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6.07.15

성평등을 위해 교섭과 제도를 주도하는 노동운동이 필요하다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노동조합의 교섭 전략 국제포럼 <성평등으로 교섭하라> 후기 - 이탈리아와 뉴질랜드의 사례를 중심으로

홍현재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차장)

한국이 1992년 첫 공표 이래 OECD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지켜왔다는 사실은 노동시장의 성차별이 얼마나 심각하고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이를 의식한 듯, 이재명 정부는 ‘성평등한 일터 조성’을 위한 고용평등 임금 공시제 도입을 123대 국정 과제에 포함하여 발표했다. 이미 시행 중인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제도(AA제도)가 공공기관과 기업이 성별 고용 및 임금 현황 자료를 정부에 제출 및 보고만 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과 달리, 고용평등 임금 공시제는 사업체 내 성별 임금 격차 현황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이다. 현재 고용평등 공시제를 도입하기 위한 여러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도입을 앞두고 고용 평등 공시제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 성별 임금 격차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6월 24일, 민주노총에서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노동조합의 교섭 전략 국제 포럼」(이하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은 이탈리아노동총동맹 전문직노조(CGIL-APIQA), 뉴질랜드노동조합총연맹(NZCTU), 일본전국노동조합총연합(젠로렌, ZENROREN), 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FES) ‘노동의 미래 역량 센터’를 초청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교섭과 실천, ▲EU 임금 투명성 입법 지침 등 임금 투명성 제도에 대한 평가, ▲여성이 집중된 직무의 가치 평가 및 제고 등에 대한 경험과 교훈을 듣고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제도 설계와 교섭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포럼 포스터 (출처 :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임금 투명성 제도를 완성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참여와 교섭

 

포럼에서 다뤄진 성별임금격차 해소 전략은 크게 두 가지 층위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업별 성별 임금 정보 공시와 이에 따른 성별 임금 격차 시정 조치를 포함하는 임금 투명성 제도다. 두 번째는 저평가된 여성 노동 가치와 임금을 시정·제고하기 위한 초기업적인 직무 가치 분류·평가 제도였다.

 

페데리카 코키 CGIL-APIQA 위원장은 <이탈리아의 경험, CGIL의 입장, 그리고 단체교섭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발표로,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이탈리아의 임금 투명성 제도가 성별 임금 격차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지 평가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임금 투명성 제도는 2021 임금평등법(Law No. 162/2021)과 EU 임금 투명성 입법 지침에 따른 입법 명령 제96/206호이다.

 

먼저 2021 임금평등법은 ① 50인 이상 기업에 남녀 노동자의 채용·승진·임금·고용 계약·직종·훈련·일-생활 균형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격년마다 작성할 의무를 부과하고, ② 성평등 경영 지표를 달성한 기업에 성평등 인증을 부여하고 인증 기업은 정부 혜택 및 세제 감면 등을 받는 국가 성평등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코키 위원장은 임금평등법이 기업 내 현황을 파악하고 성평등을 기업 정책과 공공 영역으로 끌어온 성과가 있으나, ▲노동조합·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아 일터 내부의 권력관계를 바꿀 수 없어 기업의 평판을 위한 수단에 그치고, ▲데이터가 세분화되지 않아 노동조합이 불평등의 근원지(채용, 분류, 상여금, 시간제, 승진, 훈련, 육아휴직 등)를 식별하기 어렵고, ▲시정 조치가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포럼에서 이탈리아 2021 임금평등법에 따른 성평등 인증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코키 위원장. 코키 위원장은 “인증 제도는 교섭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출처 :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EU의 임금 투명성 입법 지침에 따른 이탈리아 입법명령 제96/2026호 역시 비판했다. EU 임금 투명성 입법 지침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고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에 ▲임금 정보와 임금 결정 기준을 노동자에게 공개하고, ▲성별 임금 격차를 정기적으로 공시하며(100인 이상 기업), ▲성별 임금 격차가 5% 이상이고 이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면 사용자가 노동자 대표와 공동 임금 평가를 실시할 의무를 부과한다.

