가기는 나가사키에서의 첫 날인 8월 7일 ▲ 나가사키 80주년 기념 특별프로그램 <피폭자의 경험을 미래로 계승하다>와 ▲ 일본 생활협동조합 노동조합 연합회(이하 ‘생협노련’) 간담회를 담았다. 그다음 날인 8월 8일 일정 가운데, ▲ 워크숍2 <비핵평화의 일본과 아시아> ▲ 긴급기획 <가자 주민 지원·비핵평화의 중동을 - 이집트 대사로부터 듣다> ▲ 포럼 <핵무기 없는 평화로 공정한 세계를 위해 – 정부 대표와 시민운동의 교류>도 함께 싣고자 한다.

나가사키 80주년 기념 특별프로그램: 피폭자의 경험을 세계로 계승하다
아침 일찍 히로시마시를 떠나 오후가 되어 나가사키시에 도착한 참가단은 시민회관 체육관에서 진행된 80주년 기념 특별프로그램 <피폭자의 경험을 세계로 계승하다>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피폭자 증언과 함께 나가사키 피폭자 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일에 방점을 찍었는데, 현장에는 약 2,100명이 참여했다.


먼저 히로시마 국제회의에도 참여했던 오야 마사토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 명예교수가 원폭 투하 당시 나가사키시가 입은 피해와, 원폭으로 인한 열과 방사능에 인체가 어떤 영향을 입는지를 발표했다.

다음으로,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 히단쿄)의 다나카 테루미 대표위원은 13살이었던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의 경험을 증언했다. “폭심지 근처에 살던 이모를 찾으러 가는 길에 거두어지지 못한 시체, 살아 있는 채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광경을 보았다. 이모는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시신이 되어 있었다. 군인 집안에서 자라서 나도 나중에 군인이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전쟁의 현실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9월 1일 등교가 재개되고 학생들끼리 피해 상황을 공유할 때 “가족이 모두 죽고 나만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급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80년 전의 일임에도 무뎌지지 않은 듯 눈물을 글썽였다. 다나카 대표위원은 지금까지 80년 동안 핵무기가 다시 사용되지 못한 것에는 피단협의 기여가 있었다고 자부한다고 밝히는 동시에, 10년만 더 일찍 노벨평화상을 받았어도 지금은 세상을 떠난 훨씬 많은 피폭자가 기뻐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어 나가사키 피폭자 운동의 역사가 소개되었다. 당시의 상세한 사진과 영상 자료와 함께, 이를 기억하는 이들이 무대에 서 증언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전달력이 높았다.
1945년 피폭 이후 첫 10년은 ‘공백의 10년’이라고 불린다. 이 시기에 대해 증언한 오츠카 카즈토시 씨는 정부의 언론 보도 지침으로 인해 원폭과 관련된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피폭자들이 머물던 긴급 구호소도 문을 닫았으며, 피폭자들이 차별과 가난에 시달렸던 당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와 같이 10년간 피폭 사실을 숨기고 살았던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들은 1954년 일본 어선 제5후쿠류마루 호가 미국의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캐슬 브라보)에 피폭당한 일이 전국적인 원수폭 금지 서명 운동의 시작으로 이어지자, 자신이 피폭자임을 드러내고 조직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1955년 제1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히로시마에서 열렸고, 1956년 제2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는 나가사키에서 열렸다. 피단협은 제2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 기간 중에 결성되었다.


피단협 결성 이후 피폭자들은 국제사회에 피폭의 참상을 전달하고 핵무기 금지를 촉구하는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1974년 일본 원수협의 UN 파견단에 참가하는 코사사 하치로 나가사키원폭피재자협회 회장을 피폭자들이 배웅할 때의 영상이 상영된 다음에, 피폭자 요코야마 테루코 씨의 회상이 이어졌다. 요코야마 씨에 따르면, 당시만 하더라도 2차 세계대전에서 적국이었던 미국에 가서 미국이 투하한 원폭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그때 코사사 회장은 “나는 어쩌면 미국에 무사히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나는 씨를 뿌리러 갈 테니까 수확하는 것은 (요코야마 씨와 같은 당시 청년 활동가들) 여러분의 몫입니다.”라고 발언했다.


