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법부 개혁 국민투표 분석
포퓰리즘 정권의 사법부 독립성 위협은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다
3월 22~23일 이탈리아에서 사법부 개혁을 위한 국민투표가 진행되었다. 역대 국민투표 중 이례적으로 높은 투표율 59%를 기록했으며, 찬성 46%, 반대 54%로 사법부 개혁안은 최종 부결되었다. 이번 국민투표는 ▲ 판·검사 경력 분리 ▲ 최고사법위원회(CSM)를 판사와 검사 두 개의 별도 기구로 분할 ▲ 최고사법위원회의 법관 징계 권한을 박탈해 별도로 신설된 ‘고등징계법원’에 이관 ▲ 최고사법위원회 위원 임명 방식을 선출에서 추첨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특히 판·검사 경력 분리가 핵심이었다. 국민투표를 추진한 조르자 멜로니 정부는 판·검사 경력 분리를 통해 그간 법관 집단 내에서 형성된 ‘파벌’을 해체하고 재판의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을 취지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탈리아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많은 정치적 논쟁이 일었으며, 권력분립을 훼손해 이탈리아 헌정에 중대한 위협을 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특히 무솔리니의 유산을 계승한 ‘이탈리아형제당(FdI)’이 주도하는 현 멜로니 정부는 총리 직선제와 사법개혁을 밀어붙이며 포퓰리즘적 권위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 글은 멜로니 정부가 추진한 사법부 개혁 국민투표가 왜 문제인지, 그리고 이번 국민투표가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세계적으로 위협받는 사법부의 독립성
UN 사법 독립 특별보고관인 마거릿 사터스웨이트는 2024년 보고서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도전과 사법 시스템의 독립성 보호」를 통해 최근 세계적으로 행정부가 법치와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인류가 폭정과 억압에 맞서 최후의 수단으로서 반란에 의지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권이 법치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독립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사법부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강자의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권력 행사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어렵고, 권력에 대한 견제 또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최근 많은 나라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 번째 유형은 행정부의 사법부 장악이다. 행정부는 일반적으로 헌법상 사법부를 개편할 권한을 가지는데, 이를 악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법관(판사, 검사)의 임명 또는 해임 방식을 변경해 법관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는 경우와, 대법관 규모 확대를 비롯해 사법부 구성을 변경함으로써 정권이 원하는 법관을 공석에 임명하는 경우가 있다. 보고서는 전자의 대표 사례로 2022년 대법관 임명 방식을 변경해 법관을 대거 해임한 튀니지의 사례를 소개하고, 후자의 대표 사례로 2012년 법관 정년을 70세에서 62세로 낮춰 기존 법관을 대거 퇴직시킨 헝가리 오르반 정부를 제시한다.
두 번째 유형은 기존의 법률, 제도, 절차를 활용해 사법부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법관이나 법률가를 형사 고발하거나 기소하거나 자격을 박탈하는 방식이 있으며, 사법부에 대한 예산 지원을 축소하거나 법관의 근무 조건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보고서는 대표 사례로 2016년 쿠데타 시도 이후 기존 테러방지법을 활용해 정권에 비판적인 법관 및 변호사를 대거 기소한 튀르키예 에르도안 정부를 지목한다.
세 번째 유형은 법관을 표적으로 삼아 비방하거나 유해한 낙인을 찍는 경우이다. 소셜미디어나 각종 캠페인을 통해 정권의 통치 행위에 비판적인 판사나 검사를 비방하고, 특정 법관을 지목해 인신공격성 발언과 협박, 괴롭힘을 가하는 사례가 나타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공격이 테러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보고서는 2017년 ‘공정한 법원’ 캠페인을 통해 텔레비전 광고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판사들을 국민의 ‘적’이자 사회악으로 묘사한 폴란드 ‘법과 정의당’ 정부의 사례를 대표적으로 소개한다.