 

코키 위원장은 EU 임금 투명성 입법 지침이 “임금 차별에 개별 소송만으로는 맞설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임금 투명성이라는 원칙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나, EU 임금 투명성 입법 지침을 국내법으로 전환한 이탈리아 입법명령 제96/2026호는 지나치게 취약하다고 비판했다. ▲가사노동자와 호출 노동자를 제외하고 준종속적 노동자와 종속 자영 노동을 충분히 포함하지 않는 등 많은 여성 노동자를 투명성의 범위에서 누락시켰고, ▲성별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상여급, 성과급, 개별 인센티브 등 개인적·재량적·일시적 임금 구성 요소(수페르미니미)를 제외하였으며, ▲임금 투명성과 연결된 단체협약이 항상 가장 대표성 있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단체가 체결한 단체협약이어야 함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전국 산별 협약이 정한 직무 분류 체계가 아닌 기업 차원의 직무 분류 체계를 도입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는 것이다.

 

특히 투명성의 영역에서 누락되는 개별 임금 보충분(수페르미니미)과 재량적 상여금이 성별 임금 격차의 비가시적인 부분을 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임금 보충분이 높고 성과 상여금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 ‘언제든 일할 수 있고 헌신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 출산·돌봄·시간제 노동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누가 되는지는 성차별이 작동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코키 위원장은 따라서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단체교섭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코키 위원장은 이러한 평가를 종합하며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려면 임금 공개와 인증 제도가 교섭을 “뒷받침”하고, “노동조합은 성평등을 단체교섭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코키 위원장은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가시성은 첫걸음일 뿐”이며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직무 분류 체계, 투명성 장치, 상여금과 변동급, 노동시간 편성, 돌봄 책임, 경력 발전,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대책, 그리고 디지털화와 인공지능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키 위원장은 “시간당 성별 임금 격차만으로는 불평등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며 노동시간, 경력 발전, 돌봄 책임, 직종 분리, 지도적 지위(에 대한) 기회에서 불평등이 숨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출처 :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이러한 이탈리아의 교훈은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거시적·장기적 산별 교섭 목표와 전략이 부재한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노동조합은 임금 투명성 제도가 성별 임금 격차를 일으키는 성차별의 근원지를 파악할 수 있게끔 구성·운영되도록, 그렇게 공개된 정보로부터 성차별에 대한 시정 조치를 기업과 정부가 도출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실천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임금 투명성 제도로 확인할 수 있는 성별 임금 격차는 성차별로 인한 결과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성별 임금 격차와 성차별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 투명성의 범위를 넓히되, 임금 격차를 넘어서는 고용 차별까지 인지하고 교섭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여성이 돌봄 책임으로 인해 경력 발전·노동시간 편성·성과급 경쟁에서 불리한 현실, 특정 직무를 맡게 되고 이러한 직무가 저평가 받는 현실, 괴롭힘과 폭력에 더 취약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교섭 전략 말이다.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교섭 전략

 

코키 위원장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단체교섭 체계는 두 가지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전국 산별 단체교섭(CCNL)으로, 각 산업 부문의 최저임금, 직무 분류, 기본 권리, 노동시간, 휴가, 복지 규정 등 기본적인 노동 조건을 정한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층위인 CCNL을 보충하는 단체교섭인데, 주로 기업별·지역별 협약이지만 그 외에도 사업장별·공급망별·지구별 교섭에 대한 논의와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코키 위원장에 따르면 이러한 교섭 체계는 전국 산별 단체협약을 통해 전 산업에 적용되는 노동의 기본 기준을 정해 “임금 덤핑을 막고 기업 간 불평등을 줄일 수” 있으며, 보충적 단체교섭을 통해서는 불평등이 만들어지는 세부적인 지점들에 개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코키 위원장이 이탈리아 단체교섭 층위와 층위별 위상 및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코키 위원장은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각 층위별 단체교섭의 목표와 시도, 사례도 소개했다. 먼저 전국 산별 단체교섭을 통해서는 기존의 직무 분류·등급 체계를 개편함으로써, 비가시화되거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숙련과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2021년 체결된 금속·기계 부문의 산별 단체협약은 노동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숙련과 책임에 따른 직무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직무 등급에 반영하려 했다.