1982년에는 피폭자 중 최초로 야마구치 센지 나가사키원폭피재자협회 회장이 UN 군축특별총회에 참석하여, 피폭으로 중증 화상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연설을 했다.
1982년 6월 제2회 UN 군축특별총회에서 야마구치 센지의 발언 (발췌 번역)
전 인류의 생존이냐 절멸이냐에 깊이 관여하는 이 역사적인 제2회 UN 군축특별총회 전체위원회에, 나는 일본의 여성, 청년, 종교단체, 평화단체, 노동자나 피폭자 등의 풀뿌리 운동, 핵무기 금지와 군축을 요청하는 국민운동추진연락회를 대표하여 (중략) 핵무기 완전 금지와 군축을 요청하는 2,886만 2,935명의 서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중략)
내 얼굴과 손을 잘 봐주십시오. 잘 봐주십시오.
세상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는 사람들, 아이들이, 우리처럼, 이런 피폭자들처럼, 핵무기에 의한 죽음과 고통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겪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핵무기에 의한 죽음과 고통을 겪는 것은 우리가 마지막이 되도록 UN이 엄숙하게 서약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 피폭자는 호소합니다. 생명이 있는 한 계속 호소합니다.
노 모어 히로시마, 노 모어 나가사키, 노 모어 워, 노 모어 히바쿠샤.

2010년 NPT 평가회의에서 나가사키 피폭자 타니구치 스미테루 씨가 한 발언은 피단협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핵탄두가 철거되는 그 날까지 저는 평화롭게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나가사키는 원자폭탄에 피폭된 마지막 도시로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저를 원자폭탄의 마지막 피폭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전 세계의 핵무기를 철폐하자는 우리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게 해 주십시오.”

세계가 다시 전쟁과 핵 군비 경쟁으로 접어든 가운데,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증언해온 피폭자들의 활동은 202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데까지 이른다. 1부의 마지막으로는, 다나카 시게미츠 피단협 대표위원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올해 스페인, 프랑스에서 진행된 피단협 증언대회를 보고했다.

2부에서는 1956년 나가사키에서의 첫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피폭 경험을 증언한 와타나베 치에코 씨의 일생을 다룬 <평화의 여행으로> 공연이 이어졌다. 와타나베 씨는 16살 당시 피폭으로 입은 하반신 마비 장애로 거동을 못하게 되어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세월을 보내다,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서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로,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피폭 경험을 증언했다. 이 경험에 고무된 와타나베 씨는 이후로 피폭자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일본과 세계 각지로 ‘평화의 여행’을 떠나 피폭의 참상을 증언했다.

이 과정을 낭독 및 합창, 음악으로 풀어낸 공연에는 나가사키의 학생부터 노인까지 약 80여 명이 참여했다. 구성과 연출, 노래와 연주의 완성도가 무척 높았고, 참가자로 하여금 피폭자의 경험과 연결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피폭 당사자, 일본 각지에서 온 참가자, 일본어를 모르는 해외대표까지 모두 눈물을 공유하는 순간이었다.



일본 생협노련을 만나다
나가사키에 온 김에 꼭 만나고 싶었던 단체가 있었다. 6년 전인 2019년 5월 ‘비핵·평화를 위한 한일 국제포럼’을 계기로 서기장인 마카베 타카시 씨를 알게 되어, 개인적인 교류가 두 차례의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초청과 간담회로까지 이어졌던 ‘전국생협노동조합연합회’(이하 생협노련)이다.
8월 7일 밤 나가사키에서, 생협노련 참가단으로 나가사키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 온 생협노련 서기장 마카베 타카시 씨, 중앙집행위원장 야나기 에미코 씨, 서기차장이자 평화운동 담당을 맡고 있는 사쿠라이 요시코 씨를 만났다. 일본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인 이들은 늦은 밤이었음에도 정성스레 차와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준비해 웃는 얼굴로 참가단을 맞이해주었다. 생협노련은 일본 전국 124개 단위 6만 명의 연합체로, 일본 젠로렌(전국노동조합총연합)에 가맹되어 있다. 생협노련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2019년 당시 교류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 참고) 2019년 12월 생협노련 간담회 기사
[물 건너 일본에서도 “우리 동년배들 다 노조한다” 일본 생협노련 청년부 모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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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생협노련은 원자폭탄 피폭자들의 증언을 듣고 모아 피폭 80주년 기념 낭독용 문서집 「8월의 화창한 날에」를 발간했다. 마카베 씨는 “같은 원폭 피해자라도 피폭자들의 삶, 슬픔, 체험은 제각기 다르다. 우리는 세심한 내용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번 책자를 만들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이들, 노인들, 조선인 강제징용자 등에 주목했다. 그들은 피폭 후 차별, 편견 속에 생활하고 그를 바탕으로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이 증언집을 꼭 한국에도 널리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생협노련은 오키나와, 히로시마 구레 등 일본의 자위대 기지 강화 문제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순례를 비롯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평화운동 근황 나눔 뒤에는 노조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생협에서 일하는 회원과 공공운수노조 소속 활동가들이 참석한 자리였기 때문에 나라는 달라도 서로의 활동에 대한 공감대가 컸다. 생협노련은 일본 생협 노동자의 50% 가량이 조직되어 있고, 조합원의 약 3분의 2가 여성이며, 마찬가지로 약 3분의 2가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들은 장시간 저임금 조건에서 일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에 관심이 많다(한국과 같은 법정 최저임금은 아니며 생협 부문의 최저임금을 의미한다.).


