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5.11.14
아시아 노동자운동의 현재와 연대
<민주노총 창립 30주년 기념 아시아노조활동가교육교류프로그램(LEAP) 특별기획 토론회> 지상중계
11월 11일, 민주노총은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민주노총의 대표적인 국제연대 사업인 아시아노조활동가교육교류프로그램(이하 ‘LEAP’, Leadership Education and Exchange in Asia Program for Young Unionist)의 성과를 평가하고 역대 LEAP 참가자들이 현재 각국에서 펼치는 활동을 공유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17년에 걸친 LEAP을 마무리하고, 아시아 노조 국제연대의 새로운 단계를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현장의 토론을 소개한다.
민주노총의 국제연대 문제의식
1부 “LEAP 17년의 여정, 함께 만든 성과”의 첫 발제를 맡은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민주노총의 국제연대 문제의식과, 이를 반영한 주요 사업으로서 LEAP의 변천 과정과 성과를 평가했다.
"전 세계 노동자와 연대하여 국제노동운동의 역량을 강화하고 인권을 확대"하자는 강령을 건 민주노총은 초창기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노조운동 지원을 목표로 삼았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노동자 국제연대 전선 구축"이라는 적극적인 목표를 걸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2007년 LEAP을 시작했다.
당시 아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노동조합 교류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재정 지원 기관들, 즉 일본노총(렝고)과 싱가포르노총(NTUC)의 노선이 반영되어, 노사협조주의와 사업장 단위 중심의 교섭체계를 아태 지역 노동운동에 전파했다. 유럽, 북미 노동조합들의 남반구 노동조합 지원 활동도, 이 지역의 구체적인 현실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LEAP은 이러한 기존 사업들과 구별되게, 자신의 노선을 일방적으로 교육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역량을 함께 강화하고 연대를 공고히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프로그램의 참가 대상을 국제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조직의 청년 활동가까지 포괄했는데, 아태지역에서 새롭게 조직되는 노동조합이 기존 가맹조직의 반대로 국제노총 가맹에 어려움을 겪거나 국제조직에 참여할 여력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한 것이었다. 교류로 끝나는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공동 실천을 위한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으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했으며, 민주노총 차원만이 아니라 가맹조직들도 지역 내 파트너십을 형성할 조직을 발굴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계기로 만들고자 했다.
LEAP의 변천 과정
아시아태평양 지역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배움과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온 LEAP은 2007년에 시작하여 2024년까지 총 15차례 진행되었다. (2015년에는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심포지엄과 토론회로 대체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최가 불가능했다.) 그동안 홍콩,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네팔, 미얀마, 몽골, 동티모르, 피지 등의 45개 노동조합에서 250여 명이 참가했다.
류미경 국제국장은 LEAP이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경험을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공유하는 한편, 급변하는 지역 정세와 노동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프로그램 내용을 발전시켰으며, 단순한 일방적 교육이 아니라 상호 학습과 연대의 장으로서 역할을 확대해왔다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필수 프로그램인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역사 소개는 프로그램이 거듭되면서 한국사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현대사 전반과 각국의 민주노조 운동 궤적을 서로 비교하며 각자의 활동을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공통된 과제를 발견하는 방식이 되었다. 산별노조 건설, 전략조직화 사업,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과 같은 민주노총의 주요 투쟁의제와 핵심 사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참가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 실질적으로 참고가 될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을 포함했다.
LEAP이 다룬 의제는 시대적 정세를 반영하여 변화했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노동조합의 의제에 초점을 맞췄고, 이후에는 사회공공성 강화, 초국적기업의 글로벌 공급사슬 내에서 노동자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 기후위기에 맞선 정의로운 전환 등이 추가되었다.
2019년부터는 의제가 크게 전환되었는데. 이때는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투쟁이 벌어지면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고,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 여러 국가에서 권위주의가 급속히 확산된 시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 또한 전례 없는 경제 위기를 촉발하여 노동자들에게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아태 지역 각국 정부의 노조 탄압도 강화했다. 일부 국가에서 노조 간부들이 체포되거나 노동조합이 강제로 해산되는 등 노동조합 활동 자체가 점차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LEAP은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권위주의에 맞서 노동조합의 생존을 지키는 연대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장이 되었다.
