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의 투쟁은 노동자 단결에 기여하는가
삼성전자 노조의 전면 파업이 5월 21일부터 예고되어 있다. 11일에서 13일 새벽까지 진행된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은 결렬되었다. 한쪽에서는 정부와 보수언론 등이 "자기만 살겠다는 과도한 요구"라는 도덕주의적 비난을 내놓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일부가 이 투쟁을 기업의 이윤 배분을 요구하는 정당한 임금인상 투쟁이라고 옹호한다. 이 글은 한국 노동운동이 스스로의 기준, 즉 이 투쟁이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는가라는 질문 위에서 이번 사태를 돌아보고자 한다.
1. 우연한 호황과 독점 초과이윤
2026년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57.2조 원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반도체 부문이 약 54조 원을 차지한다. 연간 영업이익은 200조에서 300조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그룹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이하 삼성전자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할 것, OPI(초과이익성과급, Overall Performance Incentive)의 연봉 50% 상한을 폐지할 것,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노조 추산 30조에서 45조 원 규모, 1인당 약 6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요구는 SK하이닉스가 이미 운영해온 영업이익 10% 성과급(상한 없음) 모델 이상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노조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의 파업을 예고했고, 노조 측 추산만으로도 파업 피해 규모는 20조에서 30조 원 사이로 거론되고 있다.
사측은 DS(반도체) 부문이 메모리 국내 1위를 회복할 경우 일회성으로 초과이익성과급 상한을 초과해 지급하고 영업이익 10%대 성과급 재원화를 제시했지만, 노조는 일회성이 아닌 제도화를 명분으로 이를 거부했다. 사측은 초과이익성과급 기준을 세후 영업이익에서 시설투자액과 자본비용 등을 뺀 'EVA(경제적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산출한다고 밝혀왔으나 그 구체적 항목과 기준은 오랫동안 대외비로 운용되어 깜깜이 분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산정 기준의 투명화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이 논란의 배경이 된 최근 삼성전자의 엄청난 실적의 원인은 무엇일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이 이윤은 노동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AI 투자 열풍이 만든 반도체 세계시장 상황의 우연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HBM을 중심으로 한 AI 메모리 수요는 글로벌 빅테크의 한 시기 자본투자 사이클과 맞물려 형성된 것이고, 그 사이클은 영구적이지 않다. 세계시장의 조건, 즉 메모리 가격이 다시 꺾이거나, CXMT 등 중국 메모리 업체의 추격이 한 단계 더 진척되거나, AI 수요의 변동이 시장을 다시 흔든다면, 같은 규모의 이윤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노사 간 쟁점이 되고 있는 노조 요구안인 정률 명문화와 상한 폐지는 이 우연을 영구적 메커니즘으로 굳히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노조가 성과급 구조를 안착하자고 요구하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한 사이클의 호황에 기댄 구조를 다음 사이클까지 지속하기는 만만치 않은 문제가 있다.
이런 조건 때문에 이번 사태의 쟁점은 노동자 임금 인상의 정당성 여부의 문제라기 보다는 세계시장에서 한시적으로 형성된 독점적 초과이윤을 누가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정치적 문제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2. 외환위기 이후 누적된 결과
한편 이 갈등은 이번 호황으로만 폭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조적 배경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은 빠르게 균열되어 왔다.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근로제 제정 등 노동시장 유연화 입법이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대기업 정규직 바깥의 노동은 점점 더 외주화와 하청구조로 떠밀려갔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등 불안정 노동자들 간에 노동조건 격차가 계속 확대되었다. 이미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인당 국민소득의 1.91배에 이르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큰 수준이다. 이번 삼성전자 상황은 더 극단적이라, 노사 합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더라도 1인당 성과급만으로도 최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은 물론 노동자 중위임금의 수십 배 이상이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대기업의 고임금은 그간 대기업 중심 한국 노동운동의 투쟁이 성공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노동운동이 대기업노조의 임금인상만 추구한 것은 아니며, 격차 확대에 대응하여 산별 노사관계 형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왔다. 2000년대 들어 금속·금융·보건의료·공공운수 등 주요 산업별로 산별노조 전환이 이루어졌고, 산별교섭의 제도화를 둘러싼 긴 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산별노조라는 형태는 갖추었으나 그 안에서 작동하는 노사관계는 여전히 기업별이 주류다. 산별교섭이 진행되더라도 실질적인 임금·노동조건 결정은 기업별 보충교섭에서 이루어지는 구조가 굳어졌다.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조는 자기 기업의 성과 분배에 주력했고, 정부와 자본은 그 분배의 한도 안에서 노동계의 불만을 관리하는 방식을 정착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30년 동안, 임금인상 여력이 있는 호황기에도 그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반도체 시장 호황 사이클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노조가 늦게, 그러나 단번에 등장하여 성장한 것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다. 삼성은 한국 재벌 가운데 가장 오래 무노조 정책을 유지해왔고, 2018년에는 그룹 차원의 노조와해 문건 사건이 사법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2018년 2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삼성전자 1, 2, 3, 4노조가 만들어졌다. 