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5.12.12

변화하는 정세 속, 국제 기준에 따른 여성의 권리와 평화를 모색하다

일본 젠로렌 및 여성 단체들 주최 “제70회 일하는 여성의 중앙 집회” 참여 후기

사회진보연대
필자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참가단의 일원으로 11월 29일~30일 열린 "제70회 일하는 여성의 중앙 집회”에 참여하였다. "일하는 여성의 중앙 집회"(이하 중앙 집회)는 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이하, 줄임말 ‘전노련’의 일본어 발음인 ‘젠로렌’)와 여성 단체들이 1년간 진행한 활동을 공유하고 결의를 모아내는 자리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젠로렌 여성부는 그간의 온라인 교류를 오프라인으로 전환해 확대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중심으로 참가단을 구성해 제70회 중앙 집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공통의 의제와 관심사를 가지고 다른 국가의 노동조합과 교류하는 경험은 필자에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의 모든 것을 모르는데 알아가야 할 것은 많아 보여 일본어부터 일본 노동조합 역사, 이번 중앙 집회 의제인 CEDAW 권고까지 틈틈이 조사하고 공부했다. ‘일하는 여성’의 중앙 집회인 만큼 성별 임금 격차 등 여성 노동 의제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노동 문제에 초점을 맞춰 알아봤다. 하지만 중앙 집회는 노동조합만의 행사가 아니라 성평등을 중심으로 전 사회적인 의제와 요구를 다루는 장이었다. 중앙 집회에 참여하고 나서야 한국 및 일본 정부가 각각 받은 CEDAW 권고를 비교·정리하는 작업에 집중했다면 더 현실적이고 도움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 기준의 권리를 우리 손에! CEDAW 권고 이행을 위해 행동하자! 
일본 여성 노동자·농민·상공인·시민을 위한 국제 기준의 권리를 요구하다

제70회 중앙 집회의 취지와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유인물 번역본이다. 1일차 분과회에는 민주노총 참가단이 참여한 제2분과회 외에도 ▲ 제1분과회 "전후 피폭 80년, 아이치로부터 평화를 생각하다", ▲ 제3분과회 "독일로부터 배우고, 비정규 노동 방식을 없애자", ▲ 제4분과회 "생활의 끝, 가까운 곳에서 사회를 바꾸다"(지역의 학교 제도 관련 활동 사례 공유)가 진행되었다.
 
제70회 중앙 집회는 1일차 분과회, 2일차 전체회로 진행되었다. 1일차에 민주노총이 참여한 “국제 기준의 권리를 우리 손에! CEDAW 권고이행을 위해 행동하자!” 분과회에서는 2024년 10월 UN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에서 이루어진 일본의 9차 정기 보고 이후 일본 정부가 받은 권고를 중심으로 분야별 성평등 과제를 살펴보았다. CEDAW는 ‘성에 근거한 구별·배제·제한으로서 남녀평등을 기초로 한 인권과 자유의 행사를 부정하는 효과 및 목적을 가진 것’을 여성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1985년 CEDAW를 비준하였으나, 선택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았다.
 
분과회 메인 발제자인 오바타 마사코 부인단체연합회 회장은 “CEDAW의 취지가 성별 분업을 지양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이를 비준한 국가는 “사회 및 조직의 차별적 관습, 관행에 의한 차별도 폐지할 의무가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4년에 1번씩 CEDAW에 보고를 제출하여 심의 후 권고는 받고 있지만, CEDAW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준국의 개인 혹은 단체가 권리 침해를 당할 시 CEDAW 위원회에 직접 진정할 수 있는 개인 통보 제도와 여성 차별이 중대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의심되는 경우 CEDAW 위원회가 직접 조사하는 조사 절차가 도입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가장 최근 제출한 9차 정기 보고에 대해 CEDAW는 총 11가지 항목의 우려 및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 선택적 부부 별성제를 포함한 여성 차별에 대한 포괄적 정의 차별금지 입법, ▲ 성별 임금 격차 및 노동시장 구조 개선, ▲ 오키나와 미군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포함한 여성에 대한 폭력·성폭력·인신매매 등 대응 강화, ▲ 여성 국회의원 비중 증가를 위한 공탁금 감액을 포함한 정치 및 공적 영역에서 여성 대표성 확대, ▲ 성적 건강과 재생산 권리를 위한 응급 피임 및 청소년 피임 접근성 강화 등이다.
 
제70회 중앙집회 첫날 1분과회 "국제 기준의 권리를 우리 손에! CEDAW 권고 이행을 위해 행동하자!"에 참여하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이다. 민주노총에서는 여성위원회 참가단 6인(민주노총 및 민주노총 서울본부, 보건의료노조, 건설산업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이 참여했다.
 