LEAP이 거둔 성과
류미경 국제국장은 “LEAP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도 참가자들”이라고 밝혔다. 역대 LEAP 참가자 상당수가 각자의 조직에서 핵심 간부로 성장하여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진 주요한 노동자 투쟁에서 LEAP 참가자들이 투쟁을 조직하고 이끄는 지도적 위치에 있던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1) 2012년 인도네시아 총파업은 인도네시아 전역 21개 지역에 걸쳐 노동자 200만 명이 80여 개 공단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최저임금을 최대 44%까지 인상시켰다. 이 투쟁을 이끈 3개 노총의 핵심 간부 상당수가 역대 LEAP 참가자들이었다.
2) 2013년 홍콩에서 벌어진 항만노동자 파업 역시 홍콩노총의 LEAP 참가자가 중심적인 역할을 한 투쟁이었다. 40일이 넘게 지속된 홍콩 역사상 최장기간 파업이었다. 이로써 15년 동안 동결된 임금이 9.8% 인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내걸고 함께 싸운 소중한 선례를 남겼다.
3) 아태 지역 전반에서 기업 단위 노동조합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태국의 LEAP 참가자들은 LEAP에서 학습한 산별노조론과 전략조직화 방법론을 참고하여 '소산별노조', '일반노조' 등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형태의 조직화를 실현해냈다.
LEAP의 또 다른 성과는 일회성 교육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역대 참가자들이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네트워크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상술했듯 코로나19 팬데믹,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홍콩노총은 그 여파로 해산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등 각국 노동조합의 활동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위기 속에서 LEAP은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네트워크가 되었다.
LEAP이 아시아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
1부 발제와 토론을 맡은 LEAP 참가자들은 LEAP 참가 경험이 자신의 활동과 자국의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을 증언했다.
다니엘 에미르 투마논 ABC5(필리핀 방송국) 노동조합 위원장 겸 필리핀노총(SENTRO) 수도권지역본부장은 2019년 LEAP 참가자로, 그 경험이 자신이 조직화하기 어려운 산업인 방송업계 노조에서 리더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도, 필리핀에서도 정치양극화와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이 확대되며 허위정보 유통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검증된 정보를 담은 방송을 만드는 노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SENTRO 차원에서도 LEAP 참가자들이 민주노총을 참고하여 좀 더 다양한 분야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투마논 씨는 토론회 2부에서 현재 필리핀 노동운동의 여러 쟁점도 소개했다. 필리핀에서 불안정노동의 흔한 형태는 ‘계약직 관행’(contractualization)인데,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피하고자 6개월 미만 노동계약을 반복하는 것이다. 투마논 씨가 조직하는 방송업계나 필리핀의 대표적인 쇼핑몰 체인인 SM도 정규직은 극히 적으며, 대다수 노동자가 1~5개월 노동계약으로 일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을 종식하는 것은 SENTRO의 오랜 투쟁 과제다. 그 밖에도 최저임금이 절대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지역별 격차가 크고, 노동자들이 전공과 지식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SENTRO는 최저임금 인상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노동자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요구하고 있다.
2022년 참가자인 앤디 위자야 인도네시아 발전노조(SPNP) 사무처장도 LEAP을 참가하기 전에는 자신의 활동과 고민이 인도네시아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LEAP을 통해 노동자는 혼자가 아니고 노동자의 투쟁은 모든 나라가 같다는 점을 깨달았고, 서로의 구체적인 투쟁 전술을 배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경험은 20개가 넘는 노총과 1000개 이상의 노조로 갈라져 이러한 대규모 집회를 할 수 없는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돌아보고 단결의 중요성을 느끼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LEAP 참가를 통한 실질적인 활동의 변화로, 발전노조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과제로 적극 실천할 역량을 얻은 것을 꼽았다. 올해 참가한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 남반구 지역 회의를 소개하며, 이와 같이 관련된 국제연대 활동도 확대하고 있다고 공유했다.