 

이에 대해 코키 위원장은 “새로운 분류 체계가 자동으로 성중립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관계적 숙련, 돌봄 관련 숙련, 조직 운영 숙련, 감정 노동, 조정, 소통, 갈등 관리, 사람에 대한 책임 등은 흔히 기술적 또는 생산 관련 숙련에 비해 저평가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직무 분류 체계 개편은 성중립적 직무 평가와 성별 경력 발전 및 임금 분포에 대한 정기적 모니터링 등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업장 차원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기업별 교섭 사례도 소개했다. 키에시, 불가리, 아틀란티아, 아우토스트라데는 일·생활 균형 촉진을 위한 원격·혼합 노동이나 유연 노동 제도, 폭력·괴롭힘 반대 선언,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과 시책에 관한 연례 보고, 성평등 노사 공동위원회의 고용 및 임금 성평등을 위한 정기 조사 등을 단체협약으로 채택·도입했다.

 

기업명 - 기업별 협약 내용

▲키에시 - 부모됨을 성평등을 위한 중요한 단계로 인정. 원격·혼합 노동을 포함해 부모를 모두 지원하고 일·생활 균형을 촉진하는 조치. 일터에서의 적대적 행위, 폭력, 괴롭힘에 반대하는 선언.

▲불가리 - 포용과 성 정체성, 유연 노동시간, 시간제, 스마트워크, 산업안전보건, 건강검진을 위한 추가 휴가.

▲아틀란티아 - 경력 성장, 동일업무 동일임금, 출산, 공동 육아 등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과 시책에 관한 연례 보고서 도입. 해당 보고에서는 총 보수, 부가적 (임금) 구성 요소, 수당, 성과 연동 상여금, 현물 급부, 그 밖의 지급액까지 포함해야 함.

▲아우토스트라데 - 성평등 노사 공동위원회가 성중립적 채용, 경력 발전, 훈련 접근, 여성 채용 전략 및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진출 촉진, 투명성, 성별 임금 및 연금 격차 해소, 성평등에 기초한 리더십, 조직 웰빙과 차별에 관한 정기 조사.

 

다만 이에 대해 코키 위원장은 “선도적인 사례일 뿐, 아직 보편적인 규칙은 아니다”라며 특히 “이탈리아는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 권력이 집중되어 있지만 중소기업이 훨씬 많다”고, 이러한 권력의 불균형으로 기업의 규모에 따라 기업별 협약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은 기업별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산별 단체협약을 우회하는 '해적 협약'도 존재하는 어려움도 설명했다.

 

코키 위원장의 발제에 대한 토론을 맡은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임금 투명성은 단순한 정보 공개 제도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임금 구조를 교섭하고 시정할 수 있는 집단적 권리여야 한다”라며 발제의 요지에 공감을 표했다.

 

또한 최복준 정책실장은 국제 사례를 검토하며 “성별 임금 격차 해소는 두 가지 경로의 연동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여성 직무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교섭·평가 경로다. 영국과 독일에서 노사 간 산별 단체협약을 통해 여성 집중 직종의 직무 요소(의사 소통, 돌봄에 대한 책임, 심리·사회적 요구 및 노동 조건)를 직무 가치 평가에 반영한 사례를 확인했다. 이어 두 번째 경로로 이러한 직무 가치 평가의 결과가 여성 노동자의 임금 제고로 이어지기 위한 공공 거버넌스 경로를 짚었다. 프랑스, 독일의 사회서비스·의료 부문의 임금 인상 및 배치 인력 산정을 위한 예산이 배정된 사례를 통해, “직무와 인력에 관한 교섭 결과가 실제 고용과 임금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재정·지불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경로와 CGIL의 직무 분류 체계 개편 사례는 모두 기업 내 성차별을 넘어서, 노동시장에서 여성 집중 직종과 직무가 구조적으로 저평가받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여성과 남성이 다른 일을 하기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어렵다. 비슷한 책임과 숙련 등을 요구하는 직무라면 임금도 그에 준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필요한 것이다. 최복준 정책실장은 대표적으로 보건의료산업은 성별 직종 분리가 매우 뚜렷하며, 여성 집중 직종은 남성 집중 직종인 의사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2020년 보건의료인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요양기관 근무 간호사의 94.9%, 치과위생사의 99.2%가 여성이었지만, 의사 중 여성 비율은 25.5%였다.) 이에 대해 최복준 정책실장은 “직종 간 임금 차이 자체를 곧바로 성차별로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직무 평가에서 기계·재정·조직 관리에 대한 책임은 비교적 잘 보이지만, 환자의 생명에 대한 책임, 돌봄과 감정노동, 관계적 숙련과 조정 능력은 부차적으로 취급되어 왔다”고 평가했다.