이어 분과회에서는 단체별로 CEDAW의 권고에 따른 제도 개선을 요구한 활동 경과를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신일본부인회 아이치현본부는 부부가 같은 성을 쓰도록 의무화하는 현행 제도를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로 바꾸라는 CEDAW의 권고를 일본 정부가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활동의 경과를 공유했다. 한편 전국상공인연합회 여성부협의회와 농민여성회는 가족 경영에서 여성 노동을 인정하자는 취지의 소득세법 56조 개정을 요구하고, 농촌·어촌의 여성들에게 국민건강보험상 출산 및 상병 수당이 보장되도록 제도화를 요구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농민여성회는 여성 농민 중 고령자들은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어 상병 수당이 필요하고, 젊은 농민은 현금 수입이 필요해 심각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의사 결정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농업 정책 의사 결정 구조에 여성의 참여 확대를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농업 정책에 젠더 평등 기조를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도 한국 정부가 받은 CEDAW 권고안의 내용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 개정, 비동의 강간죄를 위한 형법 개정,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을 주요 과제로 소개했다.
 
발표가 모두 끝난 후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필자는 정부와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 내 성차별적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는 CEDAW 취지를 참가 단체들은 어떻게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질의했다. 그러자 성차별에 대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경험과 고민이 쏟아져 나왔다. JAL 항공사 해고 노동자는 JAL이 53세 이상 승무원을 전부 해고하고, 자녀를 출산한 승무원의 직장 복귀를 불허했으며, 승무원의 업무가 안전 업무임을 부정하고 음식업으로 등록했다고 비판했다. 일본국가공무원노동조합연합회 소속 나고야 보육원 교사는 보육원이 여성의 노동조합 활동을 제도로 보장하지 않으며, 임신 및 출산으로 자리를 비운 동료의 공백으로 남은 동료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표한 도쿄의 특수학급 교사는 이러한 문제에 관해 "돌봄 노동에 대한 저평가 역시 CEDAW에서 지적하는 성차별적 관행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사업장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내 성차별적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공유했다. 전국인쇄출판산업노동조합 총연합회 참가자는 "작년에 여성 동지가 위원장으로 선임된 후 회의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젠로렌에서도 성평등을 위해 투쟁을 결의하고 갑질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학습회도 진행 중이다. 노동조합 내에도 갑질이 있는데, 노동조합이 성평등해야 여성들도 마음 놓고 일하고 활동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발언했다. 이어 발표자 마무리 발언에서 오바타 마사코 회장은 “젠로렌에서는 47개의 지방 노련이 각자의 조건에 맞춰 성평등 선언을 마련하기로 결의했다. 성평등을 위한 실천, 남녀평등 고용, 일 가정 양립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갑질 및 성희롱 해소 노력 등이 그 요지”라며 젠로렌의 문제의식과 실천을 공유했다.
 
분과회의 발표와 토론 모두 매우 놀랍고 인상 깊었다. 필자는 제70회 중앙 집회를 젠로렌이 주최했고 제목이 “일하는 여성들의” 중앙 집회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여성 노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발표에서는 부부 별성제 같은 여성 시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제도적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고, 여성 농민과 상공인의 의제와 요구까지 다뤄졌다. 더 놀라운 것은 유관 단체들이 이런 의제와 요구를 중심으로 시민들을 조직하여 대중 운동을 전개할 역량과 지역 기반까지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 단체들의 지역적 기반이 취약하고 민주노총은 노동 관련 요구에 우선하여 집중하는 한국의 현실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여러모로 흥미롭고 새로운 모습이었다.
 
또한 노동조합을 성평등한 조직으로 개조하려는 노력의 방향이 민주노총과 다소 다르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민주노총이 여성 할당제, 평등 수칙을 중심으로 여성의 의사 결정 참여를 확대하고 평등한 문화를 확산하려고 한다면, 젠로렌은 이에 더해 노동조합이 사회와 일터에서 성평등을 위해 실천해야 한다는 조직적 합의를 남겼다. 여성 할당제나 평등 수칙 모두 필요한 제도들이긴 하나, 노동조합 구성원이 사회와 일터의 성차별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서 실천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는 다름 아닌 노동조합의 투쟁 아닐까? 성평등 선언을 조직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젠로렌은 어떤 쟁점과 성과를 남겼을까? 그런 질문이 생겼다.
 