2014년 참가자인 쁘라싯 쁘라솝숙 씨는 현재 태국의 산별노조인 자동차 및 금속부품노동조합(TAM) 산하에서 일본계 자동차 부품 회사인 JTEKT 노조(15개 공장, 8,000명 이상 조합원)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먼저 전국에 경쟁적으로 설립된 노동자협의회(Labor Council)가 26개, 노총도 20개 이상이나 있으며 그럼에도 전체 노동자 대비 노동조합 조직률은 1.1%에 불과한 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LEAP 참가 경험은 쁘라솝숙 씨에게 크게 두 가지를 남겼다. 먼저 태국 노동운동 내에는 노동운동사나 과거 노동운동 지도자에 관해 큰 관심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쁘라솝숙 씨는 한국 노조들이 노동운동사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전태일 정신을 기리는 집회를 열고 노동 열사들의 묘역을 참배하는 것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러한 과정이 노동운동의 성장과 계급 의식의 강화에 필수적이라고 느꼈다.
두 번째로, 영세사업장이 많고 노조들이 작고 산발적인 탓에 노동운동의 교섭력이 성장하지 못하여 낙후된 노동법이나 ILO 핵심 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 협약) 및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보호 협약)가 비준 안 된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느낀 쁘라솝숙 씨는 LEAP에서 배운 한국의 산업별 노조 개념과 사례에 영감과 자신감을 얻어, TAM과 협력하여 4개의 공장별 노조를 통합하고 3개 공장 노동자를 추가 조직했다. 여러 작은 노조들을 산별노조인 태국 전기전자자동차금속노동조합(TEAM) 산하로 통합하고, 신규 사업장에서는 기업별 노조를 만드는 대신 산별노조로 직가입하기로 합의를 조직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TEAM 부회장, 태국 산업노동조합연합(CILT) 의장, 조직화노동조합센터(OLUC) 회장 등을 역임하며 현재에도 산업별 노조로의 통합과 태국의 ILO 핵심 협약 가입 투쟁에서 최전선에 서 있다.
아시아 노동자운동의 현황
2부 “억압을 뚫고 조직하는 아시아 노동자운동 –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서는 역대 LEAP 참가자들이 자국 노동운동의 현황을 소개했다.
란토 아프리얀토 인도네시아 민주금속연맹(FSPMI) 자동차분과장은 인도네시아 자동차산업과 한국 기업의 진출 현황을 보고하며, 주요 기업인 현대자동차, 동일캐스팅에서 노조 가입자들을 해고하며 노조 결성을 막는 문제, HLI(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인도네시아) 그린파워에서 노동자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대신 단체협약 체결을 회피하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인도네시아 노동조합들이 청구한 일자리창출법(옴니버스법) 위헌심판이 거둔 성과도 소개했다.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는 ‘조건부 위헌’을 선언하며 정부에 포괄적인 일자리법 대신 별도의 노동법을 입법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 계약직 노동 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고, △ 아웃소싱이 가능한 노동의 종류를 제한하고, △ 정리해고 요건을 어렵게 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여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아프리얀토 씨는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이 판결에 힘입어 노동당과 함께 새로운 노동법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2026년도 최저임금을 경제성장률에 상응하여 8.5~10.5%인상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도 최근 전국에서 대규모로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무하마드 후세인 마울라나 인도네시아민중노동조합연맹(SERBUK) 사무처장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인도네시아 ‘8월 시위’와 SERBUK의 청년조직화 사업에 관해 발표했다. 지난 8월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의 거액 주택수당 수령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직접적 계기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울라나 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족한 일자리, 높은 세금, 쉬운 정리해고, 정부 부패에 시민의 불만이 쌓여왔으며, 인도네시아 독립 80주년을 맞은 지난 7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운동의 상징이 된 만화 ‘원피스’ 해적단 깃발도 등장했다고 알렸다.