 

코키 위원장의 발제 이후, 보건의료노조 최복준 정책 실장의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을 위한 성인지적 직무 가치 평가

 

이어 최복준 정책실장은 “직무 가치 평가는 사용자 주도의 성과형 직무급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노동조합은 직무 가치 평가와 직무급을 경계해 왔지만, 그러한 부정적 인식에는 노·사·정 모두 각자 잘못된 접근을 보여 온 배경이 있다고 짚었다. 정부는 직무급을 공공기관의 인건비 절감과 재정건전성 관리 수단으로, 사용자는 직무급을 연공급 해체와 임금 차등 확대, 기업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정부와 사용자의 왜곡된 접근에 방어적 거부로 일견 정당하게 대응했으나, ‘그렇다면 무엇이 더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임금 기준인가’라는 대안적 논의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어떤 노동이 왜,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라는 직무 가치 평가의 핵심 질문이자 공백을 노동조합이 채워야 할 시점이며, 성평등한 직무 가치 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평가 기준을 사용자가 아니라 노사가 공동으로 결정할 것
▲기업별 시장 임금이 아니라 산업 전체에 적용할 사회적 기준을 만들 것
▲저평가된 노동의 임금을 올리는 상향평준화 수단으로 활용할 것
▲직무의 차이뿐 아니라 숙련 형성과 근속 발전, 노동 강도를 함께 반영할 것
▲직무 분류와 임금 등급 변경에 대해 노동조합의 동의권과 이의 제기 절차를 보장할 것

 

그런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법제화되어 있지만, 노동 시장에서 실현된 적 없었던 한국에서는 직무 가치 평가에 대해 여러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어떤 구체적인 직무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성과 남성의 직종·직무가 분리되어 있는데, 언뜻 보기에 완전히 다른 성격의 직무 간에 가치를 비교하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한가?

 

뉴질랜드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 시도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멜리사 안셀브리지스 뉴질랜드노동조합총연맹(NZCTU) 사무총장은 <뉴질랜드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발표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른 임금 형평성 청구가 광범위한 여성 직무 가치 평가와 임금 시정으로 이어진 역사를 소개했다.

 

1972년 제정된 뉴질랜드의 '동일임금법'은 공공부문에만 적용된 1960년 '공무원 동일임금법'의 범위를 넘어 민간부문 사용자에게도 동일하거나 실질적으로 유사한 업무에 대해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동일임금법은 ‘동일한 업무’가 아닌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은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따라서 간호, 교육 보조, 노인 돌봄과 같은 다수의 여성 직종은 그에 견줄 만한 기술과 노력, 책임을 요구하는 남성 집중 직종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다.

 