사터스웨이트 보고관은 각국에서 사법부 독립성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법관과 법률 전문가들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더불어, 법관과 법률 엘리트들 스스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사법 절차의 투명성을 개선하고, 사법 판단과 제도를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법관과 법률 전문가들이 이행할 것을 강조한다.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안이 위험한 이유
사터스웨이트의 UN 보고서를 기준으로 이탈리아 사례를 보면, 이번 멜로니 정부의 사법부 개혁안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이다. 개혁 지지자들은 이탈리아 헌법 제112조에 따른 기소의무(법정)주의로 인해 검사가 사건을 선별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사건이 법원에 회부되면서 재판 지연이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검사와 판사가 동일한 사법관 경력 체계 안에서 이동하는 구조가 재판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판·검사 경력을 분리해 엄격한 대립적 소송 구조를 확립함으로써 효율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공소 모델에는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1930년대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 검사들은 법무부 소속으로서 정치화된 기소를 남발했다. 전후 이탈리아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검사를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 소속으로 두고, 검사의 기소재량권을 제한하는 기소의무주의를 도입했다. 그러나 판사가 수사를 주도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기록이 재판에 그대로 이어지는 심문적 절차와, 기소의무주의로 인한 사건 증가가 맞물리면서 피고인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8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판사의 수사 기능을 폐지하고 대립적 소송 구조를 도입했으며, 2022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기소 우선순위 기준을 법제화함으로써 기소 과다로 인한 재판 지연 문제를 완화하고자 했다.
이처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탈리아의 기소의무주의는 전후 이탈리아가 그전의 정치화된 기소를 방지하기 위해 선택한 제도적 산물이다. 따라서 그로 인한 재판 지연 문제는 제도 자체의 폐기보다는 사법 운영 방식과 역량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재판 지연이 심한 것은 로마나 나폴리 등 일부 지역 하급 법원에 사건이 집중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또한 동일한 경력 구조가 재판의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경험적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2022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판사와 검사 간 경력 전환을 한 차례로 제한했으며, 2024년 기준 경력 전환자는 42명으로 전체 판사의 1% 미만에 불과하다. 즉, 기존 이탈리아 사법제도의 문제는 제도 폐기보다는 운용의 정교화와 판·검사의 역량 강화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성격이 강하다.
오히려 검사용 최고사법위원회를 기존 최고사법위원회에서 분리할 경우, 검사의 인사·징계 과정에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고등징계법원 설치 역시 관련 기구에 진입할 고위 법관의 수를 늘려 친정부 성향 인사의 유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최고사법위원 추첨제는 고위 법관의 전문성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UN 보고서가 지적한 ‘사법부 구조 개편을 통한 독립성 침해’라는 첫 번째 유형과 유사한 흐름이다. 실제로 멜로니 정부가 법관을 상대로 보여온 적대적 행보는 이러한 우려가 과도하지 않음을 입증한다. (김영진, 「주류가 된 유럽 포퓰리즘」,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5년 여름호)
국민투표 과정에서 나타난 양극화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 국민투표는 개혁안 추진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총리실이 의회에 사법부 개혁안을 제출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의회 양원을 모두 통과하고 국민투표 시행이 공고되면서, 개혁안을 둘러싼 토론은 이탈리아 헌정에 미칠 영향이나 사법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정치 진영 논리에 기반한 양극화 속에서 전개되었다.
