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5.10.31

노조법 2조 개정과 노동운동의 과제 (2)

어떤 교섭 모델과 투쟁을 만들 것인가

김훈녕 (사회진보연대 회원,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노무사)
(이전 글에서 이어짐)
 

원하청 교섭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적용 여부

 
노조법 개정 이후 확대되는 사용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와 함께 가장 많이 논쟁이 되는 영역은 교섭 방법에 관한 부분이다. 간단히 말하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원하청 교섭에도 그대로 적용되냐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존재하는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 조직형태에 관계없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해서 교섭을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사업장 내 노동조합이 여러 개여도 사용자와 교섭을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딱 하나라는 것인데, 이를 교섭창구단일화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개별교섭이나 공동교섭 등의 방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복수노조 중에서 하나의 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선출하는 방안이 가장 일반적이다.
 
문제는 개정 노조법이 원하청 교섭 시 그 교섭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별도로 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 즉 원하청 교섭 시에도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적용할 것인지 여부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법원 판례나 중노위 결정례를 보면, 개별 하청 업체에서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된 경우 원청과 교섭하는 과정에서는 별도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기업 내에서의 기업별 교섭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이므로 이러한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다만 이와 같이 해석할 때 하청 업체가 여럿이고 그 하청 업체마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다면 결과적으로 원청은 여러 하청 노동조합으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교섭 요구를 받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경총이나 보수 진영에서는 ‘하청 업체가 100개면 원청은 교섭을 100번 해야 하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노동운동 측에서는 ‘현실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산별노조 산하 조직이거나 상급단체가 존재하므로 상급단체 존부 및 소속에 따라 교섭 질서가 안정적으로 구축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 측이 주장하는 상황이 물론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노동계 측의 주장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상급단체 존부 및 소속에 따라 원만하게 교섭 테이블이 구성될 수 있을지, 그와 같이 교섭이 진행된 결과 하나의 산업이나 기업 내에서 다른 단체협약이 병존하는 경우 해당 단체협약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적용할 것인지 등의 쟁점에 대해서는 각 주체들이 책임감 있게 참여해 꼼꼼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고용노동부는 일련의 논의를 거쳐 원하청 교섭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원하청 교섭 방식에 대한 법령의 (위임)규정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가이드라인의 설정은 오히려 추가적인 갈등이나 법적 쟁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이 함께 숙고하며 원하청 교섭 방식에 대한 구상의 최소공약수를 조금씩이라도 늘려 가려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노동운동도 교섭 모델에 대한 내부 의견수렴을 지속적으로 거치며 이 과정에 책임감 있게 참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총연맹 및 산별노조의 교섭에 대한 규율 및 조정 능력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
 
한편 원하청 교섭 모델의 구축 방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관련하여 ① 최소 침해성: 노사가 자치적으로 산업과 현장에 가장 알맞은 교섭질서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끔 국가의 개입이나 관여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특히 기존 법으로 포괄되지 않았던 회색지대의 영역들(ex. 건설, 플랫폼 등)에서 형성되고 있는 노사관계 발전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 ②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교섭체계여야 한다, ③ 범용성과 유연성: 전반적인 산업구조에 적절하게 조응해야 하고 특정한 산업이나 기업이 과잉대표되어서는 안 된다, ④ 부당노동행위 유인 최소화: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만들 유인을 최대한 줄이거나, 어용노조를 만드는 행위가 전체적인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와 같은 일련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과제 (1): 원하청 노조 간의 관계 조율

 
노조법 2조 개정 이후 노동운동의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여러 과제가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우선 네 가지 정도만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원하청 노조 간의 관계 조율이다. 원하청 교섭이 진행된다면 원청 노동조합과 하청 노동조합이 하나의 파이를 함께 나누어 갖는 구조가 형성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원하청 노조 간 이해관계 조율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원하청 노조 간 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노동자들끼리 함께 해야 한다는 윤리나 연대 의식은 물론이고, 해당 기업 또는 산업의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는 것이 적절한지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원청이 양보해야 한다’거나 ‘하청이 참아야 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보다 구체적이고 근거에 기반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산별노조의 리더십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원하청 노조 간 조율이 상호 신뢰와 전체 노동시장에 대한 고민을 기반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산별노조의 지도력과 관리능력이 적절히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과제 (2): 수직적 교섭과 수평적 연대의 결합

 
둘째. 수직적 교섭과 수평적 연대의 결합이다. 초기업 교섭에는 수직적 방식과 수평적 방식이 있다. 전자는 원하청의 경계를 넘은 교섭을, 후자는 동종·유사 산업, 업종, 직종 내에서 공동의 노동 표준을 형성하는 교섭을 말한다.
 