멜리사 안셀브리지스 사무총장이 지금의 뉴질랜드 임금 형평성 체계를 형성한 계기가 된 '바틀렛 대 테라노바 소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그런데 2012년, 이러한 임금 체계를 뒤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바틀렛 대 테라노바 소송’이다. 노인요양시설 ‘테라노바 홈스 앤드 케어’에서 20년 넘게 일해 온 돌봄 노동자인 크리스틴 바틀렛이 “돌봄노동이 ‘여성의 일’이라는 이유로 저평가되어 왔다”고 주장하며 제기한 소송이다. 그 결과 고용 법원이 바틀렛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주로 또는 전적으로 여성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여성의 동일임금은 “남성이 같은 일을 한다면 받게 될 임금을 기준으로 결정되어야 하며, 이때 기술·책임·근무 조건·노력의 정도는 물론, 현재적·역사적·구조적 성차별에서 비롯된 일체의 구조적 저평가를 배제하고 산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바틀렛 대 테라노바 소송의 결과로 유사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의 임금형평성 청구가 쏟아질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이에 정부는 2015년 임금형평성 원칙에 관한 공동 작업단을 설치하고, 2017년 '고용(임금형평성 및 동일임금)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청구가 타당한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청구 절차 시작의 요건으로 삼고, 비교 대상의 범위를 협소하게 제한하여 형평성 청구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2017년에는 임금 형평성 청구의 결과로 돌봄·지원 노동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노인 돌봄, 재가 지원, 장애인 지원 분야 약 5만 5천 명 노동자의 임금이 15%~50% 인상되었다. 2020년에는 '동일임금 개정법'이 통과되어 형평성 청구의 요건이 ‘타당한 청구’에서 ‘주장 가능한 청구’로 완화되었고, 노사가 소송 절차에 의존하기보다는 제기된 청구를 공동으로 협력하여 해결하도록 장려하는 이해 기반 교섭 방식을 확립해 노사 간 갈등을 완화시켰다.

 

안셀브리지스 사무총장은 이렇게 확립된 뉴질랜드의 임금 형평성 체계가 다음의 단계를 거쳐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1) 청구 제기

- 노동자 혹은 노동조합이 임금 형평성 청구를 제기하며 청구 절차 시작.
- 청구 당사자들은 해당 업무가 주로 여성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과, 그 업무가 성차별로 인해 역사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다고 볼 만한 합리적 근거를 입증해야 함.

 

2) 청구 평가

- 노동조합과 사용자는 직무 평가 도구를 활용해 청구인이 하는 업무의 기술·책임·노력·근무 조건을 살펴보고, 이를 참고하여 비교 기준으로 삼을 적절한 남성 비교 직종을 식별.
- 식별한 남성 비교 직종에 대한 직무 평가를 수행.
- 청구인과 비교 직종의 직무 평가를 종합하여 직무 및 보수를 비교.

 

3) 청구 타결

- 청구인과 비교 직종의 직무 및 보수 비교 결과를 정리하여 청구인 업무가 저평가된 것인지 결론 도출.
- 이러한 결론에 따라 임금 형평성 청구에 따른 교섭을 진행하고 타결.

 

4) 검토·점검

- 임금 형평성 유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노동 조건과 임금을 검토하고 점검.

 

이러한 직무 가치 평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직무의 가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도구가 필요했다. 뉴질랜드의 정부와 노동조합이 함께 개발한 ‘성중립적 직무 규모 산정 도구’는 다른 직무의 기술과 지식, 경력 수준, 책임, 부담과 노력, 근무 조건, 문화적 역량(특히 뉴질랜드 원주민 테아오 마오리와 관련된 역량을 포함) 등의 요소를 포함하여 분석·비교할 수 있다.

 

또한 안셀브리지스 사무총장은 이러한 도구를 활용한 직무 가치 평가가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상세한 질문 목록을 바탕으로 청구인과 비교 대상을 면담하는 과정에 조합원들이 면담자로 참여했음을 강조했다. 조합원들이 자기 업무의 범위와 그에 요구되는 기술·책임·노력을 확인하자 스스로의 노동 가치를 인식하고, 가부장적 규범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기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여성 직무 가치에 대한 대중적 토대는, 2025년 동일임금법이 개악되어 임금형평성 청구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여성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는 대중의 전면적 반발에 원동력이 되었다.