마카베 씨는 “현재 일본에서는 이직 알선 기업들이 선전 중이며, 젊은이들이 노조를 통해 일터를 바꾸기보다 이직을 많이 하는 추세”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일본도 물가가 오르고 있지만, 생협노련은 이런 조건을 파업을 준비하기 좋은 기회로 보고 ‘물가조건을 크게 웃도는 임금인상’을 핵심 요구로 올해 9월 생협노련 사상 첫 파업 결의를 모을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 생협에는 조합원을 통해 구성되는 생활협동조합은 일반 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생협 노동자에겐 노조가 필요 없다는 의식이, 소위 ‘전임자론’이 팽배했다. 그때 우리는 노조를 통해 노동조건이 좋아지면 생협 역시 좋아진다고 설득하며 극복해 나갔다.”고 말했다. 우리는 파업 시도 역시 생협노련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건투를 빌며, 앞으로도 연대를 통해 만남을 이어가자는 약속을 하고 간담회를 마쳤다.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의 워크숍 발표와 발언
8월 8일은 나가사키 각지에서 워크숍과 포럼, 현장견학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참가단은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이 발표를 맡은 <비핵평화의 일본과 아시아> 워크숍에 참여했다. 이 워크숍은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오전 동안 패널들의 발표와 질의응답을 진행한 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플로어 토론을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참가단은 워크숍 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사회진보연대를 소개하는 팜플렛과 최근 발간한 반핵평화운동 관련 소책자들, 세계대회 참가 기념으로 만든 뱃지와 일본어 소개문 등을 나눠주는 데스크를 차렸다. 행사를 마칠 때에는 준비한 물품들이 동이 났다. 원수협 담당자의 보고에 따르면, 이 워크숍에는 170명 이상이 참가했고, 그중 102명이 세계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각지에서 온 패널들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미국 평화재향군인회의 앤 라이트는 “미국인으로서 원폭 투하를 먼저 사과드린다”며, “인도 태평양 지역에 핵무기 보유국 9개국 중 4개국(중국·북한·러시아·미국)이 있고, 하와이에 있는 미군 사령부가 인도 태평양 지역의 핵무기를 관할하고 대규모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만큼 이 지역에서의 평화운동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비핵필리핀연합의 코라손 파브로스는 “동남아시아에는 미국에 의해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시설이 배치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중국은 우리의 적이 아니고 전쟁 준비를 하는 미국이 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 미국의 이란 핵 시설 폭격과 함께 UN헌장과 국제법을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북러군사협력을 꼽았다.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결탁으로 인해 북한 청년들이 러시아의 전장으로 끌려가 침략군으로서 죽음을 맞고, 동시에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이들의 손에 목숨을 빼앗기는 현실에 슬픔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히며, 이러한 군사협력은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심각히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단호히 공동대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7월 29일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지금은 2018년이나 2019년이 아니다. 지정학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한 것과 같이 비핵화 대화의 유인이 없다고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영론적 판단에 따라 국제사회의 분열이 가속화되어 냉전 시기처럼 ‘블록’이 형성되면 이를 되돌리기 더더욱 어려우므로, 러시아와 미국, 이스라엘 등이 저지르는 모든 국제질서 파괴 행위에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함께 흔들림 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한일연대는, 과거에는 침략과 식민지배의 피해자와 가해자였던 이웃 국가들의 시민들이 오늘날에는 새로운 전쟁에 함께 반대하는 동료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클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같이 한일연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밝힌 부분에서 워크숍 참가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김진영 국장은 이날 일본어로 발표하고 일본어 원고 출력본을 참가자들에게 배포했는데, 원고를 받고 싶어 하는 참가자가 준비된 원고 수보다 많아 원수협 담당자들이 추가로 복사하여 나눠주었다.
(발표문 전문과 필자 해설은 이 글과 별개의 사회운동포커스 기사로 발간할 예정이다.)




