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현장스케치 | 2026.07.01

‘한국의 히로시마’에서 세계 반핵평화 도시로, 합천을 가다

2026 합천반핵평화기행 현장스케치

김진영 정책교육국장
5월 23일,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은 ‘합천반핵평화기행’을 꾸려 경상남도 합천군을 찾았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조선인 약 7만 명 중 대다수가 합천 출신이었다. 이 가운데 살아남아 합천으로 돌아온 사람도 많았다. 자연스레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상징하는 지역이 되었다. 그런 아픔을 간직한 합천은 지금 세계 반핵평화 도시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이번 기행에서는 합천의 역사와 운동을 알아가며, 흔히 한반도와 국제정치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핵무기의 문제를, 다시금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피폭81년! 제21주기 한국 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열사 추모제

 

1년 중 이때 합천에 온 것은 고(故) 김형률 반핵평화운동가의 기일(5월 29일)을 앞두고 추모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21주기 김형률 추모제는 한국 유일의 원폭피해자 복지시설인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렸다.
 
국내 유일의 원폭피해자 전문 요양시설인 합천 원폭피해자복지회관.
 
합천 출신이자 히로시마 피폭자인 어머니를 둔 김형률 열사는 평생 병치레에 시달리다, 담당 의사들이 자신을 “원폭피해 유전에 기인한 선천적 면역글로블린 결핍증” 사례로 파악한 논문을 발견하고, 2002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여 각지를 돌며 원폭 2세들을 조직했다. 사망 직전까지 열정적으로 활동하다 건강이 악화되어 2005년 5월 29일, 만 34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번 5월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 대표자회의에서 ‘열사’로 추인되어, 이번 추모제는 ‘김형률 열사 추모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장.
 
추모제는 내빈과 후원 명단을 소개하며 시민사회에 원폭2세와의 연대를 당부한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장의 인사말로 시작했다.
 
합천군이 지역구인 국민의힘 신성범 국회의원은 원폭피해자 자녀와 손자녀(2세, 3세) 실태조사 및 의료지원, 장례비 지원,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사무국 설치를 골자로 하는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개정안을 2024년 9월 대표 발의하였으나 이후 진전이 없어 죄송하다며, 더욱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 신 의원과 함께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의원도 같은 요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원폭 투하 뒤 81년이 지났는데도, 국제적으로 핵무기 철폐가 이뤄지지 않았고, 국내에서는 원폭피해자 지원과 핵무기 문제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목소리 높였다. 미국은 1945년 7월 16일 핵실험(트리니티 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엄청난 위력을 이미 확인했으며, 전황상 일본의 항복이 이미 예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으므로 그 책임을 확실히 물어야 원폭피해자의 명예 회복이 된다고 발언했다. NPT(핵무기비확산조약) 체계도 처음부터 강대국의 핵 보유를 인정한 한계가 있으며, 현재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로 망가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가 2009년부터 합천에 비핵평화공원을 만들어서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을 세계 평화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세계인을 합천에 모으는 것을 구상했으나, 현행 ‘특별법’에 이와 관련된 조항이 있음에도 실질적으로 정부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진전이 없다고 규탄했다. 또한 학생들에게 핵무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가르치는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원폭2세들의 의료 문제가 심각하나, 현행 ‘특별법’이 2세를 인정하지 않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자리가 남는데도 입소하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며, ‘특별법’을 개정할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
 
추모사를 맡은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은 김형률 열사가 생전에 한 활동의 의미를 소개했다. 열사는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중요시하면서도 먼저 원폭2세 스스로 뚜렷한 역사적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본인을 포함하여 단 2명으로 시작한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키워나갔다. 그가 추구한 원폭피해자 운동은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로서 생명권과 노동권마저 박탈당한 2세들의 삶을 인정받으려는 반핵인권 운동이었다. 이남재 원장은 김형률 열사의 기억을 실천의 원동력으로 삼아 원폭 피해자의 제도적 지원과 반핵평화 국제연대를 이뤄 삶이 계속되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김형률 열사 유족들의 인사말과 시 낭송, 기타 연주와 노래, 북과 소리 공연, 무용 등 다양한 추모공연으로 열사를 기리고 비핵평화의 염원을 표현했다.
 
정연주, 진샤뮤엘 씨의 추모 공연.
김평부 환경음악인의 추모 공연.
반송미 치유무용가의 김형률추모비 앞 추모 무용.
고 김형률 열사의 묘비.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매년 8월 6일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제가 열리는 위령각.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각 안내문.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역사와, 1997년 일본 종교단체의 기부로 위령각이 세워진 사실이 쓰여있다.
 
추모제를 마친 뒤에는 김형률 열사의 유골이 안치된 합천군 공설 봉안담으로 이동하여 참배했다. 열사의 유골은 생전에 살던 부산의 영락공원에 처음 안치되었다가 합천의 선산으로 이장되었고, 최종적으로 유골은 공설 봉안담으로, 묘비는 합천원폭자료관으로 옮겨졌다. 정지현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츠치다 야요이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 사무국차장, 문상환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직국장, 코러스극 ‘히로시마 메시지’를 공연 중인 극단 ‘새벽’, 조선인 원폭피해를 연구해 온 김경인 전남대학교 일본문화연구센터 연구원 등이 추모사를 했다.
 
정지현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국내 유일의 원폭 관련 자료관, 합천원폭자료관

 
공식 추모행사를 마친 뒤 ‘합천반핵평화기행’ 팀은 국내 유일의 원폭 관련 자료관인 합천원폭자료관을 방문했다. 김형률 열사는 일기에 “합천에 원폭기념관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썼는데, 이 꿈은 2017년에야 실현되었다. 합천원폭자료관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자료관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작지만, 일본의 공식 자료관이 거의 다루지 않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실상과 운동을 알려내고 있다. 합천원폭자료관의 이모저모는 사진으로 소개한다.
 