마울라나 씨는 인도네시아에는 노총이 너무 많아서 현 국면에서 단결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노조는 가장 중요한 대중조직이므로 시위에 나선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SERBUK은 조합원의 62%가 35세 이하일 정도로 젊은 조직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노조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노조가 찾아가 참여형 교육을 실시하는 “SERBUK이 학교에/대학에/지역공동체에 간다”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학생들이 이미 노동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노조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 결과 학생 100명 이상을 노조로 조직했고 이들이 인턴으로서 노조 신규 조직화에도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SERBUK은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지구, 새 세대를 위한 노조”라는 서사를 쓰고 있다며 발표를 마쳤다.
마울라나 씨는 다함께 양면에 구호가 적힌 손피켓의 같은 면을 앞으로 들어올리는 민주노총의 집회 문화를 인도네시아에도 도입했다며 관련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고, SERBUK의 학생 인턴들이 만든 “우리는 왜 싸우는가”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카오 조 시앙 대만병원노련(TFMU) 사무처장은 대만 노동운동의 역사와 현황을 발표했다. 미국 노조의 대만 정부 압박으로 생긴 1984년 노동법과 1987년 계엄령 해제 이후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성장이 함께 폭발적으로 일어난 대만의 역사는 한국과 상당히 닮아있다.
이전 정부들과 달리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한 차이잉원 정부도 2018년 초과노동시간을 늘리고 초과노동수당과 휴식시간은 줄이는 등 노동법을 개악하여, 이때 전국적으로 노조의 투쟁이 활발해지고 노동법의 중요성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었으며, 청년층의 집회 참여가 확대되었다고 소개했다.
카오 씨가 활동하는 보건의료 부문 노조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가 매우 적었지만, 2016년 6월 대만 최초의 승무원 파업(중화항공노조)을 보고 고무된 간호사들이 노조를 만들기 시작했고 2021년 대만병원노련이 결성되었다고 설명했다.
대만 노조의 현안들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다. 지난 10월 대만의 제2국적사인 에바항공(EVA Air)에서 아픈 승무원이 인사고과의 불이익을 우려하며 병가를 쓰지 않다가 사망한 사건은 대만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노동조합은 병가를 사용한 노동자에게 벌점을 매기는 업무 평가 시스템을 문제로 지목하며 노동자 보호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카오 씨는 현장의 문화를 바꾸려면 단순히 제도의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저항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수 업무’라는 이유로 보건의료노동자에게 파업권이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도 공유했다. 태풍이 심한 대만은 큰 피해가 예상되는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지만, 병원 노동자들은 필수 업무 종사자라는 이유로 노동하다 출퇴근길에 사고를 당하는 일이 이어졌다. 이에 대만병원노련은 필수 의료 서비스 제공에 정말로 필요불가결한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를 법으로 구별하여 후자는 쉴 수 있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의 생존권에 중요한 일일 뿐더러, 이러한 접근을 적용하면 장기적으로 일부 보건의료노동자의 파업권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냐는 구상이다.
아시아 노동조합 국제연대의 다음 단계
토론회는 앞으로 한국과 아시아 노조의 국제연대 방향을 제안하는 두 활동가의 토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LEAP 초창기에는 한국의 정치, 경제, 노동운동 궤적을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반복하는 양상이므로 한국 노동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지만, 최근 몇 년간은 각국 노동운동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인해 새로운 단계의 국제연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이 판을 짜고 다른 노조를 초대하는 방식 대신, 상호 교류와 배움의 장이 될 새로운 판을 공동으로 발전시키자는 요청을 각국 노조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즉, LEAP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국제정세 변화 속에서 서구 노조의 아시아 노조 재정 지원이 끊기는 것을 체감한다며, 그 자리를 한국 노동운동이 충분히 메꿀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칭 ‘전태일 기금’을 제안하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한 달에 인당 1,000원씩만 모을 것을 결의하면 한국 자본과 맞서 싸우는 아시아 각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전태일 정신이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노동운동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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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론회가 잘 밝혔듯, LEAP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노동조합들의 중요한 연대의 장이었으며, 공통의 투쟁과 각국 노동운동 진전에 실질적인 성과를 많이 냈다. 앞으로 한층 더 긴밀하고 풍부해진 아시아 노동운동의 새로운 국제연대 사업을 기대한다.
사회진보연대의 이전 LEAP 참가자 인터뷰 기사들도 아래에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