2020년대 들어 이재용 구속과 그에 이은 준법경영 선언을 거치면서 노조 회피 정책이 외연상 일부 후퇴했다. 2024년 삼성그룹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가 결성된 후, 2025년 9월 약 6,300명 규모였던 조합원이 2026년 4월 7만 명 이상으로 단기간에 늘어나 삼성전자 사업장에 처음으로 과반 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거쳐 등장한 노조의 모습은 한국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외환위기 이후 누적해온 운동방식을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극단적으로 반복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부문 간 분배 룰의 부재, 하청·비정규직 의제의 부재, 상급단체와 연대에 대한 무관심 등은 갑작스러운 일탈이 아니다. 한국 대기업 노조 일반이 가진 약점이 새로 형성된 한 사업장에 응축되어 드러난 것에 가깝다. 초유의 반도체 호황이라는 우연이 더해지면서 그 윤곽이 극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지금의 상황은 삼성전자만의 예외가 아니며(유사한 요구가 이미 다른 대기업노조들로 확산되는 중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노동운동이 통과해온 경로의 한 귀결이라는 측면도 인식해야한다. 물론 이 진단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삼성전자노조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다.
3. 임금과 산업구조
이번 사태가 임금 인상 문제가 아니라면 어떤 문제인가. 마르크스는 「임금노동과 자본」(1847)과 후일의 「임금, 가격, 이윤」(1865) 등에서, 임금이 노동력 가치, 즉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기준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한 사회가 노동자 자신과, 그들이 다음 세대까지 유지하는 데 드는 생활·문화·교육 비용의 총합인 재생산 비용은 일정한 사회적·역사적 표준 위에서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반영하여 결정된다. 그 위에서 노동운동의 힘이 임금 수준을 좌우한다. 그런데 1인당 6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 요구는 어느 측면에서 보아도 이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기준으로 보아도, 같은 회사 안의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재생산 비용을 기준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성과급 요구의 근거가 되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높은 이윤도 자기 사업장의 노동생산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우선 원청 대기업이 고이윤의 최종 생산부문을 독점하고, 생산성이 낮은 부문은 광범위하게 외주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삼성전자만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등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대기업의 일반적인 전략이었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대기업들은 모듈화와 외주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효율성의 원천이자 동시에 그 안의 사회적 비용을 외부로 떠넘기는 메커니즘이기도 했다. 즉, 삼성전자에서 실현가능한 천문학적 성과급은 임금이라기보다는 독점대기업의 독점이윤의 배분 문제로 보아야한다.
한편,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의 영업이익은 한 사업장 안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구성한 사회적 생산연쇄 위에서 형성된다. 세제 감면과 투자세액공제, 전력과 산업용수의 우선 공급, 평택·기흥·화성·이천·청주 등에 걸친 산업단지 부지 조성, 국민혈세에 기반한 인프라, 수천 개의 하청 협력업체, 지역사회의 노동력 풀,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안의 무수한 노동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삼성전자 한 회사만 놓고 보아도 사내·외에서 일하는 '소속 외 근로자'가 약 3만 5천 명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업과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적 생산연쇄와 함께 분배의 문제를 고민할 법도 하지만, 삼성전자노조는 그런 조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7만 명 이상의 정규직, 그것도 반도체 부문 노동자가 호황 초과이윤의 15%를 배분받고자 하는 투쟁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협력업체와 사내하청, 비정규직과 해당 산업의 노동자, 그리고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에 대한 분배 의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조 자체가 삼성그룹초기업노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포괄 범위는 삼성그룹 계열사 정규직에 머무르고, 같은 반도체 산업 안의 협력업체도 포괄하지 않고 있다. 특정 부문의 정규직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형성된 독점 초과이윤에 대해 자기 몫만 우선적으로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삼성전자(혹은 DS부문) 정규직이라는 신분에 근거한 '지대 추구'에 가깝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노조 내부에서 드러나는 분배 갈등도 이를 방증한다. 2025년 삼성전자의 부문별 영업이익은 DS(반도체) 31조 5천억 원, DX(가전·모바일) 8조 2천억 원, SDC(디스플레이) 3조 5천억 원이었다. 노조가 요구하는 상한 폐지가 관철되면 반도체 부문 노동자가 다른 부문보다 몇 배 많은 성과급을 가져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회사가 어려울 때 비반도체 부문 노동자들이 만든 이익으로 반도체에 투자금을 지원하며 함께 키워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부문 노동자들이 이 분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DX 부문 기반의 노조인 삼성전자노조동행은 이러한 분배 구조에 반발해 5월 4일 공동교섭단에서 이탈했고, 비반도체 부문에서는 반도체만 위한 교섭이라는 공개적 반발이 이어졌다. 사회적 생산연쇄로부터 자기 몫만 확보하려는 요구는 노조 안에서조차 합의를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호황기에 분배 요구를 제기하는 것 자체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다. 자본주의 제도 안에서 절차적으로 위법한 것도 없다. 그러나 형식적 정당성이 임금 인상의 사회적(혹은 사회운동적)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은 이 상황에서 분배에 대한 이 쟁점이 노동자들의 단결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는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노동자 단결의 기준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노동운동에서 임금투쟁의 의미는 임금 인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어떻게 강화하는가에 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몇 가지 지점에서 이번 투쟁을 평가할 수 있다.