1분과회를 마친 이후 참가자들은 인근 가나야마 역으로 이동해 선전전을 진행했다. 한국에서 보통 ‘집회’라 하면 이렇게 야외에서 대시민 선전, 선동 중심의 기획을 지칭하는데, 중앙 집회는 활동 공유와 토론이 중심이었고 선전전은 그 결과로서 진행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전후 80년, 성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결의를 다지다

 
2일차 중앙집회 전체회에서는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포함한 성평등과 평화를 노래하는 아이치 교직원 합창단 "희망”의 공연 이후, <전후 80년, 성평등과 폭력 없는 사회로> 강연이 열렸다. 가정 폭력과 괴롭힘 사건을 담당해온 변호사 오카무라 하루미 씨는 이날 강사로 나서 가정 폭력은 신체적 폭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강압적 통제”가 그 본질이며 신체적 형태 외에도 고립과 감시를 포함한 심리적 형태, 경제적 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4년 통과된 공동친권 법안이 가정 폭력 가해자가 전 배우자와 자녀에게 접근하여 통제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므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후 80년, 성평등과 폭력 없는 사회로> 강연이 진행 중이다. 사진 속 슬라이드에서는 DV(Domestic Violence, 가정 폭력)와 함께 발생하는 성폭력 역시 강압 및 지배의 형태로서 가정 폭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강연을 통해서 가정 폭력의 성격과 피해 양상, 일본에서의 사법적 쟁점까지 알 수 있었다. 중앙 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읽었던 ILO 협약 190호 “노동 세계의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노동조합 활동가를 위한 가이드 자료의 내용이 생각났다. 가정 폭력은 일터 혹은 노동조합과 무관한 일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가정 폭력 피해로 인해 피해자가 고용과 단절되면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하며 더 심각한 가정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사업주와 노동조합 역시 가정 폭력 실태를 파악하고 가정 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이드 자료의 결론이었다. 돌이켜보니, 전체회의 강연은 가정 폭력에 대한 노동조합의 관점을 마련함으로써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가정 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였다.
 
강연 이후 전체회는 각 노조가 무대에 올라 활동 경과와 의제·요구를 보고하고, 참가자들이 제70회 중앙 집회 결의안을 채택하며 마무리되었다. 결의안은 ▲ 일본 정부의 헌법 9조 '개정'(개악) 중단 및 일하는 여성의 요구 101항목 요구, ▲ 미국 정부의 핵무기금지조약 서명 및 비준과 미군에 의한 성폭력 사과, 일본의 군비 증강 강요 중지, ▲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략 및 무력 사용 중단 및 철수, ▲ 이스라엘 정부의 가자 지구 공격 중지 및 철수 등의 내용이었다.
 
전체회 중 참가 노조들이 각자의 요구안이 담긴 현수막과 선전물을 들고 무대에 올라와 요구를 발표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만들었거나 그림이 그려진 현수막이 있어서 단조롭지 않고 심지어 미묘하게 즐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날 전체회에는 아이치현 노동조합 총연합, 아이치현 고등학교 교직원조합, 일본 자치체노동조합 총연합, 전일본교직원조합, 일본의료노동조합연합회, 일본국가공무원노동조합연합회, 전국인쇄출판산업노동조합 총연합회 등이 참가했다.
 
이 중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일하는 여성의 요구 101항' 전문을 자료집에서 따로 찾아보니, 총 9개 영역 101개 항목으로 구성된 방대한 요구안이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위하여
- 헌법 개악 반대 및 헌법 9조 유지, 핵무기 금지 조약 비준 등 9개 항목

▲ 헌법·UN여성차별철폐협약에 따른 남녀 평등 및 여성 지위 신장에 이바지하는 시책 추진
- 일본 '위안부' 피해에 대한 인정과 사과 및 보상, 제5차 남녀 공동참여 기본 계획 보완 및 총괄 등 7개 항목

▲ 성평등하고 인간다운 노동 규칙 확립
- 1일 7시간, 주 35시간 근로제 확립, 돌봄 노동자 임금 대폭 인상, 남녀 임금 격차 해소, 간접 차별 금지, 모성 보호 확충 등 25개 항목

​▲ 재해 지역 조기 복구·부흥과 원전 제로 요구
- 가동 원전 정지 및 증설 반대, 피폭 기준 완화 반대 등 5개 항목

▲ 일본 농업 및 자영업·중소기업 진흥 권장, 수입 중심 식량 정책 전환
- 쌀의 수급 및 가격 안정 정책 확립, 신규 취농자 및 후계자 지원 확충, 소비세 5%로 감세 및 인보이스 중지 등 7개 항목

▲ 사회 보장·복지 확충
- 군사비 삭감 및 사회 보장, 교육 등 생활 개선 예산 복구, 인가 어린이집 및 돌봄 교실 증설 등 15개 항목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및 감염병 대책 마련
- 감염병 대응 의료 기관 지원 및 지역 의료·간호 체계 보호, 코로나 후유증에 대한 진료 접근성 확보 등 3개 항목

