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5.11.25
노동자 격차 축소와 연대를 위한 산별노조·초기업교섭의 오늘과 내일
민주노총 창립 30주년 기념 ‘산별노조·산별(초기업)교섭 진단과 과제’ 토론회 지상중계
창립 30주년을 맞은 민주노총은 기획 토론회의 첫 번째 순서로 핵심 노동운동 노선이자 전략으로 추진해 온 ‘산별노조·산별교섭’에 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1월 18일 개최된 ‘산별노조·산별(초기업)교섭 진단과 과제’ 토론회다. 이 토론회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발전한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초기업교섭을 활성화하기 위한 과제를 논의했다. 산별노조에서 실천한 다양한 경험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들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산별노조의 역사적 궤적과 초기업 교섭의 특징
첫째 발제자로 나선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산별노조의 역사적 궤적과 특징을 정리하며 그 시사점을 제시했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한국 초기업교섭의 유형을 단체교섭 ‘집중도’와 ‘조정도’를 기준으로 네 가지로 유형화했다. 이는 한국에서 초기업교섭이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며 서로 불균등하게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 산별노조의 가장 큰 특징은 ‘혼종성’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불안정하거나 미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연대의 원리와 조직 논리가 하나의 형태 안에서 공존하고 경쟁하며 상호작용을 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말한다. 그는 급변하는 노동환경 속에서 단일한 조직 모델보다는 유연하고 적응력 있는 혼종적인 형태의 조직 모델이 생존과 발전에 유리할 수 있지만, 일관된 실천을 이어가기 어렵고 내부 갈등과 긴장이 상존하는 한계 역시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해관계의 비대칭성을 조정할 내부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한국의 산별노조가 ‘조직’ 단위와 ‘교섭’ 단위가 점점 뚜렷하게 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국 산별노조는 초기에는 교섭모델을 추구했지만,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새로운 딜레마에 직면하여 대체로 조직화 우위의 모델로 전환하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경향이 초기업교섭의 발전이 정체되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창근 연구위원은 초기업교섭 활성화를 위해 교섭 상대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며, 초기업교섭 형성과 지속에 있어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산업 대전환 시기에 대응하는 전략적 수단으로서 초기업교섭의 중요성이 재조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업교섭 이행의 과제와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의 쟁점
둘째 발제자로 나선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초기업 교섭 활성화 방안과 이행’을 위해 노동조합과 사용자와 정부가 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초기업교섭 국정과제 이행 여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2025년에 초기업 교섭모델을 개발하고 2026년부터 소관부처별로 집단교섭체계를 구축하는 계획을 제시했으나 잘 실행되지 않고 있고, 공무직위원회도 2025년 관련 법을 제정하고 2026년부터 시행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으나 아직 구체적인 법 제정 계획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조법 2, 3조 개정 후속 조치와 관련한 쟁점 역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기업 교섭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으로는 초기업교섭의 의무가 사용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정흥준 교수가 과제로 강조한 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조합은 산별교섭 모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산별노조 및 사용자단체의 상황을 고려하여 다양한 방식의 초기업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초기업교섭 의제와 지부·지회별 교섭 의제를 분리하여 사용자의 초기업 교섭 참여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또한, 산업 내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직무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는 초기업교섭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여 적극적으로 초기업 교섭에 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간접적인 개입도 줄이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노조법 2, 3조 개정으로 초기업 수준의 교섭에 임할 책임이 생긴 만큼,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하거나 법적 다툼을 벌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초기업교섭에 임하는 것이 장기적 노사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초기업 교섭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중앙노동위원회가 초기업 교섭을 할 경우 교섭 단위에 대한 분리, 통합을 판단할 수 있는 역할을 갖도록 관련 법안을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초기업교섭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건설, 화물, 특고·플랫폼, 돌봄 등 민간 부문이 존재하므로, 초기업 교섭을 복원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구체적으로 계획해야 한다. 정흥준 교수는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 조직을 정비해 초기업교섭 전담팀을 만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산별노조 운동의 방향과 모색
이어 장귀연 노동권연구소 소장과 이주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장귀연 소장은 ‘지금 시기 왜 산별노조인가?’에 주목하면서 급변하는 노동환경 속에서 유연하고 적응력 있는 혼종적 형태가 산별노조의 생존과 발전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이창근 발제자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직무가치임금이나 동일가치-동일임금이 과연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에 기여하는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노조가 추구해야 하는 임금원리는 ‘연대임금’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이주호 토론자는 다가오는 2026~27년 시기를 집중해서 돌파하지 못하면 산별노조 운동의 개선과 혁신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첫째 발제문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내부의 조정 능력과 전략적 유연성을 핵심 실천 과제로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고, 둘째 발제문에 대해서는 이재명 정부의 초기업 노사관계 정책과 추진 현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첫째 발제문에 대해서는 교섭 모델과 조직화 모델의 절충안은 정말 없는지, 한국의 산별노조를 혼종형이라고 규정한 만큼 산별교섭인가 기업별교섭인가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분권형 조율이 가능한 혼종형 교섭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어려운지 질문했다. 둘째 발제문에 대해서는 이재명 정부의 초기업교섭 관련 국정과제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러면서 초기업 지원 TF를 만들고 있는 새 정부에서 다양한 논의가 꼭 진전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산별노조에서의 사례: 산별교섭 현황과 과제
이어 금속노조, 건설산업연맹, 보건의료노조, 민주일반연맹은 각 산별노조 건설의 흐름과 산별교섭의 사례를 소개하며 산별·초기업 교섭을 발전시키기 위한 당면 과제와 의견을 주제로 토론했다.