한국은 공공부문·대기업과 나머지 기업 간 격차가 크고, 공공기관·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구조의 특징이 강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원하청 교섭이 이뤄질 경우, 하청 노조의 활동 방향은 각 하청의 문제 해결을 위해 원청의 능력과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려는 경향이 강할 수 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상황에서 하청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원청의 능력과 자원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분명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만이 너무도 강해진 나머지 원하청 교섭이 ‘확장된 기업별 교섭’이나 다름없게 되는 경우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수직적 교섭에 수평적 연대를 결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한국 노동운동은 지난 기간 이러한 노력과 실험을 꾸준히 시도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대학교 청소노동자 집단교섭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청(대학교) 및 업무(청소 노동)의 동질성을 매개로 원청을 끊임없이 집단교섭 테이블로 불러내 온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국 공항 공동 파업 투쟁도 좋은 예이다. 이 역시 공항 관리 업무라는 유사·동일한 원청 및 업무를 매개로 한다. 이러한 공동 투쟁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조직해 나갈 필요가 있다. 수직적 교섭과 수평적 연대의 결합은 결국 유의미한 투쟁의 누적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과제 (3): 교섭의제 발굴·개발

 
셋째. 교섭의제 발굴·개발이다. 지금까지의 판례에 비춰보면 개정 노조법에 따라 원하청 교섭이 이뤄지더라도 원청이 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부분은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의제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하청 노조가 다루고 싶은 의제가 10개더라도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의제가 1개에 불과하다면, 원청은 실제로 1개에 대한 교섭의무만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원청이 자발적으로 나머지 9개의 의제에 대해서도 교섭하겠다고 나선다면 10개의 의제를 놓고 교섭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
 
따라서 하청 노동조합으로서는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높으면서 동시에 현장의 요구와 관심사를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교섭의제 발굴·개발 능력은 각 사업장의 교섭에서는 물론이고 뿐만 아니라, 수평적 연대를 구축하는데도 상당히 중요하다. 동종·유사 산업, 업종, 직종 내에서 공동의 노동 표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업장 경계를 넘어 함께 외칠 공동 요구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장 단위의 조직은 아무래도 당장 현장에서 요구되는 사항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공동 요구안을 고민하고 조율하며 완성해 나가는 것은 역시 산별노조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겠다.
 
 

노동운동의 과제 (4): 교섭제도 설계 및 조직화

 
넷째. 교섭제도 설계 및 조직화다. 앞서 살펴보았듯 향후 원하청 교섭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적용될지 여부는 현장 조직들의 교섭권에 큰 영향을 주므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어떤 교섭 모델이 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적절한지를 기준 삼아 치열하게 토론하며 원하청 교섭 절차 설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제도 설계 과정에서의 개입과 맞물려 원하청 교섭을 전제로 한 적극적인 조직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의 바람과 달리 원하청 교섭에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적용될 경우 결국 어떤 형태로든 교섭대표노조를 선출하거나 교섭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조직화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잘 이루어진 노동조합에게 우선적인 활동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전략 부문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조직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나가며

 
원하청 교섭은 한국 노동운동의 오랜 꿈이었다. 지난한 투쟁을 통해 원하청 교섭이 가능한 법제도 개선을 쟁취하였으니, 이제는 해당 제도를 통해 한국 노동운동이 그려왔던 노사관계 질서를 현실화할 차례다.
 
한국 노동운동은 이번 노조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하면서 더 이상 한국 사회 노사관계 질서 형성의 객체가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가진 한 주체임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그 힘과 역할에 걸맞은 실력과 책임을 보일 차례다. 원하청 교섭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애초의 목표를 되새기며, 제도 운용 과정에서 발생할 과제들을 책임감 있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초기업 교섭 질서의 확산 및 정착, 비용과 책임의 하방 전가 방지, 이윤과 책임이 일치하는 구조의 형성,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 문제 해결에 이번 노조법 개정안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향후 한국 노동운동의 활동에 달린 문제다. 다시 한번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
 
주제어
노동 노조
태그
노조법 개정 교섭창구단일화 원하청 교섭 초기업 교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