첫째, 노조 정체성의 문제. 이름은 '초기업노조'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기업별노조인 삼성전자노조의 이번 투쟁은 노동조합이 기업별로 대기업 정규직의 지대를 극대화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사회 전체에 한층 강화한다. 이미 누적되어 있던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 사태를 거치며 한 단계 더 강화될 우려가 있다. 노조가 사회적 신뢰를 잃을수록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에게 노조의 의미를 설득하기는 더 어렵다.
둘째, 노동자들 간의 단결의 기반 침식. 1인당 6억 원 이상의 성과급 규모는 청년 미취업자,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 등은 물론 다른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도 자신의 처지와 비교할 때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결의 토대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셋째, 하청에 대한 명시적 배제. 삼성전자노조 위원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규직은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고, 입사 조건이 달랐는데 일률적으로 같은 선에서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답했다. 아마도 노란봉투법을 염두에 두고, 하청 노조가 원하면 원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면 된다는 발언일 것이다. 자본 측이 추구해온 하청외주화를 통한 분할 전략을 노동조합이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동조합의 이익집단으로서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사업장을 넘은 노동자 단결의 가능성을 외부에서 차단당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먼저 닫아 걸은 것이다. 상급조직조차 가입하지 않은 삼성전자노조가 다른 기업과 업종의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틀도 없다.
한편에서는 이번 투쟁을 임금투쟁 일반의 진전으로 옹호하는 논리가 있다. 삼성전자 노조의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의 추격 임금투쟁을 부추겨 노동자 임금투쟁 전체를 강화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처럼 임금투쟁의 의미는 임금 인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노동자들의 단결에 있다. 추격 임금투쟁은 그 단결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이미 벌어져 있는 격차를 영구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고임금 노동자가 새로운 상한선을 만들면 그 정점을 쫓는 경쟁이 시작되지만, 현실에서 그 경쟁은 임금격차를 심화시킨다. 기업별 교섭-투쟁을 통해 기업의 지불능력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는 임금 인상은 대기업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에서는 사용자의 책임이 더 크다는 점에서 노조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도 있다. 지금의 상황까지 오는데 사용자의 책임이 크다는 진단 자체는 타당하다. 삼성전자 사측은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을 이어오면서 억압적인 노무관리 정책을 펼쳐온 결과, 노사 간 합의의 '룰'을 형성하지 못했고, 뒤늦게 갈등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측은 초과이윤을 하청사 등 산업생태계에 공유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노동조합의 연대 없는 요구를 자동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노조도 행위능력 있는 사회적 주체이며, 사회적 책임에서 면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책임론과 노조 자체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차원에서 동시에' 다뤄져야 한다.