 

2025년, 뉴질랜드 정부는 동일임금법을 개정해 여성 집중 직종의 요건을 여성 노동자 비중 70%로 상향했고, 직무 가치 비교 평가 시 비교 대상 직종을 해당 직종과 동일한 사용자 내에서 우선 찾도록 하고 적절한 비교 대상 직종을 찾지 못할 시 청구가 중단되도록 했다. 이는 사실상 임금 형평성 청구가 불가능하게 하는 조치였다. 이러한 개악 이후 분노한 노동자와 시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반대 집회를 벌였고, 정부에 제출된 청원에는 뉴질랜드의 총 인구 500만 명 중 9만 명이 서명했다. 이는 뉴질랜드의 임금 형평성 청구와 여성 직무 가치 평가가 여성 노동의 가치에 대한 대중적 인식 기반을 얼마나 잘 형성해왔는지 보여준다. (사진 출처 :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한편 뉴질랜드의 임금 형평성 청구에 따른 직무 가치 평가의 난점과 이를 해결할 수 있었던 제도적 조건도 참고할 만하다. 첫 번째 난점은 비교 대상으로 적절한 남성 집중 직종을 찾는 일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뉴질랜드 정부는 자료 저장소를 구축해 청구에 따른 직무 평가 자료를 축적해두었다. 새로운 청구를 제기한 당사자들은 이전 청구의 상세한 직무 평가와 임금 자료에 접근하여 청구 평가 단계를 진행할 수 있었으므로, 청구 절차가 효율화되었다.

 

또한 이처럼 축적된 직무 가치 평가의 경험과 자료 덕분에, 서로 다른 직무의 가치가 비교 가능하다는 교훈도 도출되었다. 안셀브리지스 사무총장은 돌봄 노동자와 비슷한 직무 가치를 가진 남성 직종으로 감옥의 교도관을 식별하여 평가한 사례를 들며, 이러한 과정을 “팬더와 펭귄을 비교하는 것”에 비유했다. 안셀브리지스 사무총장은 “팬더와 펭귄은 먹이도 대나무잎과 생선, 서식지도 숲과 남극으로 언뜻 보면 외양이 흑백이라는 것 외에는 큰 공통점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비교해보면 둘 다 보호종이라는 의외의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처럼 성격이 다른 듯한 직종·직무도 비교하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며, 예컨대 요양보호사와 교도관의 직무 가치도 비교 분석 및 평가할 수 있다. 요양보호사도 감옥의 교도관처럼 사람에 대한 책임,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요구받으며 감정적·정신적 스트레스가 높다. 그럼에도 요양보호사의 임금 수준은 교도관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었다.

 

두 번째 난점은 임금 형평성 청구에 따른 직무 가치 평가 작업에는 전문적 분석 및 자료 수집 역량과 자원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특히 소규모 사업주나 노동조합에서는 이러한 역량과 자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에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임금 형평성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팀을 구성해 소규모 사업주와 노동조합을 지원했다.

 

뉴질랜드의 경험은 성인지적 직무 가치 평가가 비가시화된 여성 노동의 가치를 드러내고, 임금 시정으로 이어지도록 성공적으로 제도화된 사례이다. 구체적으로 ▲직무 가치에 대한 집단적인 평가와 스토리텔링에 기초하여 노동자와 시민이 여성 노동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주체화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유사한 역량·책임·노동 조건을 요구하는 다른 직무와 여성 직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하여 저평가된 임금을 시정할 수 있는 평가·교섭 시스템을 도입했다.

 

직무 가치 평가를 기반으로 한 임금 체계는 직무급제이지만, 한국에서는 정부와 기업의 반노동적 접근 및 노동조합의 소극적 대응으로 직무급제가 안착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대기업 및 공공기관은 호봉제가 지배적이지만, 여성 노동자가 다수 분포한 중소기업이나 서비스업 등 산업의 임금 체계는 ‘체계 없음’의 비중이 높다.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판단기준 연구」 (구미영, 2022)) 여성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제도적 기반을 노동조합이 주도하여 마련하지 못하는 사이, 미조직된 상당수 여성 노동자는 그대로 차별에 노출되어 저임금을 받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뉴질랜드의 경험은 노동조합이 고용·임금 체계의 켜켜이 쌓인 성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전략을 고안하고 실천해야만 성평등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가시화하여 비판하고, 차별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지점들(여성 직무에 대한 저평가, 돌봄 책임의 여성 편중, 이에 따른 노동 배치)에 개입하여 바꿔내는 교섭과 제도를 노동조합이 주도해야 한다.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길은 그것뿐이다.

 

(썸네일 사진 출처: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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