▲ 아동 빈곤 해소 및 보편적 교육 전달
- 교사 부족 해소를 위한 대응, 도덕 교과화 철회 등 12개 항목

▲ 인권·민주주의 보호 및 민주적인 국가 행정·지방 자치 확립
- 언론 및 표현의 자유 보호, 국가 공무원 정원 관리 정책 근본적 개선 및 공공 서비스 확충, 난민 신청 외국인 강제 송환 법 재검토 및 개정 등 13개 항목

 
제70회 중앙 집회 결의안과 일본 정부에 대한 요구 101항을 처음 접했을 때,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민주노총의 요구안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찬찬히 훑어보니,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이 차이점이었던 것 같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집권을 배경으로 핵무기의 위협이 증가하는 현실, 일본 정부가 CEDAW 이행 현황에 대한 9차 정기 보고 후 받은 권고 등 2025년의 구체적 정세와 현안을 배경으로 요구안의 영역이 구성되고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요구 항목마다 구체적인 수치들이 종종 보였다. 소비세를 몇 %로 감세한다든지, 초과 근무 시간은 월 45시간·연 360시간의 상한 규제를 준수하라든지 등이었다. 요구안 하나하나가 현실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고민한 끝에 도출된 게 아닌가 싶었다.
 

한국과 일본,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뜻을 모으다

 
중앙 집회가 끝난 후,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젠로렌 여성부 참가자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먼저 한국 측 참가자들이 중앙집회에 대한 소감을 공유했고, 한국에서 계엄 이후 시민들의 반응과 2030여성들의 참여 배경, 일본 사회에서 성평등에 대한 대중적 정서 및 여론, 공동친권 법안이 전제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에 대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이어 건설산업 연맹의 성평등 사업 소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장시간 교대 근무 문제에 대한 일본의료노동조합연합회와 보건의료노조의 고민 및 시도 공유, 일본교직원조합에서 교직원들의 초과 근무 수당 지급 제한 제도화 문제, 아이치현 노동조합 총연합에서 조합원 수 감소 추세에 대한 고민 및 1,500명의 보육 교사 현안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참가단과 젠로렌 여성부 참가자들의 오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젠로렌 동지들이 한 분 한 분 일어서서 각자 활동하고 있는 노조의 상황과 현안, 고민 등을 열성적으로 공유해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한국의 최근 가장 큰 현안이었던 계엄과 이에 맞선 2030여성들의 실천에 대해서 많은 질의응답이 있었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여론 지형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젠로렌 동지들이 “일본에서는 언론이 정권에 대한 비판을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계엄이 일어났어도 일본 시민들은 한국처럼 바로 반발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여성과 시민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는가?”라고 질의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참가자들은 ▲ 여성의 교육 참여 및 성취 수준이 남성과 비슷해지며 성평등에 대한 기대가 청년 여성들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대상 범죄가 끊이질 않아 청년 여성들이 여성 혐오와 성차별을 비판하게 되었으며, ▲ 한국 노동자·시민들은 독재 정권과 계엄의 탄압에 대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1987년 이전으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니 새삼 한국의 성평등, 정치에 대한 역사적 경험과 여론 지형이 상당히 독특한 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여론이 어떤지 물어보니,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시민들도 딱히 문제의식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한국도 일부 성별·세대별 집단의 실천이 두드러질 뿐, 여성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1일차 분과회 때에도 느꼈지만, 노동계에서의 성차별적인 관행은 (일부 직종별 차이를 제외하면) 양국이 유사해 보였다. 돌봄의 성격이 강한 직종에 여성 노동자의 비중이 높고, 언론 등 대면 서비스 중심의 직종에서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과 괴롭힘이 빈번하며, 여성 노동에 대한 저평가와 차별이 존재했다. 한편 다른 점도 있었다. 공공부문에서는 다카이치 정권의 군비 증강으로 인해 사회 복지 및 공공 서비스 예산이 삭감되어 공공 인프라 노후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자세한 현황과 특성까지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으나, 공공 서비스 예산 삭감과 군비 증강이 연동되는 모습은 한국에서 본 적이 없기에 인상 깊었다.
 
서로에 대한 사전 배경지식이 거의 없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공동의 과제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여러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계속 교류를 이어가기로 의견을 모은 간담회를 마지막으로 1박 2일 젠로렌과의 연대는 마무리되었다. 제70회 중앙 집회는 노동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의 권리를 제도화하고 평화를 지켜내려는 젠로렌의 고민과 열의를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필자로서는 생각지 못하게 얻은 귀중한 기회였다. 젠로렌과의 교류와 연대가 앞으로도 이어지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주제어
노동 노조
태그
젠로렌 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 일하는 여성의 중앙 집회 CED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