5. 각각의 책임과 변화의 방향
삼성전자의 노사 당사자 외에도 정부와 주주 등 여러 주체가 현 상황을 함께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꼬일대로 꼬인 이 문제의 해결이 더 어려운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 노력이 필요한 구조개혁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천문학적 이윤을 천문학적 성과급으로 배분받고자 하는 투쟁은 단기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문제의 등장과 그 해결방법의 시간차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논의에 따라서는 이번 사태를 구조적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가장 먼저 노사관계에서 사측의 책임이 분명하다. 삼성전자의 초과이익성과급 산정 기준은 오랫동안 불투명하고 대외비로 처리되어왔다. 세후 영업이익에서 어떤 비용을 빼고 어떤 기준으로 차등을 두는지를 노동자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분배가 이루어졌다. 적시·적정 분배 규칙의 제도화 실패로 직원들이 사용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무노조 정책을 오래 유지해온 결과, 노조가 늦게 등장했을 때 그 노조와 일상적으로 노사관계를 만들어갈 채널이 부재했다. 노조들의 비밀조합원 구조와 체크오프의 부재 같은 노조 조직 체계의 약점도, 사측의 노무관리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사측의 책임은 노조 결성 이전의 무노조 정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조가 등장한 이후에도 반노조적인 노무관리는 계속되었다.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와의 연계를 시도하는 간부에 대한 회유와 압박, 지역·계열사를 가로지르는 시각을 가진 활동가에 대한 제3자 개입 프레임의 동원, 가전·휴대폰·반도체 부문 사이의 갈등을 자극하는 분배 구조의 운영 등이 계속되었다. 이 속에서 노조의 의제는 자기 사업장 안의 분배 문제로 좁혀져 갔다. 이렇게 보면 사상 최대 이윤이 발생한 시점에 그렇게 시야가 좁혀진 노조가 내놓을 수 있는 요구가 자기 몫의 분배 요구에 머문 것은 의외의 일도 아니다. 이번 사태에는 사측이 자초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 위에서도 노조 자신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노조 역시 이번 투쟁이 끝나면 자신들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초과이익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화 등 제도화가 필요한 요구들도 있지만, 한시적 호황은 언제까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성과급에 몰두하는 활동은 지속되기 어렵다. 또한 상황이 바뀌었을 때 노조가 사회적 지지를 받지 않고는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추구하기도 어렵다는 교훈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부문 간·원하청 간·사회적 분배의 의제를 내부에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산업 자체의 지속 가능성도 문제가 될 것이다. 원하청 분배, 부문 간 분배 룰, 사회적 환원, 재투자와의 균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성과급이라는 단일 이슈로 모인 단체로서 당장의 단기 성취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이후 시기의 노동조합 자체의 존립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노조의 모습은 한국 노동운동 전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을 중심으로 어렵사리 산별노조라는 형태 전환은 상당히 이루었으나, 그 안의 산별노사관계와 산별교섭의 내용은 채우지 못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특수고용·중소사업장·업종 기반의 노조 영역에서는 안전운임제, 적정임금제, 통일교섭, 산별협약 시도, 지역 협약 같은 초기업 교섭의 의미 있는 실험들이 축적되어왔다. 그러나 이 실험들은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중심부 노동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는 동안 대기업 노조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성과를 만들지 못했고, 자기 기업의 성과 분배에 주력하는 관행을 넘어서지 못했다. 삼성전자 사태는 이 비대칭적 발전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노사관계 변화의 과제는 노동운동의 힘만으로 풀리지 않으며, 정부의 책임도 빠뜨릴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해 "자기만 살겠다는 과도한 요구"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두 개입이 사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더 본질적으로, 정부가 이 사태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기업별 노사관계를 사실상 강제하거나, 그것을 넘어서려는 산별노조의 산별노사관계 형성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방해해왔다. 상징적인 발언으로는 이러한 격차 확대의 노사관계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정부도 기업별 교섭을 기준으로 하던 노사관계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또 다른 축에서 사태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소액주주들이다. 어떤 주주 단체는 노조의 요구를 배당권 침해로 규정하면서 노조원 전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경영진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노동3권과 실정법을 부정하는 망언일 뿐 아니라, 배당과 주가부양을 즉시 분배의 의제로 놓는 이 요구도 다른 방식의 단기주의일 뿐이라는 점에서 문제다. 설사 주주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한들 그 이득은 시총 과반을 점한 외국자본으로 귀속된다. 노조의 즉시 분배 요구와 주주의 즉시 배당 요구는 기업이 지속하기 위한 재투자를 잠식하는 '단기주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추격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민경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반도체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성과를 유지하려 해도 R&D와 생산 시설에 대한 재투자가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자율적 자본축적의 토대를 상당 부분 잃었고, 삼성전자도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이 외국자본의 몫이다. 재투자가 한 사이클씩 잠식될 때마다 적대적 매수의 표적이 될 위험이 커진다. 물론 그 방어가 재벌 일가 소유 지배 구조를 지속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도 안 된다. 재벌 일가의 자의적이고 내부거래적인 경영 아래에서, 재투자를 명분으로 노동자가 양보하라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재투자가 노동자의 의제가 되려면, 외국자본 종속의 극복과 주주 중심 경영의 상대화, 재벌-대기업 안에서 노사 간 지대를 공유하는 담합구조의 지양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5월 하순으로 예정된 파업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음 호황 또는 다음 침체에서 같은 풍경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마치며: 민주노조 운동이 자신을 비추어볼 거울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지향은 투쟁을 확장하는 연대였다. 그러나 삼성전자노조의 성과급 투쟁은 연대에서 철수한 기업별 투쟁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노조활동이 삼성전자노조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초보 노조 집행부라서 그렇게 활동한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백지에서 출발하는 노동조합은 없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대기업 노조의 활동과 노사관계 관행을 충실히 보고 배운 것에 가깝다.
많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성과급을 눈앞에 둔 삼성전자노조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솔직히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민주노조 운동이라도 삼성전자노조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