금속노조 김상민 정책실장은 금속노조의 집단교섭 시도 흐름과 당면 과제를 제시했다. 금속노조는 2001년 지역지부 집단교섭 시행 합의를 시작으로 하여, 2009년 공동 요구를 중심으로 중앙교섭과 대각선교섭을 통해 같이 싸워서 같이 쟁취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다양한 교섭 구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다만 기업별교섭 체계 극복이 쉽지 않고 산별교섭의 결과물을 공장 밖으로까지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산별·초기업 교섭 진전을 위한 당면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정부가 국정과제 목표로 명시한 ‘노동시장 격차 해소’를 근거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견인한다. 둘째, 현장에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산별·초기업교섭 의제와 틀을 기획하고 추진한다. 셋째, 산별·초기업교섭에 대한 사용자의 거부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건설산업연맹 송주현 정책실장은 다른 산업과는 다른 입직 과정에 있는 건설 노동자의 상황을 소개하며 토론을 시작했다. 건설 노동자는 산업 특성상 기간제 노동자여서 노조 조직화가 상당히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다만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 사업이 많기에 자본뿐만 아니라 정부를 대상으로 건설 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직접 연결되는 제도 개선 투쟁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타워크레인, 레미콘, 전기원을 비롯한 기능직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초기업 노조를 건설하고 사용자단체와 초기업 교섭을 진행했다. 이에 비추어볼 때, 초기업교섭을 중앙 산별교섭만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기업별교섭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초기업 교섭 방식을 기획하고 시도해야 한다. 송주현 정책실장은 건설산업의 특성상 사용자와 더불어 정부와 교섭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라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 최복준 정책실장은 보건의료노조가 ‘단체협약의 효력 확장’을 추구했음을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 단체협약위원회를 구성하여 ‘모범 단체협약’을 만들고 실질적인 산별교섭을 추진하기 위해 ‘표준 노동협약’을 준비했다. 산별·초기업 교섭은 단체협약 체결을 넘어 노동시장의 표준을 제시하는 기능도 수행해야 하므로 임금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난이도와 중증도에 따른 직무체계의 표준화까지 포함한 것이다. 최복준 정책실장은 특히 인구 구조 변화나 저소득층 문제와 연관된 돌봄 문제를 비롯한 복합 위기의 시대에 적합한 대응책을 노조가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산별노조의 조정력이며, 산별중앙교섭을 노동시장의 준거 단위로 삼아 ‘표준 임금체계’와 ‘표준 노동조건’을 정립함으로써 노동자 간의 격차를 줄여야 하고 의료개혁과 연계된 거버넌스에도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일반연맹 이영훈 비대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대산별 노선의 한계를 평가할 시점이라고 지적하면서 업종별 산별 전환을 통해 투쟁과 교섭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산별노조의 방침과 조직 논리가 그에 속한 다양한 업종 노동자들의 투쟁 요구를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민주노총은 대산별 방식이 아니라 업종별 요구를 바탕으로 뭉쳐서 투쟁하는 것부터 시작해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를 교섭에 불러내고 제도화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영훈 비대위원장은 그렇지 않으면 산별교섭 발전이 정체된 현재 상태가 고착하고 제도의 틀만 앙상하게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섭창구 단일화·산별교섭 단체협약 효력 확장에 대한 제도 정비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이 당면한 쟁점으로 교섭창구 단일화와 산별교섭 단체협약 효력 확장을 위한 제도 개선의 문제도 언급되었다.
먼저, 초기업 교섭을 활성화하려면 노조법 2조 개정 이후 원청과의 교섭 가능성을 고려하며 창구단일화와 교섭단위 분리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 방안으로 교섭 창구 단일화 조항을 비롯해 현행법에서 초기업 교섭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규정을 정비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정부가 2026년 상반기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현재 3분의 2로 되어있는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도의 지역적 구속력을 50% 정도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와 단체협약 효력 확장 문제는 각 단위가 모두 당면한 사안으로 대응하고 있는 주제라 많은 토론이 오가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참석자가 공감하였다.
산별노조 운동의 성과와 실험의 지속
두 발제자 모두 산별교섭의 좋은 모델로 교육공무직 사례를 들었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노동조합 조직은 따로 하더라도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 전국여성노조가 함께 구성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를 통해 공동교섭을 하는 형태가 의미 있다고 보았다. 조직은 대산별노조로 구성하는데 대산별교섭은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대산별교섭을 고집하기보다는 실제로 가능한 단위들을 묶어서 다양한 초기업교섭 유형을 다층적으로 시도해 보는 게 낫다는 의견이다. 업종별 공동교섭, 직종별 공동교섭, 지역별 공동교섭, 동일한 원청의 계열사 공동교섭 등 주어진 조건에 맞는 다양한 유형의 교섭모델을 발굴하여 대산별노조 하에서 펼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흥준 교수는 공무직위원회가 만들어지면 중앙 행정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교육청 등 분과위원회가 만들어질 텐데, 교육청 분과위원회에 들어갈 교육공무직의 교섭 형태가 다른 분과위원회에도 하나의 모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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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산별교섭은 민주노총 출범과 함께 오랫동안 노동운동의 핵심 전략이었고 앞으로도 그 가능성을 적극 모색해야 하는 전략이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 30주년을 맞이하여 각기 다른 단위에서 산별노조·산별교섭의 경험을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리였다. 노동자 단결과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작은 퍼즐부터 맞춰나가는 시간을 앞으로도 계속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