"전쟁은 끝났다.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료들에 대해 설명하는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원자폭탄의 구조 설명.
종이학이 반핵평화의 상징이 된 사연 설명.
한국 원폭피해자들의 사진.
원폭피해 1세 조순이 씨의 증언서.
원폭과 한국 원폭피해자 관련 연표.
"2,3세의 대물림"
고 김형률 반핵평화운동가 소개.
핵무기 관련 최근 뉴스 스크랩.
"나만 입을 다물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원폭2세 환우 쉼터, 합천평화의집

 
원폭자료관을 둘러본 뒤에는 합천평화의집을 찾았다. 2010년 발족한 합천평화의집은 ‘원폭2세 환우 생활 쉼터 건립을 위한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였다. 그 성과로 2016년 합천평화의집이 원폭2세 환우 쉼터로 거듭나 다양한 2세 지원과 반핵평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서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장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남재 원장은 피폭 2세, 3세, 4세의 현실은 핵무기의 피해가 피폭 당사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이와 같이 대물림되는 고통은 국제인도법의 ‘불필요한 고통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2012년부터 매년 8월 합천비핵평화대회를 열어, 일본, 마셜제도, 카자흐스탄, 미국, 콩고 등 세계 각국의 핵무기·핵실험 피폭자들과 핵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연대를 만들고 있다며 참가를 독려했다. 노동권은 인간의 권리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동운동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히며, 그러나 지금도 합천에 살고 있는 원폭피해자와 후손 중 많은 사람은 질환이나 장애로 ‘노동권마저도 박탈당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에 합천평화의집은 이들의 권리 회복을 위한 운동을 하는 동시에, 심리 치유 서비스, ‘평화 나들이’, 구술 녹취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심진태 지부장은 처음 김형률 열사가 합천지부를 찾아왔을 때 함께 힘을 합쳐야겠다고 생각하고 ‘환우회’라는 조직 이름을 지어준 사연을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피폭2세가 법적으로 인정되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피폭2세들이 벌이는 싸움에도 힘이 실리며, 세계 수십 개국에 흩어져있는 피폭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문제도 불거지므로 국제적인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정순 환우회장은 이미 피폭 뒤 81년이 지나 많은 1세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어,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날이 곧 올 것이니 그전에 많이 듣고 연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세들이 떠나면 2세들이 운동을 이어가야 하지만 20년이 넘는 오랜 투쟁에도 제도적 진전이 없어 많은 2세가 지쳐있다며, ‘특별법’ 개정이 이런 상황에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로 미처 다 옮길 수 없는 수많은 한국 원폭피해자의 삶 이야기까지 세 분에게 듣고 나니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평화의 나무'에 각자 적어내려간 비핵평화 메시지를 달고 간담회를 마쳤다.
 
 

우리 반핵평화운동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한국 원폭피해자는 여러 겹의 피해를 겪어왔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휘말렸고, 그 결과 엄청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에도 각종 후유증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피폭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닥뜨렸다. 주한미군의 핵무기가 국내에 배치된 시대에 미국의 원폭 투하를 정면으로 문제 삼는 것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베트남전쟁 참전자 고엽제 피해 등 여러 전쟁 피해 문제가 이슈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상대적으로 관심과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한국 원폭피해자의 현실은 단지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반핵평화운동의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미국의 원자폭탄이 한반도를 해방했다”거나, “북한에 핵이 있으니 우리도 있어야 한다”는 대중적 인식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고, 이것이 반핵평화운동이 부딪히는 첫 걸림돌이다. 이는 이웃 나라인 일본의 반핵평화운동을 “식민지배와 태평양전쟁의 책임을 면하려 한다”고 폄하하는 것으로도 쉽게 이어진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전쟁을 겪으며 “북한의 핵무장 덕분에 억지력이 만들어져 한반도에 전쟁이 없는 것”이라는 주장도 사회운동 일각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원폭 투하로 무려 10만 명의, 세계에서 일본인 다음으로 가장 큰 규모의 조선인 피폭자가 생겨났고 생존자와 그 후손이 지금도 남북한에 살고 있음에도, 이러한 역사를 까맣게 잊은 듯이 이재명 대통령은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속도를 내야 된다고 강조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력을 끊임없이 확대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풀어가는 것도 한국 원폭피해자 문제와 무관할 수 없지 않을까. 예컨대, 히로시마·나가사키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원폭 피해의 상징으로 알려진 것처럼, 합천이 한국 사회에, 세계에 널리 알려진다면 어떨까? 핵무기는 민족이나 전투원 여부를 구분하지 않고 광범위한 피해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본질적으로 비인도적인 무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한반도에서야말로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
 
한국 원폭피해자 운동은 합천에 비핵평화공원을 만들어 세계 비핵평화 도시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세계 각국의 피폭자를 초청하여 합천비핵평화대회를 열며, 이미 그러한 상징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우리 사회운동이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함께 반핵평화운동의 길을 내자.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이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강조한 반핵평화운동의 세 원칙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 모든 핵무기는 어떻게든 폐기되어야 한다.
- 국적을 초월하여 모든 원폭피해자는 지원을 받아야 한다.
- 지구에서 다시는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도록 반핵평화 시민연대가 필요하다.
 
주제어
평화 국제
태그
핵무기 반핵평화 합천 원폭피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