다음 순서였던 일본 원수협 카와타 타다아키 상임이사는 발표 시작에 앞서, 김진영 국장이 발표하는 동안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의 손글씨가 담긴 현수막 등을 들고 무대에 섰던 한국 참가자들을 언급하며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발언자와 관련된 참가자들이 현수막을 들고 무대에 함께 오르는 것은 일종의 전통이지만 해외 참가자들이 그런 적은 없었는데, 오늘 한국 참가자 여러분이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니 반갑고 동질감이 느껴진다”고 언급했다.

카와타 상임이사는 “일본 정부는 핵무기가 비인도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핵우산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이중잣대를 고수한다”고 비판하며, 핵 억지력에 대한 의존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중단하고 대화와 외교로 상황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전의 패널 발표들이 정세분석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후의 플로어 토론은 주로 구체적인 활동 고민과 계획에 대한 발언이 많았다.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은 동북아시아의 구체적 현실에 기초한 평화운동, 청년들을 포함한 다수 시민을 조직할 수 있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발언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러군사협력, 한국에 대한 실제 사용을 염두에 둔 북한의 전술핵무기 개발은 한국 사회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로 인해 평화운동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은 비관적인 반면 ‘핵 억지력’에 대한 요구는 커지는 현실을 소개했다. 이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평화운동이 변화한 현실을 잘 모르는 세력이나 반미국가는 비판하지 않는 세력으로 보이지 않게 기민하게 분석과 입장을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평화 연대 방안을 제시하여 평화를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야 하며, 그런 매개를 찾기 위해 이번 세계대회에 왔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전제가 되는 것은 북한 핵무기를 포함한 일체의 핵무기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해야만 북핵에 대한 공포로 인해 한국의 ‘핵 억지력’ 확보로 쏠리는 여론을 바꿔낼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일본 각지에서 온 활동가들도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하거나 고민을 나눴다. 일본코리아협회, 아시아여성자료센터에서 활동하는 청년 미즈베 히카루 씨는 오전 발표를 듣고 사회진보연대 참가단과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고 하여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는데, 오후 플로어토론에서는 “원폭 피해를 밝히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했다는 사실 역시 명확히 알려야 한다”며, 자신이 일본과 한국의 박물관 견학을 통해 일본 식민지배의 참상을 알게 된 것처럼 다양한 소규모 박물관 등 역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획이 많아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사회를 맡은 카지모토 슈시 효고현원수협 사무국장은 “오늘 ‘평화운동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나왔는데, 각자 자국의 정부를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으로 움직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한 히로시마 국제회의 선언문이 그러한 새로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히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긴급기획과 포럼
참가단 일부는 오후부터 나가사키대학 중부강당에서 진행된 <긴급기획: 가자(Gaza) 주민 지원 ·비핵평화의 중동을 – 이집트 대사로부터 듣다>와, 같은 장소에서 이어진 포럼 <핵무기 없는 평화로 공정한 세계를 위해 – 정부대표와 시민운동의 교류>에 참여했다.

전 이집트 대사 모하메드 에즈엘딘 압델-모네임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된 국제적 협의와 UN 결의의 역사를 설명하며, 해법으로서 ‘두 국가’를 강조했다. 이 해법은 중동 비핵화와 함께 추구되어야 하며, 중동 비핵화는 글로벌 시스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강연의 요지였다. 그는 한편, 도중에 자신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국에서 일했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 간에 명확한 구분선을 정의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란의 60% 농축 우라늄을 갖고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논쟁적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어진 포럼에서는 영국의 제러미 코빈 핵군축캠페인(CND) 부회장, 미국의 조셉 거슨 ‘평화, 군축 및 공통안전보장 캠페인’ 의장, 한국의 이준규 포럼평화공감 연구자, 일본의 츠치다 야요이 원수협 사무국차장이 발표했다.

코빈은 핵무기의 개발과 유지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과 더불어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의 군비 증강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각국 정부들은 핵무기를 철폐하고 군비로 투입되는 재원을 복지에 사용해 평화롭고 공정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요구했다. 거슨 역시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한 군비 경쟁 격화 문제를 언급했으나, 그런 정치적 경향을 제어하는 것은 결국 아래로부터의 시민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준규 씨는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러시아와 밀착하며 한반도 비핵화가 난망해진 현실을 강조하며, 평화운동에서도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평화를 위협하는 데서 미국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츠치다 야요이 씨는 피폭의 경험으로부터 비롯한 일본 반핵평화운동의 의의를 짚으며, 일본 정부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