2024년 6월 개혁안이 의회에 처음 제출된 이후, 여당은 야권과의 합의를 통한 수정 없이 다수 의석을 활용해 개혁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판사협회(ANM)가 집단 항의를 벌이자, 여권은 법관들이 정치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카를로 노르디오 법무부 장관은 파로디 판사협회장에게 공개 TV 생방송 토론을 제안했으나 판사협회가 이를 거부하자, 사법부를 ‘준 마피아 체제’라고 표현하는 등 강도 높은 공세를 이어갔다. 이러한 정치 갈등은 생활비 상승과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과 맞물리며 멜로니 정부에 대한 반감을 키웠고, 당초 찬성 우세였던 여론을 박빙 구도로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여론이 팽팽해지자 멜로니 총리는 직접 나서 개혁안 통과를 촉구하며, 사법부 내 ‘파벌’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사법부 개혁안 국민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멜로니 총리
멜로니 총리는 3월 9일 X에 영상을 게시해 3월 22~23일 실시되는 사법부 개혁 국민투표에 참여해 ‘찬성’ 투표를 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사법부가 권력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보다 효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법부를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반대 측 일각에서 이번 투표를 정권 심판의 성격으로 해석하는 주장에 대해, 이번 국민투표는 순수한 사법개혁에 관한 것이므로 결과와 관계없이 사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출처: X)
한편, 이번 국민투표에 꾸준히 반대 입장을 밝혀온 판사협회(ANM)는 2025년 10월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한 후 국민투표가 가시화되자 반대 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후 변호사협회, 시민사회단체, 정당 등이 각각 반대 위원회를 결성했고, 이들은 서명운동을 통해 약 한 달 동안 50만 명 이상의 서명을 확보하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이에 맞서 개혁안 지지자들도 1월부터 법관과 법률가, 여당 및 일부 정당을 중심으로 ‘찬성 위원회’를 지역별로 조직해 찬성 캠페인을 전개했다.
국민투표 일정이 가까워질수록 논쟁의 중심은 헌정 개선을 위한 공론이 아니라 멜로니 정부에 대한 찬반 진영 대립으로 이동했다. 여권 인사들의 과격한 발언에 더해 여론과 법조계 내부에서도 과장된 주장과 담론이 확산되었다. 찬성 측은 사법부 내 정치화된 파벌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반대 측에서도 일부 논자들이 사법부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개혁안 통과가 마피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과장된 주장을 제기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3월 로마와 나폴리 등 일부 도시에서는 찬반 양측이 근거리에서 집회를 열며 긴장된 상황이 형성되기도 했다. 벨기에 루벵대학교의 미켈레 판자볼타 교수는 이러한 과장된 담론이 법조계 내부에서까지 나올 경우, 법조계 전체의 위신과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외부의 통제로 개선될 수 없다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 국민투표는 이탈리아가 직면한 헌정 위기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국민투표 과정에서 이탈리아 사법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제도 운용의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토론이라기보다, 사법부와 법관을 둘러싼 정치적 의미 부여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논쟁은 헌정 발전을 위한 공론이 아니라 진영 간 대립으로 귀결되었다. 비록 개혁안은 부결되었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은 물론 그 정당성과 신뢰 역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둘러싼 이러한 긴장은 이탈리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 사법부는 “민주적 통제”라는 명분 아래 개편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통제 강화는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성을 약화시켜, 법관이 법보다 정치적 유불리나 이해관계에 치우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을 높이고, 사법에 대한 신뢰를 더욱 훼손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사법부 독립을 위한 기준을 마련해왔다. 1985년 UN 「사법부 독립에 관한 기본 원칙」은 사법권에 대한 외부 간섭 방지를 명시했고, 2002년 「방갈로르 사법행위 원칙」은 그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법관의 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적격성(propriety), 전문성(competence), 청렴성(integrity), 공정성(impartiality), 평등(equality), 독립성(independence)을 법관의 핵심 가치로 제시한다. (방갈로르 원칙은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최고법원 판사 회의에서 채택돼, 2003년 UN 인권위원회 결의를 통해 승인되었다.) 두 원칙 모두 사법부와 법관이 외부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함을 핵심적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국제적 사법 원칙에 비추어 볼 때, 헌정 질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법부에 대한 외부 통제의 강화가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의 특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법부가 외부의 간섭 없이 전문성과 직업적 양심을 지켜낼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고, 시민의 신뢰 역시 그 위에서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운동 역시 포퓰리즘 세력이 현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행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